그러나 사람보다 큰 책은 없다
○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창문은 남을 것이다. 한때 내
삶의 순간을 잡아 비춰주었던 정말 별볼일없이 평범한 창
문. 그러나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창문, 그 창문의 아
름다운 풍경들이 삶의 순간들이…… 인생은 지나간다.
○
이 세상의 모든 집은 ‘그의 집’임과 동시에 ‘우리들의 집’이
어야 한다. 벌레나 새의 집처럼 말이다. 자기 집만 생각하
고 자기 집만 잘 짓고 홀로 잘 살면 그처럼 무서운 집도 없
겠기에 말이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도 그 집에 사는 사람
들의 마음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의 집’이 없으면 무슨 소
용일까.
○
사랑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며
겁이 없다. 겁 없는 세상,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겁도 없이 사
랑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은 강물 위로 사라지는 눈송이들
처럼 아름답다. 겁도 없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강물로 사
라지는 저 수많은 눈송이처럼 말이다. 사랑도, 삶도 순식
간이다.
○
청춘이라는 말에는 불안이란 말과 방황이란 말과 사랑이
란 말과 연애라는 말과 그리고 절망이라는 말과 이별이라
는 말들이 따라다닌다. 청춘은 불완전한 말들의 소용돌이
다. 허공을 떠돌다 깜박 사라지는 눈송이 같은 말이기도 하
다. 누구나 다 그렇게 열벙처럼 지나가버린 청춘 시절의 통
증과 슬픈 이야기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
그대들이 짊어진 그 무거운 짐들, 저 매화나무 아래에다
다 부려라. 꽃잎 뜬 강물에 그대 두 손에 쥔 것들 다 놓아버
리고 가난한 몸과 마음으로 서서, 매화야! 매화야! 섬진강
에 지고 피는 매화야, 이렇게 한번 속으로 매화를 불러본다.
꽃피고 새가 우는 이 좋은 봄날에 피고 지는 꽃 한 송이 없
다면, 이 봄이 어찌 봄이고, 이 생이 어찌 생이겠는가.
○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 말이 진실이어서 그 말 속에 거짓
이 없으니, 그 말이 세상의 허물을 알게 한다. 단정해지고,
단순해지고, 진실에 다가가 내가 가지고 있는 허식을 벗게
한다.
○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은 한 송이 꽃을 보고도 세상의 이
치를 끌어내고 세상에 대한 사랑이 싹틈을 눈치챈다. 본다
고 해서 모두가 다 얻는 것은 아니다. 깨달음을 주는 것들은
크고 작음이 아니고 길고 짧음의 시간이 아니다. 맑고 깨끗
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깨달음이 순간에 온다.
○
사람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보다 큰 책은 없다. 사람이 길이다. 이 세상의 처음도
끝도 사람이다.
○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된다. 두 걸음이 되면 세 걸음은 쉬
워지고 열 걸음이 되면 열한번째 걸음은 더 쉬워진다. 그 힘
이 천 걸음을 딛게 한다. 땅이 울리리라. 한발 내딛는 그 발
걸음이 늘 새 걸음이어라. 새로 닿는 땅이 환하게 눈뜨는 새
땅이어라.
○
자기에게 처한 어려움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 끝이 보인
다. 어느 구석이나 어느 굽이나, 그 일을 해결할 실마리가
보인다. 그 실마리 끝을 잡고 천천히 따라가면 환한 끝이 반
드시 보인다. 잘못은 늘 나한테 있다. 그 끝에 내가 있다.
○
고민과 고뇌는 삶의 질서를 재탄생시키고 삶을 새로 세
우는 철학을 탄생시킨다. 모든 것으로부터 가해지는 아픔
과 기쁨, 환희이며 동시에 절망이다. 새벽이며 동시에 저물
녘이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우는 영원의 시작이다.
○
우리들은 하찮은 풀잎 하나,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보는
공부가 지금 필요하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
진실은 태양과 같은 것이다. 진실을 가진 자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두려움이 없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그 빛은 찾아
가고 아무리 작은 풀잎에도 그 빛은 가닿는다.
○
세상으로부터 오는 병도 실은 다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키운다. 병은 늘 그렇게 자기 자신이 키우고 만든다. 손에
들고 있는 것들을 놓아라. 마음에 담아둔 것을 비워라. 어
디든 쉴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풀어라. 한 사람을 사랑할
때처럼 그렇게 만족하라.
○
고립은 사람을 강하게 단련시키고 성숙시킨다. 외로움
의 집이니까. 그 집은 세상과 닿을 수 없는 자기만의 성이니
까. 벌레가 집을 짓고 홀로 긴 겨울을 보내는 것처럼, 알 껍
데기 속에 숨은 새 생명처럼, 고립은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
고 정신을 훈련시킨다. 성장을 위한 자발적인 통증이다.
○
아, 인생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무겁고 깨질
것 같은 그 고독을 들고 아둥바둥 세상을 살았으니 산 죄가
크다.
○
더 두고, 더 먹고, 더 가고, 더 살려고, 삶을 늘리지 말라.
사람들은 어제의 걱정을 도로 가져오고 내일에서 근심을
미리 사온다. 그리고 오늘은 제 무덤을 제가 판다.
○
진보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 경제적인 부를 찾는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없다. 안락과 편리한 생활은 대량 생산과 대
량 소비를 부르고 그것은 자원 고갈을 부른다. 이로써 죽어
가는 자연과 인간성을 진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란 인
류가 행복을 찾아가는 길의 기록이어야 한다.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 지금
의 내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자유다.
사랑 말고는 뛰지 말자
김용택,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