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세계관을 차용하고 있지만 오리카, 오리지널 설정의 비중이 많습니다. 또한 원작 설정에도 일부 개변이 일어날 수 있으니 거부감이 있으신 분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룰에 관한 오류가 발생할 오류가 있으니 지적해주신다면 전개에 큰 지장이 없는 선에서 반영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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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듀얼). 무력으로 승부하는 목숨을 건 의식.
과거에는 죄의 여부마저도 결정할 재판으로서 활용되었다, 라는 역사적 사실을 유진은 주워들은 적이 있다. 물론 싸울 힘이 없는 자를 대신하기 위해 변호사 개념으로서 싸움에 나서는 직업도 있었다고 한다.
법에 의해 금지되기 전까지, 심지어는 그 후로도 현 시대가 찾아오기 전까지 사적 심판으로서 치뤄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의 믿음이 해결해준다고 포장해봤자 결국은 힘겨루기일 뿐. 그것이 검이 됐든, 총이 됐든, 맨몸이 됐든 변하지 않는다.
유진은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경을 품어보았다. 어디까지나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는, 외부인으로서의 동경이었다.
이런 동경이 있기에 게임이라는 것에 열광할 수가 있다. 게임이란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날 수 있는 승부. 치열한 싸움이란 참여하는 이들의 머릿속에서 끝나는 것으로 족하다. 공상만으로 끝나기에 즐거운 것이라는 걸 유진은 알고 있었다.
그런 껍데기만으로 충분하니, 결투라는 피비린내나는 개념은 유진은 현실을 살아가는 입장으로서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라 여겼다.
그 때만 해도 현실에 찾아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서문유진: LP 8000]
[엔도 모리스: LP 8000]
평소보다 어두컴컴한 바깥에서 유진과 방금 이름을 나눈 낯선 청년이 마주보고 서있다.
단순히 카드 게임의 명칭으로서 읊어왔던 '결투(듀얼)'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 양쪽은 카드를 뽑아들었다.
게임이 즐겁기는 커녕 살벌하게까지 느껴지던 순간을 유진은 제법 자주 느껴왔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살벌함은 어딘지 그 순간들과도 궤를 달리할 것이라고 시작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내 턴."
선공이라 드로우 없이 패 5장 상태로 시작하게 된 유진은 패에 있는 카드들을 확인한다.
이런 첫 패로는 승부수를 던질 수가 없었기에 표정이 더욱 어두워진다.
뽑아버린 상황에서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었다. 만들다 만 덱이라도 아무 대책 없이 패배를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믿고 싶었다.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택마저 엇나간 상황에 유진은 이를 악물고 상대를 쳐다본다. 모리스는 기권을 용납하지 않는 듯 잡아먹을 듯한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패에서 '제넥스 뉴트론'을 소환."
[제넥스 뉴트론: 기계족 / 빛 / 레벨 4 / ATK 1800 / DEF 1200]
유진이 듀얼 디스크에 카드를 세팅하자, 바로 앞에 기계부품을 사람 형태로 조립해놓은 듯한 레트로 스타일의 로봇 몬스터가 실체화된다.
"카드를 1장 세트. 턴 엔드. 이 순간, '제넥스 뉴트론'의 효과로 덱에서 기계족 튜너 한 장을 패에 추가한다. 'A·제넥스 케미스트리'를 선택."
턴 엔드 선언을 듣자, 모리스는 바로 비아냥대기 시작한다.
"벌써 턴 엔드? 다른 건 없어?"
별다른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채 상대에게 턴을 넘기다니, 이미 패배가 찾아오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패배만큼은 어떻게든 사양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유진은 나중을 위해 패를 흘겨보았다.
'지금은 이 카드의 효과만 믿는 수밖에.'
첫 패에 들어온 카드 중 그나마 역전의 기회를 남겨줄 카드가 있는 것을 확인하며, 상대의 플레이에 집중하기로 한다.
"내 턴. 드로우."
모리스는 뽑은 카드를 보고는 더욱 싸늘한 미소를 짓는다.
"패에서 마법 카드, '염열전도장'을 발동. 덱에서 '라바르' 몬스터 2장을 묘지로 보낸다. '라바르 염호반의 숙녀', '라바르 염화산의 시녀'를 묘지로."
''라바르' 카드...'
'싱크로 소환'의 도래와 함께 등장한 테마들 중 하나로, 화염 속성을 주축으로 대량 전개하는 것에 특화된 덱. 몇 번 상대해보았던 유진이 알고 있는 인식은 그 정도 선이었다.
"이어서 '염화산의 시녀'의 효과. 묘지로 보내졌을 때 다른 '라바르' 몬스터가 있을 경우, 덱에서 '라바르' 몬스터를 묘지로 보낸다. 두 번째 '염화산의 시녀'를 묘지로. 계속 해서 두 번째 '시녀'의 효과."
이런 식으로 3장의 '라바르 염화산의 시녀'가 묘지로 덤핑되었다.
"...세 번 째 '시녀'의 효과. 이번엔 '라바르 염수해의 요녀'를 묘지로."
이미 '라바르' 카드가 들어간 덱을 상대해본 적이 있는 만큼, 이런 전개를 이미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마법 카드 '진염의 폭발'! 묘지에서 수비력 200짜리 화염 속성 몬스터를 있는 대로 특수 소환한다."
'지금이다!'
