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핀란드의 전사들이여. 조국을 드높이는 그 이름
소수정예로 무장하여 국토수호를 위해 오늘도 갈리시는 그들의 투지는 언제봐도 존경과 경외심이 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미누띱
현재 핀란드군은 24,000여 명의 상비군을 보유하여 아가리에 똥내나는 러시아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신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핀란드군에게도 고물 전차 한대라도 감지덕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때는 멀고도 먼 아주 먼 옛날인 석기시대는 아니고 중세시대로 돌아가보자
이 당시 핀란드는 1581년부터 스웨덴 왕국의 영토였는데, 1803년부터 발발하게 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입김이 강해진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약 100여 년간 지배를 받게 되었고 1917년 갑작스러운 러시아 내전이 발발하게 되자 동부 유럽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악한 용으로 비유되는 공산주의로부터 러시아를 지켜내는 러시아 연방의 백군 십자군이 그려진 선전 포스터
핀란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익세력들이 독립을 선언, 핀란드 내부에서도 독립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러시아에서는 적군의 승리로 적화통일이 완료되었지만 핀란드에서는 독일의 지원을 받은 만네르하임의 백군이 승리하게 되면서 그대로 독립
▲핀란드 구국의 영웅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하임 (Carl Gustaf Emil Mannerheim)
1920년, 전쟁의 여파로 기력을 다한 소비에트 연방은 핀란드와 두 국가의 경계선을 확정하는 타르투 조약(Treaty of Tartu)을 맺음으로서
핀란드는 북부의 항구도시인 페차모와 북극해에 접한 항구 하나를 얻어내었고 1932년 소련의 요청으로 불가침조약이 성사되었다
1934년에는 불가침조약이 갱신되어 향후 10년뒤까지 서로 군사적 침공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원래 불가침조약은 깨라고 있는거다
조지아에서 온 인간백정은 당연히 지킬 생각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핀란드애 귀속당한 영토 생각만 하면 배가 아프다 못해 크렘린에서 설사를 지릴 지경이었고
(자신이 억지로 밀어붙여서) 단기간에 성공적인 공업화를 이룩하여 빠른 성장을 일궈낸 스탈린의 눈에는 핀란드는 그저 다시 뺏어먹을 땅에 불과했다
게다가 당시 동맹국이었던 나치독일이 자신이 앉은뱅이 노인처럼 모스크바에서 정치놀음이나 하고 있을 동안 발트 3국을 힘들이지 않고 집어삼킨 것을 보고
하루 빨리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회복시키기 위해 핀란드의 북부 지역을 얼른 쳐먹어서 이득을 챙겨야겠다는 속셈을 품었다
이에 스탈린은 1939년 핀란드에게 약 2,3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와 4개의 섬이 할양, 올란드 제도, 투르쿠, 코트카, 항코, 헬싱키, 비푸리 등 발트해에 속한 보트니아 만과
핀란드 만을 접하고 있는 주요 항구에 약 40년 간 소련군의 주둔권 및 권리 보장을 요구하였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군사를 동원한다고 협박하였다
그냥 대놓고 땅 내놓고 상전 앞에서 똥꼬쑈나 하라는 소리나 다름 없었고
말도 안되는 요구에 퀴외스티 칼리오(Kyösti Kallio) 핀란드 대통령은 짧지만 간결한 한마디로 소련측 대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견지했다
조1까
그러자 소련측 대표이자 러시아 최고의 바리스타인 뱌체슬라프 몰로토프(Vyacheslav Molotov) 외무장관은 협박적 언어로
