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사이온 클리어 소감 및 비평
주의 : 데몬 엑스 마키나(1편)와 타이타닉 사이온(2편)에 대한 여러가지 치명적인 스포일러와 가열찬 의견을 담고 있으며, 매우 깁니다.
안녕하세요, 친애하는 친구 여러분. 이번주는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데몬 엑스 마키나 타이타닉 사이온을 플레이하며 보냈습니다. 저는 이 아이피를 아주 좋아하는데, 전작인 1편을 플레이하면서 대략 300시간 정도를 들여 모든 구성요소를 답파했고, 10개의 오리지널 기체를 디자인했었죠.
그래서 이번 타이타닉 사이온의 개발 초기부터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고, 출시되자마자 구매해서 약 25시간 플레이했습니다. 메인 퀘스트는 전부 클리어했고, 사이드 퀘스트는 절반 정도 클리어했네요.
그리고 그렇게 플레이를 마친 지금, 타이타닉 사이온에 대한 제 감정은 당혹감, 실망감, 괴로움입니다. 정말 힘들군요. 이 충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고민하다가, 제가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에 대해 한번 정리해보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전작을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전작 강제파가 아니며, 타이타닉 사이온은 전작과는 분명히 다른 작품이므로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대전제에도 주저없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1편을 구매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대치라는 게 있을 수는 있는 거잖아요? 타이타닉 사이온은 그 최소한의 기대치조차 채우지 못합니다. 저한테는 그랬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 게임의 안좋은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기본적인 단점
(1) 목적없이 허무한 오픈월드와 전체적인 구성
타이타닉 사이온은 수많은 컨텐츠를 가지고 있어요. 폭이 아주 넓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의 깊이가 한없이 얇고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어요. 컨셉만 잡고, 아이디어는 없이, 성의없게 구현했다는 느낌입니다.
월드를 봅시다. 사실, 전작에서는 자유이동이 불가능했고, 좁은 행거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보니까 폐소감이 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픈 월드 시스템 자체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타이타닉 사이온의 오픈 월드는 10년도 지난 게임인 어새신 크리드나 파크라이에서부터 지겹게 나왔던, 숙제 마크로 가득한 황량한 대지만 휑하니 있을 뿐입니다.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다고 그 광경이 기발하거나 미술적으로 엄청 훌륭한 것도 아니고, 어딜 가나 비슷비슷 흔하게 보이는 디스토피아 세계, 어딜 가나 똑같은 임모탈 무리들, 어딜 가나 똑같은 시설들만 멀뚱멀뚱 서있을 뿐이에요.
자동차를 탄다는 발상도 좋았습니다. 망한 세계를 자동차로 활보하는 것도 낭만이죠. 그런데 자동차가 달랑 한종류밖에 없어요. 거기다 그 자동차들은 돌멩이만 밟아도 통통볼처럼 튀어오릅니다. 만약 제가 망한 세계를 활보할 자동차를 고른다면 험지 주행이 가능한 오프로드 카를 고를 것 같은데요.
멸망한 세계에서 모터바이크를 탄다는 발상도 너무 좋았습니다. 거기다 변신해서 무기가 되는 바이크라니 이건 로망 그 자체죠. 근데 돌부리만 밟아도 사용자가 날아가버리는 바이크는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모터바이크에 합체형 레이저포로 변신하는 기능을 추가할 정도의 기술력이면 점프 기능이라든가, 공중에서 자세를 제어하는 부스터라든가, 최소한 사용자가 날아가 구르지 않게 전자 실드라도 둘러야 맞지 않나요. 90년대에 나온 게임들에서도 모터바이크의 점프 후 공중제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메인 스토리라인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고, 서브퀘스트를 통해 각 무기들을 시험해본다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서브퀘스트 대부분은 단순한 1회성 전투로 끝나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요구에 맞는 장비를 새로 맞춰가야 하기 때문에 점점 하지 않게 되요. 매번 장비를 바꿔가면서 꼭 완수해야 할 정도로 보상이 좋은 것도 아니고. 결국 서브오더는 무의미한 플레이타임만 잔뜩 늘릴 뿐입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메인스토리에서 다루지 못한 각 등장인물 개개인의 스토리를 풀 법도 한데, 그런 시도조차 없어요.
