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교수님이 안계셔서 못썼던 고려사 반역자들 이야기
오늘도 교수님을 뒤에 뫼시고 검수 하에, 반역자들 이야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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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는 지난 번에 썼던 2명에 이어서 나오는
고려 초기 찐찐찐찐 주요 반역자들 2명입니다.
이번에 써 볼 주요 인물들은 목종 대 인물들인
김치양, 그리고 강조입니다.
『고려사』반역 열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두 사람은 사실 따로 떨어져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두 사람을 같이 쓰는 이유는
두 사건이 너무나도 관련이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최근까지 방영했던...ㅈㄴ게 기대했던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의 초반부를 장식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죠.
고려 초기, 이전편에서 다뤘던 왕규의 사건 이후, 고려는 상당히 유능한 왕들이 이어나갔습니다.
정종-광종-경종-성종 으로 이어지는, 최소 A급 황제들의 정치 하에 고려는 잘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약간의 찐빠들은 다들 있었습니다만, 이정도는 봐 주도록 합시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 나온, 고려 5대 왕인 경종의 사망부터 시작됩니다.
경종에게는 확실히 왕위를 이어 받을 왕자인 '왕송'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왕송의 나이는, 경종의 사망 당시 너무 어렸다는 것이 문제였죠.
그냥 2살짜리 응애였던 겁니다. 이 왕송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래서 경종은 선대 왕들이 했던 방법을 따라하기로 합니다.
능력있는 왕실 종친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
그리고 여기서 선택된 것이
바로 경종의 이복종제이자, 고려 6대 왕이 된 당시의 개령군,
성종이었죠.
- 갑진 〈왕이〉 당제(堂弟)인 개령군(開寧君) 왕치(王治)를 불러 왕위를 물려주고 유조(遺詔)를 내려 말하기를(후략)
아무튼 이렇게 당장의 왕위 문제는 해결되었고
성종은 고려 초기 명군 중 한명으로 무난하게 정치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16년 후 사망하면서, 경종의 아들인, 이 당시 18세였던 왕송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 겨울 10월 무오 왕의 병세가 더욱 심해지자 개령군(開寧君) 왕송(王誦)을 불러 친히 맹세의 말[誓言]을 내려 왕위를 전한 후에 내천왕사(內天王寺)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이렇게 즉위하게 되는 인물이 이번 편의 주요 시대를 이끌어가는
고려 7대 왕, 목종입니다.
그런데 목종의 즉위 당시, 왕실에는 목종보다도 위세가 대단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목종의 어머니였던
헌애왕태후 황보씨입니다.
우리에게는 '천추태후'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여자죠.
목종이 즉위할 때 나이는 18살,
당시 기준으로 따지면 그닥 어린 나이도 아니였죠.
그런데 목종이 재위할 때, 천추태후는 당시 기준으로 충격적인 일을 일으킵니다.
- 목종의 나이가 이미 18세였으나 태후가 섭정(攝政)하며 천추전(千秋殿)에 거처하므로 세상에서 천추태후(千秋太后)라 불렀다.
섭정을 시도한 겁니다.
당시 목종의 나이는 섭정을 받을 수준의 나이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어거지로 섭정을 시도한 것이죠.
왕실의 가장 큰어른이라는 명분이, 이를 성공시켰습니다.
당연히 조정 내에서도 이에 대해 반발은 있었지만, 이를 막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왕실의 큰어른에게 누가 태클을 걸 수 있을까요?
더군다가 목종 본인도 그닥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던 걸로 보이니, 자연스럽게 고려 내 상황은 망가지기 시작했죠.
이렇게 권력을 손에 쥔 천추태후는 여기서 한술 더 떠 어이없는 짓을 저지릅니다.
지금도 일어나면 욕먹는 일인데, 이 당시 황태후가 저지르는 것도 원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불륜이었습니다.
왕의 어머니가, 갑자기 다른 남자와 불륜을 한다?
아무리 고려가 성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리고 그 불륜 상대가 이번 글의 주인공인 사람인데
김치양입니다.
김치양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 성격이 간교하고, 음경은 수레바퀴를 능히 걸 수 있을 정도였다.
Male : big_dick
...예.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교수님도 이걸 강조해야 사람들이 좋아한대서...
아무튼 김치양은, 당시 사람들이 다들 아는 천추태후의 불륜남이었습니다.
원래 이 불륜관계는 목종 대에 시작된 건 아니었습니다.
발각되어 개쳐맞고 쫓겨났다고 하죠.
- 일찍이 거짓으로 중 행세를 하면서 천추궁(千秋宮)에 출입하여 자못 추한 소문을 일으키니, 성종(成宗)이 이를 알고 곤장으로 다스려 먼 곳으로 유배 보내었다.
그러나 성종 사후, 천추태후에 의해 김치양은 다시 궁으로 들어오고 다시 한 번 불륜을 이어나갑니다.
왕태후의 불륜남이니, 자연스럽게 오지는 권세를 손에 넣게 된 김치양은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 관리의 인사권이 모두 〈김치양의〉 손에서 나오게 되어 그의 친척과 일당들이 온통 요직을 차지하였으며 세력이 온 나라에 끼쳤고 뇌물을 공공연히 챙겼다. 집을 지었는데 3백여 간(間)에 이르렀고 누정(樓亭)·정원·연못이 지극히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밤낮으로 태후와 함께 놀아나는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또한 농민을 부려 동주(洞州)에 사당을 세우고 편액하기를 성수사(星宿寺)라 하였다.
심지어 김치양은 그 사이에서 아들까지 보게 됩니다.
천추태후의 진짜 남편인 경종은 죽은지 오래인데, 아기가 태어났다?
다들 말은 못하지만...누구 아들인지는 알고 있었겠죠.
- 후에 태후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김치양과 사통한 소생이었다.
이렇게 고려의 온 권력을 손에 넣게 된 김치양, 천추태후 커플은
이제 고려의 제일 꼭대기를 노립니다.
왕위를요.
이렇게 본격적으로 '김치양의 난'이라고 기록될 사건이 시작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을 목종 역시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웠는데...
나중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배가 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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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느라 고생하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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