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모와 개망초꽃
심어놓은 모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논가에 있는 학교는 늘 조용하다.
아이들이 줄어든 운동장에 하루가 멀다 하게 제초제를
뿌려도
금방 풀이 자란다. 끝이 노랗게 탄 풀들도 이제 제 몸 일
부를 버릴 줄 안다.
논물이 맑아졌다. 논길이 학교길이다.
저 꽃이 개망초꽃이다. 엄마는 논에 가면서
어둔 얼굴로 말했다.
나 없이도 아빠랑 살 수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나는 몰랐다.
뜬모를 때울 때 엄마는 떠났다. 엄마의 발자국에 구정물
이 고이고
해가 져도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날
어두운 마당에 들어선 아빠는 흙 묻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나갔다. 아빠, 아빠 어디 가?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 우리 세 사람 가슴에 고여 길을
찾지 못하는
말들 때문에 답답했다.
밤이면 검게 탄 아빠의 얼굴은 더 어두웠다.
자리 잡지 못한 벼들이 둥둥 떠 있다.
소쩍새가 운다. 엄마도 저 새소리를 들었을까.
오일째다.
말도 통하지 않던 엄마가 어떻게 개망초꽃을 알았을까.
엄마의 나라는 섬이랬다.
야자수, 망고, 바나나, 일년 열두달 내내 여름이라고
엄마는 슬픈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엄마의 슬픔이 내게로 몰려올 때면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엄마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다.
불을 켠다. 전화벨이 울린다. 아빠다!
그래, 엄마 안 왔어.
개망초꽃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꼭 올 것 같다.
모를 때울 때 논에 찍힌 엄마의 발자국에 고인 구정물이
개이고
뜬모가 비스듬하게 뿌리를 내렸다. 바로 설 수 있을까?
학교에 간다.
운동장에는 끝이 노랗게 탄 풀들이 고게를 들고 돋아난다.
볼수록 운동장이 넓다.
교실로 들어갈 때 우리집 쪽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렸다.
아빠다.
개망초꽃 핀 논둑길을 경운기가 달린다.
아빠는 뿌리가 하얀 뜬모를 때우러 간다.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김용택, 창비시선 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