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게시글에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1994)의
서사 유출이 포함됐습니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거짓말의 이유, 방식 등에 따라
종류를 구분한 것이죠.
다들 진실을 감추는
'새빨간 거짓말'이나
선의의 거짓말을 뜻하는
'하얀 거짓말'은 아실 겁니다.
저번의 거짓말 얘기 때,
레이먼드 K.헤셀이 들었고
호두와 요이미야가 쓰던
하얀 거짓말의 얘기를 나눴죠.
저들의 하얀 거짓말 속에서
가혹한 상황에 처하고도
삶에의 희망을 되찾거나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답은 마음가짐에 있었으니까요.
티바트 편의 서사 주제가
영지주의를 논파하면서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이기에,
하얀 거짓말은 대단히 중요하죠.
대지로 불리던 거짓세계 속에서
응어리진 분노만 붙들고
모든 걸 파멸하려는 이도 있었으나,
호두와 요이미야는 그와 반대입니다.
거짓 안에서 진실한 행복을 찾았고
'좋은 쪽'만 골라 먹으려는
이원론의 편식쟁이가 판치는 가운데,
진실과 거짓의 이원론을
거짓의 포용으로써 논파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에는
검은 거짓말도 있습니다.
죄인이 저지르는 악의의 거짓말이죠.
이번엔 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행의 시작점인 몬드에서
가장 많이 경계되는 사람은
단연코 알베도일 겁니다.
그의 거짓말은 너무나 위중하죠.
기간 한정 이벤트였기에
즐기지 못한 분들도 있겠지만,
2.3 버전의 '눈보라 속 그림자'에서
알베도는 몬드에 위기를 심었습니다.
위 이벤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알베도의 형제인 두린의 유해가
설산에서 칠흑 같은 피를 흘렸고,
이 피를 거둔 생물 일부가
의태를 복제하는 능력을 습득한
사실을 확인하며 시작합니다.
이 변종 구라구라꽃은 인간의
외형, 언행, 심지어 감정까지
전부 복제하고 따라했죠.
칼로 찌른 진짜 알베도의 모습.)
외양은 물론이요, 대화를 해도
진짜 인간과 분간이 안 됩니다.
그리고 알베도는 이들 중 일부를
몬드에 몰래 잠입시켰습니다.
특히 어떤 녀석은 알베도를 복제하여
가짜 알베도가 된 채로
몬드에서 생활하고 있죠.
서로를 응시한 가짜 알베도.)
네, 지금도 잠입한 상태입니다.
인조인간인 알베도의 목에는
연금술 공정의 흔적이 남았는데,
그마저도 온전히 복제했죠.
즉, 알베도는 몬드에
검은 거짓말을 하는 중입니다.
범죄자의 위증처럼
죄행을 감추는 것이죠.
그럼 궁금해지는 것은
거짓말의 이유입니다.
알베도의 태생은 연금술,
그 중에서도 현자의 돌 등
신비로운 기물을 만드는
제작 공정 '마그눔 오푸스'죠.
흑, 백, 적, 그리고 금.
황금의 인간이 담겼다.)
총 4단계 중 두번째 단계가
알베도의 '백악'입니다.
덧붙여 흑의 단계는 흑토술로,
두린이 바로 '흑토'의 피조물이죠.
여기서 알베도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 탄생을 인정받아선 안 되는,
태생부터 사악한 존재도 있는가?'
알베도와 연관된 요소는
하나같이 '탄생의 기쁨'과
관련된 것들이 많죠.
스킬이나 특성은 물론이요,
전설임무나 언행도 그렇습니다.
탄생은 모든 존재에게
축하를 받을 축복입니다.
하지만 두린은 그걸
부정당한 존재였죠.
모두가 누려야 할 탄생의 기쁨을
형제는 부정당한 상황이기에,
스스로의 정체성까지 복제한
변종 구라구라꽃을 대리인 삼아
몬드로 데려왔습니다.
알베도는 탄생의 기쁨을 누리려던
두린에 대한 몬드의 부정을,
태생부터 검은 거짓말인 존재로
재차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흑토의 혼탁함은 거부당했으니,
백악의 순수함인 자신 역시
어떤 답을 받을지 불분명한 거죠.
지금의 거짓말은 아마도
확실한 답변 이전에 징검다리를
미리 두드리는 과정일 겁니다.
