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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주교 신도들은 왜 사고를 쳤을까
조선의 가톨릭 신도들은 왜 급발진을 했을까?
이건 윤지충 사건(1791년 정조시기에 위패를 공개적으로 불태운 사건)으로 부터 100여년을 거슬러 가야 하는데
가톨릭에서 처음 제사에 대한 논쟁이 시작한건 1640년대부터였음.
명나라의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선교하던 예수회는 제사를 우상숭배가 아닌걸로 판단했고
반대로 서민층을 대상으로 선교하던 도미니코회는 우상숭배로 판단했어.
(이양반이 클레멘스11세, 반동주의자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음)
이 두 계파의 논쟁은 약 70여년간 계속 해왔고 1715년에 교황 클레멘스가 칙서
"엑스 일라 디에"를 통해 "야만인들의 우상숭배다 하지마 이것들아"라고 결론을 내렸음.
그리고 1724년에 베네딕토 교황이 칙서 "엑스 쿠오"을 통해 클레멘스 교황의 결정에 못을 박고 더 이상의 논쟁을 금함.
자 이제 한국으로 가보자.
조선에 천주교가 종교로써 본격적인 세를 늘린건 엑스 쿠오 이후 약 50년뒤의 일이야.
1789년 조선의 신자들은 베이징의 교구 구베아 주교에게 "우리 제사해도 되나요?"이라는 서신을 보냈어.
구베아 주교는 조선 신자들의 질문에 답장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제사 금지, 금지 금지!!!!"였음.
구베아 주교 본인은 조선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딱히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ㅂㅈ 않았다고함.
그러나 교황의 칙서로 금지한것을 주교가 부정하는건 불가능했고 그의 답변은 결국 "제사 하지마라"였음.
당시 조선 신도의 중심은 "양반 남성"들이었다. 이들에게 그냥 핵폭탄이 떨어진거임.
훗날 프랑스 신부인 "샤를 달레"는 이 사태를 보고 "조선 신도들의 눈깔을 후벼파는 사건"이라고 평했음.
저 편지 하나로 조선의 신도들은 반갈죽이 됐음. 제사를 포기 할수 없거나 관직에 있던 신도들은 가톨릭을 떠났고,
자신의 특권을 신앙을 위해 포기할 수 있었던 신도들만 남았어. 그리고 1791년 가톨릭을 떠나지 않고 남았던
화끈한 신도들은 대형사고를 쳤으니 그게 윤지충 사건임.
세줄 요약
1. 교황청에서 동양의 제사를 금지하는 칙령을 발표하고 그 칙령이 조선신도들에게 전달
2. 조선신도들은 경악했고 차마 제사만은 없앨수 없었던 대부분의 신도들이 천주교를 이탈함.
3. 광신도들만 조선천주교에 남았고 그들이 사고를침.
최소한 현지화를 해서 위패가 초상화를 대체하는 위령미사 정도로 대체했다면......
저게 원글 댓글을 보니까 중국에 선교하러 갔던 도미니코회의 로비와 증언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더라.
야들이 (중국의)지방에서 본 제사는 진짜 이교도의 풍습같았다네. 음.......
