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제국이 무너질때는 두가지 현상이 나타남. 내부 정체 와 과잉팽창. 사실 국토가 좁은 나라 입장에서 보면 단순 땅이 넓은게 좋은게 아니냐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음.
물론 땅이 지나치게 작은건 안보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심대한 문제를 야기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데나 깃발을 꽂는걸로 국가가 더 부강해질거라는건 엄청난 환상임. 오히려 국가에 해를 끼치는 경우가 더 많음.
그리고 이게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게 유럽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거대 식민지 사업이었으며 특히 통계와 재무 기록이 부실한 전근대와 달리 세세하게 남아 단순 그렇다는 인상을 넘어 어떤 영토가 국가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직접 증거로 남았고.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거임. 이렇게 판단을 내릴 수많은 자료들이 음에도 이런 유럽의 엘리트 지배층들은 대체 왜 과잉팽창이란 오판을 저질렀냐고. 이유는 크게 3가지임: 지정학 리스크, 로비 그룹, 정치적 프로파간다.
1. 지정학에 대한 오판 및 로비

위에서 말했듯 과거인들 특히 현대에 쓰는 기반이나 여러 기법들이 마련되는 근대의 엘리트들즈음 되면 대충 어떤 식민지가 더 손해고 이익이다라는거 정도는 어느정도 알았음. 세세한 디테일까진 몰라도.
그러나, 식민제국들에게 식민지는 단순히 돈 약탈하는 용도가 아니었음. 무슨 말이냐면 단순 상업적 이익을 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걸 넘어 세계 지배에 있어 중요한 전략적 입지를 확보하는것도 존재했고.
수에즈 운하나 희망봉이라던가 싱가포르 같은게 좋은 예시임. 그리고 이런곳들은 실제로 군사적으로도 또한 무역 측면에서도 본국에 이익이 되는곳들임.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됨. 무슨말이냐면 이런 전략적으로 중요한곳 또는 경제적 이익이 나는곳들을 지키기 위해서 주변의 불안정한 지역이나 외적이 쳐들어올만한곳을 먹어야 된다고 생각했음.
이의 좋은 예시가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집트 직접 지배 또는 프랑스의 사하라 사막으로의 확장 그리고 이런 프랑스의 아프리카 횡단을 막기 위한 엉국의 이집트에서 수단 그리고 남아공 내륙 팽창이 대표적.
사하라 사막부터 아프가니스탄 고원에 이집트 내륙 사막 지역까지 사실 딱 듣기만해도 경제적 이익이 날만한곳이 아니란건 감이 올거임. 군사 유지비랑 행정비와 본국의 생산성 있는 젊은 인력만 갉아먹는 지역들임.

그럼에도 이걸 한 이유들은 의외로 간단했음. 지배층이 지도로 보기에는 이게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거나 또는 외부 세력 ( 다른 유럽 열강 ) 이 끼어들 빌미를 줄수 있다고 보았거든.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사실 1980년대 소련조차도 제대로 지속적인 작전을 펼치기 힘들어했고, 그 천하의 미국도 현대에 보급하는데 많은 차질을 겪는 동네임.
그런데 단순 지도로 보기에는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를 잠식하며 내려오고 있고, 아프가니스탄만 건너면 러시아의 거대한 육군이 인도를 휩쓸것만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힌거.

[ 실패로 끝난 미국의 아프간 전쟁 ]
물론 요즘와서야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여겨지지. 방금 말했듯 현대 기술로조차 아프가니스탄에 꾸준한 작전을 펼치거나 외부 세력의 지속적 대규모 병력 전개는 거의 불가능인데.
당시 기계화는 커녕 근대화 수준도 느린 러시아 제국이 우마로 보급 받아가며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하고 인도를 휩쓴다는건 그냥 사실 말도 안되는 환상이란거지.
다른 예시들은 아프리카에 있는데 이집트의 경우 처음엔 은막 뒤의 지배라 할 정도로 지도부에 대한 영향력 및 운하 직접 지배에 그쳤음. 그러다가 프랑스 그리고 나중에 독일의 중동 진출 야욕이 가시화되자 직접지배로 전환.