전 이 두 형제의 서사에서
이제는 고전이 된,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만화 몬스터(1994)가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에도 부정당한 탄생과
존재(정체성)의 복제를 다루죠.
만화 몬스터(1994)에서는
모두에게 평등한 것은
오로지 죽음이라 여긴 요한과,
그런 요한의 파멸성을
종식시키려는 안나 남매가 나옵니다.
요한과 안나는 어린 시절에
끔찍한 일을 겪는 바람에
인성이 파괴되어 기억을 잃었죠.
비참한 쌍둥이 고아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둘 다 이름을 잊었으며,
그 탓에 가는 곳마다
이름은 물론, 성씨도 바뀌어
매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정체성을 상실한 거죠.
우여곡절 끝에 안나는
어느 일가에 안착하여
법조인으로서의 꿈을 키웠으나,
죽음만을 바라던 요한은
세상을 부정하고 자신의 존재까지
완전히 말살하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죽이면서
자신에 대한 타인의 기억까지
전부 말살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도 자.살하려 합니다.
이른바 '완전한 자.살'이죠.
요한은 한 인간에게 내려지는
완벽한 죽음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생명의 평등함을 믿는
천재 뇌외과의 덴마 박사가
어린 시절 시도한 완전한 자.살을
수술로 되살림으로써 무위로 돌렸죠.
수술이 밀려 결국 사망한
심지어 당시의 덴마는
병원 사내정치에 이골이 나서
병원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먼저 입원한 요한을 수술하여,
병원에 막대한 후원금을 대던 환자가
사망에 이른 상황이었습니다.
그 탓에 병원장의 신망을 잃고
병원 내 입지까지 말렸으나,
그럼에도 덴마에게 생명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었죠.
이 일을 계기로 요한은
자신의 완전한 죽음 대신
완전한 평등을 선사한 덴마를
친구로 들임과 동시에
대척점 삼아 첫 질문을 던집니다.
'생명은 정말 평등한가?'
'이름이 없어 타인을 삼키고
그 가죽을 뒤집어 쓰는 괴물도
세상에 남을 권리가 있는가?'
요한도 알베도 형제처럼
이원론에 대해서 또다른
기점을 마련해 우리에게 건넵니다.
바로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이죠.
모든 생명에게 평등한 것은
태어남과 죽음인데,
이 중 하나를 부정받자
결국 검은 거짓말을 위장 삼아
다른 존재를 뒤집어 쓰고는
세상에 질문을 던집니다.
하늘과 땅을 따로 부르나
실은 서로 어우러졌듯이,
또, 자유로움을 입에 담거든
구속이 뒤따름을 알듯이,
생명과 죽음의 불가분함도
함께 따져 묻는 겁니다.
'생명과 죽음은 본디
한 존재에 함께 담긴 것인데
나는 태어났음에도 죽음만을
바라야 하는 것인가?'
위 질문에 대한 답은 반드시
'아니오'여야만 합니다.
태어났기에 죽음에 이르건만,
어떻게 탄생을 부정한단 거죠?
죽음은 본디 생명에게 붙는
일종의 모순점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죽음에는 반드시
태어남이 동반돼야만 합니다.
네, 둘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어느 하나만 택할 수 없습니다.
구속을 알아야 자유를 알 수 있듯,
하나가 존재해야만 다른 하나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둘'은 대립하면서도 공존하죠.
이 말도 안 되는 부조리에
요한은 평범한 자.살이 아닌,
자신에 대한 기억조차 지우는 말살을
답으로 낸 인물이었으며,
알베도는 이제 막 첫걸음을 떼고
질문을 시작한 참입니다.
흑, 백, 적, 그리고 금.
알베도는 아직 백의 단계이고,
앞으로 적과 금의 단계도
거칠 공산이 크겠죠.
그는 하나의 생명으로써
자신의 존재, 즉 탄생도
인정받음으로써 다음 단계로
아마 '순환'을 다룰 듯합니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존재의 소멸은
소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남긴 발자취로써
다른 존재로의 흔적을 잇습니다.
수메르 우림의 서사에서
룩카데바타는 완전한 소멸에도
본인의 의지를 세상에 남겼고,
그게 세상의 부조리를 꺾을
또다른 의지의 탄생임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진정 지혜로운 신이었죠.
세상에 발자취로써 흔적을 두는 건
위와 같은 교감도 있겠지만,
역시 대표적인 흔적은 번식,
즉 자손을 낳는 것이죠.