다양한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각 등장인물은 클리셰 범벅인 설정만 있을 뿐, 스토리적으로 왜 그랬고 어떻게 그랬는지는 하나도 나오지 않아요. 레이븐은 왜 잡혀있는 채로 등장했는지, 이리스는 왜 해방여단의 아무도 모르고 있었는지, 엔젤의 동생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애쉬는 왜 저렇게 징징거리는 성격이 되었는지, 애쉬랑 블라섬은 남매인데 왜 서로 이름이 연관이 없는지, 블라섬은 구해진다음 어디로 사라진건지, 토비는 왜 쇳덩어리가 인간인 척을 하고 있는지, 콜로세움의 그 수많은 랭커들은 대체 평소에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아요.
기계장치의 악마, 데몬 엑스 마키나라는 기본 논제도 좋았습니다. 전작에선 사이보그화, 이번작에서는 이형화로 던져지는 "힘을 위해 인간성을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좋았어요. 하지만 이 질문은 그냥 던져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주인공이 이형화로 인해 괴물이 되어가건, 인간성을 유지한 무능력자이건 게임 내에서 바뀌는 건 하나도 없거든요. 멀쩡했던 사람의 온몸이 비틀리면서 흉악한 나무괴물이 되어가는데 옆의 수많은 사람들 아무도 신경안쓴다는게 좀 이상하지 않나요? 거기다 이형화된 후의 주인공 디자인에도 좀 신경을 써야하는데, 반바지 레깅스로 퉁치고 넘어가니까 성의없어 보입니다.
생존을 원하는 자들, 미래를 원하는 자들, 세계의 정화를 원하는 자들이라는 3파전 구도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대의의 핵심이 되는 소재가 섹시한 여성 캐릭터의 임신능력이라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그것도 15세 이용가 게임에서. 애초에 이리스의 임신 능력은 대체 어떻게 확인한거죠? 아우터 쪽에서 한번, 인간 쪽에서 한번, 총 두번 임신한 경험이 있다는 건가요?
(2) 애매한 강화복 판타지
전작 데몬 엑스 마키나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보다도 '거대 메카를 다룬다'라는 점 그 자체였습니다. 전작을 했던 사람이면 당연히 이번 작품에서도 그걸 기대했겠죠. 그게 강화복 판타지로 바뀐 것은, 마음에 별로 들지는 않지만 이해할만 합니다. 둘다 마이너한 장르기도 하고. 근데 정작 그 강화복 판타지의 충족이 애매해요.
게임의 각 강화복들은 신규 몇개를 제외하면 전작에서 등장한 메카닉 디자인을 재탕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근데 애초에 전작 디자인 자체가 메카닉의 과장된 프로포션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사람 사이즈에 가져다붙이니까 비율이 안맞아요. 대체로 어깨가 너무 좁고, 상하로 너무 길쭉하고, 종아리는 너무 얇아서 아무리봐도 인간이 그 안에 들어갈 수가 없는 디자인입니다. 거기다 전작의 무기들도 여기에 맞추다보니, 대부분의 총기류는 장난감 총처럼 짧고 통통하고 못생기게 되어있어요.
연출적인 측면에서는 어떨까요? 기계 강화복 판타지 연출의 절정은, 영화 아이언맨의 헬멧 닫히는 장면으로 대표되는 강화복 탈착 장면입니다. 근데 타이타닉 사이온에서는 그런 부분이 전혀 묘사되지 않아요. 그냥 스르륵 하고 입혀지고 벗겨집니다. 심지어 헬멧 내부 묘사나 슈트의 눈이 빛나는 일반적인 강화복 묘사조차 없어요.