예상하던 카드가 바로 나와주자, 유진이 잽싸게 패에 있는 카드를 집어 묘지 슬롯으로 보낸다.
"패에 있는 '증식의 G'의 효과! 이 카드를 묘지로 보내면, 상대가 몬스터를 특수 소환에 성공할 때마다 덱에서 1장 드로우한다."
순간적으로 경계하는 모리스. 이대로 상대의 패가 늘어난다는 사실이 살짝 불안케 한다. 하지만 모처럼의 전개를 그런 걱정 때문에 관둘 생각은 없었다.
"쳇, 귀찮게. 어쨌든 다섯 마리를 특수 소환, '염호반의 숙녀', '염수해의 요녀', 그리고 '염화산의 시녀' 셋!"
[라바르 염호반의 숙녀 : 화염족 / 화염 / 레벨 3 / ATK 200 / DEF 200]
[라바르 염화산의 시녀 : 화염족 / 화염 / 레벨 1 / ATK 100 / DEF 200]
[라바르 염수해의 요녀 : 화염족 / 화염 / 레벨 2 / ATK 300 / DEF 200]
몸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소녀 모습을 한 몬스터 다섯 마리가 필드에 튀어나온다. 새침한 표정을 유지하는 '염수해의 요녀'를 제외한 이들은 상대인 유진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특수 소환됐으니까, 1장 드로우."
유진은 갑작스런 물량공세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일단 침착하고 드로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다섯 마리가 한 번에 튀어나왔으므로 특수 소환은 한 번, 따라서 1장을 드로우할 수 있었다.
모리스는 패의 카드 1장을 꺼내들며 예리한 미소를 지었다.
"실컷 뽑아보셔. 난 이걸로 세팅 완료. 기대하시라."
몬스터의 수는 다섯 마리. 웬만한 덱에서는 더욱 강한 전개를 펼칠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이었다. 튜너만 다섯이 튀어나왔으니 싱크로 소환으로 이어질 흐름은 아닌 듯 보였다.
'온다! 그치만 소환을 막을 수 있는 카드가...'
없다. 그러니 뭔지는 몰라도 일단 몬스터가 소환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 공격을 맞는 순간 무사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 간다! 나는 이 5마리의 몬스터를 릴리스!"
몬스터들의 형체가 바닥으로 빨려들 듯이 사라져가더니, 그 자리를 불꽃의 소용돌이가 메우기 시작한다. 소용돌이는 위로 치솟아 잠시동안 어두워진 공간을 붉게 밝혔다.
"특수 소환, '플레임벨 게헤나'!"
[플레임벨 게헤나: 악마족 / 화염 / 레벨 8 / ATK ? / DEF 200]
머리와 주먹에 맹렬하게 불이 타오르는 마인 형태의 몬스터가 나타난다. 얼굴을 가리는 가면 틈새에서, 그 눈빛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분명 솔리드 비전에 불과할 텐데 그 열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계속되는 긴장으로 감각마저 이상해져 버린 것이었을까.
"게헤나'의 공격력은 릴리스한 몬스터 한 마리 당 600을 곱한 수치가 된다. 따라서 3000."
[플레임벨 게헤나: ATK ?→3000]
공격력 3000. 다섯 마리 씩이나 바친 것 치고는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라며 유진은 속으로 평가한다. 더 효율적인 전개를 보일 수 있었을 텐데 몬스터 하나에 저만큼 투자해버리는 것이 잘 하는 짓일까?
더구나 저 몬스터는 '라바르' 카드도 아니라 묘지로 갔을 때 발동하는 '라바르 염수해의 요녀'의 공격력 강화 효과도 받지 못한다. 조금씩 빈틈이 보이려고 한다. 그것은 유진으로서는 희망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급에 걸맞는 능력치로서 세 번 직접 공격을 맞으면 패배. 물론 가만히 맞아줄 생각 따윈 없었다.
"일단 '증식의 G' 효과 한 장 더 드로우."
유진은 또다시 침착함을 동원해서 또 한 장 뽑는다. 모리스는 살짝 거슬려 하는 태도를 보이며 카드의 효과 발동을 선언한다.
"아직 긴장하긴 일러. 우선 묘지에 존재하는 '라바르 염호반의 숙녀'의 효과. '라바르' 몬스터가 3종류 이상 존재할 경우, 묘지의 이 카드와 다른 '라바르' 몬스터를 제외하고 네가 세트한 카드를 1장 파괴할 수 있어."
방어 대책으로 마련한 카드가 허무하게 필드에서 사라져간다.
''거울의 힘'이!'
저번 대회에서도 그렇고 기껏 세트한 카드가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 하게 되며 위기에 처했다. 한 두 번 일도 아니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더 속이 타는 일이었다.
"'성스러운 방어막 거울의 힘'. 야~ 이거 무섭네. 다행이다."
유진은 다소 생소한 '플레임벨 게헤나'의 효과를 떠올린다. 분명 수비력 200짜리를 대상으로 하는 카드의 효과를 무효화하는 부가 효과가 있었다. '성스러운 방어막 거울의 힘'은 공격 선언시 발동하여 대상을 지정하지 않고 몬스터를 전부 파괴해버리니 그 효과를 피해갈 수 있다.
약점을 훤히 뚫을 수 있는 카드였지만 발동 조건이 채워지기 전까지는 그저 무방비 상태일 뿐이다. 결국 발동할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라바르 염호반의 숙녀'가 묘지로 간 시점에서 어차피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후회해봤자 늦었다.
