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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받아주세요."
세나가 운전 중인 응급의학부 차량 안에서 그녀가 내민 것은 삐삐 소리를 내는 단말기.
"......이거 정말 내가 받아도 괜찮아?"
"네, 그편이 저도 더 좋습니다."
단말기를 받아들었다. 엉겁결에 수신 버튼을 누르자 바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네, 『히무로』입니다."
짧은 대답과 대비되게, 전화 너머에서는 꺄아 하는 응급의학부 부원의 가벼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발단은 사소한 이야기였다. 세나의 구급차 운전 담당이 배탈이 나서 급하게 대타로 불려온 것이 몇 시간 전.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 키보토스의 외지인이었던 내가 운전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세나가 운전, 내가 네비게이션과 전화로 역할을 분담했다.
"선생님, 전화를 받아주시겠어요? 저는 지금 운전 중이라 손을 뗄 수 없으니."
"물론. 단말기 좀 쓸게."
운전석 근처의 단말기를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샬레 선생님입니다."라고 평소처럼 말하려다가 입이 멈췄다.
이것은 세나의 단말기이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의문이 들 것이다.
"네, 『히무로』입니다."
대신 세나의 성을 빌려 전화를 받자, 옆 운전석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곁눈질로 세나를 보았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운전을 계속... 아니, 뺨이 조금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실례합니다, 부장님... 어라, 선생님?"
당연히 전화를 받은 응급의학부 부원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역시 세나에게 단련받은 부원들일까. 세나가 운전 중이여서 내가 전화를 받았다고 사정을 이야기하자 곧바로 이해했다.
구급대원에게 구두로 전달받은 환자 정보를 차내 비치된 태블릿PC에 입력했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현장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는 세나의 뺨도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선생님은 『히무로』라는 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첫 이송을 마치고 차 안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세나는 말주변이 꽤 좋다. 대기 중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녀가 먼저 꺼내는 경우가 많다.
히무로(氷室). 얼음을 저장하는 곳이라는 뜻의 이 성은 쿨한 세나에게 잘 어울린다. 사실 내면은 꽤나 감성이 풍부하지만.
"예쁜 성씨라고 생각해. 울림도 좋고. 무엇보다 세나하고 잘 어울려."
"그렇게 말해주시니 기쁩니다. 그럼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응?"
방금 대체 무슨 부탁을 받은 걸까. 그 의문은 삐삐 하는 착신음에 지워졌다.
일단은 생각하지 말자. 기분이 좋아 보이는 세나에게 꼬치꼬치 묻는 것도 꺼림칙하고, 다음 환자를 응대해야 한다.
"바쁘네. 평소에도 이렇게 바빠?"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 전화를 받아주세요."
"알겠어... 네, 히무로입니다."
아무래도 응급의학부 사이에 내가 세나의 전화를 대신 받는다는 소식이 퍼진 모양이다. 저번처럼 당황하는 반응 없이, 순조롭게 대화가 진행되었다. 오히려 전화 마지막에 "선생님, 부장님을 잘 부탁드려요!"라는 묘하게 기합이 들어간 한 마디가 덧붙거나, 뒤에서 들려오는 부원들의 부산한 소리가 더 신경 쓰일 정도였다.
그렇게 몇 번 이송을 마치고 나니 세나의 단말기 위치가 조수석, 다시 말해 내 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단말기는 통화를 마치고 운전석 근처 제자리에 돌려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 통화를 할 때 즈음이면 어느새 조수석 옆에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신호 대기로 멈췄을 때, 세나가 스윽 하고 조수석 쪽으로 단말기를 옮기고 있었다.
"......세나?"
"이러는 게 전화받기 더 쉬울 것 같아서요."
"그렇긴 한데..."
합리적이긴 하다. 합리적이긴 하지만, 뭔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혹시..."
떠오른 의문을 다 말하기도 전에 또다시 단말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세나의 단말기가 울릴 때마다 내가 전화를 받게 되었다.
"선생님, 받아주세요."
"응, 괜찮아. 괜찮긴 한데."
창밖을 바라봤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편의점 자동문과 간판.
손에는 주먹밥이 몇 개 들은 비닐봉지.