https://bbs.ruliweb.com/best/board/300143/read/59648010
조선이 개항할 의지가 없는 멍청이라고 까면 안되는 이유
욕만 약간 순화함
조선은 걍 개항을 하지 말라고 세계에서 억까에 억까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이걸 꾹 참고 개항을 하려면 호구거나 예언자가 아닌 이상 그게 불가능함
어마어마하게 많은 지랄중에서 몇 개만 꼽아봐도 밑과 같음
-병인박해 프리퀄-
고종 초, 흥선대원군이 딱히 천주교를 박해하고 있지도 않고 개항과 방법도 크게 고민하고 있을 때,
베르뇌 주교가 갑자기 흥선대원군에게 제안을 보냄
그건 바로조선이 천주교를 인정한다면 프랑스-영국-조선의 삼국동맹을 체결해 주겠다는 제안이었음
흥선대원군은 그걸 듣고 크게 달가워하면서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약속을 맺읍시다 언제 만날까요?" 했는데
베르뇌 주교는 지가 제안해놓고"음 걍 지금은 만나기 싫소이다. 근데 일단 먼저 좀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기다려보시오"
하면서 거의 일년 내내 흥선대원군과의 회담을 거절함
흥선대원군은 협상을 맺겠다면서 왜 저지랄로 나오는지 이해는 안갔지만 그래도 무한한 인내심으로 꾹 참다가 결국 못 참고
"그럼 안만나고 지금처럼 편지로 조약을 맺어도 좋으니 일단 좀 조약을 맺어봅시다"라고 함
그러자 베르뇌 주교는 또 몇 개월 동안 "아 내가 좀 그런거 쓸 시간이 없어서... 근데 일단 거기 XX지역에 있는
천주교 단체 그거 정부에서 좀 잘 봐주시오 그런데는쓸시간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대답함
흥선대원군은 어이가 없어서 베르뇌 주교를 불러도 보고 찾으러가도 보고 별짓을 하다가
결국 한참 후에야 오페르트와 소통할 시간을 얻게 됐는데
일단 오페르트를 만나기 전에는
흥선대원군이"그래서 천주교를 조선이 인정하면 프랑스-영국-조선 삼국동맹이 결성된다고?"이러자
주교는"그건 모르겠고. 근데 일단 천주교부터 받아들여라."이럼
흥선대원군이"일단 삼국동맹이 체결되는걸 봐야 천주교를 받아들일거 아닌가? 그 조약 세부조항좀 보여줘라"하니까
"어허! 어찌 감히 주교한테 내정간섭을 시키려는 것이오!"이럼
".....아니 니가 제안했잖아?"
"어허! 그건 내정간섭이오! 주교한테 뭘 시키는 거요! 내가 그런말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쨌든 내가 할순 없소! 일단 천주교를 받아들이시오!"
"???"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보에 넋을 잃어버린 흥선대원군은 몇 번이고 베르뇌 주교에게 조약에 대해서 물었고
주교는 그때마다 주교된 자로써 타국에 내정간섭을 할수는 없다며 거절함.
근데 정작 천주교 박해 자제해라 이 지역에는 이 사람들한테 잘해라 등등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정작 내정간섭 자체는 엄청 해댐
애초에 주교 따위가 나라를 동원할 힘이 있을 리도 없고 프랑스 측에는 저런 조약이 있다는 기록도 없고
애초에 영국 종교는 천주교가 아니라 성공회라는걸 고려하면 걍 조선을 호구로 본 것
결국 이 바보짓이다 합쳐서 일년이 되갈 때쯤 영-프-조 동맹을 성사하려는 가장 큰 이유였던 러시아 남하 저지도
러시아가 지가 알아서 남하를 중단함으로써 흐지부지되면서 결국 폭발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병인박해가 시작됨.
-천주교의 행동-
사실 근데 이지랄이 나기 전부터 조선은 천주교도들을 잡았을때
처음에는 천주교 유지해도 좋으니 그냥 지랄만 하지 말라고 하면서 풀어줬는데
아예 그 이후에 천주교와 서양인의 합작으로 반란도 일어나고 개지랄도 해대고 위의 일 같은 일도 벌어지고
결국 천주교 신앙을 포기하면 훈방으로 눈감아주고 풀어준다는 굉장히 너그러운 제안까지 했는데 이것도 무시
아니 풀어준다니까?? 더 이상 정치나 그런거 개입 그만하거나 천주교 버리거나 둘중하나만 하면 풀어준다니까??
해도ㄴㄴ 차라리 우릴 처형하시오 순교라 달게 받겠음이지랄을 해대니 결국 그제서야
"ㅇㅎ 천주교도들은 협상이 의미가 없고 걍 죽여야 되는구나" 하고 죽이기 시작함
그 전에는 아예 국가의 지도를 프랑스에 넘겨버리려는 시도도 있었고
"천주를 따르지 않는 이딴 나라는 차라리 천주를 따르는 다른 나라에게 정복당해서 주권을 잃는 편이 좋다"같은 개소리하면서
나라를 팔아버리려는 시도도 있었음
-황사영 백서사건-
근데 이걸 천주교인만 했으면 아 천주교가 이상한 놈들이구나 하고 넘길지도 모르겠는데 천주교가 지랄을 했다
= 찾아보면 꼭 서양인 놈들이 불법입국해서 관련중이었음이 합쳐지니
서양혐오 여론이 계속 올라오기 시작함. 물론 이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양인에 대한 여론이 그렇게까지 부정적이진 않았음
문제는 오페르트지
-오페르트 도굴 사건-
오페르트를 비롯한 사절단이 조선에 통상 조약을 요구하자 조선이 일단 면밀히 검토해보려고 거절했는데
거절당하자 미국인 후원자를 빌려서 오페르트는북독일 연방(이후 남독일까지 흡수하고 통일 독일 제국으로 거듭남)
국기를 게양하고 백명이나 되는 인원으로 들어온다음
지들이 러시아 군대라고 구라를 치면서 관아를 당당히 습격해서 총으로 협박질한뒤
당시 조선 최고권력자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를 도굴한 사건인데, 다행이게도 삽질만 5시간을 해대다가 석회층을 못 뚫어서 돌아감.
