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검게 물들이다
옷에 커피자국이 남는 일이 늘었다.
자꾸만 커피가 흐르고 만다.
물론 전용 클리너로 문지르면 금방 지워지지만, 학생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안녕, 하스미."
"오늘도 평안하신가요."
"하스미같은 아이들이 신경써주니까 말야."
사실 그리 멀쩡하다고는 못 할지도 모른다.
거울을 봤을 내, 흰자의 색이 약간 탁해진 것을 봤다.
분명 좋지 않은 신호이기에, 학생들의 눈을 피하는 일이 늘었다.
나를 바라보는 하스미의 시선에 몸을 옆으로 돌렸으나, 손에 종이가 달라붙어 우스꽝스러운 동작이 될 뿐이었다.
슬며시 미소지은 하스미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말을 꺼냈다.
"휴식 시간이에요, 홍차 한 잔 어떠신가요."
"나는 커피로 할게."
홍차로 배를 채우기에는 커피를 욱여넣을 공간도 부족하다.
카페인은 많을수록 좋다.
또각, 또각.
하스미의 구두 소리가 내 옆에 다가오고.
커다란 날개가 햇빛을 가려, 와이셔츠에 회색 그립자를 드리웠을 때.
"주문하신 홍차입니다."
"어, 하스미-"
촤아악-
하스미가 내게 잔을 내민다고 생각하고 손을 내민 순간, 하스미는 잔을 뒤집어 내 팔에 내용물을 쏟아버렸다.
뜨겁다, 아니. 차갑다. 어느 쪽이지?
"거짓말이에요, 찬물입니다."
"무슨 짓이야 갑자기, 장난이 심하네?"
"장난이라... 뭐, 제게 안 어울리지만. 구호 행위라고 해주시겠나요."
"구호?"
"네, 매일같이 커피와 에너지드링크로 뇌를 혹사시키고, 눈에는 망가져가는 흔적이 드러나 학생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는 어느 환자에 대한 구호랍니다."
그런가.
전부 알고 있는 녀석이 꽤 있었구나.
"그러면 구호 행위를 받았으니 다시 일하러 가도 될까?"
"아뇨. 아직, 치료하지 못한 것이 둘 남았네요."
"음?"
하스미가 내 손목을 붙잡고,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옅은 갈색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우리의 마음을 앗아가고. 그러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다음 학생을 찾아 다가가는... 괘씸허고 오만한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터질 것만 같은 제 심장박동을 처방하죠."
머리를 붙잡혀, 가슴에 파묻힌다.
부드럽고, 단 향기가 나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이래서 향수는 좋아하지 않아.
"...빠르네."
급하고 빠르다.
언젠가, 내가 하스미를 보며 느낀 적 있는.
...아니, 진작에 접어두고 잊어버린 거였지.
"그리고... 끝내 제게서 도망쳐버린 비겁자에게는. 이렇게, 영원히 검게 물들이는 벌을."
"응? 하스미? 잠깐만, 이건 좀 아픈데-"
츄웁.
어깨를 붙잡고 밀어 벽에 기대게 하더니,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댄다.
그리고는 나까지 먹어버리려는 듯 혀를 내 입으로 밀어넣는다.
우습게도 상상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부드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부드러움의 부재는, 내 용기의 부재에서 오는 걸까.
"아직, 아직 부족해요. 당신을 더욱 많이 탐하고 싶어요. 영원히 저의 색으로 물들이고 싶어요."
"하스미..."
"선생님이 저를 좋아했다는 건, 여자로 봤다는 건 알아요."
"아니, 그런 적 없어."
"거짓말쟁이에게는 어떤 벌이 필요할꺄요?"
"...적어도 여자로는 보지 않았어. 연인과 여자는, 뭔가 다른 느낌이라."
"하아... 헷갈리게 하시네요. 그것 땨문에 제가 이렇게까지 강경함 수단을 썼잖야요."
후욱-
아직도 내 어깨를 붙잡은 손으로, 이번에는 나를 자신의 품에 끌어당긴다.
또 한번 부드러움이 나를 덮쳐온다.
"자, 쉬러 가요."
"어, 응?"
"사실, 선생님을 구호해주길 부탁받았거든요."
"지금까지 한 건..."
"제 독단이죠. 제가 부탁받은 건 당신을 쉬게 하는 것. 그러니 얌전히 제 날개에 안겨 쉬어주세요."
"..."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세련되지 못했어요."
"그렇네."
"하지만, 괜찮아요. 전부 검게 덮을 거니까."
"..."
"저로 뒤덮여 주세요. 저만이 당신을 물들일 수 있게."
검은 날개가 덮쳐온다.
시야가, 옷이, 몸이, 머릿속이. 전부.
검게 물든다.
![[블루아카,소설] 선생님을 검게 물들이는 하스미_1.png](https://i1.ruliweb.com/img/25/06/05/1973df0283d4df8a5.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