"그럼 이어서 '플레임벨 헬도그'를 소환."
[플레임벨 헬도그 : 야수족 / 화염 / 레벨 4 / ATK 1900 / DEF 200]
"배틀. 우선, '플레임벨 헬도그'로 '제넥스 뉴트론'을 공격!"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몸을 가진 개 형태의 짐승이 유진의 기계형 몬스터를 물어뜯으며 습격하자, 몬스터는 맥없이 터져나가며 사라진다.
[서문 유진: LP 8000 → 7900]
"헬도그의 효과. 몬스터를 전투로 파괴하면, 덱에서 수비력 200 이하의 화염 속성 몬스터를 또 한 마리 특수 소환한다. 나와라, '라바르의 마그마 포병'!"
[라바르의 마그마 포병 : 화염족 / 화염 / 레벨 4 / ATK 1700 / DEF 200]
"...또 한 장 드로우."
'증식의 G' 효과 덕분에 어느샌가 유진은 패를 6장까지 뽑아놓은 상태였다. 그것이 거슬리는 듯, 모리스는 표정을 험상굳게 짓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반격할 시도도 못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게 좋을 듯 했다.
"배틀 페이즈는 아직이거든? 계속해서 '마그마 포병'으로 다이렉트 어택!"
몬스터의 양 어깨에 있는 포신에 굉음과 함께 작렬하는 불덩어리가 뿜어져 나온다. 마치 유성을 방불케하듯 자신의 바로 코 앞에 떨어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서문 유진 : LP 7900 → 6200]
"으허억!?"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아있는 것을 확인한다. 데미지를 입은 순간 유진은 위화감을 느낀다. 땅이 울린 것도 그렇고, 뭔가 엄청나게 뜨거운 것이 자신에게 튀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진짜로 코앞에 포격이 일어난 것만 같은 감각. 귀가 울리고 몸이 뜨겁다. 진짜로 몸이 불타는 것 마냥 뜨겁다. 직접 맞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다.
'솔리드 비전으로 이렇게까지 데미지가 느껴질 리는 없는데. 이게 대체...?'
상상 이상의 고통에 당황스러워하는 유진의 모습을 보며 모리스는 더욱 즐거운 웃음을 띄기 시작했다.
"아직 마지막 공격이 남았어. 각오는 됐지?"
그 미소를 보고서 유진은 전율을 느꼈다. 벌써부터 그는 머릿속에서 '게임'에 참여한 것에 대한 후회를 느끼려 하고 있었다.
'역시 어떻게든 도망을 쳤어야…'
"'게헤나'로 다이렉트 어택!"
'게헤나'는 갑자기 더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한 불주먹을 앞세우고 자신을 향해 달려든다. 불길에 휩싸인 자동차가 돌진해오는 듯한 공포에 직면한다.
[서문 유진 : LP 6200 → 3200]
그리고, 주먹이 자신의 코앞에 내리꽃힌다. 다행스럽게도 직접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화염이 몸을 뒤덮는다. 뜨거운 감각이 유진의 신경을 지배한다. 피부가 바싹 말라 바스라질 듯한 따가움, 폐가 익어버릴 것만 같은 매캐함,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으아아아아아!"
불길에 휩쓸리듯 유진의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경험조차 해본 적 없는 열풍이었다. 피부가 벌겋게 익어버릴 듯한 열기. 결코 솔리드 비전의 최고 한도로도 느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이 정도의 충격은 듀얼 디스크의 충격 기능으로 발생되는 것을 한창 넘어섰다. 조금이라도 더 받았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정도다.
비명을 지르며 구르는 몸을 보고 모리스는 드디어 폭소를 터뜨린다.
"어때, 직접 맞아본 소감은?"
유진은 고통이 아직 가시지 않아 말을 받아칠 상태가 아니었다. 기침과 신음이 멈추지 않는다. 꼴사나운 모습을 신경쓸 여력도 없이 유진은 바닥을 구르며 한 동안 몸부림쳤다.
그도 그럴것이 이 게임에서 이 암흑의 공간 속에서 나타나는 카드의 형태들은 실체를 가진다. 실체를 가진 것으로부터 공격을 받으니 고통 또한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게임의 속행을 위한 공간의 의도인지 이 정도로 상대를 빈사로 이르게 하지는 못하지만, 다음 전술 따위 생각할 여지도 없을 만큼 고통과 공포를 계속 밀어붙이기엔 충분했다.
"진짜 작살나거든. 확 태워버리고 어떻게 뒷처리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까 게임에만 집중하면 돼. 얼마나 편리하냐?"
이런 고통에 시달린 끝에 '벌칙'이라는 한 층 더 심화된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상대를 보는 것이 모리스의 희열이었다. 그것이, 이 목숨을 건 게임을 지속해온 이유 중 하나였다.
벌써부터 뜨거움에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면 유진이라는 상대는 걸작이라 할 수 있는 반응을 보여줄 것이 분명했다.
제법 빠른 속도로 고통이 사그라들자 유진은 겨우내 몸을 일으킨다. 유진은 한 번 자신의 몸상태를 살폈다.
'뭐야, 이게...'
