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은 조선사회에 유래없는 자유주의자 였습니다
박지원의 인생 이야기는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고
우리의 모습을 다시함 돌아보게 하고
철학이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정약용이 너무 영웅시 되는 바람에
박지원의 존재는 열하일기 하나로만 대표되고 있습니다
박지원은 10대 시절 과거에 낙방한 이후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후 죽기전에 하고 싶은거 다하고 죽자라는 맘으로 무작정 시장에 나가는데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은 박지원에게 세로운 세계로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박지원은 신분을 무시한채 인간성이 좋거나 자신과 뜻이맞다
싶으면 무작정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다룬 책을 썼고
얼마안가 양반 임에도 양반의 나쁘고 음탕한 모습을 폭로하는 책을 써서
그야말로 민중의 새로운 영웅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후 개성있는 인재를 좋아하는 정조대왕의 눈에 들어
노론의 관리로 등용되는데
당시 왕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진 노론의 세력에 들어서서
하루만에 엄청난 백을 가지게 됐지만 박지원은 얼마안가 바로
관직을 버리고 연암에 정착하게 됩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관직 생활 마저 연암에겐 그야말로 엄청난 족쇄로 느껴질 만큼
그는 자유 주의자 였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팬클럽 뻘 되는 여러 신분의 사람들은 연암이 사는곳 주변에
머물며 학문을 교류하고 갠 사업으로 번 돈을 서로 나누어 쓰며
생활 하는데
그 덕에 연암은 백수생활 함서 하고싶은 학문은 다 하고 살았습니다
40세가 되던 시절 정조대왕의 어명으로 청나라 유람을 하며
열하일기를 남기는데
그것에 머물지 않고 북벌보다 북학이 중요하다 라는 주장을 내세움니다
북학 - 청나라의 발전된 문명과 학문을 받아들이고 공부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은 엄청난 모범생 스타일 이었고
박지원과 너무도 반대되는 스타일 이었습니다
정조 대왕은 정약용 에게 몇차례 박지원을 만나보라 추천 하지만
정약용은 박지원의 지나치게 자유 분방한 학문을 여러차례 비난하고
한번도 박지원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드라마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의 덜렁대고 자유분방한 성격은
정약용 보다 박지원의 성격에 더 가깝다고 할수 있습니다
박지원은 말년에 간단한 움직임 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노화되자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모우고 자신의 옆방에서 잔치를 하게 한 다음
친구들의 토론을 들으며 인생의 마지막 시간까지 학문에 몰두 했습니다
자신이 생을 마감할때 그냥 내 몸을 깨끗이 씻어주길 바란다
이 한마디만 남기고 박지원은 생을 마치는데
그야말로 인생 마지막 까지 자유와 학문을 즐긴 인물 이었습니다
박지원의 인생은 오로지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죽자사자 공부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한번쯤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박지원의 인생 이야기는 정말 유쾌하고 재미있고
우리의 모습을 다시함 돌아보게 하고
철학이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정약용이 너무 영웅시 되는 바람에
박지원의 존재는 열하일기 하나로만 대표되고 있습니다
박지원은 10대 시절 과거에 낙방한 이후 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후 죽기전에 하고 싶은거 다하고 죽자라는 맘으로 무작정 시장에 나가는데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은 박지원에게 세로운 세계로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박지원은 신분을 무시한채 인간성이 좋거나 자신과 뜻이맞다
싶으면 무작정 친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다룬 책을 썼고
얼마안가 양반 임에도 양반의 나쁘고 음탕한 모습을 폭로하는 책을 써서
그야말로 민중의 새로운 영웅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후 개성있는 인재를 좋아하는 정조대왕의 눈에 들어
노론의 관리로 등용되는데
당시 왕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진 노론의 세력에 들어서서
하루만에 엄청난 백을 가지게 됐지만 박지원은 얼마안가 바로
관직을 버리고 연암에 정착하게 됩니다
남들이 부러워 하는 관직 생활 마저 연암에겐 그야말로 엄청난 족쇄로 느껴질 만큼
그는 자유 주의자 였습니다
연암 박지원의 팬클럽 뻘 되는 여러 신분의 사람들은 연암이 사는곳 주변에
머물며 학문을 교류하고 갠 사업으로 번 돈을 서로 나누어 쓰며
생활 하는데
그 덕에 연암은 백수생활 함서 하고싶은 학문은 다 하고 살았습니다
40세가 되던 시절 정조대왕의 어명으로 청나라 유람을 하며
열하일기를 남기는데
그것에 머물지 않고 북벌보다 북학이 중요하다 라는 주장을 내세움니다
북학 - 청나라의 발전된 문명과 학문을 받아들이고 공부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은 엄청난 모범생 스타일 이었고
박지원과 너무도 반대되는 스타일 이었습니다
정조 대왕은 정약용 에게 몇차례 박지원을 만나보라 추천 하지만
정약용은 박지원의 지나치게 자유 분방한 학문을 여러차례 비난하고
한번도 박지원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드라마 조선추리활극 정약용의 덜렁대고 자유분방한 성격은
정약용 보다 박지원의 성격에 더 가깝다고 할수 있습니다
박지원은 말년에 간단한 움직임 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노화되자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모우고 자신의 옆방에서 잔치를 하게 한 다음
친구들의 토론을 들으며 인생의 마지막 시간까지 학문에 몰두 했습니다
자신이 생을 마감할때 그냥 내 몸을 깨끗이 씻어주길 바란다
이 한마디만 남기고 박지원은 생을 마치는데
그야말로 인생 마지막 까지 자유와 학문을 즐긴 인물 이었습니다
박지원의 인생은 오로지 취업을 위해 승진을 위해 죽자사자 공부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공부란 무엇인가
한번쯤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