‘나는 할 만큼 했소. 이데 붉은 군대가 대답할 것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사실 스탈린은 이미 전쟁을 할 목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내세운 것이었고 핀란드의 반응에 기뻐하며, 한줌에 불과한 약소국을 단숨에 부숴버릴거라 자부하면서
전쟁이 자신들의 승리로 끝나면 핀란드 내의 공신주의자들을 내세워 괴뢰국을 만든다는 계획을 수립한다
그렇게 1939년 11월 26일, 폴란드 침공이 끝난지 채 두달도 되지 않은 날 핀란드를 침공할 명분으로 소련군은 자신들의 국경 수비 초소를 망가뜨리곤
핀란드군의 선제공격인 것 처럼 자작극을 꾸며 전선하였고 4일 뒤인 11월 30일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한다
소련군의 침공을 예상하고 대비하였지만 핀란드군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불리했다
병력의 수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으며 병력의 질 또한 심각했다
개전 당시 소련군은 무려 54만 명을 동원하였지만 그에 비해 핀란드군은 24만 명의 병력을 요새에 동원했을 뿐이며
전차 또한 핀란드군은 테스트용으로 프랑스와 영국에 구입한 소수의 구식 전차들 뿐이었지만
소련군은 2,514대의 전차사단을 앞세워 헬싱키로 진격하고 있었다
산악지대가 많고 뼛속까지 얼려버리는 악천루 속에서 핀란드군은 숲속, 요새에 틀어박혀 러시아군의 진격을 방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소련군 5개 사단이 라도가 호수 이북 지역으로 진격해 올 것이라는 예측을 사여 나치독일과 스웨덴의 지원을 받아서 구축한 방어선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소련군은 핀란드군의 예상을 상회하는 12개 사단이 라도가 호수로 진격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초전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시켜 핀란드를 문자 그대로 개발살 내고 북부지역을 뜯어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소련군의 군사적 우위는 보병 3배, 항공기 30배, 기갑전력은 100배나 앞서 있었고 병사들의 사기도 하늘을 찌르고 있였다
심지어 장교진들은 부하들에게 ‘너무 신나서 스웨덴 국경은 넘지말라’ 는 농담까지 했다고 하며 장기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보급 물자도 10일치만 준비되어 있었다
▲소련 공군의 헬싱키 폭격으로 불타는 Abramyinkatu 거리 모퉁이
소련군의 초기 진격은 성공적이었다
불과 사흘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최대 75km를 진격하며 초기 전투데서도 12만 명의 핀란드군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둬 헬싱키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초기 핀란드군은 대전차 무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2,000대가 넘는 소련군 전차의 진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련군이 간과하는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으니
핀란드의 지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소련군이 아니라 핀란드군이었다
핀란드군은 공업지대가 밀집한 남부 지역에 병력을 집중 투입시켜 사수하고, 포장도로가 거의 없는 북부 지역은 민병대들이 맡는다는 방어계획을 세웠고
핀란드군은 소련근 전차 대다수가 가솔린 엔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영감을 얻어 핀란드의 국영 주류회사 알코(Alko)에서 군수품을 납품하게 된다
알코에서 만든 주류병에 휘발유를 넣고 점착 효과를 위해 티크너를 섞어주고 적 전차에게 시원한 한잔 건네기 전 불을 붙이고 던지면 끝
어때요 참 쉽죠?
야 이 빨갱이 새끼들아! 이거슨 칵테일이여 까불지들 말어!
