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하치는 1584년 음력 4월에 있었던 자신에 대한 세 번째 암살 시도를 회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죽이러 온 암살자를 최초로 생포했다.1 그러나 누르하치는 자신이 붙잡은 암살자를 죽이지 않고 풀어줬다. 그것은 암살자를 보낸 자가 자신이 암살자를 죽인 것을 명분으로 하여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을 방지하려 한 것이었다.
당시 누르하치는 사방에 적대세력을 두고 있던 상태였기에 조그마한 억지스런 명분조차도 타 세력에게 주어서는 안되었으며 그렇기에 분노를 참아 넘기며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때 누르하치의 구추들, 특히 '로오한'이 누르하치의 조치에 대해 반발했다. 누르하치를 죽이러 온 자를 그냥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지였다. 누르하치 역시 그들의 간언이 신경쓰였으나 그는 정치적으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했고 결국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누르하치에 대한 세 번째 암살 시도 이후 1달여가 지난 1584년 음력 5월, 누르하치는 또 다시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를 받게 되었다.
5월 어느날 밤 막 잠자리에 들려던 누르하치는 집의 가속인이 쪽구들 쪽에 있던 등불의 불을 붙였다가 껐다 하는 짓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누르하치는 그것을 보고 그 가속인이 왜 특이행동을 하는 것인지 괴이쩍게 여겼다. 그러다가 누르하치는 그 가속인이 외부에 신호를 보내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안그래도 1달전에 자신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던 참인지라 누르하치는 해당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안에 갑옷을 입고 겉에는 여자의 긴 예복을 입었다. 여인으로 위장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었다.2
누르하치는 밖으로 나와 굴뚝 옆에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그의 눈에 공터 근처에 이상한 형체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밤이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누르하치는 그것을 활로 겨누었다.
때마침, 4월에 있었던 암살 시도와 마찬가지로 천둥번개가 쳤다. 그 번개로 말미암아 누르하치는 암살자의 위치를 파악했다. 암살자는 먼저 누르하치를 발견하고서 그의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누르하치는 자신이 겨누고 있던 활을 반사적으로 사격했다. 누르하치의 첫 발은 암살자의 옷을 꿰뚫었으나 그를 도망치게 만들었다. 누르하치는 두 번째 화살을 쏴서 그의 다리를 맞추어 그가 넘어지게 만들었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검을 뽑아 암살자의 머리를 칼등으로 치면서 암살자의 정신을 빼놓았다.
이후 누르하치의 동생들과 구추들이 몰려와 누르하치에게 '그를 때리기만 해서 무엇하겠는가. 이번에는 이 암살자를 죽이자'고 간언했다. 4월달에 암살자를 풀어서 보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 다시 암살 시도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누르하치는 이번에도 역시 '명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누르하치는 자신의 일족들과 구추들에게 '이 자를 죽이면 이 자의 주인이 그것을 명분으로 하여 우리를 공격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3라고 말했다. 동시에 "이 자를 죽이면 국인들은 모두 우리가 먼저 싸움을 일으켰다고 여길 것이다."4라고 말하며 명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누르하치는 '이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암살자를 풀어 보냈다.
해당 암살자의 이름이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을 볼 때에 이번 암살자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심문이 진행된 것으로 보이며 그로 밀마암아 그 암살자를 보낸 이 역시 확실히 특정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584년 음력 5월에 누르하치에게 암살자를 보낸 이들 역시 4월달에 누르하치에게 암살자를 보낸 이들과 마찬가지로 기록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건대, 이번에 암살자들을 보낸 자들 역시 삼잔 일족일 가능성이 높다. 누르하치가 삼잔 일족을 대대적으로 토벌한 뒤에는 암살자들이 더 이상 누르하치를 노리지 않았다는 점은 간과하기 힘들다.
어쨌건 간에 누르하치는 1584년에 들어서 두 차례나 존재했던 자신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의 범인들을 모두 풀어서 보내주었다. 하지만 누르하치가 이에 대해 전혀 분노를 느끼지 않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누르하치의 분노는 음력 1월 자신의 매부 가하샨 하스후가 배신자들에게 암살당한 뒤로 점점 더 깊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신중론자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노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적대자들에게 다시금 검을 뽑은 것은 이로부터 1달여 뒤 자신의 준비가 완전히 끝났을 때 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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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각주
1.해당 암살자를 보낸 세력은 삼잔 일족 혹은 닝구타 버일러 세력내의 반(反) 누르하치 파로 추정된다.
2.한문사료인 청태조실록등에는 평상복을 입었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만문사료인 만주실록을 살펴보면 실상 여인의 옷을 입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한문사료에서 위와 같이 각색이 된 것은 한문사료 특유의 번역변질성에 더불어 '여인의 옷'을 태조가 입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으로 보인다.
3.만주실록의 누르하치 발언 의역 및 축약
4.여기서 말하는 국인이란 건주 여진인들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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