[ 영국 정규 육군은 그다지 크지 않았음 ]
그런데 이것도 오판이였던것이 당시 19세기 영국 전성기 시절 육군 15-20만중 큰 숫자인 4-5만명을 이집트에 주둔시키는 초강수를 둔다해도 안통함.
왜냐면 근본적으로 육군 자체는 프랑스나 독일보다 못했을뿐더러 이런 식민지 지배가 가능했던건 본국과 식민지를 연결하는 최강 해군과 그 해군을 지탱하는 영국의 공업력이였음. 해군으로 본국과 연결이 안되면 그 몇만명의 군인들은 수백만의 적대적 현지인에 고립되는거라.
다시 말해 직접지배던 간접지배던 어차피 해군력이나 해군력이 기반하는 공업력이 밀리면 나가리 된다는 얘기고 그게 현실화 된게 바로 수에즈 사태임.

[ 19세기 중반까지의 영국령 말레이 ]
그리고 반대로 실제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진출한곳도 있음. 말레이 내륙과 남아공 내륙으로의 확장. 사실 말레이시아는 원래 기획부터가 그냥 무역 거점식 식민지가 이익이라 판단되어 오랜 기간 거점 위주로 운영함.
이게 바뀐 이유는 주요 자원인 주석이 내륙에 대거 매장되어있어서였는데 문제는 이런 자원은 이미 친영 토착 왕국들을 통해서 수급을 받는게 가능했음. 물론 정치적 불안정이니 뭐니 하지만 기록상 남아 있는 큰 이유는 그 주석으로 꿀빨아보려던 본국 상인집단의 요구임.
애초에 제국주의 국가들 자체가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냉철한 지배자라기보다, 여러 이익집단의 잡탕으로 꽤 허술하게 운영되었기에 설령 국가의 이익에 반한다 하더라도 국가의 군대와 세금이 동원되는 경우가 허다했음.

[ 식민지 보어 촌놈들 때려잡는다고 열강인 러시아랑 맞붙은 크림 전쟁보다 더 많이 지출함 ]
그리고 남아공 내륙 확장도 또 다른 좋은 예신데 여러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은 엄청난 이익이었음. 그런데 영국 정부보다 그걸 소유하게 된 자본가들에게.
오히려 영국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그 이후 어지간한 유럽대륙내 주요 전쟁 수준이였던 2억 파운드 전비와 60만에 육박하는 대군을 동원해야 했으며, 10만에 달하는 사상자와 영국의 국제적 리더 지위까지 타격을 입음.
말 그대로 몇몇 상인이랑 자본가 꿀빨아볼려고 국가 전체의 재원과 인력 그리고 심지어 국제적 위상까지 똥통으로 쳐박게 된 것. 그런데 이런 일부 이익집단만 문제였냐? 하면 그렇지 않음.
2. 정치적 프로파간다

[ 대영제국 최전성기인 19세기 중반 판도 ]
저런 이익집단의 요구도 요구지만 사실 더 크고 장기적으로 식민제국들이 적자에 빠지게 된 건 19세기 후반에 보다 강화되기 시작한 식민제국들내 대중들의 팽창 요구임.
즉 나름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던 정책이니까 실행되었다는거임. 설령 그게 실체화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환국 같은게 현실화되어서 지도에 자국 색깔이 칠해진 영역이 넓어지는걸 보는건 뽕차는일이거든.
이거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 식민화임. 사실 대영제국의 국력은 오히려 아프리카에 대한 대규모 팽창을 하기 이전인 1850-1860년대까지가 정점이었고 딱 이시기가 인도 + 캐나다 + 호주 + 희망봉 + 싱가포르 정도로 굴러가던 시점임.

