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이 언급했던 철회편으로 홀로 4백명의 일본군을 때려잡은 명회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
선조실록 선조 26년 12월 19일 기사에 기술된 바로 유성룡은 선조를 인견한 자리에서 철회편의 우수성을 언급하며 고양 사람 명회의 이야기를 언급하였다.
명회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사람이 있는데 그 아버지가 왜적에게 죽자 발분하여 왜적을 죽인 것이 4백에 이르는데 항상 철회편이 가장 좋았다고 했답니다.( 高陽人名命會者, 其父死於倭, 發憤殺倭幾四百餘, 嘗以此鞭爲好.)
이것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면서 조선판 버서커로 널리 알려졌는데... 사실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
실록에 나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사실이 아닐 뿐더러, 문제는 이 이야기는 다른 관찬, 사찬문헌으로도 교차검증이 안되고 실록에도 단 한 줄만이 남았으며, 나아가 명회라는 이가 조정에 논공을 받은 것도, 직첩을 받은 것도 없다는 것. 게다가 이 말을 한 유성룡도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저작(예컨대 징비록)에서도 명회라는 인물을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4백명이나 되는 적병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죽였다.'는, 구국영웅이자 효행의 상징인 인물이 한 번 언급되고선 다시 언급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 편곤의 위력을 강조하기 위한 유성룡의 과장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키이우의 유령' 처럼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여러 의병의 행적이 한 명에게 응집된 일시적인 군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학자들도 크게 신경 안쓰는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