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턴. '브레이즈맨' 소환."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2.jpg](https://i2.ruliweb.com/img/25/10/23/19a100e162620b132.jpg)
[엘리멘틀 히어로 브레이즈맨: 전사족 / 화염 / 레벨 4 / ATK 1200 / DEF 1800]
"소환했으니까 덱에서 '융합' 1장 서치. 그리고 발동해서 '브레이즈맨'과 세트된 '캡틴 골드'를 융합. 나와라, '엘리멘틀 히어로 노바마스터'!"
[엘리멘틀 히어로 노바마스터: 전사족 / 화염 / 레벨 8 / ATK 2600 / DEF 2100]
전 턴에 발동한 '얕은 무덤'으로 인해 벌써 아린의 필드에는 몬스터가 2장이나 깔려있는 상태다. 가만히 뒀다가는 최상급 몬스터를 불러내서 공격해올지도 모르니, 자신 쪽에서 먼저 몬스터를 불러내 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린 쪽에서 되살린 것은 뒷면 수비 상태에서 함부로 공격했다간 데미지가 돌아오는 '마슈마론'. 지금 유진의 LP로 데미지를 받으면 패배 확정이다.
그러니 나머지 한 쪽이라도 공격하기로 한다. 혹시나 2장째 '마슈마론'은 아니기를 빌면서.
"배틀, '노바마스터'로 세트 몬스터를 공격!"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5.jpg](https://i3.ruliweb.com/img/25/10/23/19a1011b5d720b132.jpg)
[환영의 요정: 식물족 / 빛 / 레벨 2 / ATK 300 / DEF 200]
"그럼 세트한 '환영의 요정'의 효과로, 공격 대상을 다른 몬스터한테 옮길게."
"어, 그럼…"
"응. 그럼 뒷면 표시의 '마슈마론'을 공격했으니까 1000 데미지 받아야지."
"악, 또야!"
유진이 머리를 감싸쥐며 절규한다. 기껏 보강해서 마련한 덱으로 듀얼을 시작했음에도 결과는 여지없이 패배로 돌아와버린 것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의 몬스터에게 공격을 걸었더라도 결과는 같다. 유진은 그야말로 농락당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더 할래?"
"됐어…."
재승부를 기꺼이 받아들일 오기마저 유진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질 때마다 일부러 져준 거라고 말은 했었지만 더 이상 그 변명이 통하지는 않을 것만 같다.
이러려고 병문안을 온 것이냐며 유진은 자괴감에 고개를 위로 젖혔다. 켜놓지 않은 전등이 그늘진 천장에 붙어있는 것이 보인다.
어차피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으니 켜놓을 필요 따위는 없다. 그늘에 가려져도 카드는 잘만 보이니까.
듀얼이 끝나고 남은 것은 좁은 병실 테이블에 널린 카드 뭉치들 뿐이다. 이 조촐한 규모의 듀얼을 위해 유진은 며칠째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침대에 앉아있는 아린은 그걸 가볍게 파훼해버리고 말았다.
용돈을 털어서 카드를 새로 맞췄으니 승률은 틀림없이 올랐을 거라 생각했지만, 저쪽도 친척의 손이든 뭐든 빌려서 카드를 어떻게든 새로 구해온 모양이다.
"프로 듀얼리스트 되겠다는 애가 벌써 굴복하면 어쩌게?"
"아니, 아무리 봐도 네가 센 거라니까."
실룩 웃는 아린을 향해 유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물어본다.
"너도 될 거지? 프로 듀얼리스트."
"글쎄?"
"네가 안 되면 난 뭐가 되는데?"
"그냥 듀얼리스트?"
"너 진짜…"
미간을 찡그리는 유진을 향해 아린은 피식 웃는다.
놀아달라는 부탁에 유진이 덱을 챙겨와서 듀얼을 시작한지 몇 주 째.
그것이 몇 달이나 되고 보니 단순히 카드를 꺼내고 공격만 주고받던 승부는 나름 다채로운 전술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 동안 어색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서로 시간 때우기 이상이 된 듀얼에 열중하는 지경이 되었다.
결과는 대부분 아린이 승자의 미소를 짓는 것으로 끝난다.
그렇게 서로 연구한 결과를 겨루는 듀얼을 즐기는 것으로나마 아린은 미소를 완전히 되찾은 모양이었다.
유진에게 딱히 그런 의도까지는 없었지만.
"그렇게 이기고 싶어?"
그러던 아린이 잠시 웃음을 거두고 물어본다.
저 얄미울 정도로 순진한 표정이란.
진짜로 몰라서 묻는 건지, 아니면 이번에도 약올리기로 작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바짝 약이 올라있던 유진은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걸 질문이라고 해? 솔직히, 듀얼이든 뭐든 이겨야 본전이잖아."
"그래? 그냥 재미있으면 그만 아냐?"
"못 이기면 무슨 소용이야. 프로 쪽은 다 그런 거라고."
"아직 프로 아니면서."
"일로 와."
유진이 한 대 치려고 팔을 들어올리는 시늉을 하자 아린이 깔깔대며 몸을 피한다.
"그렇게 이기는 게 중요하면 더 약한 애랑 붙으면 되잖아."
"그게 재미있냐?"
"글쎄?"
고개를 갸웃.
마치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 것만 같다. 괜히 더 얄미워진다.
"실력으로 부딪혀서 이겨야 진짜지. 그게 결투(듀얼)라는 거야."
"그래서 계속 도전하는 거구나."
뭘 납득했다는 건지 아린이 끄덕인다.
"다음엔 이겼으면 좋겠네."
"실컷 여유부려 둬. 연전연승도 오늘까지니까."
그냥 졌다는 사실히 굉장히 분했던 그 날. 다음에는 어떻게든 이겨보겠다며 카드를 챙기고 다음 방문을 고대하고는 했다.
그 애는 앉아서 책을 읽는 순간이 더 즐거웠을지 모르는데 병문안이랍시고 찾아와서 훼방이나 놓은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면 헛웃음밖에 안 나오던 시절이지만, 그렇게라도 소소한 이유가 남아준 덕분에 듀얼에 대한 열의를 이어갈 수 있었으리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그 날 햇살은 유난히 밝았다.
힘겹게 뜬 눈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분명 일찍 잠들었을 텐데도 알람 소리에 맞춰 겨우 깨어난 유진에겐 유난히 따가웠다.
그동안 잠이 턱없이 모자랐던 탓일까. 방금 전까지 정신없이 꿈에 빠져 있던 머릿속은 이상하리만치 무겁다.
"……."
귀를 괴롭히는 알람 소리를 끄고 시계 화면을 확인한다. 제대로 이른 아침 시각을 표시하고 있었다.
