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몇 달 즈음 전에 다들 건담인포에서 봤을 수성의 마녀 프롤로그에서 유력한 최종보스 후보이신 우리의 빛나는 위선자 델링 아저씨가 모든 건담을 부정하겠다고 씨부리신 바가 있는데, 이걸 보면서 새삼스레 한 가지 떠오른 게 있었음.
토미노옹이 모든 건담을 긍정하는 건담인 턴에이를 만들었고 안선생님이나 물감독이 각각 퍼스트 건담의 현대적 재해석인 오리진과 더블오를 만들었듯이 언젠가는 후대의 다른 크리에이터가 모든 건담을 부정하는 건담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지.
이게 농담이 아닌게 모든 건담을 긍정하는 건담도 턴에이라고 이미 나왔고, 건담의 시작인 퍼스트 건담의 재해석 역시 오리진과 더블오라는 형태로 이미 나와 버렸으니, 이제 남은 건 모든 건담을 부정하는 건담 그러니까 건담이라는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 이거 외엔 없거든. 토미노옹의 영향으로부터 최대한 탈피하려 시도하고 더불어 건담의 시작인 퍼스트 건담의 영향으로부터도 가능한 한 탈피하려 시도하는 그런 건담 말이지.
여기서 우리가 떠올려야 할 절망적인 사실은 토미노옹이 처음 제시한 이래 건담 시리즈가 그건 중시해왔던 소통과 이해에 중점을 두어 작품활동에 임하는 크리에이터가 전기 우주세기 쪽에는 역설적이게도 그 후쿠세기의 후쿠이 정도고 후쿠이를 빼자면 기껏 해야 오리진을 만든 안선생님 정도 밖에는 없으며, 후기 우주세기 쪽에서도 크로스본을 만드는 하세가와 화백 정도 밖에 없다는 사실. 비우주세기로 넓혀 봐도 더블오를 만든 물감독 같은 소수의 인물들만이 저 소통과 이해라는 주제를 중시하는 방향성을 잡고 있는 듯 싶기도 하고...
사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후쿠이와 후쿠세기의 최대의 문제점 역시 자캐딸이나 설정붕괴 같은 게 아니라, 그 근본적 방향성에 있다 생각됨. 토미노옹이 항상 주장해 왔고 건담 시리즈의 전통적 주제로도 정착한 '소통과 이해'라는 주제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이 있음.
후쿠이가 자기 입맛대로 왜곡질을 한 게 문제라고는 하지만 결국 후쿠세기의 핵심적 주제는 우주세기가 늘 그래왔고 또 건담이 일부 작품들 외에는 항상 그래왔듯이 '소통과 이해'에 있음. 후쿠세기가 계속 흥행하는 이유 중에도 이 소통과 이해라는 주제를 요즘 사람들이 알아먹기 쉬운(하지만 올드 건덕들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 형태로 풀어서 해설하고 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이게 극명하게 드러난 게 작품의 거의 모든 요소가 망했지만 스토리만은 그래도 건졌다는 극단적인 평까지 들었던 내러티브임.
이런 측면들이 후쿠이가 어디까지나 토미노옹빠이고 건덕후라곤 할 수 없으며 그 외에도 많은 말썽을 일으키는 인물임에도 계속 중용되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음. 건담의 주제를 독해력이 별로 좋지 않은 요즘 사람들도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해주는 그런 크리에이터라는 점이 주목받은 거겠지. 덤으로 가공전기 작가 출신 특유의 우익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후쿠닭 같은 사람과는 달리 의외로 극우와는 거리를 두기에 이념적 논란도 생각보다는 없는 인사라는 점도 그렇겠고? 적어도 후쿠닭처럼 주변국을 자극할 트인낭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후쿠이와 후쿠세기의 문제도 바로 이런 점들에서 나온다고 봄. 대표적으로 그 후쿠이의 뉴타입론만 해도 그러함. 이걸 단순한 자캐딸 정도로만 접근하면 문제의 핵심에 접근할 수 없어. 왜냐면 후쿠이의 뉴타입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소통과 이해라는 주제에 대한 집착에 있거든.