하지만 길바닥의 흙을 뒤집어쓴 유진의 옷자락에는 아무리 봐도 그을린 흔적이라곤 없었다.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유진은 혹시나하는 생각에 소매를 걷어본다. 멀쩡하다. 당장이라도 타죽을 것 같았는데 몸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안심하기엔 이르다. 한 번 더 저 몬스터의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이 미칠 듯한 고통을 또 느껴야한다는 소리니까. 유진은 생각했다. 이 미친 짓을 당장 집어쳐야 한다.
"이런 게 재밌어……?"
화가 치밀에 째려보며 하는 물음에 모리스는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대답한다.
"몰라서 물어? 당연하지. 어떻게 찾아낸 놀이인데, 재미가 없으면 뭔 의미가 있냐."
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마주치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생각은 들어. 내 재미를 위해 누가 피해를 입으면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까…… 그치만 난 예외인가 보더라. 아무리 재미를 봐도 그런 게 딱히 느껴지지가 않아. 질리는 거라면 몰라도."
모리스로서는 작별 선물 대신으로 늘어놓는 일종의 심경 고백이었다. 들은 이들의 표정은 찡그리거나 정색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감방 같은 데 있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고 있단 말인가. 어쩌다 재수없게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인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유진도 예외는 아니리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내가 봐도 글렀지. 뜨겁다고 바닥을 굴러대는 꼬라지를 볼 때마다 웃음을 못 참겠다니까. 고쳐질 만한 여지가 안 보인다고. 그럼 어쩌겠어, 그냥 즐겨야지.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좀 도와주라."
"미친 새끼..."
"아직 몸이 멀쩡할 때 실컷 욕해둬. 나 욕먹는 것도 좋거든."
역시 이길 수 밖에 없다, 고 유진은 생각한다.
유진은 목숨도 목숨이지만, 이런 정신나간 작자한테 져서 한낱 유희거리로 소모되는 것은 절대 사양이었다. 어째서 이런 때에 전력이 될 카드를 챙기지 않았을까.
아니, 있었다. 지금의 덱에는 여전히 자신이 주력으로 구비해놓던 카드가 있었다. 자타공인 로망으로 취급받던 전력이.
패한다는 불안을 계속해서 안겨주던 원인은 그런 것이었다. 만약에 안 맞는 카드만 계속해서 나오는 바람에 원하는 카드들의 얼굴 하나 못 보고 끝난다면 어쩔 것인가.
"메인 페이즈 2, 애로우 헤드를 확인, 소환 조건은 화염 속성을 포함한 몬스터 2장!"
사내의 필드에 사각 형태의 커다란 문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유진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링크 소환...'
사내는 배틀 종료 후 링크 몬스터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엑스트라 덱 전개에 또다시 패러다임을 불러일으킨 소환법으로 꺼낼 수 있기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부터 공식 대회에 나돌기 시작한 카드들. 당연히 저쪽이라고 해서 사용하지 않을 것도 없었다.
"나는 '플레임벨 헬도그'와 '라바르의 마그마 포병'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소환, '작열의 화령사 히타'!"
사각 문양 속으로 사내의 필드에 있던 몬스터 2마리가 빨려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불타는 지팡이를 진 채 불꽃처럼 붉은 머리를 휘날리는 소녀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문양 속에서 튀어나왔다.
[작열의 화령사 히타 : 마법사족 / 화염 속성 / LINK-2 / ATK 1850 / 링크 마커 ↙↘]
자신만만하게 착지하는 소녀의 얼굴 옆으로 털이 온몸에 솟아난 작은 동물같은 생물이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한 장 드로우."
여전히 빠짐없이 패를 챙기는 모습에 엔도는 더더욱 기분이 거슬리고 있었다. 다음 턴이 찾아오거든 확실히 밟아줄 수 밖에.
"이 정도로 하고, 네 턴이야."
"……내 턴, 드로우!"
유진은 드로우한 카드를 확인한다. '신의 경고'. 2000 LP를 지불해 특수 소환을 견제하는 효과. 바로 전 턴에 있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카드였다.
'되는 게 없어, 망할.'
패가 7장이나 있는데도 당장 상황을 뒤집을 만한 카드가 없었다. 준결승 때와 똑같다. 원하는 카드가 제 때 나와주지를 않으니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뽑힐 수 있도록 시도하지 않은 자신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그런 패배를 여기서도 반복하게 될 판국이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 듀얼에서 졌다간 다음이란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긴장감, 급박함은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역시 실험으로라도 이런 덱을 짜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카드들을 덱에 넣을 생각을 했던 것 자체가 실수였던 걸까.
"카드를 세트, 그리고 몬스터 한 장을 세트. 턴 엔드."
"또 그러기냐. 기껏 뽑은 카드가 아깝잖아."
비아냥거리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유진 스스로가 이 상황을 답답하게 느끼고 있었으니까.
"내 턴, 드로우."
뽑은 것은 묘지의 화염 속성 몬스터를 원하는대로 제외시켜서 토큰을 불러주는 '홍련의 화염벽'. 전투로는 써먹을 수 없지만 이걸 이용해서 자기 필드의 모든 몬스터를 소재로 삼아 엑스트라 덱의 새로운 전력 몬스터를 뽑아낼 수 있다.
더욱더 쐐기를 박기 위해 전개에 박차를 가한다. 저 벽 몬스터가 얼마나 버텨줄지는 몰라도 그 앞에서는 무력해질 것이 자명했다. 거의 확실히 이번 턴만에 상대를 골로 보낼 수가 있었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사내는 아무 망설임 없이 뽑은 카드를 슬롯에 부착시킨다.