[ 1870 - 1913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이 차지하는 세계 제조업 비중 ]
당연한게 윗문단에서 얘기했듯, 대영제국의 국력은 어디 머나먼 오지 많이 정복해서가 아니라 영국의 압도적인 해군력으로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그 공업력으로 생산력에서 압도했기 때문임.
오히려 대영제국 아프리카 식민지는 절대다수가 적자였음. 거의 90-95% 이상의 아프리카 식민지가 적자를 면치 못하고 보조금을 줘야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로. 영국이 착해서가 아니라 돈을 뽑아낼려해도 그럴 기반 자체가 없어서.
그나마 나이지리아 해안가나 골든코스트 정도는 이익이 괜찮았지만 그이외 나이지리아 내륙이나, 로디지아에 종단정책이랍시고 실행한 대부분의 식민지는 적자에 허덕임.

프랑스 아프리카 식민지는 더 해서 188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프랑스 국고중에서 아프리카 식민지로부터 오는 세입은 기껏해야 1-2% 나 되면 다행이고 오히려 적자인 경우도 많았음. 특히 알제리 전쟁즈음 되면 그냥 빼박이고.
그런데도 한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 대중들이 일단 그런 넓고 아름다운 제국을 원했다는거랑, 다른 식민열강들이 저기 진출하는데 우리가 안하면 열강으로서 격이 떨어질거다라는 경쟁심리였음.

[ 19세기 프랑스 재정은 GDP의 5-10% 수준이였는데 평균 GDP 1.3% 즉 재정의 15-20%를 식민지에 투입함 ]
그리고 이런 행위는 아이러니하게 본국의 재원 및 인력을 비효율적인데 소모하게 하는거였고 종국적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제국주의 몰락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음. 여전히 영향은 끼치고 있다지만.
그러면 식민열강들 입장에서 더 나은 방안이 없지 않았냐 할 수 있지만 사실 꽤 있었음. 설령 미국과 같은 방식은 될 수 없지만서도.
3. 더 나은 선택지?

[ 홍해를 통제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들 ]
물론 지금 미국처럼 동맹을 두고 자유무역을 하라는거 같은거는 그것도 비현실적인 요구였음. 왜냐면 기존 서유럽이 발견하고 정복하고 이미 서구적 질서가 정립되어 있는걸 통째로 흡수한 미국과 다르게 서유럽은 그냥 미지의 문명들에 탐험, 진출, 정복을 하는 입장이었거든.
즉 어느정도의 영토점령 자체는 필연이었고 싱가포르, 수에즈 운하, 희망봉, 포클랜드, 아덴 같은 해상 요충지들은 점령하는게 실제 이득이기도 했고.
문제는 국가에 정말 이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군사비 + 행정비 + 인프라 유지비로 손해가 되는 대부분의 내륙, 정글, 사막, 고원 지역에 대한 무절제한 진출이였음. 다시 말해 천사가 되거나 자선사업하라가 아니라 보다 영리하게 해야했다는것.

[ 1878년 영국 남아프리카 케이프 콜로니 ]
예컨데 영국의 경우 원래 초기 호주처럼 호주 서부 동부 해안가만 해군 및 무역 거점으로 두고 굳이 내륙 아웃백 지역으로 진출을 하지 않고, 인도의 경우 영국은 해안가와 벵골 지역을 직접 통치하되 내륙 지역들은 친영 라자들을 통한 간접지배.
이집트의 경우 수에즈 운하만 영국의 소유로 둔 이후, 그외 지엳은 간접지배하는 동시에 말레이도 기존 원안과 같이 항구지역만 유지하며 남아프리카는 내륙 진출은 하지 않고 기존 케이프 식민지로 유지. 실제로 이거랑 유사한 영역을 지배했던 19세기 중반 영국이 제일 잘 나갔고.

[ 1850년대 프랑스 식민지 ]
프랑스의 경우는 알제리는 오란이나 알제 같은 항구 지역은 장악하되 내륙 특히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선 가지 않아야 했고, 인도양 진출 기지로 마다가스카르 항구 거점으로 그쳐야했음.
그리고 인도차이나의 걍우 코친 차이나 그러니까 현재 호치민 지역 상업작물로 꿀빨던 메콩 강 삼각주 지역 정도만 장악하고 그 외는 영향권 정도로 두는게 이익이었고.
이렇게 하면 영국과 프랑스에겐 세가지 측면에서 국력 증진에 도움이 됨. 첫번째로 일단 쓸데없는데 나가는 돈을 아낌. 누구는 그냥 세계대전 때문에 식민 제국들이 파산했다고 하는데 그건 반만 맞는 얘기임.