(3) 이상한 스토리와 캐릭터 활용
애초에 타이타닉 사이온은 스토리 구상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섹시한 여자 캐릭터의 임신능력이 핵심 갈등 소재인것부터가 이미 이상하잖아요. 전체 스토리의 얼개도 썩 좋지 않고, 그걸 서사적으로 풀어내는 방식도 굉장히 부족합니다.
이 게임은 맨 처음, 너브가 달려와서 주인공을 구출해주고 같이 탈출하다가 희생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시점의 플레이어는 너브가 누군지, 주인공이 누군지 몰라요. 그러다보니 감정 이입이 어려워요. 차라리 튜토리얼에서 너브가 주인공과 같이 미션도 하고, 조작법도 가르쳐주는 파트를 앞에 배치해서, 너브에게도 정을 붙이고 주인공에게도 감정 이입을 하게 했으면 자연스러웠을텐데.
캐릭터들 역시 너무 단편적으로 소비됩니다. 애쉬는 하루종일 징징대거나 화내기만 하는 인종차별주의자죠. 근데 얘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왜 한쪽 팔이 의수인지, 엔젤과는 어떤 사이인지, 블라섬과는 왜 따로 지내는지 제대로 설명되거나 스토리에 녹아드는 부분이 하나도 없어요. 가든3 추락 사건때 어찌저찌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식입니다.
엔젤도 애쉬처럼 하루 종일 징징댈 뿐 스토리 내에서 어떤 의미있는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징징, 저기서 징징, 최종전에서 다들 비장한 각오로 최후의 전투를 향해 목숨걸고 돌진하는 와중에 한구석에서 또 징징징. 하도 징징대니까 캐릭터가 매력이 없어요. 예전에 동생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이것도 제대로 앞뒤가 설명되질 않습니다.
무게감있는 인물인 레이븐도, 이리스를 딸처럼 여기고 열심히 키웠고, 이리스를 위해 가든3를 추락시켰다는 캐릭터의 골조 자체는 훌륭한데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요. 얘가 왜 해방여단의 대장인건지, 왜 모습이 인간과 같은지, 맨처음에 왜 잡혀있었는지 제대로 설명되는게 하나도 없죠.
주인공은 대체 왜 저렇게 무뚝뚝하거나, 빈정거리기만 하는 음침한 쿨가이인거죠? 애초에 주인공의 동기는 너브의 복수였습니다. 근데 이 동기가 가면 갈수록 애매해집니다. 주인공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그렇지만 주인공은 아우터로서 여단원들을 학살해온 과거가 있잖아요. 그 시절 주인공이 죽인 사람들 중 대부분은 분명히 지금 생존해있는 여단원들의 가족이나 지인이었을텐데, 왜 아무도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죠? 거기다 주인공은 컷신에서 자꾸 무기는 내버려두고 맨손으로 가라데 자세를 취합니다. 왜 그러는거죠?
나머지 인물도 전부 마찬가지입니다. 이리스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지냈길래, 자기 의붓아버지인 레이븐이 해방여단 대장인데도 해방여단 사람들이 이리스를 모르는거죠? 토비는 대뜸 자기가 퍼지의 아들이라고 떠드는데, 뜬금없이 쇳덩어리와 친인척 관계를 맺게 된 퍼지 입장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적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클리셰 범벅인 설정만 잔뜩 있을 뿐, 그 깊이는 죄다 한없이 얕고, 앞뒤가 맞는 이야기는 없어요. 기어웜은 주변 기계를 해킹하고 사람도 막 죽이는 나쁜 놈인데, 정작 행동원리는 형제자매를 위하는 것입니다. 거기다 그 커다란 모자는 대체 어떻게 쓰고 있는거죠? 아무리봐도 연결부위가 없는데.