주말이니까 이대로 다시 잠들어도 상관없을 테지만 오늘 같은 날은 다르다.
중요한 약속이 있으니까. 어쩌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가 걸릴지 모를 정도로.
이걸 위해서 아린이 기껏 꺼내 본 약속마저 거절했다.
유노가 알려준 약속 시간은 오전 내. 되도록 빨리 준비를 마치고 나서 메신저가 도착하는대로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나가거든 배웅을 해줄 것이라고 했다.
카드는 넉넉하게 챙겨가는 것이 좋다는 첨언도 곁들여서. 당연하지만 'ET레인저' 카드는 절대로 빼먹지 말아야한다는 것쯤 직접 이야기하지 않아도 유진은 알고 있었다.
간다면 무슨 일이 있을까. 덱 이야기가 나온 이상 아마도 듀얼이란 것은 하겠지.
설마 어둠의 듀얼 같은 위험천만한 일까지 하겠냐마는, 'ABC'를 준비하던 순간 못지 않은 긴장감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다.
간다면 자신은 무엇이 되어 있을까. 그런 의문이 뒤이어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샤워부터 마치고 옷을 갈아입는다.
성아린과의 약속 시간을 준비하던 때와 비슷한 과정이지만 기분은 180도 다른 것이었다. 설레임과 압박감이 주는 긴장은 서로 다르니까. 특히 후자 쪽의 부담감은 사람의 가슴 속을 쉴 새 없이 짓누른다.
그냥 나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망설이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선택을 하든 불안한 미래밖에 없다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길이 있어보이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안심'이란 걸 할 수 있는 것으니까.
상의는 자주 입던 것을 걸치기로 했다. 그리고 덱 케이스와 여분의 카드가 담긴 케이스를 가방에 챙겨넣는다. 지갑도 D-패드도 당연히 빼먹어서는 안된다.
남은 건 연락 뿐. 이미 와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D-패드 화면을 키는 순간이었다.
"…어?"
메신저 탭을 키려다 갑자기 기기가 꺼진다. 분명 전원 버튼도 안 눌렀을 텐데.
의아해 하면서 다시 전원을 켜봐도 화면은 여전히 시커먼 액정만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고장났나? 왜 이래?"
잠들기 전에만 해도 멀쩡히 켜지던 것이 하필이면 이 순간에 고장이라니. 곤란하다.
비록 이제껏 듀얼을 해오면서 험하게 다뤄지긴 했지만 장만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품일 텐데.
딱히 침대에서 떨어뜨린 기억도 없고 얌전히 탁상에 충전기를 꽂은 채 올려놓은 것이 분명할 텐데.
곧이어 화면이 다시 돌아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표시되는 메신저 알람에 유진은 흠칫했다.
-서문유진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런 인물이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있다.
무슨 오류인가 하며 메신저 화면으로 넘어가 보니 여전히 발신자의 명의 따위는 표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기이한 감상을 품으려는 찰나 다음 메시지가 출력된다.
-안됐지만 지금 이 기기는 내 거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지
-여기 등록된 네 신상정보까지
마지막 메시지가 뜬지 몇 초만에 갑자기 깔아놓은 적도 없는 프로그램이 기동되기 시작한다.
광고 화면인가 하고 짐작하려던 찰나, 갑자기 공포영화에서 캡처온 듯한 기괴한 얼굴로 꽉찬 화면이 비명소리와 함께 튀어나왔다.
움찔한 유진은 무심코 D-패드를 떨어뜨릴 뻔했다가, 가까스로 붙잡고는 다시 메신저 화면으로 돌아온다.
-아무리 최신 기기라도 그렇지
-이렇게 관리를 허벌로 해서 쓰겠냐
-잘해봤자 털렸겠지만
-Eugene_S: 누구야
-Eugene_S: 나한테 왜 그러는데
-내 기부니를 상하게 만들었잖아요
내가 언제? 라고 의혹을 품어보지만 유진은 어차피 풀릴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설마 이것도 재버워키 짓인가?'
기기를 다루는 것은 서툴다는 언급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전지전능을 뽐내는 녀석이라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말투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Eugene_S: 원하는 게 뭐야
-그냥
-주말에 바쁜 건 알겠는데
-그 전에 네가 와줬으면 하는 데가 있어
-특별히 어딘지 정도는 알려주지
-Eugene_S: 어둠의 듀얼?
-눈치는 ㅈㄴ 빠르네
-그래서 싫어?
-신고라도 할 거?
재버워키 본인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래서야 저번 사건의 반복이 아닌가.
유진에게는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한 기분이었다.
-Eugene_S: 싫으면?
-말했잖아 니 신상 내 거라고
유진은 저번에 찾아온 시빌리언이 자신의 신원을 줄줄이 꿰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설마 지금 이걸 보내는 인물이 자신의 정보를 캐낸 본인은 아닐까. 아니면 적어도 관련이라도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
-유노 쨩하고 친한가 보더라
-무슨 일 있으면 일일이 보고도 해주고
-이러는 거 아린 쨩은 알고 있던?
잘 알고 있는 이름이 언급되자 마자 유진은 당황하면서 유노의 대화방 화면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몇 차례를 시도해도 곧바로 꺼져버리면서 이 D-패드가 완전히 해킹당한 상태가 맞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닉네임도 표기되지 않은 낯선 인물과의 대화방 뿐.
-너무 걱정 말어
-솔직히 너같은 애새끼 정보를 갖고 뭘 하겠냐
-어디 이상한 데에 돈 빌려서 사채 빚 떠안게 만들기를 하겠음?
-생판 남의 연대 보증을 서기라도 하겠음?
-상관없는 일에 덤터기 씌우는 건 어떻고?
-솔직히 네 신상을 넷상에 까발리기만 해도 충분한데
-듀얼리스트의 꿈을 가진 너한테는 다른 대접이 필요하지 않겠냐
만약 방금 의혹이 맞다면 재버워키와는 별도로 어둠의 듀얼리스트를 보내는 작자가 있다고 볼 수가 있었다.
어쩌면 저번 듀얼을 자신이 이겨버리는 바람에 다른 판을 준비했을지도 모르는 일.
-Eugene_S: 저번에 사람 보낸 것도 니 짓이야?
-몰?루
누구냐고 다시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리는 없다.
그 동안 그가 뼈저리게 체감해 온 것은, 그 영역을 나온 뒤로도 자신에게 허락된 자유 따위는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조금만 안심하려고 하면 이런 식으로 사건이 터져서 숨통을 조여온다.
-무서우면 안 와도 돼
-이상한 듀얼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고
-D패드 그 까짓거 새로 사면 그만이지
-선택은 니 맘인 거야
-근데 니 신원 갖고 어떨지는 내 맘인 거 알지?