실제로 무절제한 과잉팽창 특히 19세기 후반 아프리카와 중동 일대에 이루어지면서 저런 경제적 비효율과 적자가 수십년간 겹겹히 쌓여왔고 이는 자연스레 국가의 부채로 전가되었음.
뿐만 아니라 이는 기술 발전이나 본국 산업 육성에 더 들어갈수 있는 돈을 식민지 행정비 및 군비 지출로 나가게 해 단순 장부상 비용뿐 아닌 장부에는 안나타나는 기회비용까지 상실하는 결과를 낳음. 실제로 이런 식민지 나갈돈 대신 본국에 산업 투자해 공업대국으로 영국 제친게 독일.

그런데 단순 돈 나가는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필수적인 가장 생산성 있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식민지 오지에 갈아버린거에 있음.
물론 압도적인 기술력을 통해 말도 안되는 교전비로 식민지 주민들을 제압한 경우도 많음. 그럼에도 본국에서 군대가 파견되어야 하는건 변함이 없고 사상자는 생기기 마련임.
게다가 단순 적에 의해서 죽는 사상자가 안 생겨도 기후 차이나 풍토병으로 죽거나 쇠약해지는 경우는 수없이 발생했음. 문제는 군대가 단순 부랑배들만 있는게 아니라 공학자부터 심지어 당시 기준 정말 엘리트 도련님까지 섞여 있었단거임.

[ 12만 이상에 달했던 보어전쟁 사상자 수 ]
그리고 그렇게 대단한 신분이 아닌 젊은 남성들도 본국 산업현장에 투입되는게 국력 펌핑하는데는 더 이익이었을거고.
게다가 위에서 말한 기술이나 학문에서 뛰어난 인재들까지 식민지에서 피를 뿌리는 대신 기술 발전에 보다 공헌하거나 했으면 산업혁명 선도 그룹이라는 강점까지 겹쳐 미국이나 소련급으로 본국 체급이 차이나는 경우가 아닌 독일 정도와의 국력 경쟁에선 나름 유리한 고지를 점할수 있었을거임.
마지막으로 교육투자 및 전시동원임. 위에서는 고학력 계층 일부에 국한하듯 말했으나 사실 평균적인 인력마저도 더 생산적으로 활용이 가능했음. 영국 프랑스의 라이벌인 그 독일처럼.

[ 19세기 유럽 문해율 ]
독일은 1인당 소득이 영국이나 프랑스 대비 떨어지던 시점에서도 문해율이 유럽에서도 최상위 수준이었는데 이는 독일의 공교육이 주변 경쟁국 대비 워낙 광범위하고 잘 정비되어 있었기 때문임.
그리고 19세기초까지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자본도 딸리던 독일이 가능했다면 영국 프랑스가 못할 물리적 여건은 별로 없었음. 특히 식민지 유지를 위한 군비, 행정비, 식민지 유지비를 아낄수 있다면.
물론 독일 융커나 영주들이 독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라서 그런건 아니고, 단일한 지휘계통하에 소통 차질 없이 움직일수 있는 군대와 산업 육성을 위한 중간 기술자 육성을 위해선 공교육이 필수적이어서.

[ 수에즈 운하 이전에 영국에서 인도가는 여정은 거의 6개월 ]
게다가 전쟁에서의 동원 속도 및 규모에서도 널리 식민지에 퍼져 있는 경우가 더 불리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음. 그리고 식민지의 경우 본국 대비 동원력이나 속도가 아주 심각하게 딸렸음은 당연하고.
간단하게 힘의 집중이란 측면에서만 보아도 대양 건너 식민지에 널리 퍼져 있는 군대를 다시 조직하고 본국으로 소환하는데만 적어도 몇개월임. 이미 적군은 철도를 통해 수십-수백만이 본국으로 물밀듯이 쳐들어오고 있는데.
그래서 영국, 프랑스가 땅 면적만 보면 세계 최대로 그 누구도 이길수 없어보이나 영국 프랑스 식민지 하나보다 작은 독일은 더더욱.