적들의 작중 행보도 웃긴데, 전부 일대일 전투를 고집하다가 주인공에게 뚜드려맞아 슬픈 자기연민 후에 쓰러져 죽는 것을 반복합니다. 아니, 몇명이 그렇게 당했으면 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보스전 스토리 대부분이 너무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작위적이고, 깊이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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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 분들은 아실 테지만, 전작 데몬 엑스 마키나도 스토리가 좋은 게임은 아니었어요. 주인공 루키가 용병일 잘 하다가 갑자기 세상이 멸망할 것 같아서 적을 때려눕혔다로 끝납니다. 기승전결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고, 본격적인 스토리는 거의 마지막 미션 3개에 몰려있죠. 그에 비해 타이타닉 사이온은 스토리 기승전결이 어느 정도 배분되어있긴 합니다. 그 스토리가 별로라는 것이 문제일 뿐. 그리고 인물들 애니메이션이 너무 어색하다보니 감정이입도 어렵고.
(4) 성의없는 구성요소들
이 게임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성의없는 요소들이 넘쳐납니다. 대표적으로 아머는 외형, 색깔, 데칼 세팅이 전부 가능한데 무기는 그게 불가능해요. 그래서 아머 색을 튀게 튜닝할수록 무기와 조화롭지 않습니다. 제작진 중 아무도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은건가요?
기지 한가운데의 커다란 홀로 테이블에서는 오더 수주, 보고, 상점, 팩토리, 커스터마이징, 장비 시험, 콜로세움 등등 기지의 거의 모든 기능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딱 하나 연구소만 빼고요. 연구소는 왜 빠져있는거죠? 이것 때문에 기지에서 한번 풀세팅하려면 홀로테이블에서 기체 세팅 끝내고, 다시 연구소를 들러야해요. 매번 들락날락하려니 시간도 많이 들고, 깜빡 잊고 유전자 활성화 안한 상태로 출격했다가 다시 기지로 돌아오는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 게임은 여러 오더들을 반복해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사유로 결국 달성하지 못하고 사라진 오더는 다시 할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뉴 게임 플러스를 시작하면 그간 파밍한 것들이 한번에 다 사라지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수도 없습니다. 당장 전작에서도 메인 오더와 프리 오더를 다시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는데, 타이타닉 사이온에서는 그게 안되니까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거기다 수주한 서브퀘스트 중 하나를 지목해서 메인화면에 띄워놓을 수는 있는데, 그 지목한 걸 취소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서브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알람이 계속 켜져있는 걸 봐야해요.
전투 도중 무기 탄약이 바닥나거나, 스태미너가 바닥나면 주인공이 비명을 지르는데 이 비명 패턴이 두개밖에 없어요. 저는 일본어 음성으로 플레이했는데, 스태미너 바닥나면 주인공이 막 큰일난 것처럼 지르는 '시마타!(아차!)'하는 비명을 백번도 넘게 들었습니다.
이 게임의 기동 조작 중 가장 이상한 점은, 비행 고도 상승 버튼은 있는데 하강 버튼이 없어서 아랫방향으로 이동하려면 추락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전작에는 하강버튼이 있었는데 말이죠.
2. 심각한 단점 : 시간낭비
사실, 무한파밍이 핵심인 게임 특성상 어느 정도의 노가다는 좋은 즐길거리입니다. 저도 이 게임 설치하면서 '이번엔 과연 어떤 파밍 노가다 요소가 있을까?'하면서 두근댔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죠. 이 게임은 노가다가 너무, 지나치게 심해요.
대표적인 예시로, 5티어 아머 세트인 '드래곤 슬레이어 세트'를 풀셋으로 맞추려면 보스 인서니아 렉스를 최소 몇 번 잡아야 할까요? 정답은 총 24번입니다.