그 말대로다. 기기가 해킹당했다면 고치거나 새로 장만하면 그만. 그러나 타인과 별다른 접촉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D-패드가 보란 듯이 남의 것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다음 것도 안 그렇다는 보장 따윈 없다.
이미 늦은 일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셈이다.
-Eugene_S: 그 듀얼한다고
-Eugene_S: 나한테 무슨 득이 돼?
-Eugene_S: 한다고 뭐가 달라져?
-아 새끼 바라는 것도 많아
-ㅇㅋ
-이기면 간섭 안할게
-내가 시간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
-암튼 처신 잘하라고
그가 알려준 장소는 자택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100%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도 유진은 갈 수밖에 없다. 반복된 경험은 유진에게 확신을 안겨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도망친다는 선택 없는 거 알잖아. 정신이라도 차리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유진은 느닷없이 양쪽 뺨을 찰싹 때린다.
'살 수는 있겠지.'
이 공포를 피할 방법은 없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려는 순간이었다.
'조심해라.'
유진은 귀, 아니, 뇌리를 의심했다. 한 동안 들릴 일 없던 친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간지럽힌 것이다.
어제까지 한 마디도 않던 것들이 이제야 말을 툭 던지다니.
'이제 와서 뭐야?'
'에너지가 주변에서 관측되었다.'
적이 주변에 있다는 말에는 확실히 흠칫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곧 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태까지처럼 각오하면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난 또 뭐라고. 조심이야 맨날 하고 있으니까. 저번같이 실수만 안 하면 되잖아. 이번엔 절대 안 빼먹을게.'
'기존 수단으로 대처가 불가능한 상대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하는데?'
'우리에게는 대처할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하기를 추천한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어디 조용히 틀어나 박혀 있어라. 듣기만 해도 울컥하게 만드는 말이다.
'그 상대가 집으로 들어오면 어쩌게? 이 집도 안전하지만은 않은 거 몰라?'
'요주의 상대와 조우할 위험을 자처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하기 어렵다.'
'내버려둬도 큰일나게 생겼는데 어쩌라고? 저쪽이 내 신상 갖고 뭔 장난을 칠지 모르는데, 다른 선택이 뭐 있어?'
또다시 정적. 인간 사회의 일은 자신들이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것 같다.
유진은 차라리 그렇게 닥치는 게 안심이 된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그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거고, 그 정도는 내 머리로도 떠올릴 수 있는 거니까 좀 실용적인 걸로 떠들어.'
신뢰해야 할 동료들의 상태가 이 모양이라는 것은 만만찮은 불안요소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카드로서는 쓸 수 있을 테니까.
그래. 그러면 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신뢰가 그런 것이라면 더이상 따질 것은 없겠지. 그 동안 섭섭한 일 때문에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머릿속 저편으로 다시 숨어버린다.
예정은 바뀌었지만 어쨌든 짐을 싸들고서 유진은 밖으로 나왔다.
덱을 잘못 챙기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 물론 'ET레인저' 카드를 엑스트라 덱에 빼먹는 실수도. 저번처럼 가방에는 카드들이 한가득 들어있으니 불안하다 싶을 때 덱 구성을 교체해주면 될 테지.
어떤 녀석이 와도 무방비하게 당하지 않으리라.
분명 이번에 기다리고 있을 녀석은 시빌리언 처럼 정의에 신경쓰는 인물일 리도 없을 테니까.
해치우는 결과가 되더라도 정신이 무너지는 일은 덜할 것이다.
이내 유진이 도착한 곳은 시가지 외곽에 위치한 소규모의 게임 센터. 건물이 오래된 것을 보면 그럭저럭 손님을 맞이해 왔을 테지만, D-패드를 비롯한 모바일로 각종 즐길 거리가 범람한 시점에서 하락세의 여파를 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더구나 주변에 있던 역 건물이 자리를 옮기기까지 했으니 가게 입장에서는 산 너머 산이었으리라. 덕분에 가게는 물론 주변부터가 인적이 뜸해진 상태였다. 용케 문을 닫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인형 뽑는 크레인 기기 옆에 위치한 불투명한 유리문 입구에 다가서는 순간, 유진은 바로 기척을 느꼈다. 분명 이 안에 있다.
이 정도로 짙은 에너지를 고의로 분출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마도 그만큼 방대하게 모아왔다는 의미겠지. 이방인들이 경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라 보았다.
심호흡을 하고서 자신의 덱을 확인한다. 그 덱으로 펼칠 수 있는 전략들을 머릿속에서 잠시 끄집어내본다.
이번엔 실수 따윈 없을 터. 그렇게 확인하고서야 유진은 문을 열었다.
아직 영업 시간이 아니었을 텐데도 열려버린 그 건물 내부는, 조명도 키지 않아서 아침 햇살이 미처 몰아내지 못한 그늘이 남아 있었다.
그런대로 구색 맞춰놓듯 진열된 오락기들도 켜지지 않았기에 검은 화면은 주변 풍경을 반사할 뿐이었지만, 딱 하나 켜져 있는 대전 격투 게임 기기가 있었다.
그 주변에서만 딸각딸각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면 선객이 와 있는 모양이다.
몇 발짝 더 움직여 들어가다 마주한 것은 또다른 사람. 이미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죽었나? 아니면 기절했나? 확인을 위해 접근해보려던 찰나,
"학생이 아침 댓바람부터 오락실에 기웃거리고 말이야. 아니, 주말이었지. 상관없나?"
오락기기 근처로부터 말소리가 그를 가로막는다.
그 와중에도 딸각거리는 레버 소리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이 남자가 어떻게 됐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누가 이랬는지 확실해진 상황에서, 유진은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접근하기로 했다.
"부른 건 그쪽이잖아."
"그건 그러네. 네가 서문유진이냐?"
"맞아."
대답하면서 확인한 문제의 인물은 꾀죄죄해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자기 관리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머리는 산발해 있고 턱에는 수염이 쇳가루마냥 들러붙어 있다. 걸치고 있는 것은 어둠 속에서도 딱 알아볼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운동복.
그림으로 그린 듯한 폐인의 모습이다.
"아, 천천히 좀 올 것이지. 스코어 갱신 좀 하나 했더니."
방금 전의 대화로 집중이 안 되서 게임에서 져버린 탓인지 남자는 계기판을 쾅 내리치고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남은 동전을 찾는 듯 주머니를 뒤진다.
"어차피 더 중요한 일이 딱 찾아왔으니까. 덕분에 멀리서 건너왔다."
"원하는 게 뭐야?"
"잔돈 있냐?"
"뭐?"
"너 때문에 돈 쓰게 만들었잖아. 좀 보태줄 수 없냐니까."
"지금 장난해?"
"장난?"