대체 무슨 지랄인지 이해할 수 없는 싸이코패스 같은 행위에 조선 정부 일동은 경악했는데, 그러자 오페르트는 조선 정부에 편지를 보냄.
근데 그 내용이 대충
"뭐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게 예의가 없다는건 알겠는데니네 나라를 침공해서 도굴하면 불쌍하니까
평화적으로 도굴하려 했던 거 뿐임.(??? 도굴을 하지 말라고)사실 원래는 관 갖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우리가 너무 어질고 착해서 말았음. 석회층 안 뚫은것도 못뚫은게 아니라 일부러 안뚫은거고 우리가 자비를 베푼 것임.
오히려 관 안 갖고간 시점에서 우리가 예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고 고맙게 여겨줘야 하는거 아님?
니들 좀 제정신아닌듯 ㅋㅋ 그리고 우리 집에갈건데 막으면 ㅋㅋ
우리 군대로 나라 불타서 니네 다 졷되고싶으면 막아보던지 ㅋㅋ(진짜 이렇게 씀)"
이러고 집에 돌아감. 이러면서 본국가서는 "아 우리는 조선의 개항을 바랬을 뿐이라고 ㅋㅋ"
이지랄까지 함. 여기서 아직도 서양인들 = 악귀나찰, 금수만도 못한 놈(일본식 표현을 빌리면 귀축)공식이 성립 안 된게 더 신기한 거임
이 지랄이 벌어졌는데도 조선은 개항하려는 의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고 노력했지만
별의별 창의적이고 참신한 개지랄이 더욱 많이 앞뒤로 계속 일어나면서 결국 포기하고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차라리 시발 졷같은 서양인들보단 같은 아시아인 일본 도움으로 개혁하는 편이 낫다!"
VS "걍 콱 뒤지고 말지 저 졷같은 새끼들한테 굽실거리고 싶진 않다!" 등등으로 갈라짐
당장 중국 개소리만 봐도 피가 거꾸로 솟으면서 분노에 미쳐날뛰는게 한국인들인데
그보다 더한 개지랄들을 참은 조상님의 인내심을 생각하면 경이적일 정도지 도저히 뭐라할 수준이 아님
레퍼가 없길래 개인적으로 찾아봤음
https://namu.wiki/w/%EB%B3%91%EC%9D%B8%EB%B0%95%ED%95%B4#s-2.1
조선에 거주하던 천주교도들은 조선이 프랑스, 영국과 함께 삼국동맹을 맺으면,
러시아가 조선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주겠다는 방책을 흥선대원군에게 제시하였다.
흥선대원군은 프랑스가 러시아를 견제한다면 천주교 선교 활동의 자유를 인정해주겠다는 암시를 주었다.
이에 흥선대원군과의 만남을 통해 동맹을 주선하기 위해 지방에서 포교를 하고 있던 베르뇌 주교와 다블뤼 주교가 서울로 급히 올라왔다.
그러나 지방에서 서울로 오기까지 한 달이 경과되면서 흥선대원군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1866년 1월에 북경에서 조선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영불연합군이 북경을 함락한 이후 대대적인 살육을 자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조정에서는 프랑스의 이 끔찍한 살육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프랑스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던 대원군을 압박하였다.
도성 내에는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끌어들여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려고 한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당시 대왕대비와 조정 대신들 역시 흥선대원군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두었다.
결국 대왕대비와 연맹하여 권력을 행사했던 흥선대원군도 프랑스나 천주교도들과의 관계가 이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더욱이, 러시아의 통상 요구는 이후 지속되지 않으면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종결되었다.