알베도의 어머니 라인도티르는
무결하고 찬란한 '황금'으로서
이미 알베도와 두린을 낳았으니,
그 자식인 알베도 역시
같은 전철을 밟으려 할 겁니다.
이미 그런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알베도의 탄생에 대한 집착은
본인의 정체성 확립과 더불어
자손까지 낳는 생명의 완성에
다다르려고 합니다.
따져보면, 지금 몬드에 잠입한
변종 구라구라꽃은 거짓말인 동시에
형제 두린의 발자취이기도 합니다.
그의 유해에서 태어났으니까요.
하지만 두린의 토벌로
이미 확인을 거쳤듯이,
알베도가 세상에 포용되려면
그의 검은 거짓말부터
해명해야만 할 테죠.
만화 몬스터의 결말부, 요한은
자신을 아는 모든 이들이 모인
어느 시골 마을에서 완전한 자.살을
다시 시도하지만 저지당합니다.
무고한 아이를 인질 삼아
협박으로 자신을 쏘게 만들려 했고,
그의 아비가 요한에게 탄환을 명중시킵니다.
하지만 두번째로 자.살한 요한은
덴마에게 다시금 치료받아서
완전한 평등을 재차 경험하죠.
두번이나 저지당하자
요한은 결국 질문을 던집니다.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죠.
그 내막은 이렇습니다.
요한의 친모는 젊은 시절,
인간 병기 프로젝트 실험장에서
쌍둥이 중 한 명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똑같이 변장한 남매 중
안나를 내보냈습니다.
(친부는 이미 살해당함.)
하지만 알고 보니 친모는
변장 때문에 쌍둥이를 구분 못했죠.
요한을 지키려던 것일 수도,
혹은 안나를 택했음에도
실수로 요한을 남긴 것일 수도..
어느 쪽이 됐든, 결국
끌려간 것은 안나였습니다.
그럼에도 생명을 저울질당한
'선택'의 추악함에 충격을 받고,
안나에 대한 죄책감과 더불어
존재의 허무함에 집착하여
요한은 완전한 자.살을 꿈꾸게 됐죠.
안나는 다행히도 이후
괴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그 충격을 기억에서 지웠습니다.
어쨋든, 그런 요한의 앞에 평등과
생명의 귀중함을 역설한 덴마는
요한이라는 괴물의 존재에
대적자가 됨과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에의 답변자가 됐죠.
수술 후 막 깨어난 요한은 묻습니다.
"어머니는 절 구하려 한 걸까요,
아님 저와 동생을 착각한 걸까요?"
요한의 생명은 정말
그의 친모에게 귀중했을까요?
그의 친모는 사실 살아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죠.
"손을.. 손을 놓으면 안 돼요.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요?"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요?
*500년 전 두린의 토벌 당시,
두린은 탄생의 기쁨을
몬드의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날아올랐습니다.
순진무구한 아이에 불과했죠.
(*100년 전으로 아는 분 많은데,
500년 전 켄리아 침공 시기와
맞물린 시점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가 품은 칠흑의 힘은,
설산에 묻힌 유해에서도
끊임없이 새어 나와서 결국
알베도의 손에까지 닿을 만큼,
너무나 해악이 컸습니다.
실제로 토벌 작전에서
페보니우스 기사단 병력 중
부기사단장 로스탐이 사망했고,
그의 연인이던 로잘린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마물을 전부 불사르고자
스스로의 생명까지 불길에 던지는
화염의 마녀로 거듭났죠.
누구에게도 미소가 남지 않았고,
끔찍한 부조리와 질문만 남겨
알베도는 검은 거짓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누구에게도 괴물이라며 비난할 수도,
얼굴에 침을 뱉고 돌을 던져
화풀이를 할 수도 없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받고
지키기 위한 비극이었죠.
어쨋든 누구에게나 인정에 대한
근원적인 욕구가 존재하니까요.
서로의 정체성을 세상에서
허락받기 위한 근원적 욕구가
서로를 향하는 칼끝이 됐습니다.
결국 몬스터의 요한은 결말에서
친모로부터 '선택'의 확답을
듣지 못했으나, 본명을 전해 듣고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가
다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열린 결말을 낸 셈이나,
친모의 사랑이 담긴 이름을 받고
그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됐음을
그저 지레짐작할 따름입니다.
쌍둥이의 친모.)