기가 막히다는 듯 남자는 혀를 한 번 찬다.
"난 많은 걸 바라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적당히 먹고 지낼 거리만 있으면 그만이거든. 적당히 즐길 거리도 있으면 더 좋고. 그런 사람을 돈 써서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게 너 아니냐?"
"협박한 건 그 쪽이잖아."
"뭐? 협박까지 했어? 아, 그렇게까지 해야 와준다 이거구만."
유진은 다시 쓰러진 사람 쪽으로 두리번거린다.
이 시점에서 저 자가 얼마나 흉악한 인물일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사람 어떻게 한 거야?"
"사람이 매출에 기여를 해주고 있는데 집에 안 가냐고 따지잖아. 고맙다고는 못 할 망정. 소소한 행복도 이루기 힘든 세상이 참으로 야속해."
남자는 옆자리에 놔둔 낡은 짐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화면에 흠집이 잔뜩 나 있는 D-패드였다.
이내 화면을 키고는 바지 주머니에서 덱 케이스를 꺼내 부착한다.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본 유진이 뒤따라서 덱 케이스를 D-패드에 끼우는 순간이었다.
'인식이 안 돼…?'
듀얼 디스크는 전개되지 않은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당황하며 다시 덱을 끼워봐도, 다른 덱을 끼워도 결과는 마찬가지. 이내 기기를 누군가가 건드렸다는 시점에서 이렇게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유진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 이러면 듀얼을 어떻게….'
유진이 당황하는 사이, 남자는 듀얼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덱에서 카드를 뽑기 시작한다.
"듀얼이란 걸 하다 보면 말야. 에너지라는 게 조금씩 쌓이기 마련이잖아? 그러다 보니까 이런 게 되더라고.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는 뽑힌 카드들을 유심히 들여다본 끝에 하나를 골라 발동시켰다.
"이거부터 가자. '비밀병기 머신건'."
그 순간, 남자가 말한 카드명대로 사방에서 알록달록한 색상의 기관총들이 나타난다.
어떻게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차처하고, 유진은 위험을 직감하자 마자 잽싸게 사각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몇 초 뒤에 사방의 총구에서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한다. 공중에서 빗발치는 탄환은 바닥이나 벽에 구멍을 뚫는가 하면, 어떤 것은 오락 기기에 부딪혀 화면을 깨부수기까지 했다.
몇 초간의 아비규환 속에서 무심코 나올 뻔한 비명을 삼키며, 유진은 오락기기 밑에서 필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의자를 방패로 삼으면서도 바로 앞에서 탄환이 내리꽃히자 유진의 몸은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이내 총성이 잦아들고서야 유진은 겨우 얼굴을 내민다. 벌집이 되어버린 주변 풍경은 방금 전의 총격이 실제 그것이나 다름이 없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필시 어둠의 에너지를 활용한 능력이겠지만 그래도 이상하다. 자신이 듀얼 디스크를 켜지 않았으니 듀얼은 시작도 하지 않아야 정상일 텐데.
"거 몸 하나는 더럽게 잽싸네. 여태 그런 식으로 쨌었냐?"
그러나 의문에 시간을 소비할 겨를은 없었다.
주변 공간이 여전히 보이는 것을 통해 아직 영역이 펼쳐지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즉, 여태껏 치러 온 어둠의 듀얼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무리하게 맞설 이유가 없다. 도망칠 기회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유진이 출입문 쪽으로 뛰어나가려던 순간,
"'어둠의 저주."
남자가 또다른 함정을 발동하자 이번에는 허공에서 쇠사슬이 튀어나와 유진의 몸을 결박하기 시작한다. 사지에 감겨드는 사슬의 서늘한 감촉은 실물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저항은 커녕 도망조차 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유진은 더욱 침착함을 잃어간다. 카드 자체의 능력인지 기력도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왜 이래, 섭섭하게. 이제 시작이야."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사슬은 굳게 몸을 조여올 뿐. 옴짝달쌀 할 수 없는 유진을 앞두고 남자는 흥미롭게 새로 뽑은 패를 살펴보고 있었다.
"뭐, 뭐야, 이게?"
"뭐긴, 결투(듀얼)지."
"이런 듀얼이 어디 있어?"
"여기 있다. 제대로 카드 써서 상대하고 있잖아?"
이방인이 경고한 의미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명백한 함정이다. 더이상 자기 능력으로 대항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버린 것이다.
"역시 이게 좋겠네. '데몬의 도끼'."
남자는 수염난 입을 히죽거리고는 또다른 카드를 발동시켜 실체화한다.
큼직한 날붙이는 충분히 예리하게 갈려 있었고, 자루 끝에는 흉하게 말라 비틀어진 사람 머리통이 달려 있는 듯한 악취미스러운 조형의 도끼였다.
그런 몬스터에게 장착시켜야 마땅할 무기를 남자가 직접 집어든다. 제법 무게가 되는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다소 버거워보이는 반응이었다.
"이게 참 편해. 힘만 남아 있으면 손이 되고 발이 되고 피도 살도 되어주잖아?"
남자는 도끼를 양손으로 고쳐들고는 옆에 있던 기기에 휘두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을 두동강내버리고 기기 전체를 찌그러뜨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캬, 이거지, 이거. 뭐하러 지루하게 전술 연구하고 앉았어? 직관적인 방법이 최고인데. 완전 천재 아니냐?"
사슬이든, 도끼든, 카드를 말 그대로 진짜 무기로 쓰는 이 남자는 결코 평범한 듀얼리스트가 아니다. 그 밀도 높은 에너지를 느낀 순간부터 예측해야 됐을지도 모르지만, 유진은 일반적인 듀얼리스트로서의 대처만 생각하고 무작정 발을 들인 것이다.
'어, 어떡하지?'
알아서 해보겠다고 떠들던 자신의 체면 따위 지금 상황에서는 알 바가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답(도움)을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다.
듀얼은 커녕 손발조차 움직일 수 없는 입장에서 대처할 능력 따윈 없으니까.
이방인들도 분명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지 모른다고 말했으니, 이제 와서 실용적인 방법을 떠올릴 수도 없으리라. 그렇기에 그들마저도 침묵하고 있을 뿐이겠지.
'데몬의 도끼'의 성능 확인을 마친 남자는 그대로 한 발짝씩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저걸로 무엇을 해 올지는 뻔할 뻔 자. 유진 앞에 멈춰선 남자는 잠시 도끼를 세우고 사슬에 묶인 유진의 몸을 아래로 끌어내려서 숙였다.
"너무 원망은 마라. 나까지 귀찮게 불러낼 정도면 어지간히 원한 산 거 아니겠냐?"
그리고는 목을 가리는 옷깃과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겸사겸사 위로라도 해보듯 뺨을 찰싹찰싹하며 건드린다.
