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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
"더워서 말라버릴 것 같네~."
"살려줘."
"으헤~. 아저씨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선생?"
아비도스의 여름은 뜨겁다.
이곳만 다른 태양이 떠 있는 듯, 끝없이 내리쬐는 햇살은 그 열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밖은 그 햇빛을 피할 길이 없고, 풍경은 구부러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듯하다.
설령 그늘이 드리운 건물 안에 있다 해도, 에어컨이 최대로 틀어져 있다 해도, 그 열기는 우리가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학생회실에 비치된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아이스크림은 없다.
"아비도스의 여름은 쉽지 않네."
결국 생수 한 병을 꺼내 호시노 옆자리로 가 앉는다.
"이야~.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해. 입학희망자가 별로 없는 것도 납득이 갈 정도니까."
"그 부분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당면한 과제 아닌지요, 학생회장 씨?"
"너무 각박한 소리는 하지 말자고, 선생. 이런 때일수록 느긋하게 가는 게 중요하니까~."
책상 위에 퍼져서 골골대는 호시노의 말을 들으며 생수를 한 모금 들이킨다.
푸하, 이제야 좀 살겠네.
"그나저나 오늘은 머리 묶었네."
"응? 아아-. 더우니까 말이야. 묶지 않으면 아저씨 진짜로 녹아버릴지도 모른다고."
일전에 한창 난리피울 때와 같은 포니테일.
평소와 달리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목선과 그 위를 타고 흐르는 올망졸망한 땀방울.
아담한 귓볼 끝에도 송송이 나 있는 작은 땀방울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 끝에 걸쳤다.
귀끝에서 이어지는 뽀얀 볼살은 주욱 잡아당기고 싶어질 만큼 탱글탱글해 보인다.
"요새는 얼굴이 좀 폈네."
"우웅, 선생이 보기에도 그래 보여? 확실히 요즘은 아저씨가 아저씨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었어."
책상과 하나가 되기로 마음먹은 듯 더욱 더 책상과 밀착하는 호시노의 모습에 입가에 웃음이 올라온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저씨네."
"으헤. 선생. 그 말, 고백으로 받아들여도 될까?"
능청스럽게 말을 받아내어 농으로 화한다.
정말로 아저씨스러운 대화법이다.
"응."
"엣?"
하지만 난 여고생이 좋다.
청순하고 상큼한 반응을 뱉어내는 여고생이 훨씬 좋다.
호시노는 엎어졌던 상체를 일으키더니 주춤거리며 이쪽을 바라봤다.
"서, 선생도 참. 농담이..."
"농담으로 들려?"
"그, 그게..."
"농담이야."
순간 엄습하는 살기에 자리를 박차고 달아날 뻔했지만 다행히 이는 1초도 안 되어 거두어졌다.
"선생. 아저씨도 화낼 땐 화낸다고?"
"근데 이게 그 정도로 화낼 일인가."
"대답."
"죄송합니다."
실시간으로 교권이 추락하는 현장이었다.
호시노는 짧게 한숨을 뱉었다.
"정말이지. 선생은 좀 더 언행에 주의할 필요가 있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누가 보면 안전불감증인 줄 알겠다니까?"
"그래도 내가 위험해지면 호시노가 지켜줄 거잖아?"
호시노는 대답 대신 또 한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까와는 달리 입가에는 웃음기가 조금 보였다.
"선생, 다른 학생들한테도 그런 말 자주 해?"
"물론."
"으헤~, 그러다 천벌 받는다구~?"
"이미 많이 받아서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또 무슨 농담이래~."
진짠데.
신의 총아를 희롱한 죄는 가볍지 않았다고.
"아무튼 선생은 좀 조심하는 게 좋아. 이 아저씨도 항상 선생 곁에 있는 게 아니니까."
호시노는 다시 책상 위로 엎어졌다.
방금 전까지 살기를 내뿜던 맹금은 어디 가고 다시 축 늘어진 아저씨만이 남았다.
"호시노가 곁에 있으면 뭐가 다른데?"
"그야 그건... 그건... 음."
입을 오므린 채 옴싹달싹하며 골똘히 생각을 하는 모양새가 퍽 진지하다.
가볍게 물어봤건만 당사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별안간 고민이 끝났는지 호시노는 명쾌한 눈으로 답을 내놓았다.
"음, 아저씨하고 같이 다니면 말이지. 아저씨가 선생에게 위험한 놈들을 퇴치해 줄 수도 있고~,"
"응."
"아저씨가 싸고 맛있는 음식점에 데려다 줄 수도 있고~,"
"응"
"무엇보다 귀여운 여고생이 곁에 붙어 있으면 선생도 좋잖아~, 그치?"
"응... 응?"
"왜 의문형으로 끝나는 걸까나. 선생?"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아저씨인지 여고생인지 둘 중 하나만 하라고. 헷갈리니까."
"선생은 어느 쪽이 좋은데?"
"당연히 여고생이지. 여고생은 최고거든."
"선생. 밖에선 진짜로 그런 말 안 하는 거 맞지? 위험하다고, 그거."
교육자로서 위험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복받은 일이라고, 다시금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흐음-. 그래. 아저씨보다는 여고생이라는 건가."
