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후궁 중에 소용 임씨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본명은 애영으로 용모가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광해군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인조실록1권, 인조 1년 3월 13일 계묘 1번째기사
임술년003) 가을에 마침 이귀가 평산 부사(平山府使)로 임명되자 신경진을 이끌어 중군(中軍)으로 삼아 중외에서 서로 호응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모의한 일이 누설되어 대간이 이귀를 잡아다 문초할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김자점과 심기원 등이 후궁에 청탁을 넣음으로써 일이 무사하게 되었다.
인조실록3권, 인조 1년 9월 14일 신축 1번째기사
임씨는 일찍이 이귀(李貴)·김자점(金自點)이 고변당할 당시 두둔해 준 공이 꽤 있었기 때문에 용서받아 죽지 않았으므로 위리(圍籬)에서 폐주를 모시게 되었다. 그 나머지 홍씨·허씨·권씨·원씨는 다 중도 부처(中途付處)되었다. 이래서 정엽이 이렇게 아뢴 것이다.
소용 임씨는 김자점에게 뇌물을 받았기 때문에 반역 고변이 들어와도 이귀와 김자점을 두둔해 주었는데
반정이 일어나고 광해군의 다른 후궁들이 자살하거나 죽거나 벌을 받았을 때
능양군을 비롯한 서인 세력의 반란 계획이 누설되자 김자점에게 뇌물을 받고 반정 세력을 두둔해 준 공로(?) 덕분인지
유일하게 광해군의 후궁 주에서 처벌 받지 않고 유배 당한 광해군을 모실 수 있는 특권(?)을 받게 된다.
훗날 소용 임씨는 광해군 복위 계획에 참여했다가 실패하자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아 국문을 받았지만 국문을 받던 중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