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루이지애나에 살던 던바 부부(퍼시와 레시)는 네 살배기 아들 바비와 함께 인근 호수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부부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들 바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경찰에 즉시 실종 신고를 한 후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졌고, 현 시세로 약 1억 8천만 원에 달하는 6천 달러의 보상금까지 내걸었지만, 8개월이 지나도록 바비의 생사조차 없었다.
그러던 중, 이웃한 미시시피 주의 포플러빌에서 바비로 추정되는 소년이 한 남성과 함께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경찰은 피아노 조율사 윌리엄 월터스를 체포했고, 그는 소년이 자신의 직원인 줄리아 앤더슨의 아들 찰스 앤더슨이며,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함께 여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던바 부부를 불러 소년의 신원을 확인하도록 했다.
'바비'와 부부의 재회에 대한 신문 보도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신문은 '바비'가 레시 던바를 보자마자 "엄마!"라고 외치며 품에 달려드는 감동적인 재회가 있었다고 전했지만, 다른 신문은 레시가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고, 아이도 울기만 했다고 보도했다. 이튿날, 레시 던바는 아이를 씻기던 중 아이에게 바비와 똑같은 위치에 같은 모양의 흉터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부부는 아이를 루이지애나로 데려갔다.
'바비'가 던바 부부의 아들로 길러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줄리아 앤더슨은 즉시 루이지애나로 달려가 항의했다. 그녀는 소년이 자신의 아들 찰스 앤더슨이며, 월터스가 친척을 만난 후 며칠 내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함께 여행을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정은 비슷한 또래의 아이 5명을 줄리아에게 보여주었지만, 그녀도 ‘바비’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 날, 아이의 나체를 확인하고 그제서야 그녀는 확신에 차 찰스를 지목했다. 하지만, 법원은 첫 시도에서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사건을 기각했다.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미혼모인 줄리아는 소송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노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납치 혐의로 징역을 살게 된 월터스가 자신을 그녀를 증인으로 지목하면서 미시시피 주, 포플러빌로 돌아오게 됐다. 지역 주민들은 바비가 실종되기 전에도 찰스가 월터스와 함께 다니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지만, 법원은 이를 무시하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2년 후 월터스는 항소에서 승소해 풀려났다.
줄리아 앤더슨은 노스 캐롤라이나로 돌아가지 않고 포플러빌에 정착했다. 그녀는 결혼해 7명의 자녀를 두었고,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간호사와 조산사로 일하며, 새로 교회를 세우는 데도 기여했습니다. 그녀는 1940년 사망할 때까지 자주 찰스에 대해 이야기하며 던바 부부가 자신의 아들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바비'가 된 찰스 앤더슨도 어느정도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찰스의 이부 남동생인 홀리스 앤더슨은 1944년에 '바비'로 추정되는 남자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떠났다고 말했고, 이부 여동생인 줄스 앤더슨도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1963년, '바비'의 아들 제럴드는 아버지와 함께 여행길에서 돌아오던 중 포플러빌을 경유해가게 된 일이 있는데, 그때 부친이 "저기 보이는 사람들이, 옛날에 날 데리러 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954년, '바비'의 아들 바비 던바 주니어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정말 바비 던바가 맞냐"고 묻자, 그는 "내가 누군지는 나 스스로 알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도 안다. 그게 전부고,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1966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99년, 바비 던바의 손녀 마가렛 던바는 조부가 던바 부부의 친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5년간의 조사 끝에 그녀는 오히려 조부가 진짜 바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결국 2004년, 그녀는 던바 가문의 친척과 자신의 아버지 바비 던바 주니어의 DNA를 대조했고, 둘 사이에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진짜 바비 던바는 실종 당시 악어에게 잡아먹혔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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