결국,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천주교도들을 박해하기로 결심하였다.
병인박해는 이렇게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 결정으로 시작되었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7_0040_0030_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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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독일 카이저 마저 유대인놈이! 하고 오페르트 욕했지. 독일은 내심 떡고물좀 바래서 카이저가 친필편지도 써주고 총도 팔아주고 그랬는데 설마 왕 할아버지 무덤을 폭파시키려고 할지는 몰랐지... 오페르트가 동아시아 역사를 바꾸는데 한몫 했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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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넘네......(나도 카톨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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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서도 스파이나 다름없었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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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모르는 높으신 반동(구시대 회귀를 주장함)들 (클레멘스, 도미니코회) 때문에 하드 트롤링을 하게 되었지만 +오페르트라는 쐐기 카톨릭도 나름 구한말까지 의료 선교등 노력은 많이 했어요.....
(IP보기클릭)183.109.***.***
예로부터 무덤 건드리는 놈 치고 정상인 놈 없음(당시 고고학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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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천주교가 잘나가다 뻘짓한게 한두개가 아니라 세계사 배우며는 가끔 등장하는 이유기도 하지 대표적으로 십자군
(IP보기클릭)14.50.***.***
이상한놈이 자꾸 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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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넘네......(나도 카톨릭임) | 24.02.15 03:4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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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모르는 높으신 반동(구시대 회귀를 주장함)들 (클레멘스, 도미니코회) 때문에 하드 트롤링을 하게 되었지만 +오페르트라는 쐐기 카톨릭도 나름 구한말까지 의료 선교등 노력은 많이 했어요..... | 24.02.15 03:4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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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상상도] | 24.02.15 03:5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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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0.11t 쿰척 유게이에요? | 24.02.15 03:5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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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불교 들어올때도 있었던 말인거 보면 역사는 반복되는게 맞다. | 24.02.15 03:5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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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여, 활동내역을 보시구려. 처음부터 오직 선을 넘으려고 만든 계정 아니겠소. 뭐라 씨부리건 괘념치 마시오. 평화를 빕니다. | 24.02.15 04:1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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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서도 스파이나 다름없었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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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놈이 자꾸 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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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독일 카이저 마저 유대인놈이! 하고 오페르트 욕했지. 독일은 내심 떡고물좀 바래서 카이저가 친필편지도 써주고 총도 팔아주고 그랬는데 설마 왕 할아버지 무덤을 폭파시키려고 할지는 몰랐지... 오페르트가 동아시아 역사를 바꾸는데 한몫 했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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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천주교 선교도 당시의 위패 불태우기 사건과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 연달아 없었으면 한층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앞선 것들에 자극받은 조선이 병인박해 등을 일으키면서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이 연달아 일어나고 서로의 경계와 증오만 올라가는 양상이 되지 않았나... | 24.02.15 03:5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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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상황을 모르는 높으신 분들 말을 거부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죠...... | 24.02.15 03:5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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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천주교가 잘나가다 뻘짓한게 한두개가 아니라 세계사 배우며는 가끔 등장하는 이유기도 하지 대표적으로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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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중이 떠나는게 맞지 | 24.02.15 03:5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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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보면 딱히 요즘이라고 다름?