다시 말해 주차장에서 휴식 중이다. 전화를 받는다면 의료 지식이 있는 세나가 받는 것이 더 원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받을 수 있잖아?"
"네, 지금은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세나의 황금빛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이 기대에 찬 눈동자를 보면 약해진다.
주먹밥 대신 단말기를 집어들었다.
"......네, 히무로입니다."
"선생님, 받아주세요."
"......평소에는 어떻게 해? 혼자 있을 때라든가."
항상 운전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문을 제기하자 세나는 조수석 대시보드를 열었다. 무언가 디바이스가 들어 있었다.
"이 핸즈프리 마이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안 써?"
"선생님이 계시니까요."
솔직한 것은 좋은 일이다.
핸즈프리 마이크 대신 단말기를 집어들었다.
"......네, 히무로입니다."
"선생님, 받아주세요."
"네, 여기는 응급의학부..."
히무로 대신 응급의학부를 대자 차가 작게 흔들렸다. 브레이크를 밟은 것은 아니다. 핸들 조작을 살짝 실수한 정도의 흔들림이다.
세나를 바라보니 눈썹이 약간 팔자를 그리고 있었다. 추욱이라는 효과음이 어울릴 듯한 아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의 히무로입니다."
중간에 말을 바꿨다. 통화를 마치고 세나를 보니 아까와는 달리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지금은 흐뭇이라는 효과음이 어울릴 듯 했다.
"세나."
"네."
"......혹시 마음에 들었어? 내가 『네, 히무로입니다.』하고 전화받는 게."
"네,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오늘은 그렇게 해줄게."
"선생님,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부상자를 이송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 뒤로도 계속해서 "네, 히무로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았고, 모든 이송이 끝난 것은 수를 세는데 양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가 된 뒤였다.
응급의학부는 3교대 근무제로, 오늘의 세나는 점심 근무, 그래서 이렇게 해가 질 때 업무가 끝났다.
"도움이 되어 다행이야."
"네.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응?"
"『히무로』라고 그렇게나 많이 말하셨는데."
"반은 그 말 밖에 안했던 것 같기도..."
히무로, 히무로, 쓴웃음을 지으며 입 안에서 작게 반복했다. 내 성이 아닌데도 묘하게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세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는 기뻤어요. 선생님이 히무로라고 말할 때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본 세나의 미소. 석양에 비친 그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요즈음 세나는 말을 골라 하게 되었다. 아마 그녀 안에서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 또는 상대방이 기뻐할 말, 여러 생각이 섞인 결과일 것이다.
"선생님도 그랬다면 좋겠어요."
그런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고민 끝에 말을 꺼냈다.
그것은 성씨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기뻤어."
"그렇군요. 그럼 저도 더 기뻐요."
성이 언제, 어떻게 바뀔까.
그것이 언제 현실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멀지 않은 미래일 것이다.
"그나저나 세나. D.U.까지 바래다 줘서 고마워."
오늘은 바래다 드릴게요, 라는 세나의 제안에 응한 것까지는 좋았다.
옆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세나가 있다. 그것도 좋았다.
문제는 눈앞에 우뚝 선 낯이 몹시 익은 타워였다.
"선생님은 목적지가 생텀 타워인 줄은 몰랐는데~"
"성씨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까요. 제출할 곳은 여기인가 해서."
"확실히 여기가 제출처가 맞기는 한데!"
생텀타워는 총학생회의 본거지로 키보토스 전역의 행정과 조정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덧붙여 D.U.의 주민들에게는 관공서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빠를수록 좋을까 해서."
"선생님은 조금 더 기다리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봐봐, 이미 밤이라 창구도 닫혔고."
"제출은 야간 창구에서도 가능하다고 해요."
"편리하네..."
조수석 의자에서 흘러내리듯 쓰러지자 세나가 피식 웃었다.
"농담입니다."
"정말? 농담 맞아?"
"글쎄요, 서류 정도는 받아둘까요. 미리 기입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긴 한데."
한 숨 돌렸다.
"......제출은 졸업하고 나서야."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블루아카,소설] 선생님이 "네, 히무로입니다."라 하면 세나의 기분이 좋아진다_1.png](https://i3.ruliweb.com/img/25/06/10/197574fe2a94df8a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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