산악지대가 많은 핀란드의 지형을 이용, 숲이나 참호 속에 숨어있다가 전차가 다가오면 엔진룸이나 해치 뚜껑을 열어 불타는 칵테일 한잔 시원하게 말아주었다
계획을 낙관적으로 세웠던 소련군의 예상과는 달리 핀란드군은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으로 격렬히 저항을 하여 진격을 멈출 수 밖에 없었는데
12월 12일에는 비포장 도로를 포장하면서 까지 전차를 진입시켰던 소련군은 라도가 호수 북부에서 2개 사단을 투입시켰으나 고작 1개 연대의 핀란드군에게 패배하여 후퇴했으며
12월 14일에는 핀란드 방어선 일부에서 벌어진 타이팔레 전투에서는 1시간만에 1천명이 전사하고 24대의 전차를 손실하여 후퇴하는 등
너무 깊숙히 진격하다가 후방이 끊겨버린 소련군은 되려 핀란드군에게 연패를 당하고 포위를 당해 천천히 목이 죄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군에게 있어서 핀란드 남부에서 벌어진 라도가 호수 전투의 패배는 중부와 북부에서의 치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만네르하임이 자랑하는 정규부대가 공업지대가 밀집된 남부를 지키기 위해 집중적으로 몰려있었고, 반대로 공업화가 더딘 북부와 중부는 비포장도로로 인해 진격에 차질을 겪을 수 밖에 없었음에도 스탈린은 무조건적인 진격을 명령하였다
소련군은 8개 사단을 북부지역에 투입, 민병대로 구성된 오합지졸 핀란드군을 초전‘발살’을 냈어야 했으나
지형지물을 이용한 핀란드 민병대들의 활약으로 인하여 질적으로도, 숫적으로도 우세한 소련군 부대는 오히려 격퇴당하고 진격은 정체될 수 밖에 없었다
소련군의 졸렬한 침공과 치욕스러운 패배가 전세계가 알려지자 지금까지 중립을 유지했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가 핀란드를 지원하기 시작했음
개인 자격으로 비정규 의용군들이 전세계에서 핀란드를 돕기 위해 총을 들고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에스토니아, 헝가리, 이탈리아 왕국도 핀란드에 지원군을 보내기 시작했고 나치독일 또한 핀란드로 가는 군수물자가 자국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얼마 안가서 소련과의 동맹관계를 빌미로 나치독일은 핀란드 지원 및 지지를 철회함)
그로 인해 1939년 12월 9일 부터 다음해 1월까지 벌어진 수오무살미 전투에서 소련군은 25,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배하게 되면서 전투는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고 소련군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패배의 여파로 콧수염 대마왕 스탈린은 겨울 별장인 다차에서 총사령관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에게 얼굴까지 붉히며 무능한 자라며 질책하였고
오히려 스탈린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보로실로프는 스탈린에게 역정을 내며 그의 분노에 반박했다
이게 다 네놈 때문이잖아! 붉은 군대의 정예병들을 다 없애버린건 네놈이잖아! 네놈이 유능한 장군들을 다 죽여버렸어!
자신에 대한 공격에 들어올 것이란걸 예상 못했는지 스탈린은 충격을 받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분노한 보로실로프는 통구이가 담겨진 접시를 냅다 집어던졌다
보로실로프가 무능한 건 맞았고, 보로실로프의 분노 또한 합당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정치적 동지였던 보로실로프는 총사령관 직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이후 세묜 티모셴코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세묜 티모셴코 당시 대장
새로운 총책임자로 부임한 티모셴코는 질질 끌리는 이 교착상태를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타개했다
그냥 많이 꼬라박아라
더 많은 폭격기로 핀란드를 폭격하고, 90만 명의 보병들을 추가 투입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해버렸다
핀란드군이 놀라운 교환비를 내며 소련군 상대로 승전을 거둔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미 핀란드의 국력은 한계에 달하고 있었는데
핀란드 또한 7만명의 사상자를 냈고, 이는 핀란드군 전체 병력의 20%에 달하는 뼈아픈 손실이었고 물자 또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가
▲백사병, 시모 해위해
결국 체급차를 극복하지 못한 핀란드군은 주요 방어선인 만네르하임선이 돌파당하고 말았고 1940년 3월, 결국 항복한다
평화협정의 결과로 스탈린이 요구했던 대로 북부지역을 소련에게 빼앗겼으며, 항코 반도의 항구는 소련군이 30년 간의 임대 목적으로 탈취했다
핀란드는 전쟁 패배의 결과로 전체 영토의 11%와 공업력의 3%의 소련에게 내주었고 당연히 그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약소국이라 멸시했다가 큰 코 다친 소련은 엄청난 피해로 인해 폴란드 독일 국경 수비대의 균열을 야기하였고 치욕스러운 결말로 인해 전세계의 조롱을 받았다
소련군의 사실상의 참패를 지켜보며 기세등등해진 나치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1940년 6월, 자신들의 측근들 앞에서 ‘썩은 구조물은 문짝만 부숴버리면 무너져버린다‘ 는 발언을 했다
곧 다가올 세계 최악의 전쟁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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