[ 보불전쟁 당시 65만 대군과 17만 마리의 군마를 3주만에 전선으로 배치한 프로이센 - 이는 사상 전례가 없는 속도였음 ]
그러나 독일의 경우 우수한 공교육을 받은 수천만 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그 인구들이 산업과 과학을 발전시키며 원활한 교통 인프라로 빠른 병력 전개가 가능했음.
이런 이유들로 독일은 영국 프랑스보다 효율적으로 힘을 집중시킬수 있어 혼자서 세계 최대의 식민제국 둘에게 극심한 타격을 주거나 또는 심지어 이기는 경우도 생겼던거임.
실제로 대부분의 국방비와 군대 동원은 본국이지 저 멀리 떨어진 식민지 현지민들이 아니거든. 더군다나 식민지 주민의 충성도, 훈련도, 교육수준이 본국이랑 같을수가 없고.

어떤이들은 식민지 현지 군인이 차출되어 도움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일단 일본제국이 동남아의 영국 프랑스 식민지를 점령한거에서 보았듯 현지민으로 이루어진 군인들의 전력은 상상 미만이었음.
게다가 나름 아시아 아프리카 전선에서 도움이 된 인도 현지인 병력의 경우도 반드시 전역을 직접지배할 필요 없이 해안가 위주로 뽑고 실제 역사에서 그랬듯 친영국 인도 라자들이 차출해서 보내거나 세네갈 친프랑스 부족이 보냈듯이 간접지배 지역에서 일시적 동원만해도 충분했고.

[ 러시아의 학살등에도 불구 글로벌 사우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구를 식민지배 과거때문에 지지하길 꺼려하는중 ]
또한 장기적 미래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명백해짐. 물론 그 때는 유럽이 세계 중심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으리란 자만으로 그런 생각조차 닿지 못했지만, 현재 민주주의고 자유니 평등이니 외쳐도 대부분의 제 3세계 사람들에게 위선으로 들리는 이유가 광범위한 직접 지배임.
어느정도의 직접 지배는 필수불가결했다고 얘기했지만 최소한 그 영역의 범위를 줄였다면 현재 인류의 85% 가 거주하는 글로벌 사우스에서의 서구에 대한 반감이나 회의주의에 제동을 걸기 쉬웠을거임. 마치 서구에 직접 지배를 받지 않은 한국처럼. 그러나 지금은 도로아미타불이고.

[ 서유럽 귀족 인구는 0.5% 미만에서 1% 사이로 당시에도 프랑스어를 귀족 왕족등 엘리트의 언어라고 하지 대중적인 언어라고 안하는 이유 ]
누구는 언어 전파 얘기도 하는데 애시당초 언어가 제대로 쓰인 지역은 위에서 말한 해안가 도시 지역이랑 식민 관료에 협력하는 현지 엘리트 소수고, 식민지 대중들 다수는 본국 언어를 거의 알지도 못했음.
당장 유럽 본국에서조차 외국어를 배우는 경우는 19세기 전반기 전체 인구 1-2% 후반기로 가도 2-4% 에 불과했는데 식민지야 어림도 없었고.
예를 들어 인도만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힌디어 펀자브어 마라티어 같은 현지말을 썼지.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음. 1% 미만 소숫점 수준으로.

[ 인도 언어 지도 ]
영어가 인도내 대중에게 확고하게 뿌리잡은건 아이러니하게 인도 독립 이후 문화와 언어가 각기 너무나 다른 인도를 하나로 묶기 위해 인도 정부가 영어를 공용어로 제정했기 때문임.
즉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 국력도 더 강화하면서 비용도 더 줄이고 필요한 자원, 병력, 시장을 전부 확보함은 물론 장기적인 국제 정치적 위상 지속성을 챙기면서 반대세력 규합까지 최소화할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것.
그럼에도 지정학적 오판, 이익 집단의 요구, 대중들의 무분별한 팽창 욕구까지 합쳐지며 소프트 랜딩을 할 수 있던걸 독일에 밀리고 나중엔 미국, 소련에 모든 패권을 내주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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