"마법 카드, '홍련의 화염벽'을 발동. 묘지의 라바르 몬스터를 제외하고 그 수만큼..."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오히려 유진에게 기회가 되어 찾아온다.
"카운터 함정, '신의 경고'! 특수 소환하는 효과를 가진 카드의 효과 발동을 무효로 한다."
[서문 유진: LP 3200 → 1200]
"거기다 상대가 발동한 카드 효과를 무효로 했을 경우에, 패에서 'A·제넥스 리바이버'를 특수 소환!"
[A·제넥스 리바이버 : 기계족 / 어둠 / 레벨 4 / ATK 2200 / DEF 1000]
"수비 표시..."
당장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패배 뒤에 찾아올 고통을 체감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쳇.'
그 질긴 모습에 모리스는 절로 혀를 차게 되었다. 병력을 증원할 기회가 물거품이 되버렸으니 다음 기회로 밀려나버린 셈이다. 다음 턴만 찾아온다면야 불러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럴 여유를 부릴 필요는 없을 듯 했다.
"왜 이렇게 포기를 모른다냐. 뭐, 그것도 괴롭히는 맛이 있긴 하지만. 그럼, 패에서 '네오플레임벨 레이디'를 소환."
[네오플레임벨 레이디 : 화염족 / 화염 / 레벨 4 / ATK 1600 / DEF 200]
"'네오플레임벨 레이디'로 '리바이버'를 공격!"
타오르는 불로 이루어진 듯한 여성 형태의 몬스터가 온몸을 휘날리며 화염의 아지랑이를 발산한다. 그 아지랑이가 휘몰아치며 유진의 'A·제넥스 리바이버'에 덮쳐들어오자 무력하게도 터져나간다.
공격 표시로 꺼냈더라면 더 낮은 공격력의 몬스터에게 깨지는 일은 없었겠지만, 그랬다가는 바로 다음에 돌아올 '플레임벨 게헤나'의 공격으로 인한 전투 데미지를 감수해야 했다. 결국 이 턴에는 이것이 최선이었다.
"'플레임벨 게헤나'로 세트한 몬스터를 공격!"
공격 대상으로 지목되자 세트해 두었던 유진의 몬스터가 실체화된다.
[제넥스 서처 : 기계족 / 땅 / 레벨 4 / ATK 1600 / DEF 400]
고철을 뭉쳐놓은 듯한 조잡한 기계 인형 모습을 한 몬스터가 맹렬한 불주먹에 직격당해 부서져나간다.
"'제넥스 서처'의 효과 발동. 전투로 파괴되면 덱에서 공격력 1500 이하의 '제넥스' 몬스터 하나를 공격 표시로 특수 소환한다. 소환할 카드는 'A·제넥스 체인저'!"
[A·제넥스 체인저 : 기계족 / 어둠 / 레벨 3 / ATK 1200 / DEF 1800]
'제넥스 체인저'가 파괴된 자리로 새로운 기계 형태의 몬스터가 출현한다. 고철덩어리 같았던 바로 전 몬스터와는 달리 'A·제넥스' 테마 특유의 매끈하고 오밀조밀한 형태를 띄고 있었다.
"히타'로 '체인저'를 공격!"
'히타'라는 이름의 소녀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지팡이 끝에 거센 불덩이가 뿜어져나와 '체인저'를 덮친다. 맹렬한 증기를 내뿜으며 수구린 자세로 자리잡던 '체인저'의 몸체가 산화되어간다.
"흥, 카드 1장을 세트. 한 턴 버셨네. 턴 엔드다."
모리스는 아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저 정도 수비력이면 '히타'나 '레이디'로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었던데다, 공격 표시로 튀어나온 'A·제넥스 체인저'를 '게헤나'로 공격했더라면 그대로 게임 셋이 될 수 있었다.
뒷면 수비 표시의 몬스터를 잠깐이나마 경계한 것이 턴을 넘겨주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다음 턴이다. 다음 턴에 끝장을 내면 그만이다.
'어떻게든 버텼어. 그치만...'
오늘만큼 초조함을 느낀 순간이 있었던가. 이번 턴으로 결판을 내지 못하면 정말로 패배가 코앞인 상황이었다. 듀얼마다 빈번히 다음에 뽑을 카드를 기다려왔던 유진이었지만, 그것이 목숨을 위해 매달리는 순간이었던 적은 없었다.
필사라는 의미가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메마른 사막에서 물을 찾는 심정으로, 유진은 드로우를 위해 덱 맨위의 카드를 넘겼다.
"내 턴, 드로우."
패에 있는 카드를 본 유진의 동공이 확장된다. 바로 기회가 온 것은 아니지만, 또 하나의 기회를 열어줄 카드. 대체 며칠 동안 몇 번이나 이 카드에 사활을 걸었던가.
"마법 카드, '탐욕의 항아리'! 묘지의 몬스터 5장을 덱으로 되돌리고 2장을 드로우!"
덱에서 카드를 2장을 뽑아올려 카드를 확인한다. 이 패 6장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까, 하고 유진은 스스로 의문을 품다가 떨쳐낸다.
'이대로 지면 끝장이다. 해보자!'
"마법 카드, '정신 조작' 발동. 이걸로 적 몬스터 한 마리를 내 필드로 끌고 온다. 난..."
"'플레임벨 게헤나'의 효과. 수비력 200의 몬스터를 대상으로 하는 카드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상대한테 1000 데미지를 준다. ...계속 할 거냐?"