무심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는 창밖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호시노.
초점마저 잡히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듯하다.
다시금 분홍빛 머리카락 아래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시선이 꽂힌다.
이번에는 볼을 타고 주욱 내려오다가 턱을 괸 손에 가로막힌다.
햇살은 여전히 교실 내로 들어와 주변 사물의 온도를 유지한다.
밖으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주변 일대의 경관이 구불구불하게 휘어 보인다.
"저기, 있잖아."
호시노가 긴 명상을 마치고 깨어났다.
"이렇게 불러 주면 좋아하려나?"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는가 싶더니,
"오, 오..."
"오?"
"오빠..."
오빠.
오빠.
오빠.
... 오빠.
아.
참으로 좋은 울림이다.
눈앞에는 귀여운 포니테일 여고생이 나를 오빠라고 부르고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주 기가 막힌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난 썩었구나.
이 나이 먹고 학생한테 오빠라고 불리다니, 참으로 기분이 좋다 좋아.
... 그런데 웬 오빠?
"무, 무슨 말이라도 해 봐, 선생~! 아저씨 부끄러우니까~!"
"그게 좋아서 아무말도 안 하고 있다만?"
"이익...!"
"그러게 왜 그랬니. 이 아저씨 같은 나이에 오빠라는 말은 심건강에 좋지 않아서 신체기능이 말도 안 나올 만큼 저하된단 말이다."
"선생 우리랑 나이 차 얼마 안 나는 거 아는데 아저씨 같은 나이는 무슨...!"
"그럼 네가 아저씨라고 자칭하는 건 말이 되고?"
"읏...! 아, 아무튼 어땠는지 감상이나 말해 달라고, 선생!"
호시노의 말투가 어째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뭔 감상?"
"뭐긴 뭐예요! 그야 당연히 오빠라고 불린 감ㅅ... 아."
"존댓말 쓰는 호시노. 이건 귀하네요."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잘 보면 몸도 미세하게 떨린다.
어지간히 부끄러운 짓을 저질러 놓고 또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 그런가.
그때 이후로 분위기가 풀린 건 좋지만 이번 건 아무래도 과부하가 걸린 듯하다.
아 이젠 못 참겠다.
"호시노."
호시노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저항없이 내 품에 안겨 들어온 소녀는 여전히 바닥만 보고 있는 채 잠잠히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단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모두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거지. 나도 그래 왔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최대한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그러니 방금 그거 한번만 더 해 주면 안 되겠니? 귀여운 여고생에게 오빠라고 불리는 게 생각보다 좋더구나."
-퍼억!
"크흡...!"
-쾅-! 털썩.
배를 맞고 그대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더럽게 아프다.
"바보..."
"음...?"
"바보 선생! 저질! 말미잘!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역시 어른은 믿을 게...!"
"껄껄껄."
1학년 때의 호시노는 정말 귀여웠구나.
"그냥 잊으세요! 아니, 그냥 잊어 버려, 선생! 방금 내가 한 말이랑 이것저것 전부 다!"
"타카나시 양. 어른을 그렇게 죽일 기세로 공격하면 못 써요. 아, 방금 거 맞았으면 골로 갔겠는데."
물리력으로 기억을 잃게 하려는지 필사적으로 주먹이 날아온다.
이걸 그대로 맞았다간 기억으론 안 끝날 테니 이쪽도 WWE로 맞대응한다.
"크윽...! 선생! 순순히 기억을 잃으시지...!"
"너 같으면...! 이런 수정펀치를 가만히 맞고만 있겠냐...!"
그렇게 둘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자니.
-드르륵.
"응. 선생님. 호시노 선배. 우리 돌아왔어. 뭘 하는데 이렇게 시끄러운..."
"아."
ㅈ됐다.
대책위원회의 모두가 돌아왔다.
"...! 빈틈 발견!"
"뭣이, 크헉...!"
치사하게 빈틈을 노리고 걸어온 기술에 걸렸다.
아파. 팔 빠질 것 같다고.
"선생님. 지금 선배랑 뭐 하는 중?"
"크아아아악! 시로코! 노노미! 아야네! 세리카!"
"뭔진 모르겠지만... 응. 자업자득."
허?
시로코 쨩?
"호시노 선배의 저런 모습 처음 보네요. 선생님, 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건가요?"
노노미?
"아하하. 이번엔 저희도 도와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어, 그게, 그러니까... 살아 돌아와야 해, 선생님?"
아야네랑 세리카도?
어째서 날 도와주지 않는 거니?
선생님 지금 위험한데?
"응. 응."
시로코가 말없이 뒤쪽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려 호시노 쪽을 바라봤다.
"... ..."
음.
다른 아이들을 향해 따봉을 날린다.
시로코가 맞따봉으로 응수해 준다.
어느덧 해는 뉘엇뉘엇 저물어 가고 일대를 아우르던 아지랑이도 사라져 공기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저녁 시간이 되었다.
-뚜둑.
아무래도.
-우드득.
오늘밤은 세나한테 신세져야겠다.
-콰직.
아, 그러고 보니.
-콰드드득.
그래서 호시노는 왜 거기서 오빠라는 말을 꺼낸 걸까?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