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장
―안동 찜닭 생각
학력고사를 두어 주 앞두고 내가 또 칵 죽고 싶어져
학교 안 가고 술 취해 드러누워 있을 때,
벼 타작하던 아버지가 찜닭을 들고 자취방엘 왔다
삼부자가 그눔의 학교 졸업장 하나 못 받으면 무슨 망
신이냐고,
이거 먹고 내일은 꼭 가라고 맛있는 거라고
살림 잘 들어먹고 공납금 잘 안 주던
이상한 아버지가 보기 싫어서
나는 말없이 그걸 먹으며, 찜닭이 맞나 닭찜이 맞나
소주나 한잔 더 했으면 좋겠네,
생각하고 있었다 공부도 연애도 안 되어 그만,
집이고 학교고 뭐고 멀리멀리 탈출해버리고 싶던
시인 지망생, 하지만 찜닭에 누그러진 열아홉
아버지 경운기 몰고 육십 리 길 돌아가자
포기했던 <확률ㆍ통계> 단원을 다시 펼쳤다
안동고등학교 일 학년 중퇴생 아버지는 십 년째 고향
앞산에 누웠고
이 학년 중퇴생 형과, 그 밤 열심히 찜닭 뜯던
누이는 민중으로 돌아가
안동 찜닭으로 부산서 먹고들 산다
닭하고 무슨 원수가 졌는진 몰라도
개업 축하하러 와 다시 찜닭 앞에 앉고 보니,
어느덧 삼십 년이 흘렀구나
안동고등학교 삼십감 회 졸업생, 졸업장 너무 많아
탈인 나는
누이가 익혀 낸 찜닭을 먹고는 있지만,
내가 삼십 년 전 그 밤으로 돌아가 있는 걸 아무도 모
를 것이다
연거푸 소주잔을 비우고는 있지만 여전히
시도 연애도 안 돼 칵 죽고 싶은 오십,
닭찜이 맞나 찜닭이 맞나 생각 중인 걸 모를 것이다
뭐가 맞니껴, 물으면 나의 귀신 아버지는 술에 절어
횡설수설할 것이다, 그냥 맛있는 거라고, 학교는 가야
한다고
어옜든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끝없는 사람
이영광, 문학과지성 시인선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