친절하게도 효과를 설명해주며 유진을 비웃는 엔도. 그리고 그 비웃음을 받아치듯 유진은 화색을 띄며 대상을 선언한다.
"'작열의 화령사-히타'를 선택!"
링크 몬스터에겐 수비력 개념이 없으니, 애초에 '게헤나'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상 지정 선언과 함께 '히타'의 몸체가 강제로 이끌려지듯 유진의 메인 몬스터 존으로 옮겨진다.
'내 카드였으면 그대로 저 놈 묘지에서 소재를 추가로 끌어오는 건데, 할 수 없지.'
히타에게는 하단 좌우 링크 앞으로 상대 묘지의 화염 속성 몬스터를 되살려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메인 몬스터 존에 있는 상황에서는 링크 앞이 되는 몬스터 존이 있을리 없으므로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지금 이대로도 충분했다.
"계속해서 패의 '고블린드버그'를 소환."
[고블린드버그: 전사족 / 땅 / 레벨 4 / ATK 1400 / DEF 0]
프롭기를 타고있는 고블린 형태의 몬스터가 유진의 필드로 나타난다.
"'고블린드버그'의 효과. 소환에 성공했을 때, 레벨 4 이하의 몬스터를 패에서 특수 소환한다. 'A·제넥스 리액터'를 특수 소환!"
'고블린드버그'가 몰고있는 비행기가 하부에 매달린 컨테이너를 끌고 바닥에 안착시키자, 컨테이너 내부에서 새로운 몬스터가 출현한다. 역시 여느 'A·제넥스'가 그렇듯 등 뒤에 무거워보이는 통을 매달고 있는 심플한 휴머노이드 로봇 형태의 몬스터였다.
[A·제넥스 리액터: 기계족 / 어둠 / 레벨 4 / ATK 500 / DEF 1800]
"그리고 '고블린드버그'를 수비 표시를 변경. 'A·제넥스 리액터'의 효과. 내 필드의 몬스터의 속성 하나당 300씩 상대에게 데미지를 준다. 현재 속성은 총 3종류, 따라서 900 데미지!"
[엔도 모리스 LP 8000→7100]
'발버둥치긴...'
모리스는 그 데미지에도 아직 코웃음치는 반응을 보인다. 그 낮짝을 더 납작하게 밀어붙이고자 유진은 계속해서 카드의 효과를 발동시킨다.
"이어서, 패에 있는 'A·제넥스 케미스트리'의 효과. 이 카드를 패에서 버리고, 필드에 있는 몬스터 하나의 속성을 바꾼다. 난 '리액터'의 속성을 화염 속성으로 변경."
효과가 적용된 '리액터'의 검은 몸체가 붉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마법 카드, '죽은 자의 소생'. 묘지에서 'A·제넥스 체인저'를 특수 소환."
[A·제넥스 체인저: 기계족 / 어둠 / 레벨 3 / ATK 1200 / DEF 1800]
"'체인저'의 효과. 이 카드의 속성을 변경할 수 있어. '화염 속성'으로 변경."
엔도는 어느샌가 유진의 필드에 자신의 것을 뺏은 것까지 합쳐 세 마리, 그것도 화염 속성 몬스터가 있는 것을 보고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설마...?"
"그래, 그 설마야. 나도 화염 속성으로 갈 거야."
유진의 대답에 모리스는 살짝 당황한다. 미묘하지만 바로 이전 턴에 비해 갑자기 자신을 되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뭘 믿고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가.
그리고 그제서야 자각한다. 유진은 이미 역전의 수를 마련하기 위한 패를 충분히 챙긴 모양이었다. 그 자각이 모리스를 서서히 불안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애로우 헤드 확인, 소환 조건은 화염 속성 몬스터 두 마리! 나는 'A·제넥스 리액터'와 'A·제넥스 체인저'를 링크 마커에 세트!"
방금 전에 크리메이터의 필드에 나타난 문양이 이번에는 유진의 필드에 나타나자, 마찬가지로 유진이 컨트롤하는 몬스터 2마리의 형태가 붉은 빛줄기가 되어 문양 끝 화살표 부분에 흡수된다.
"링크 소환! 나타나라, 'ET레인저 파이로레드'!"
[ET레인저 파이로레드: 사이킥족 / 화염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TV에서 방영되는 특촬물을 연상시키는, 미래 지향적인 새빨간 슈츠 차림의 인간형 몬스터가 유진의 필드로 나타난다.
"뭐야, 그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카드가 나타나자 아까부터 찾아오기 시작한 모리스의 불안은, 그대로 표정으로 감출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공격력 자체는 '게헤나'에 맞설 수 없었지만, 처음보는 카드라 무슨 효과인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카드 확인 기능을 통해 효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유진은 '파이로레드'의 효과를 선언하기 시작했다.
"'파이로레드'의 효과! 덱에서 화염 속성 이외의 레벨 4 이하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난 '제넥스 블래스트'를 특수 소환!'"
[제넥스 블래스트: 마법사족 / 바람 / 레벨 4 / ATK 1600 / DEF 1300]
몸체 한가운데에 프로펠러가 달린 기계형 몬스터가 출현한다. 마법사족이라 기재된 종족과는 달리, 누가 봐도 기계라고밖에 할 수 없는 외형이 특징이었다.