유진은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벌벌 떤 채 억울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것 빼고는.
뭘 어쩔 건데, 하는 시선으로 맞대응하던 남자는 문득 주변에 떨어진 유진의 가방을 발견한다.
호기심이 들어 안을 확인해보니 기존 덱을 제외한 카드들이 내부를 꽉 채우고 있었다.
"오오, 이거 봐라? 횡재다 횡재. 여기까지 돈 써서 온 보람이 있네."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지."
"이런다고 무사히 넘어갈 것 같아?"
"그럼, 지금까지 잘만 지내왔는데. 너같은 애들 털고 다녀도 세상은 잘만 흘러가더라. 이 맛에 소확행 라이프 만끽한다니까."
살인에 약탈까지 저지르는 주제에 무슨 '소확행'이냐. 그것까지 따질 겨를이 유진에겐 없었다.
"걱정 마, 착실하게 잘 써줄게. 다음 생이 있으면 잘 지내던지."
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도끼자루를 서서히 들어올릴 뿐이다.
창 너머로 전해지는 햇살을 받으며 도끼날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로 만나지 말고."
이렇게 끝날 수 없다. 한 순간에 사형수 신세가 된 유진은 속으로 되뇌었다.
기껏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아직 끝이 아닐줄 알았는데.
이제야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줄 알았는데.
'안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끝장난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눈앞의 현실은 그런 의사를 들어줄 생각이 없어보였기에, 유진은 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 직후 피부에 닿는 것은, 도끼 날이 아닌 억센 바람의 감촉이었다.
출입문이 덜컥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맹렬한 폭풍이 밀어닥쳐온 것이다.
"뭐야…!?"
당황한 남자는 바람에 떠밀리면서 손에 든 도끼를 놓쳐버린다. 그리고 바닥에 부딪히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유진의 몸을 동여매던 사슬마저 소멸하자, 구속에서 풀려난 유진은 주저앉은 채 참았던 숨을 정신없이 내쉰다.
방금 내뱉었던 남자의 의문을 유진 역시 속으로 내뱉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유진이 뜬 눈으로 뒤돌아보니, 어느 샌가 새로운 인물이 출입문에 들어와 있었다.
망토처럼 자락이 넓은 하얀 로브와 가면을 뒤집어써서 신상을 꽁꽁 숨기고 있다.
팔에 차고 있는 것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종의 D-패드.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큼직한 깃털. 끝부분에 고리가 달려있는 것까지 따지면 영락없이 방 청소에 쓰이는 빗자루 같은 조형이었기에, 곧 그것이 '해피의 깃털'이라는 사실을 유추해낼 수가 있었다.
"잠시 실례."
목소리 역시 변조되어 있다. 누구인지 추측할 거리를 철저하게 숨기려는 듯이.
리퍼인가 하며 섣불리 추정하려니 로브나 가면이나 디자인은 딴판이다. 오히려 하얀 망토를 두르고 나온 것부터가 리퍼와 차별화를 꾀한 듯한 모양새였다.
체격 역시 묘하게 차이가 엿보인다.
"누구…?"
"위저드입니다. 오랜만이네요."
그런 인물이 밝히는 이름에는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위저드라면 분명 재버워키에게 패배하고 사라졌을 텐데.
진짜 그란 말인가. 그렇다기엔 모습을 가리고 있는 것이 수상하다.
어쩌면 그 때 봤던 그 본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위저드를 자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곧 자신한테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모습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진짜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으리라며 생각해 보았다.
"언제 나타난겨? 여긴 무슨 일로?"
"사정이 있어서요."
"사정은 나한테도 있어. 바쁘니까 이따 오시던지."
"아뇨, 저부터 상대해 주셔야겠는데요."
남자 입장에서도 심상찮은 인물임은 알 수 있었다.
바로 전만 해도 창밖에 코빼기도 비춰지지 않았을 텐데. 더구나 저런 수상한 외양을 빼더라도, 자신이 기껏 발현해낸 능력을 똑같이 시전해서 맞서고 있다는 것부터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노릇이다.
"뭐? 댁이 이 학생하고 상관 있어?"
"코가네 유키오(小金 幸男) 씨."
대답 대신 대지도 않은 본명이 귀에 들리자 남자는 흠칫한다.
"먼 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으시네요. 캔필드라는 분의 사주였겠지요?"
"…그런 정보를 어서 들었대?"
"그야, 저도 동업자 관계니까요."
"그럼 더 잘 됐네, 방해 말고 꺼지셔."
"아뇨, 저는 이 분을 더 지켜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캔필드 씨의 조치를 동의할 수가 없어서 말이죠."
"내 일감을 뺏어먹겠다고?"
"그런 셈이죠. 불만이 있거든 저부터 상대하시라는 겁니다."
문답 중에 흘려들을 수 없던 표현에 유진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동업자? 그럼 한 패야?"
"그런 일이 있습니다. 어른…, 이라기보다는 사람 대 사람의 사정이라고 치죠."
같은 편끼리 싸우는 상황이 된 걸 보면 무슨 잡음이라도 벌어지려는 모양이다.
저 쪽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다 치면, 이 쪽은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일까.
"뭐하러 온 거야? 날 어쩌게?"
"글쎄요. 적어도 전 당신을 계속 붙잡아둘 생각은 없거든요. 그리고, 당신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죠."
또 빙빙 돌려 말하기. 불안을 부추기는 말은 지긋지긋할 뿐이다.
"뭐 하는 놈들이길래? 설마?"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능력껏 책임지고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시겠죠. 그 점에서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적어도 지금 당신께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요?"
"……."
만약 그가 가리키는 것이 유노가 보내올 사람들이라면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이야 안전하겠지만, 함정에서 끄집어내 또다른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계책이라면 어쩔 것인가.
"알겠으면 얼른 갈 길 가세요."
"어디로?"
"이미 알고 계시지 않나요?"
그러나 달리 방법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저런 인물이 또다시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리도 없다.
유진은 마지못해 받아들이고는 가방을 챙겨든다. 그리고는 소지품이 멀쩡히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대로 자리에서 달아났다.
"저, 저게!"
"저런, 빨리 쫓아가셔야겠네요?"
말하는 위저드 본인이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코가네 앞을 팔로 가로막는다.
동시에 그가 펼치는 어둠이 아침 햇살로 환하게 밝아져가던 주변 풍경을 가리기 시작했다.
"서로 빨리 끝내면 좋은 입장일 테니까, 같이 노력해봅시다."
코가네는 비키라는 말 대신 손에 잡힌 '데스 메테오' 카드를 발동시킨다. 그러자 꽉 막혀 있던 어둠으로부터 유성처럼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발사되었다.