ㅋㅋㅋ | 24.02.15 04:0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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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으로 신도 생겨난곳이라 카톨릭에서도 신경 안쓴건 아님.... | 24.02.15 04:0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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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 | 24.02.15 04:2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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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무덤 건드리는 놈 치고 정상인 놈 없음(당시 고고학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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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침략하던 놈들 어디 안가지 | 24.02.15 04:0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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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실제로 목숨 부지하기 어려울 짓을 저지르긴했으니까 | 24.02.15 04: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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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사람도 많았으니.. | 24.02.15 04: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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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로 판짜기를 했어야지 | 24.02.15 04:2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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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속 동료들조차 기겁을 했다는 오페르트의 상또1라이짓 | 24.02.15 04:2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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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임난시기부터 서양이랑 교류가 지속되고 있어서 거부감도 크게 있지 않있을거임 | 24.02.15 05:2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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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에(성상 밟기)와 가쿠레 키리시탄(기독교 밀교)/ 그리고 개항지에서만 외국인 거류가능등이 있었고 일본도 외국인(특히 선교사)를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봤음 전국시대 등에는 선교사를 받아들였지만 결국 에도시대등 평화로워지자 탄압의 대상이 된거나 다름 없음 일본이 페리제독의 흑선내항으로 인한 포함외교로 문이 열리고 바로 일본을 자기내 나와바리로 선언한 미국이 남북전쟁으로 시선돌리고 크림전쟁으로 러프영이 시선 돌리고 있어서 시간 벌었고 보불전쟁으로 프로이센을 포함한 독일 전채와, 프랑스가 시선 돌리고 해서 온전히 개혁 단행이 가능했던거 | 24.02.15 05:2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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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교사 쪽? 난 교역쪽으로 봐서 외세의 물건에 큰 거부감이 적었을거라고 봄 일본애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천주 개신교를 잡아 죽였는지도 잘암 | 24.02.15 05:3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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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인권이 동양에서 특히 왕토사상이 기반이되는 청 조선에서 피어오른 유교유학적 사상에 얼마나 모순되는지도 잘암 | 24.02.15 05:3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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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님 말이 뭔지는 더 자세히 알겠는데 일본도 거부하다가 보신전쟁등 내전을 겪고 나서야 온전한 개항이 가능했다 이거지 | 24.02.15 05:3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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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백성들이 착취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는게 골치 아팠을 것이고 조선은 나라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릴 상황이니 그래도 조선은 하지말란거 안하면 최소한의 자유는 주는 상황이긴 한거같은데 위패문제도 관청의 감독하에 태우면 제사안지낼 수도 있었으니 | 24.02.15 05:3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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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맞지 물질만 들어오다가 문화가 들어오면 골치아프지 근데 조선보단 쉬었을거란 생각임 문물이 동시에 들어온건 아니니까... | 24.02.15 05:4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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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굳이 바뀌어야 함? 이런 면모도 강했을 거다 그말..... 이미 안정됨(에도시대) 특정 지역에서 발전을 시도하면 특정 세력이 강해져서 각 번에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음 균형 발전하자니 돈이 어디서남? 등등 위기감들은 있다 그말 | 24.02.15 05:4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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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인 박해 베르뇌 주교님 관련 글에 나타난 병인 박해는 한국 천주교의 가장 크고 맹렬했던 4대 박해 중 1866년, 고종 3년에 마지막으로 일어난 대 박해입니다. 본 글에서 베르뇌 주교님이 했던 행동들은 물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겠지만 그에 앞서 한국 천주교는 1785년부터 거의 80년에 걸쳐 3번의 대 박해와 수 차례의 작은 박해를 겪었고 특히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는 어느 순간에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잠시 여유가 생긴 것 같으면 재발하는 식으로 불시에 신자들이 끌려가는 갑작스러운 형태로 일어났기 때문에 당시 조선의 천주교 총책임자였던 주교님이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점이 어느정도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실제로 이미 조선 땅에서 활동하던 베르뇌 주교은 병인박해로 순교하셨지요 | 24.02.15 04:5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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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황사영 백서 황사영 백서 사건은 위에 언급된 병인 박해보다 훨씬 이전이요 첫 번째 '4대 박해'의 시작이었던 '신유 박해'의 원인이 된 사건인데 당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잔혹한 박해 속에서 성직자들까지 처형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당시 한국 천주교회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수행한 '황사영 알렉시오'는 교황청에 '황사영 백서'로 알려진 문서를 전달하려고 시도했는데, 여기에는 조선 시대의 박해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서술과 더불어 해결될 기미가 없는 박해가 끝나고 천주교가 허용되길 원한다는 목적에서 외세의 무력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이 함께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사영 백서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죠 외세의 개입과 무력의 사용이라는 잘못된 방식으로 박해를 해결하려 했고 이로 인해 더 큰 박해가 시작되었다는 부분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있으며 반대로 황사영 백서의 내용이 정치적인 목적이나 권력의 탈취가 아니라 순수하게 신앙의 해방을 위한 목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부분과 황사영 백서에 기록된 내용들이 조선 초기 박해 상황을 굉장히 상세하게 서술해 놓아 성인들의 순교 기록을 확인하거나 박해가 이루어진 형태를 이해하는 몹시 귀중한 자료로 여겨지기 때문에 시대에 따른 참작 요소도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합니다. 