설계도 : 머리, 몸통, 왼팔, 오른팔, 다리 만들때 각각의 설계도 한개씩, 몸통 AS타입, SS타입, WS타입 만들때 각각의 설계도에 원래 몸통 설계도도 하나씩 추가로 필요하므로 총 11번
코어 : 머리, 몸통, 왼팔, 오른팔, 다리 만들때 코어 2개씩, 몸통 AS 타입, SS 타입, WS타입 만들때 코어 하나씩에 원래 몸통도 소비되므로 총 13번
심지어 정확하게 필요한 설계도가 매번 나온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대략 30번 정도 클리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낸 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럭저럭 성능좋은 갑옷 한 세트입니다. 아, 물론 유전자 코드를 얻으려면 또 새로 잡아야 하고요.
이 게임의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게임에 너무 과한 기대를 품은 것 아닌가요? 누군가는 그 노가다를 견뎌내고 모든 아머와 무기를 수집하겠지 하는 기대 말입니다. 물론 저는 저 노가다를 실제로 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는 총량도 아는거죠. 하지만 저처럼 모든 요소를 수집하려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애초에 타이타닉 사이온은 보스를 잡는 것이 컨텐츠인 몬스터 헌터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반복해서 잡을만큼 재미있는 보스가 몇개 되는것조차 아니잖아요. 그리고 설계도 하나가 부품 하나 만들때마다 소실되는 상황이 이상하지 않나요? 설계도 정도는 복사해서 써도 될텐데.
저는 데몬 엑스 마키나에서 모든 풀슬롯 장비-모든 아이템-모든 어태치먼트를 습득하고 세팅하는데 대략 300시간정도 걸렸습니다. 근데 타이타닉 사이온은 30 시간을 플레이할 엄두도 안납니다. 용도에 맞게 바디 4개만 만들고 그거만 가지고 진행했어요. 굳이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저는 아머드코어6에서 160개의 기체를 디자인했고, 그걸로 5천페이지짜리 디지털 화보집도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근데 이번 작품에서는 4개 만드는 것도 힘들었어요.
장비 파밍의 핵심인 탐사 미션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요. 제작진들은 자기들이 만든 탐사미션을 실제로 플레이해보기는 했을까요? 무한의 탑 꼭대기에 오르려면 대체 몇 시간이 걸리나요? 전 포기했습니다. 제 시간은 좀 더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던 것 같아서. 제작진들에게 꼭 묻고 싶습니다: 제작진들은 직접 무한의 탑 꼭대기 가본 다음에 플레이어에게 하라고 시키는 거 맞죠?
시간낭비성 컨텐츠의 절정인 콜로세움도 빼놓을 수 없죠. 전작에서는 소속별로 묶인 적들이 모여 다양한 환경, 다양한 시츄에이션으로 덤벼왔습니다. 그런데 타이타닉 사이온은 매번 똑같은 흙바닥에서, 매번 똑같은 방식의 일대일 전투를 30번이나 해야 해요.
이 게임은 채굴을 하지 않으면 무기 하나도 풀업하기 힘들 정도로 자원이 적게 나오는데, 채굴을 한번 켜면 무조건 4번 이상 재미없는 미니게임을 해야 합니다. 보통 이런 미니게임은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나요? 너무 길고 지루한데, 그렇다고 안할수도 없어요. 사용되는 자원은 수십가지인데 각각이 파밍 가능한 곳이 달라서 온 맵을 샅샅이 흝으면서 파밍하지 않으면 항상 어떤 자원이 부족해서 허덕이게 됩니다.