"성급하시긴."
이번엔 위저드도 '정령의 거울' 카드를 발동해서 맞대응한다.
그가 소환해낸 여성형의 정령이 양손 사이에 띄워진 거울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위저드에게 날아들던 유성을 빨아들였다.
"뭐야, 이것까지?"
"이러지 마시죠. 머리 굴리는 재미가 떨어지잖아요."
그리고는 마치 총구를 대고 협박하듯, 무뚝뚝한 표정의 정령이 거울로 비추는 유성의 모습을 앞두고서 코가네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쪽도 어지간히 사람 담구셨나봐?"
"글쎄요, 어쨌든 당신이 누리던 건 당신만의 특권이 아닐 수도 있다 이겁니다."
아직 발사할 카드는 많지만, 저쪽 역시 같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소모전만이 이어질 터.
더구나 저쪽이 무슨 카드를 갖고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이쯤 됐으면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하실 거라 보는데."
마지못해 코가네는 듀얼 디스크에 부착된 덱 케이스를 교체한다. 이번엔 진짜 듀얼에 쓰일 덱이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위저드 역시 덱 케이스를 교체한다.
"그래, 잘 걸렸다. 누가 뒤지나 보자."
"잘 생각하셨습니다. 진짜 결투(듀얼)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그나마 코가네에게 다행인 것은 여태껏 썼던 이 덱 역시 충분히 실전적이라는 점, 그리고 자신에게 선공이 주어졌다는 점이었다.
빨리 끝내는 데에 특화된 이 덱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를 바라며 첫 패를 뽑아든다.
[코가네 유키오: LP 8000, 패 5장]
[위저드: LP 8000, 패 5장]
"내 턴, 엑스트라 덱의 카드 6장을 제외하고 '욕망과 졸부의 항아리'를 발동. 2장 드로우한다."
[코가네 유키오 : 패 6장]
결과물을 확인한 코가네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 덱에서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패가 나와줬으니까.
이미 빨리 끝내고 타겟의 뒤를 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코가네의 머릿속을 자리잡고 있었다.
"5장 세트. 턴 엔드."
"제 턴입니다."
[위저드: 패 6장]
[코가네 유키오: 패 1장]
위저드는 잠시 코가네가 세트한 카드들을 훑어본다.
뭐가 기다리고 있든 그는 늘 쓰던 전법을 따르기로 했다.
"'소환사 알레이스터'를 소환. 효과로 덱에 있는 '소환마술'을 가져오죠."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알레이스터'를 소재로 '성마의 아가씨(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를 링크 소환."
[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 마법사족 / 빛 / LINK-1 / ATK 800 / 링크 마커 ↑]
지금까지 체인 없음. 역시 저들은 당장 자신을 견제하는 역할이 아니다. 적어도 하나를 더 꺼내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기꺼이 함정에 발을 들이밀어주도록 하자.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14.jpg](https://i2.ruliweb.com/img/25/10/23/19a101c9020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15.jpg](https://i1.ruliweb.com/img/25/10/23/19a101c8e5d20b132.jpg)
"패에 있는 '봉인의 마도사(씰 오브 마기스토스) 스푼'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마기스토스' 몬스터를 가져오겠습니다. 이어서 가져온 '천부의 마도사(기프트 오브 마기스토스) 크로울리'의 효과를 발동. 패에서 특수 소환하죠."
[기프트 오브 마기스토스 크로울리: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1000]
"그럼 특수 소환된 '크로울리'의 ②의 효과를──"
"좋았어, 이 타이밍에 세트한 카드를 전부 발동!"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16.jpg](https://i3.ruliweb.com/img/25/10/23/19a1052064d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17.jpg](https://i3.ruliweb.com/img/25/10/23/19a1055d5ba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18.jpg](https://i2.ruliweb.com/img/25/10/23/19a105204d2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40_19.jpg](https://i2.ruliweb.com/img/25/10/23/19a105207af20b132.jpg)
코가네가 그 순간 공개한 세트 카드들은 순서대로 '비밀병기 머신건', '비밀병기 폭탄', '자업자득', '방해꾼 트리오', 그리고 발동 시점의 체인 수만큼 500의 효과 데미지를 주는 '연쇄폭격(체인 스트라이크)'.
이 시점의 체인은 5까지 흘러갔으니 '체인 스트라이크'가 주는 데미지는 2500. 그 다음 '방해꾼 트리오'의 효과로 '방해꾼 토큰'이 3체 전개된 상태에서 상대 몬스터 수만큼 데미지를 주는 '자업자득'의 데미지 수치는 2500. 이어서 상대 카드 수만큼 데미지를 주는 '비밀병기 폭탄'의 데미지는 1500. 여기에 상대 패까지 포함해서 데미지를 주는 '비밀병기 머신건'의 데미지 수치는 2000.
아직 1도 깎이지 않은 위저드의 LP를 오버킬 해버리는 수치였다.
"'체인 번'이라. LP를 깎는 것만큼 직관적인 승리법은 또 없겠죠."
"이제 알아봤자 뭔 소용이냐? 그만 순순히──"
물론 어디까지나 전부 통했을 때의 이야기.
"패에 있는 '날개 와타'의 효과로 체인. 이걸로 이번 턴 제가 받는 효과 데미지는 0입니다."
"뭣?"
"이 상태에서 남은 처리로 들어가면…."
먼저 발동한 '체인 스트라이크' 카드로부터 쇠사슬 세례가 뻗어나와 뱀떼처럼 위저드에게 덤벼든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날개달린 솜털처럼 생긴 마물 '날개 와타'가 나타더니 힘을 쥐어짜가며 방어막을 펼쳤고, 결국 어떤 사슬도 직격하는 일이 튕겨나가버린다.
이후 폭발이 일어나든, 게임 센터 실내를 휩쓸었던 것과 똑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위력을 가진 총격이 연속해서 퍼부어지든 '날개 와타'의 방어막은 전부 끄떡없이 막아내버렸다.
그렇게 데미지를 주는 효과가 카드 1장의 방어에 틀어막힌 결과, 온전히 효력을 발휘한 것은 상대 필드에 토큰을 떠넘기는 '방해꾼 트리오' 뿐.
그 효과로 '실례하겠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각자 개성과 우스꽝스러움을 겸비한 몬스터 셋이 뿅 하고 나타나 위저드의 필드를 차지하고 있었다.
[위저드: 패 4장]
[방해꾼 토큰: 야수족 / 빛 / 레벨 2 / ATK 0 / DEF 1000]
[방해꾼 토큰: 야수족 / 빛 / 레벨 2 / ATK 0 / DEF 1000]
[방해꾼 토큰: 야수족 / 빛 / 레벨 2 / ATK 0 / DEF 1000]
"마지막 처리는 '크로울리'의 차례가 되겠네요. 필드의 자신과 링크 몬스터인 '아르테미스'를 융합하겠습니다. 시련을 넘어 승리를 거머쥘 시작의 화염, '용왕절화(마기스토스 우르스라그나) 조로아'!"