당시 선교사였던 달레 신부님은 황사영 백서에 대해 '지나친 상상에서 나온 유치한 계획이며, 저 시대에 있어서의 한 몽상(夢想)이었음이 분명하다.'라고 표현하고 계시고 오늘날 까지도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요 | 24.02.15 04:5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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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4. 오페르트 오페르트 도굴 사건에 '페롱 신부'가 함께 했는데 앞선 병인양요와 같은 군사 작전으로는 박해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당시 칼레, 마르티노, 리샤르 신부님 등 조선 선교사들이 '무모한 행동이 박해를 가중시켰다'며 조선에 재입국하려던 페롱 신부님을 반대했죠 그냥 지금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네요 댓글이 길었지만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함께 있듯 다방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용 좋은 밤 되시길! | 24.02.15 04:5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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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 얘기로는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가톨릭을 종교 바탕으로 둔 제국주의 시대의 유럽에선, 과연 천주 아래 만인이 평등하다. 라는 말이 어울리던 시대였나요? 라는거죠. | 24.02.15 05: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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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조선이 천주교를 박해한 이유와 개항이 늦어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가져온 글들이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저 또한 모태신앙을 가졌으며 세례를 받았고 아직까지 신앙을 유지하는 입장으로서 신부님의 말씀에 깊이 동감합니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4110742 -뜬금없지만 천주교인이라는 증거로 올려봅니다.- 공군 훈련소에서 동기한테 받은 질문과 (조선의 근대화에 천주교가 방해가 된 이유/본문에서의 상술과 같음) 여타 사이트에서 나오는 반응과 질문들을 보고 설명하려다 단점만 부각시키고 악감정만 불러일으키게 되어서 저도 살짝 후회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계가 성숙해지려면 이러한 점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천주교는 무군무부라는 조선의 반응과 그리고 그러한 반응을 불러온 신자들의 행동들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로" 라는 구절을 이해하지 못한/혹은 모르는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지요. 세속 군주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신자들의 실수와 오해 정도로 보고 있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선교 과정에서 시도한 좋았던 부분을 따로 언급하지 못해 반감만 불러온 것은 죄송합니다. 또한 간접적으로 이용된 선교사들이 직접적으로 스파이로 활동한 것처럼 적은 것 같아서 수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부님도 좋은 밤 되십시오. | 24.02.15 05:1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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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이시네용 사실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예수님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하느님 앞에서 모든이가 평등하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 속에서 발생하는 필요에 의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가르쳐왔지요 왕도 귀족도 평민도 하느님 앞에선 평등하고 오히려 왕의 역할은 백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교리에 나타납니다. 다만 정해진 답이 있는 시험에서 오픈북 테스트를 해도 시험을 조지듯이 역사 속에서 항 | 24.02.15 05:1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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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교회의 문제로 대두된 것이 '신앙인이 신앙인 답지 못한 것'이었지요 마치 가난과 사랑의 실천으로 부패한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운 프란치스코 성인이 등장한 시기에 누군가는 십자군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4차 십자군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 처럼 사실 지금도 천주교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이야기가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며 진짜 신앙인답게 살아가지 않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답니다 | 24.02.15 05: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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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었어용 늦은 시간에 영상작업 하다가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당 | 24.02.15 05:1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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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하자면..... 위에 신부님과 제가 동의했듯이 글이 좀 과격하고 한쪽 입장에서만 묘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그런 일들이 없다고는 못하죠.... 위패를 불사르거나(윤지충 사건), 외세의 침공을 요청하거나(황사영 백서사건) 천주교도측이 조-프-영 삼국동맹을 제안하고 베르뇌 신부가 흥선대원군의 출두를 거부하거나 섭정의 아버지 묘를 도굴시도하거나(오페르트 도굴사건) 등의 사건은 실제로 있던 일이기는 합니다..... | 24.02.15 05:4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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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주교도 : 서양에서 본격적인 선교사들이 올 거야!! 프랑스 : 핫하 혁명 받아라!! 조선 천주교도 : 야잇 싯팔… 좀만 기다려보자… 프랑스 : 핫하 나폴레옹 받아라! 조선 천주교도 : 야잇 싯팔 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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