"'제넥스 블래스트'의 효과. 특수 소환에 성공시 덱에서 어둠 속성 '제넥스' 몬스터를 서치한다. 난 '레알 제넥스 오라클'을 선택. '레알 제넥스 오라클'의 효과로, 패에 서치되었을 경우에 자신을 특수 소환!"
[레알 제넥스 오라클: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1 / ATK 300 / DEF 300]
무거운 모터를 지고있는 형태의 기계형 몬스터가 연이어 나타난다. 역시 기계적인 외형과는 달리 마법사족이라는 종족으로 지정된 몬스터였다.
"'오라클'과 '블래스트'를 링크 마커를 링크 마커에 세트, '크리스트론-하리파이버'를 링크 소환!"
[크리스트론-하리파이버: 기계족 / 물 / LINK-2 / ATK 1500 / 링크 마커 ↙↘]
"'하리파이버'의 효과. 링크 소환에 성공했을 경우에 패나 덱에서 레벨 3 이하의 튜너 몬스터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한다. 덱에서 'A·제넥스 버드맨'을 특수 소환!"
[A·제넥스 버드맨: 기계족 / 어둠 / 레벨 3 / ATK 1400 / DEF 400]
새를 본 딴듯한 기묘한 마스코트처럼 생긴 기계형 몬스터가 이어서 튀어나온다.
"'크리스트론-하리파이버', '작열의 화령사-히타'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4, '양륙군함 암브로엘'을 링크 소환."
[양륙군함 암브로엘: 기계족 / 화염 / LINK-4 / ATK 2600 / 링크 마커 ←→↓↘]
고래를 본뜻한 육중하고 거대한 군함 형태의 몬스터가 유진의 필드로 군림한다. 이렇게 봇물 터지듯 이어지기 시작한 전개에 모리스는 불길함을 느껴야 했다.
"와, 나 진짜..."
"'암브로엘'의 효과로 서로의 묘지에 있는 링크 3 이하의 링크 몬스터 한 마리당 공격력 200 상승, 묘지에 있는 링크 몬스터는 2마리니까 플러스 400!"
[양륙군함 암브로엘: ATK 2600→3000]
"레벨 4의 '고블린드버그'에 레벨 3의 'A·제넥스 버드맨'을 튜닝, 레벨 7의 'A·제넥스 트라이포스'를 '암브로엘'의 링크 마커 앞에 싱크로 소환!"
[A·제넥스 트라이포스: 기계족 / 어둠 / 레벨 7 / ATK 2500 / DEF 2100]
"계속해서, '파이로레드'의 두 번째 효과. 링크 앞에 있는 몬스터 1마리의 공격력만큼 이 카드의 공격력을 올린다. '암브로엘'의 공격력 3000만큼 상승!"
[ET레인저 파이로레드: ATK 1800→4800]
"이런..."
모리스의 표정이 더더욱 구겨지기 시작한다. 한 두대 맞는 정도로 기분을 잡치는 것은 아니었다. 때리고 맞는 것 자체를 즐겨왔던 그였다.
하지만 이건 틀림없이 자신한테 뒤가 찾아오지 않을 역전이었다. 이 게임의 단점을, 자신이 무료할 정도로 이기는 것만 반복하는 것이 차라리 즐거웠던 것임을 그는 똑똑히 깨닫는다.
남이 자신의 즐거움을 빼앗아가는 건 딱 질색이었으니까.
반면 유진은 마음 속에 무언가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것을 그나마 표현할 수 있다면, 성취감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는 말인가.
살짝 당황하면서도 유진은 지금 손에 넣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배틀, '양륙군함 암브로엘'로 '플레임벨 게헤나'를 공격!"
[양륙군함 암브로엘: ATK 3000]
[플레임벨 게헤나: ATK 3000]
거대한 기체의 포신 하나하나가 일제히 '게헤나'를 향해 방향을 돌린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거센 포격을 발사한다. 그 포격을 하나하나 맞아가며 '게헤나'는 '암브로엘'에게 돌진하고, 서로 맞부딪히는 순간 격렬한 폭발이 일어난다.
연기와 함께 이글거리는 화염이 사라지자, 격돌하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양쪽의 몬스터가 파괴되어 있었다. 이 순간이 끝나기 무섭게 유진은 효과 발동을 선언한다.
"'암브로엘'의 효과, 파괴되면 자신 또는 상대의 묘지에서 링크 3 이하의 링크 몬스터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네 묘지에서 '작열의 화령사 히타'를 특수 소환!"
[작열의 화령사 히타 : 마법사족 / 화염 속성 / LINK-2 / ATK 1850 / ↙↘]
이미 한 번 유진의 필드로 갔던 '히타'가 또다시 기습적으로 유진의 필드로 나타난다.
"'트라이포스'로 '네오플레임벨 레이디'를 공격!"
'트라이포스'가 오른팔에 달린 삼각 형태의 암 캐논에서 빔 형태의 포격을 발사하자, '네오플레임벨 레이디'는 속수무책으로 그저 웅크린 채 포격을 맞고나서 산화한다.
[엔도 모리스: LP 7100→6200]
"'히타'로 다이렉트 어택!'"
'히타'는 이전에 유진의 몬스터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원래 주인을 무정히 공격했다.
[엔도 모리스: LP 6200→4350]
모리스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으며 패닉에 빠진다. 온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자신이 이런 고통을 느끼자고 게임을 한 것이 아니었을 텐데.
"끝이다! '파이로레드'로 다이렉트 어택!"