3. 진짜 심각한 단점 : 전투 시스템
(1) 사격 전투의 문제점
전작 데몬 엑스 마키나의 전투에는 뚜렷하고 일관된 하나의 선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이스피드 3차원 전투의 시원한 플레이 감각이었죠. 정신없이 사방으로 대쉬하며 무장을 쏟아넣는 특유의 감각은 다른 게임에서는 느끼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타이타닉 사이온은 전작의 그 가장 큰 장점을 철저하게 외면합니다. 대쉬가 주는 속도감과 상쾌함은 사라졌고, 대쉬 중에는 무장 사용이 불가능하며, 에임박스 형식 대신 등장한 타겟팅 시스템은 타겟팅 센서가 상대 기체의 움직임을 따라잡질 못합니다. 타이타닉 사이온에서 사격무장을 사용하는 감각은 제가 근 20년간 해본 게임 전체를 통틀어서 최악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적이 근접무기로 대쉬공격을 해오는데, 기본적으로 적의 대쉬공격 거리 안쪽에서 싸우게 되기 때문에 단발 공격을 피해도 그 후속타를 피하기가 어려워요. 기본적으로 일대다 상황이 대부분이다보니 사격에 집중하기가 어렵고, 사격 무기의 유효 사거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2) 근접무기 전투의 문제점
그럼, 사격 무장 대신 이번작에 대거 추가된 근접 무장을 사용하는 느낌은 좋을까요? 근접공격은 그나마 사격보다는 낫지만, 소울라이크와 몬스터헌터와 페이트 엑스텔라의 단점만을 모아서 섞었다는 느낌입니다.
소울라이크 게임들의 전투는 한 번 한 번의 정확하고 기계적인 조작을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전투 자원, 특히 스태미너의 배분이 아주 중요합니다. 구르기를 세 번 가능하냐, 네 번 가능하냐가 많은 것을 바꾸죠. 그러다보니 조작감이 답답하고 불편합니다. 스태미너를 딱 정해진 대로만 써야 하니까.
타이타닉 사이온도 이 점은 똑같은데, 무엇보다 대쉬가 소모하는 스태미너가 지나치게 많아서 스텝 몇번 밟아보지도 못하고 매번 허덕거리게 됩니다. 대쉬로 회피, 접근, 공격을 다 해야 하는데 정작 그 대쉬를 몇번 쓸수가 없으니 기동이 답답해요. 기본적으로 일대일보다는 일대다, 다대다, 거대보스전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기동의 불합리함이 더욱 불쾌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문제인 점은, 타이타닉 사이온은 소울라이크 전투의 단점만 가지고 있을 뿐, 반대로 소울라이크 전투의 장점인 완벽하고 깔끔한 합에서 나오는 재현의 재미, 극복의 재미는 거의 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적 패턴은 한심할 정도로 단순하며, 전투의 어려움은 스펙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패턴은 한 방향으로 쭉 달려가기만 해도 파훼할 수 있고, 대쉬 근접 공격을 빼면 유도성이 있는 공격도 거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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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 엑스텔라는 소울라이크와는 반대로 삼국무쌍에서 유래한 일대다 학살 전투 위주로 만들어진 캐릭터 게임이라, 전투가 훨씬 쉽고 자유도가 높은 대신 전체적으로 평면적이고 밋밋하며 반복적입니다. 타이타닉 사이온도 근접 무기/근접 스킬이 여러가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접 전투가 평면적이고 밋밋합니다. Z축을 활용하면서 근접공격을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방이 평면적으로 이루어져요. 그래서 전작에 비해 유난히 적들 공격을 보고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전작에서는 내 기체가 화면을 가리는 비율이 더 큰데도 불구하고.
타이타닉 사이온은 타겟팅을 통해 z축을 거의 고정하고 싸우게 되기 때문에 정면, 직선으로 날아오는 적의 공격이 잘 안보입니다. 심지어 공격의 시인성도 영 좋지가 않기 때문에 공격 예비 동작을 보고 반응해야해요. 아마 많은 분들이 플레이하면서 '내가 뭘 맞았지?'하는 순간이 있으셨을 겁니다. 특히 큰 경직과 데미지를 넣는 돌진형 근접공격을 피하기 위해서 적 기체의 움직임에 주목하다보면, 물총마냥 힘없이 날아오는 원거리 공격은 두드려맞기 십상입니다.