'뉴타입은 싸움을 위한 존재가 아닌 소통과 이해를 위한 존재이고 따라서 뉴타입은 타인과의 소통과 이해를 위한 능력을 갖춰야 하기에 결과적으로는 강력한 초능력자여야 한다'... 그 양반이 뉴타입에 대해 어찌 생각하냐에 대해서 굳이 축약하자면 뭐 이런 거임. 물론 토미노옹 잘못은 아니긴 하겠다만 어떤 의미로 후쿠이는 토미노옹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후쿠이의 뉴타입론도 뉴타입론의 본질에 대한 후쿠이의 집착의 산물이라 보여지더라. 적어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보다야 뉴타입론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싶긴 한데, 문제는 바로 그게 후쿠이가 가지는 최대의 문제라는 거임. 본질을 잘 이해한다는 게 꼭 좋은 건 아님을 증명하는 사례라 할 수 있지.
이렇다 보니 요즘은 건담 시리즈의 전통적 주제였던 그 소통과 이해라는 주제를 아예 때려치고 더 나아가서 부정하는 건담 신작이 보고 싶어지러단 마링지. 그간 건담이 테제로 삼아 왔던 소통과 이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안티테제를 제시하고 소통과 이해를 대신할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는 그런 건담을 보고 싶어지더라.
후쿠이 같은 양반들만이 아니라 건담의 아버지인 토미노옹 입장에서도 껄끄럽겠고(안선생님 같이 토미노옹보다도 더 정치 성향이 확실한 사람들은 아예 대놓고 욕을 하겠고) 올드 건덕들 입장에서도 솔직히 꺼림칙하긴 하겠지만 후쿠세기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서는 지금까지의 건담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그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베라는 불교 격언도 있듯이 아예 건담의 아버지인 토미노옹의 영향으로부터도 최대한 벗어나려 시도하는 건담이 나와야 할 때라고 보였어. 그걸 못 하거나 혹은 안 한 결과 나온 게 후쿠세기니까.
물론 철펀즈 같은 그런 건 말고. 그건 어쩌다가 소통과 이해를 부정하는 작품이 된 거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소통과 이해를 부정하려 의도했던 작품은 아니었거든. 철펀즈 같은 그런 방향성의 작품으로는 당연히 지금까지의 건담에 대한 완전한 안티테제가 될 수 없고, 후쿠세기에 대한 대안도 될 수 없지. 토미노옹의 영향으로부터 최대한 탈피하려 시도하는 그런 건담이 필요한데 철펀즈는 여러모로 실격이었어.
그리고 수성의 마녀 역시 내가 기대하는 그런 쪽하곤 좀 방향성이 어긋난 느낌이 있기도 하더라... 아무리 망하더라도 철펀즈 수준에서 끝나고 말겠지, 내가 원하는 그런 쪽의 결과로 끝나진 않을 거 같아서 아쉽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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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건담에서 강조하던 소통과 이해의 반대극이라 할 수 있는 불통과 몰이해도, 작품의 주제로 내세우긴 부적합해도 단순히 이야기의 소재로 삼기에는 오늘날 21세기의 시대상을 그려 낸 현실반영이란 의미에선 또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긴 해. 그간 건담을 비롯한 많은 SF 작품에서는 미래의 인류가 공감능력과 감정이입능력이 발전하는 쪽으로 진화할 것이라 예상하곤 했었지만, 현실의 인류는 정반대로 각박한 현대 사회에 맞춰 적응하는 과정에서 공감능력과 감정이입능력이 점차 퇴화하면서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사회적으로 은근히 흔한 질환이 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그러한 진화의 결과 공감능력과 감정이입능력이 발전한 신인류가 등장할 것이라는 과거의 예상과는 달리 반대로 공감능력과 감정이입능력이 퇴화한 신인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걸 이야기의 소재로 삼을 수도 있을 거 같더라. 우주세기의 뉴타입과는 반대되는 형태의 신인류랄까? 대충 뉴타입을 오마쥬 내지는 패러디해서 '네오타입' 정도로 이름 붙이고 싶더라. 그 네오콘 할 때의 그 네오를 붙여서 말이지. | 22.10.02 22: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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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와의 완전한 단절 소재는 에반게리온이 생각나네 진짜 그런 설정으로 나오면 건담으로선 파격적인 설정 되지싶어 | 22.10.02 22:1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