손을 놓아서는 안 됐다는
후회의 전언과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이름을 받은 요한은
세상에 그 존재를 인정받았을까요?
결말에서는 어떤 대답도 없고,
밝은 햇빛만 쏟아져
빈 병실을 비출 뿐입니다.
그럼 거짓말쟁이 알베도는
무사히 몬드에 품겨서
클레의 오빠로 남을까요?
두린과는 다른 선택을
성취할 수 있을까요?
그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탄생을 포용받기 위한
검은 거짓말은 과연
정당방위로 인정될까요?
이원론을 극복하자면
생명을 부정해선 안 됩니다.
죽음만 허락된 상황은 오류죠.
그럼, 죽음만 허락되는 부조리가
티바트에서 해결될까요?
누구에게나 탄생은 허락됩니까?
알베도 말고도 사례가 많지만,
티바트 서사에서는 선악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경계를 흐리게 하죠.
풍마룡으로 불리던 드발린이
고난을 벗어나고 축복을 되찾아
다시 사신수의 자리에 복귀하듯,
선악의 변화도 묘사됩니다.
이 선악의 변화는 곧
이원론의 부정이기도 하죠.
철학적 이원론을 출발시킨 건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입니다.
진정한 형이상학의 출발을
다음의 유명한 명제로 알렸죠.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단순히 동의어 반복을 한
한 쌍의 문장으로 보이나,
그 여파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 문장은 곧..
'있는 것만이 있고,
없는 것은 계속 없다.
떠올릴 수 없기에, 있을 수 없다.'
-라는 사유로 넘어가니까요.
즉 있는 것이 없게 되거나,
없는 것이 있게 되는 일도
한사코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에게 드발린의 사례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죠.
선과 악도 변할 수 없으니까요.
선한 것만이 선하고,
악한 것만이 악하고,
산 것만이 살아있고,
죽은 것만이 죽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래서 어느 얘기로 보든,
제 눈에는 티바트에서 벌어진
모든 서사가 결국 이원론의 극복,
혹은 논파로 이어졌습니다.
'둘'의 관계에서 한 쪽을
배척하기만 하면 문제가 발생하나,
둘을 모두 포용하면
이내 문제의 해결에 이르렀죠.
파르메니데스의 있음과
없음의 양립을 가능케 해야 합니다.
특히 니체는 이원론을 벗어남으로써
극복한 자(위버멘쉬)가 되라는
조언을 계속 권한 철학자였죠.
이원론에서 '좋은 쪽'만 택하는 건
원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으며,
때문에 니체는 '대지(거짓, 운명)'를
사랑하라고 설파한 철학자입니다.
'나쁜 쪽'도 결국 포용해야 하죠.
과연 니체의 조언대로
알베도는 백악을 극복하여
적성에 오르고 황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잊히고 잔해가 된 흑토로부터
알베도는 자신의 탄생을 인정받고,
우리는 그의 검은 거짓말을
극복해 끌어안을 수 있나요?
이 게임 서사의 지독함은
다름 아닌 '질문의 거듭됨'에 있죠.
어떤 서사를 끝낸다 한들
결코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질문의 시작을 남기죠.
알베도와 우리 모두
둘을 가르는 질문 앞에서
그 구분이 남긴 간극을 극복하고,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 있길 바라며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칩니다.
하지만 거짓말에 대한 글은
아직 한번 더 남았습니다.
다음엔 거짓말에 꽤나 신선한 답을 주는
어느 문약한 학술인의 말도 들어봅시다.
(IP보기클릭)211.220.***.***
과연 꿈보다 해몽일지, 아니면 정말 이렇게 철학적인 부분까지 생각하고 만든 스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베도 서사를 만화 몬스터와 비교한 부분은 무척 흥미롭네요.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IP보기클릭)211.220.***.***
과연 꿈보다 해몽일지, 아니면 정말 이렇게 철학적인 부분까지 생각하고 만든 스토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베도 서사를 만화 몬스터와 비교한 부분은 무척 흥미롭네요. 다음 글도 기대합니다.
(IP보기클릭)1.241.***.***
양들의 침묵하고도 공통점이 보이더구만요. 존재를 부정받는 것, 이로 인한 허무주의, 그 허무를 채우기 위해서 남의 가죽을 뒤집어 쓰는 행태까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이거 심리학에 용어가 있을 것 같은데, 그쪽은 전혀 아는 게 없어서.. | 23.08.26 21: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