그렇다고 근접공격을 메인으로 하자니, 모든 적이 근접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합이 조금만 틀어져도 그저 무지성으로 근접공격키를 연타하는 단대기 배틀이 되기 십상입니다. 거기에 QTE까지 계속 발생해서 그저 키를 두드리는 것으로 넘어가야 하는 부분도 지나치게 많아서, 공격 감각이 굉장히 밋밋해요. 앞서 짚었듯 적들도 스펙이 높을 뿐 움직임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고 밋밋해 패턴을 파악하거나 빈틈을 노리는 식의 운용이 필요가 없습니다.
페이트 엑스텔라 전투의 가장 큰 장점은 전투가 평면적인 대신 간단한 조작으로 수많은 적을 학살하고, 필살기 한방에 수십명이 우르르 날아가는 광경을 보면서 시원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타이타닉 사이온에 그런 장점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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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원래 데몬 엑스 마키나가 가졌던 경쾌한 하이스피드 3차원 전투의 감각은 남아있질 않으며, 소울라이크와 몬스터 헌터와 페이트 엑스텔라의 단점만을 어설프게 섞은 이도저도 아닌 잡탕같은 느낌만 나요. 전투 시스템의 요소끼리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질 않습니다. 정교한 합의 재현을 통한 패턴의 극복과 쾌감을 주기에는 적 패턴이 너무 단순하고, 3차원 기동을 통한 초인적인 움직임의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전투가 너무 평면적으로 이뤄집니다. 초월적인 강화 슈트의 뽕맛을 느끼기엔 스태미너가 너무 적고, 사격 근접 스킬의 동시 구사를 통한 다채로운 전투를 하기에는 컨트롤 요소가 너무 단조로워요.
덧붙여, 대체 왜 체력 아이템은 사용에 제한이 있는거죠? 소울라이크에서는 화톳불 지점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고, 그래서 물약의 갯수제한이 큰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타이타닉 사이온은 빠른 이동으로 맵 전체를 누빌수도 있고, 날아서 적을 따돌리고 이동만 할 수도 있는 게임입니다. 거기서 아이템 사용제한이 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나요? 그저 의미없이 빠른 이동 지점과 분리되어있는 기지를 활성화해야 하는 제약을 걸어버릴 뿐입니다. 심지어 그 물약은 매번 돈을 내고 새로 사야하죠.
(3) 부족한 타격감
전작 데몬 엑스 마키나는 경쾌한 하이스피드 공방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대신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타격감이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모든 사격무기의 연사성능이 썩 좋지 않고, 탄속은 지나치게 느려 투사체가 느릿느릿 날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고, 폭발 무기들도 굉장히 미묘한데다, 타격 이펙트는 크지만 그 타격을 맞은 적이 밀려나거나 하는 리액션이 없어 마치 물총으로 깡통을 쏘는 듯한 공허한 타격감만 가득했습니다. 샷건의 타격감은 제가 평생 본 모든 게임의 모든 무기 중 최악이었습니다.
그나마 데몬 엑스 마키나에서 타격감을 보완해주는 것들은 화려하게 폭발해주는 적 잡몹들이었습니다. 최초의 비디오 게임인 갤러그(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연상시키듯 화면에 주루룩 등장해서 화려하게 터져나가는 스핏비 등의 잡몹들이 슈팅의 타격감과 화려함을 어느 정도 보정해줬었죠.
그런데데 이번 타이타닉 사이온의 총기 타격감은 더 구려졌고, 한두발로 화려하게 터지며 화면을 장식하는 잡몹도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슈팅감각이 좋지 않아요. 적들 움직임도 단조롭다보니 진짜 물총으로 깡통을 쏘고 있다는 느낌이 지나치게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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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또다른 큰 문제점은 바로 경직을 먹거나 다운되었을 때 무적이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습니다. 큰 기술로 경직을 먹이거나, 연타를 넣어 넘어뜨리는 것은 일반적으로 추가 딜링 찬스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그 순간 상대가 무적이 되니까 오히려 공격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방어기로 작용합니다. 거기다 탄약과 미사일이 무한한 것도 아닌데, 조금만 삐끗하면 쓰러져 무적이 된 적을 공격하다가 많은 탄약이 의미없이 소실되어버립니다.
