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씻이
백중을 얼추 앞두고 만벌매기가 끝나면 사람들은 그
집 머슴을 사다리에 태우고 주인집으로 향한다. 땡볕 아
래 고된 초벌매기 두벌매기에 등이 휘어진 일꾼들이 스
스로를 달래기 위한 놀이였다.
그날 해가 반 뼘쯤 남아 있을 무렵, 들가운데 논에서
출발한 사다리가 작은 머슴 낙식이 형과 큰 머슴을 태우
고 우리 집 사립을 밀치고 들어서자 우렁우렁한 일꾼들
의 목소리에 온 집 안이 흥성거렸다. 이때 주인은 통 크
게 막걸리 몇 통과 돼지고기, 호박적 같은 것들을 내놓아
그들을 대접해야 하는데, 그날따라 아버지는 밖을 한번
흘끗 내다보고는 사랑방 문을 꽝 닫고 들어가 나오지 않
았다. 호미씻이에 들떴던 사람들이 두세두세 흩어지고,
얼굴에 숯검정 칠까지 한 낙식이 형이 송아지 같은 눈을
뜨고 한동안 마당 끝에서 서성거리던 모습이 잊히지 않
는다. 그날 밤 나는 이슬이 내리는 평상에 누워 초롱초롱
한 별들을 올려다보며 커서는 절대로 아버지 같은 어른
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나비가 돌아왔다
이시영, 문학과지성 시인선 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