방어막이 사라지자, 주인이 위기를 넘길 때까지 기다린 듯 그제서야 '크로울리'는 주어진 능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이계의 정령을 불러내는 소환마술.
손에 들린 지팡이를 바닥에 꽂는 순간 주변에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하더니, 시전자인 '크로울리' 자신과 위저드가 지명한 '아르테미스'가 내부로 빨려들어가고 나서야 온전한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마기스토스 우르스라그나 조로아: 마법사족 / 화염 / 레벨 8 / ATK 2900 / DEF 2900]
그곳에서 소환된 것은 '마기스토스'들의 스승이었던 사내 '조로아'. 이계에서 온 절화(絶火)의 힘을 길들인 채 고고하게 서 있는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한 불기둥이나 다름없었다.
타오르는 불처럼 새빨간 머릿결이 휘날리며, 옷 따위 걸칠 필요 없다는 듯 노출된 튼튼한 상반신에는 붉게 빛나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고, 한 손에는 정말로 붉게 빛나는 화염이 활발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그럼 당신이 넘겨준 건 착실히 써드리도록 하죠."
"이 자식이…!!"
세트 카드가 전부 소용이 없어져버린 상황에서 코가네는 그저 이를 갈 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내어준 토큰들마저 소재로 써버릴 것이 자명한 상황.
"'조로아'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링크 몬스터 '아르테미스'를 장착합니다. 그리고 장착 상태인 '아르테미스'의 ②의 효과 발동. 덱에서 '마기스토스' 몬스터 하나를 패로 가져오죠."
[위저드: 패 5장]
"'소환마술' 발동. 묘지의 '알레이스터', 필드의 빛 속성인 '방해꾼 토큰' 하나를 소재로 삼아 '소환수 메르카바'를 융합 소환. 그리고 묘지로 간 '소환마술'의 효과. 이 카드를 덱으로 되돌리고 제외된 '알레이스터'를 패로 회수합니다."
[소환수 메르카바: 기계족 / 빛 / 레벨 9 / ATK 2500 / DEF 2100]
뒤이어 은빛의 중갑을 두른 거대한 기사가 등장해버린다. 예상대로 '방해꾼 토큰'을 소재로 삼아 나타난 두 번째 전력이었다.
"패에 있는 '이펙트 뵐러'를 묘지로 보내고 '마기스토스 그리모어 크로울리'의 효과를 발동. 자신을 특수 소환합니다."
[마기스토스 그리모어 크로울리: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1000]
[위저드: 패 3장]
"이어서 마법사족인 '크로울리', 그리고 '방해꾼 토큰' 하나를 소재로 써서 '성월의 마도사(크레센트 오브 마기스토스) 엔디미온'을 링크 소환. 효과로 묘지에 있는 '스푼'을 '조로아'에 장착하죠. 그리고 패에 있는 '알레이스터'를 버리고 ②의 효과 발동. 융합 몬스터인 '메르카바'의 공격력을 이번 턴 동안 1000 올리겠습니다."
[크레센트 오브 마기스토스 엔디미온: 마법사족 / 빛 / LINK-2 / ATK 1850 / 링크 마커 ← ↘]
[소환수 메르카바: ATK 2500 → 3500]
위저드가 꺼내놓은 몬스터들의 총 공격력은 벌써 코가네의 LP 수치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넋나간 듯 전개되는 몬스터들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패에 남은 마지막 희망을 써야했다.
"…패, 패에 있는 '원시생명체 니비루'의 효과를 발동. 몬스터가 5장 이상 소환되면 필드의 모든 몬스터를 릴리스하고…"
"당신도 그걸 쓰다니. 몬스터의 효과가 발동된 순간, 필드의 '스푼'을 묘지로 보내고 '우르스마그나 조로아'의 효과를 발동하겠습니다. 이걸로 '니비루'의 효과도 무효."
[코가네 유키오: 패 0장]
무언가 나타나려는 듯 어두운 하늘이 번쩍거리자, 자신들의 행차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조로아'가 팔에서 불을 생성시켜 힘차게 쏘아올린다. 불기둥은 명중했는지 곧 환하게 터지는 빛과 함께, '원시생명체 니비루'는 필드로 낙하하기도 전에 폭파되며 무력화되었다.
이미 '조로아'가 '아르테미스'를 장착한 시점에서 '니비루'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지금의 코가네는 따질 겨를이 없었다.
"ㅇ, 어, 어, 잠깐, 이렇게 빨리…."
"속전속결 좋죠. 당신도 그런 덱 준비해 온 거 아니던가요?"
어둠의 에너지를 원동력 삼아 환상을 실체화시키는 능력. 욕망을 투영시킬 수단이자, 은밀한 폭력을 간단히 이뤄주는 무기이기도 하다.
주변을 원하는 대로 주물러가며 거슬리는 것을 치울 수 있다니, 코가네에게 그것은 무료한 나날에서 벗어나게 해 줄 축복이었다.
이런 승부에서 자칫하다간 끝장이 나버릴지 모른다는 우려는 간단히 이겨내는 방법을 찾으면 그만. 힘을 승부의 보상으로서 갈취하고 실체를 얻는 능력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다면 꽤 감수할 만한 리스크라고 여겼다.
견디다 보면 소소하게 시작한 행복은 착실히 쌓여가겠지. 언젠가는 마음대로 보고 듣고 먹고 안을 수 있는 유토피아가 찾아올지 모른다. 적어도 등신같이 성실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가던 나날이었으나,
"나, 난 그쪽 동료가 시키는 대로…!"
"그 동료가 저를 방해해서 어쩔 수가 없네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꿈의 확실한 좌절을 앞둔 코가네는 뭐라도 떠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들어줄 기미가 없다면 뭘 어째야 좋을까.
뒤가 없이 살아온 인생이었던 그에게 아무런 대책 따윈 없었다.
"하지만 쉽게 사는 인생, 쉽게 끝나도 할 말 없지 않을까요?"
"그런 게 어디있어! 아직…."
"그럼 이쯤에서."
완전 무방비 상태에 빠진 코가네에게 남은 조치는 몬스터들의 총공격 뿐. 마법사들의 마법 공격과 '알레이스터'의 버프를 받은 '메르카바'의 진격에 의해 LP는 단숨에 소진되어버린다.
[코가네 유키오: LP 8000 → 0]
자신이 누려온 것 이상의 힘에 부딪히면서 극한의 고통을 맛보며, 코가네는 비명과 함께 어두운 바닥을 굴렀다.
