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나는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답니다.
달빛이, 바람 소리가 구름 없는 하늘을 지나갔지요.
오월이면 물무늬 파리미 새끼들이 모래밭을 지나는
낮달을 보았지요.
눈이 부신 새잎들이 피어나 박수를 치며
새들을 부르면
연보라색 오동 꽃잎이 종을 치며 땅에 떨어졌지요.
푸른 오디가, 푸른 버찌가 내게 말합니다. 날 봐요. 나를
불러봐요.
지금 나는 이렇게 푸르지만, 곧 붉어졌다가 검게 익어 땅
에 떨어질 거예요.
나는 바람 부는 뽕나무가 말해주는 말을 받아썼지요.
꾀꼬리가 이쪽 산에서 저쪽 산으로 강을 건너며 울면
깨를 열개 심으면 열개가 다 돋아나고
보리타작하는 도리깨 소리를 듣고
토란싹이 돋았지요.
마을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아났습니다.
샘에는 가재들이 살았지요.
가재들은 구정물을 일으키며 막힌 숨통을 뚫어주었습
니다.
방으로 찾아든 달빛을 찍어 달빛 위에 시를 쓰면
달빛이 내 시를 가져갔습니다.
사람들이 뭉게구름으로 목을 축이고
마루에 누워
바람을 불렀지요.
깊은 강에서는 물고기떼가
구름 그림자처럼 서서히 방향을 틀며 놀았습니다.
해 지면 물고기들이 흐르는 강물을 차며 허공으로 뛰어
올랐습니다.
물고기들이 그렇게 해 저문 강물 위에 시를 썼습니다.
나는 내가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마른 흙 위를 걸어
열개의 발가락으로 선명한 발자국을 찍으며 강으로 갔지요.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온 자운영꽃이 내게 말했습니다.
가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나는 떨려요. 나는 겁나요.
이슬비 한 방울이 마른 이마에 떨어지면
지금도 나는
목이 마르고
붉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립니다.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김용택, 창비시선 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