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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기타] 후금사)보.지리의 반란과 투항의 실록기록 삭제 문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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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119.196.***.***

보.지리
23.11.01 00:11

(IP보기클릭)118.46.***.***

보지의 반란이라니 청나라는 작성자만큼 음탕한 나라였구나!
23.11.01 00:11

(IP보기클릭)118.46.***.***

실버메탈
그래서 허접보.지는 왜 저런 사탕발림에 넘어간거임? | 23.11.01 00:17 | | |

(IP보기클릭)61.43.***.***

실버메탈
지난 17년여간 건주/후금과 누르하치에게 충성을 바쳐왔고, 누르하치로부터 섭섭치 않게 대우를 받아온 ㅂㅈ리가 동해 여진 세력의 후금에 대한 반란에 동참한 이유는 정확히 무엇인지 확실치 않다. 다만 그의 반란 이유에 관하여서는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하나는 위협이었다. ㅂㅈ리는 동해 여진에 대한 회유와 복속을 병행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에 걸맞는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주변의 모든 동해 여진계 세력을 한꺼번에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연합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거의 곧장 그들이 자신에게 반란을 종용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후금에 지원 요청을 보내도 과연 후금군이 지원을 오기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ㅂㅈ리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후르하계 암반들과 사할리얀 세력의 '반란 종용'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는 후금 수뇌부의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조치에 내심의 불만을 품었을 가능성이다. ㅂㅈ리는 혼자서 파견된 것이 아니라 30명의 상인과 함께 파견되었다.2 해당 상인들은 동해 여진에서 가죽을 거래하기 위해 파견된 이들이었는데, 사실 말이 상인이라곤 하지만 후금의 수뇌부, 누르하치의 지시와 결부되어서 ㅂㅈ리와 함께 움직인 이들이었다. 요컨대 상인파견의 목적에는 분명 가죽거래도 있었겠으나 ㅂㅈ리에 대한 감시 역시 포함되어 '있을 수' 있었다. 그들의 파견의 실제 목적이 어떠했건간에, 그들은 ㅂㅈ리에게 있어 감시자로 보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얼마 지나지 않아 ㅂㅈ리는 후금에 항복한 후르하계 암반들과 그 시졸 40여명까지 떠안게 되었다.3 그들은 본래 ㅂㅈ리가 허투 알라로 보낸 항복자들이었는데, 누르하치는 이들이 본인들의 가족들을 설득하여 후금에 귀부시키겠다고 건의하자 그들을 다시 ㅂㅈ리에게로 돌려보낸 것이었다. 그 중에는 회유를 통해 ㅂㅈ리에게 항복한 인물도 있었겠지만 무력을 통해 복속된 이도 분명 존재했다.4 그런 이들이 ㅂㅈ리와 사이가 좋을 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항복한 인물들이라고 해도 그 항복이 '강압적인 압박'에 의한 항복이었다면 그들 역시도 ㅂㅈ리에게 탐탁찮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이들이 자신과 함께 움직이게 된 상황은 ㅂㅈ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상황이 ㅂㅈ리의 후금 수뇌부 나아가 누르하치에 대한 불만으로 비화되었으며, 결국 ㅂㅈ리가 반란에 참여하게끔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외의 이유가 ㅂㅈ리에게 영향을 끼쳤을 수 있으나, 필자는 위와 같은 가능성이 ㅂㅈ리가 급작스럽게 후금에 반기를 든 이유에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쨌건, 그렇게 ㅂㅈ리는 결국 누르하치와 후금에 대한 반란을 결심했다. 1616년 음력 5월의 일이었다. 예전에 썼던 보.지리의 난 관련글에 써둠 | 23.11.01 00:1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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