'파이로레드'가 이전의 '게헤나'처럼 주먹에 화염을 두른다. 그 후, 그 상태로 맹렬하게 모리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안 돼!"
모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좌절의 말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그 불주먹은 인정사정없이 모리스 쪽으로 날아들어 그를 덮쳤다.
[엔도 모리스: LP 4350→0]
달려드는 주먹에 명치를 맞은 모리스는 충격에 날아가 바닥을 구른다. 패에 들고 있던 카드들도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겨우, 이겼다...'
그 모습을 본 유진은 기운이 갑작스럽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주저앉는다.
정말인지 보장할 수 없지만 이 무시무시한 순간을 자신의 승리로 끝냈다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반면, 일어서다 주저앉는 엔도의 머릿속은 어지럽혀지기 시작한다. 생각을 그만두려 해도, 애써 무시해왔던 불안감이 그 자리에서 최대치로 증폭하고 있었다. 불안이 실체화하듯, 발밑이 뜨거워져오는 느낌에 그는 발 밑을 바라본다.
"……"
불이 붙었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붉은 화염이, 자신의 몸을 땔감으로 삼아 불길이 더욱 거세게 번지더니 발밑에서부터 올라와서 자신을 태워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고통이 화상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것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별다른 격통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환상은 아니라고 주장하듯, 열기는 이상하게도 피부를 통해 전해져온다.
살이 익어가는 것을 넘어 아예 재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가는데, 이 감각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이상하다. 이상한 나머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타오르는 격통이라도 있었더라면 비명을 질렀을 텐데, 여지껏 자신이 태워서 없애버린 상대들은 뭐가 아프다고 그렇게 비명을 질렀다는 말인가. 어쩌면 모르는 사이에 한 순간 그의 통각이 마비라도 된 것인지 몰랐다.
가실 길 없는 불안과 우스꽝스러운 감상이 부조화를 일으키며 모리스는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히… 히힉…"
웃음을 터뜨려야 할지 비명을 질러야 할지 머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혼란에도 아랑곳 않고, 불길은 발 뿐만이 아니라 손끝에서부터도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유진 또한 그 상황에 경악한다.
"진짜로 불타는 거야...?"
유진이 다가갈지 말지 망설이고 있는 사이, 다리가 없어진 모리스는 털썩 엎어지며 소리친다.
"뭐야 이게! 재미라곤 쥐뿔도 없잖아!"
모리스는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는지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이런게 어디 있냐고! 재미있을 거라 그랬잖아!"
재미있다고 권했을 누군가를 강렬히 원망하고 있었다. 물론 유진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 길은 없었다.
◈
한 편, 저만치에서 구경 중이던 그림자가 있었다. 이윽고 듀얼이 끝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마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이 거짓말인 듯이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그것은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장에서 떨어진 어느 밀폐된 공간 내부에서, 그 광경을 감상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일반적인 감상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광경이었다.
모자와 로브를 두른 그 자는 모니터나 스피커를 접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눈을 감은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 듯 되뇌이고 있었다.
"재미를 원하면 필사적으로 준비하고 싸웠어야지. 진 건 순전히 네 탓이라고."
이미 재가 되어 사라져가는 상대에게 대답하듯이 그는 중얼거린다. 그 싸늘한 말을 하고나서 다시 부드러워진 태도로 아무도 들을 일이 없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열심히 할 일을 해줘서 다행이야. 괜히 걱정했나봐. 역시 널 믿길 잘했어."
그것은 그 광경을 확인하며 만족한 듯 미소짓는다. 잠깐이나마 확인할 수 있기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유진이 승리의 길을 찾아내는 순간, 그리고 승리를 얻는 순간 희미하게나마 드러났던 미소를.
그 미소가 숨지 않고 완전히 드러나는 순간이 그가 원하던 것이었기에.
"그래, 시작은 나쁘지 않아. 그럼 나도 계속해서 힘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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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과는 달리 한 챕터만에 완료입니다. 듀얼 전개는 여기서 두 챕터 정도 지나면 나오리라 예상됩니다.
(※2021. 5. 22 삽화 수정)
(IP보기클릭)1.243.***.***
여기서 라이트노벨같은 소설 삽화가 있군요.
(IP보기클릭)211.250.***.***
잘 읽었습니다 이 작품 말고도 '지는 놈이 죽는다'는 팬픽을 여럿 봤는데, 이것도 유진좌가 어둠의 게임에 무뎌져가는 전개가 되려나 레인저는 아직도 어떤 카드군이 될지 잘 모르겠지만 둘 다 DT 출신 덱을 쓰는군요
(IP보기클릭)1.243.***.***
여기서 라이트노벨같은 소설 삽화가 있군요.
(IP보기클릭)58.143.***.***
그런 느낌으로 시도해봤심다 | 20.12.27 21:09 | |
(IP보기클릭)211.250.***.***
잘 읽었습니다 이 작품 말고도 '지는 놈이 죽는다'는 팬픽을 여럿 봤는데, 이것도 유진좌가 어둠의 게임에 무뎌져가는 전개가 되려나 레인저는 아직도 어떤 카드군이 될지 잘 모르겠지만 둘 다 DT 출신 덱을 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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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DT냐 성잔이냐 그런 건 여기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특히 주인공 쪽은 스트럭처즈처럼 중반까지 수시로 덱을 갈아치우는지라 더 다양한 카드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 20.12.28 00:4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