이 시스템은 타이타닉 사이온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있습니다. 일시 무적 상태가 게임의 흐름을 너무 억지스럽게 끊어버려요. 특히 인서니아 렉스같은 몇몇 캐릭터들은 체력이 다 떨어져도 절대 죽지 않고 무조건 무적상태에 돌입해서 최후의 발악 패턴을 쓰고 죽기 때문에 더더욱 흐름이 루즈합니다.
(4) 너무 좋지 않은 조작감
게임의 근간인 전투 시스템이 망가져있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전투시스템을 활용하는 조작감마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게임은 에임박스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에임에서 살짝 빗나가도 슈트가 목표를 자동으로 추적해서 사격합니다. 타겟이 에임 포인터에서 몇센티 어긋나 있어도 자동으로 목표물에 사격하죠. 근데 에임 박스가 없으니까 '정확하게 이 안에서 사격하면 맞는다'는 감각을 익히기 전까지는 에임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게임은 타겟팅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타겟의 움직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좌우로 움직이는 적, 대표적으로 스트레이 알파 같은 적들에 타겟팅을 하고 총을 쏘면 거의 대부분이 빗나갑니다. 탐사 미션에서 스트레이 알파만 잔뜩 나오는 구간이 있는데, 사격 세팅으로 이 미션을 클리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버티고 서서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데, 타겟팅이 따라가질 못해서 탄이 다 허공으로 날아가버려요.
그리고 이 두가지 조준시스템은 미사일을 조준하는 화면을 켜면 동작하지 않습니다. 즉 미사일을 조준할 때는 순수 에임 실력으로만 사격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미사일 조준하면서 총까지 사격하면, 에임이 흐트러지기도 쉽고 미사일이 몇발 록온되었는지 확인도 어렵습니다. 데미지 표시 숫자에 묻히기도 하고, 록온이 얼마나 완료되었는지 알려주는 것도 아니거든요.
최소한 조준 완료되면 메시지가 뜬다든가, 게이지가 차오른다든가, 색이 변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알려는 줘야죠. 그런것이 없으니 비프음을 들으면서 순전히 감으로만 록온 완료 시점을 익혀야 해요. 심지어 이 록온 와중에 적이 록온 박스를 벗어나면 처음부터 조준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록온 중에 회피기동을 할수가 없어요. 그 와중에 사격의 조준도 유지해야 하고 말이죠. 그렇게 공들여 미사일 록온하던 도중에 적이 죽으면? 다 의미없이 끝나는거에요. 록온하고 미사일 발사해서 날아가는 텀이 너무 길어서, 그 사이에 적이 죽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4. 총평
게임에 대한 솔직한 평가 : "평작이라기엔 모자라고, 망작이라기엔 아깝고, 괴작이라기엔 아쉽다."
게임 내내 들었던 의문 : "전작 만들었던 사람들 다 퇴사했나?"
제작진들에게 하고 싶은 말 : "제작진들은 이 게임 해보고 출시했습니까?"
클리어 후 드는 감상 : "이게 진짜일리 없어. 내 시간 돌려줘."
사실 저는 타이타닉 사이온 재미있게 플레이했습니다. 그러나 이 게임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게임으로 나오고, 더 흥행하고, 아이피가 계속 이어지길 바랬었기 때문에 솔직히 많이 실망했습니다. 부디 향후 패치로 더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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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ㅠㅠ 진짜 조금만 성의있게 만들었어도 지금의 배는 재미있었을것같습니다.. | 25.09.11 0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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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너무 기대해서 디럭스 에디션으로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ㅠ | 25.09.11 0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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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재미있게 하셨다면 좋은 일입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저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했어요. 뭐 엄청 나쁠것까진 없었습니다. 근데 ... 메인 스토리 한번 밀고나니까 더 이상 할 마음이 안 들더군요. 그리고 흥행할 것 같지도 않고, 후속작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생겨서... | 25.09.11 00: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