쓰러진 채 고통에 신음하는 상대 앞으로 위저드는 천천히 다가간다. 그 동안에도 일어설 기미가 없는 상대의 몰골을 내려다보았다.
"많이 아프세요?"
코가네는 대답할 겨를도 없어보인다. 남한테 아무렇지 않게 고통을 주며 살아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처량한 모습이다.
그 추레한 몰골에 걸맞다고 평하는 것은 실례겠지, 그 생각에 위저드는 늘 하던 대로 가기로 한다.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겁니다. 세상은 그대로 흘러가겠지만, 또 새로운 세상이 있다면 당신은 유의미한 존재로 태어날지 모르죠. 그걸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격식을 갖춘 그의 말투에 동정의 기색은 딱히 엿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번에도 패자를 향해 백지(블랭크) 카드를 꺼내들 뿐.
"벌칙. '마인드 카드'."
카메라 플래시 같은 섬광이 지나가고서, 곧 백지인 일러스트는 사색에 질린 남자의 얼굴로 채워졌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컬렉션은 컬렉션이니 만큼 앨범 한 자리를 채워넣기로 한다.
이런 거라도 언젠가 쓸모는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려던 위저드는 쓰러져 있는 사람을 추가로 발견한다.
"한 명 더 있었네요. 캔필드 씨도 참, 쓸데없는 짓에 여념이 없으시다니까."
게임센터의 운영자로 보이는 남자는 이미 식어가는 주검이 되어 있었다. 사방을 벌집으로 만든 총탄 세례의 흔적에 흉기에 맞은 자국까지. 어둠의 듀얼이나 디젠과 연관이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무사히 빠져나가기 힘들었을 터.
위저드는 쓰러진 남자에게 잠시 추모를 보내듯 침묵을 유지했다.
사람 인생이란 딱히 공평함과는 관계없이 나타나고 사라져가는 것.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또 어떻게 끝을 맞이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런 덧없는 인생이라도 하나하나씩 과거의 잔재로서 축적되어 역사가 만들어지겠지. 현재의 사람들은 그 역사를 들여다 보며 미래를 세워나갈 것이다. 어떤 변수가 기다릴지 불안을 품으면서.
참으로 부질없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흥미가 떠나지 않는다. 그는 그 일말의 흥미로 세계에 남아있다고 봐도 좋았다.
재버워키를 자칭한 그 분도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그는 감히 추측해본다.
그리고 잠시 후,
"이대로 놔두면 시끄러워질지 모르니까 실례."
위저드는 남자에게도 카드를 들이민다. 마찬가지로 플래시가 터지면서 그의 시신 역시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눈을 감은 남자의 얼굴이 그려진 카드를, 위저드는 손에서 발생시킨 불로 태워 없앤다. 타고 남은 재가 저절로 흩어져 나갔다.
"다음 생이 있다면 잘 지내시길 빌죠."
코가네 유키오도, 이 남자의 신원도 세간에서는 실종으로 처리되겠지. 쑥대밭이 된 게임 센터는 이런저런 흉흉한 소문을 남긴 채 자리에 방치되거나 철거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사람은 물론 장소마저도 과거 속에 묻혀가고는 한다.
"그럼 어디, 다른 변수가 없다면 유진 씨는 곧 출발할 테고……."
세상은 조금씩, 혹은 크게 흘러가며 변천하는 것이다.
그 변화의 축은 무엇일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도 제각각. 그것을 알아나가는 것이 세계라는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리라.
그 조각을 하나씩 줍는 과정에 자신은 동참했다. 어느 곳에 끼워맞춰야 하는지, 애초에 제대로 된 조각이 맞는지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기에, 오롯이 자기 자신의 판단을 통해 게임이라는 탐구 활동은 이어져왔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는 무의미한 고행에 불과하다. 어떤 행위가 그렇듯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원동력이니까.
지금 하는 일도 위저드에게는 충실한 즐거움이 되어주고 있으니 계속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도 가볼까요, 도미노 시로."
한 편으로는 생각한다. 언젠가 그 즐거움의 끝이 와버리는 순간을.
재버워키를 자칭한 자가 꺼낸 그 화제를 위저드는 곱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문유진 씨 맞습니까?"
"아, 네…."
유진이 숨가쁘게 달린 끝에 도착한 약속 장소는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멀지 않은 도로변. 거기에 정말로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기는 검고 윤택한 차체의 리무진 한 대와 함께.
"분명 자택 내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라 들었는데요. 연락을 보냈는 데 아무 답변도 없으시더군요."
보자마자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 이 남자, 허옇게 샌 머리카락과 주름을 보면 최소 중년은 지난 듯한 나잇대지만 구부정함 없이 꼿꼿하게 서 있는 체구는 여전히 건장해보인다. 거기에 경호원답게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까지 두르고 있으니 위압감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풀이 죽어버린 유진은 무심코 둘러댈 거리를 찾다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을 깨닫는다. 오히려 최대한 솔직히 털어놔야 이득일 테니.
"죄송합니다. 제 폰이 해킹을 당해서."
"해킹?"
"전에 어둠의 듀얼하러 찾아온 사람이 제 신상을 알고 있었어요. 아마 그 정보를 캐낸 사람 짓이 아닐까 싶은데."
정말인지 확인하고자 D-패드를 받아든 남자는, 듀얼 기능을 비롯한 중요한 기능 대부분이 먹통이 되었음을 확인하고서 선글라스를 고쳐쓴다.
"그렇군요. 반드시 보고드려야겠습니다."
"이거 해결 가능한 건가요?"
"제 관할은 아니지만, 해킹 문제라면 본사에서는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IT 분야에서 따라올 데가 없는 곳이니까."
유메미와 듀얼하던 순간을 되짚어보면, 어둠의 듀얼에서 중요한 것은 디젠 쪽이니 듀얼 디스크를 키지 못한다고 듀얼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연락마저 주고받지 못하면 분명 앞으로의 생활에 지장이 생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D-패드의 해킹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만 아직 털어놓을 것이 더 남아 있다.
"그리고, 방금 전에도 듀얼할 뻔했다가 겨우 빠져나온 거거든요."
"한 시가 급하겠군요. 어서 타시죠."
정말 이 고급 차량에 몸을 들여도 된단 말인가. 빨리 타라고 했으니 그래야겠지. 얼떨떨해진 기분으로 그는 가방을 안아들며 탑승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남자도 마주앉은 자리에 동승하고는 말을 꺼낸다.
"카이바 코퍼레이션까지 바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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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듀얼이랄 것이 없으므로 그냥 빠르게 올립니다.
나름 터닝 포인트가 올 때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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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10.25 07: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