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하게도 라쿠고를 소재로 다룬 만화.
아카네 이야기.
일본 애니나 만화에서 종종 배경으로 나오기도 하는 전통 일인극 '라쿠고'
라쿠고란 방석에 앉은 라쿠고가 한 사람이
몸짓이나 표정, 목소리 연기톤만으로 민담을 풀어놓는 일본의 전통기예 입니다.
라쿠고가는 '젠자', '후타츠메'. '신우치' 총 세 개의 계급으로 나뉘는데요.
(일본 연극에서도 쓰이는 용어입니다.)
주인공인 아카네의 아버지 '아라카와 신타'는 분명 포텐은 있지만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는 만년 후타츠메.
벌이가 좋지 못하다 보니 주변에서는 기둥서방 취급을 받아 가족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은 가장입니다.
신우치 승진 시험에서도 수많은 관객들과 일문의 스승들 앞에서 연기를 하느라
초반에 긴장으로 굳어버리는데요.
다행히 아내의 응원과 딸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심기일전하여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강점을 당당히 선보이며 직계 스승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큰 박수를 받는 훌륭한 무대를 선보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신우치로 승격한다는 큰 뜻을 품을 수 있었죠.
하지만 당대 최고의 명인이자
아라카와 일문의 수장인 '아라카와 잇쇼' 스승은 혹평을 하였고
신타를 포함해 이 날 시험을 본 후타츠메 전원을 파문시켜 버립니다.
당연히 이 사건은 기사로도 실리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잇쇼는 이때 몰린 관심을 오히려 호평으로 바꿔버리면서 실력을 과시합니다.
결국 아라카와 신타를 비롯한 라쿠고가들 파문 사건은
'저 정도 명인이 그렇게 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수준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잇쇼 스승은 라쿠고계에서의 영향력을 공고히 한 것이죠.
그로부터 6년 후.
성장하여 아버지의 라쿠고가 훌륭하다는 걸 증명하려던 아카네는
한 라쿠고 대회에서 우승한 특전으로 잇쇼 스승과 독대할 기회를 얻습니다.
당연히 물어볼 것은 아버지를 파문한 이유.
여기에 잇쇼 스승은 너는 그 무대를 어떻게 보았느냐고 역으로 질문을 합니다.
아카네가 생각하기에도 처음에 긴장한 티가 났던 것은 분명히 마이너스지만,
인생이 걸린 무대였던 만큼 어쩔 수 없었고
그런 모습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샀기 때문에 큰 환성을 받은 것이라고 열변합니다.
이에 대한 잇쇼 스승의 대답은
'관객에게 사연 팔아서 박수나 받는 게 신우치가 할 짓이냐?'
훌륭한 무대를 선보이고 감동을 줘서 박수를 받으면 모를까
동정을 사서 박수를 받는 건 신우치가 할 짓이 아니다.
잇쇼 스승은 겉보기와 달리 마냥 꼰대스러운 영감탱이는 아닙니다.
오히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등 너무 경직된 전통문화계의 악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걸 누구보다 중요시 하고 있죠.
그렇게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전통이라는 문화에 미래는 없으니까.
OTT가 생겨나면서 영화관이 쇠퇴하는 것처럼
디지털 매체의 보급으로 기존의 미디어들이 저물어가는 이 시대에
전통문화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만큼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인가?
오로지 실력.
압도적인 감동을 줄 수 있어야만 사람을 불러모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입니다.
혁신이니 뭐니 입으로만 떠들면서 실력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웃음거리일 뿐이니까요.
이 정도로 엄격하게 구는 것은 본인이 당대 최고의 명인이라 불리는 만큼
전통을 이어나가는 입장에서 짊어진 짐의 무게가 크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카네는 안심합니다.
적어도 아버지가 파문당한 일이 순간의 기분이나, 노이즈 마케팅 따위로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신념과 이유가 있어서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럼에도 나는 내가 빠져든 아버지의 라쿠고를 믿고,
당신이 말한대로 실력으로 증명해내겠다는 포부도 당당히 밝힐 수 있었습니다.
독자로서는 그래도 파문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전통과 예술에 얽힌 다양한 가치관을 읽을 수 있어 재밌는 내용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