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만 니어 콜라보 스토리 스포 있음
어차피 이벤트 끝물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주의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 분석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음
철학 전공자가 와서 갈! 하고 대가리 깨면 얌전히 맞겠음
인문학에 관심 좀 있다 하면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격언과 실존주의를 들어본 적은 있을 거임
어떤 웹소에서는 이렇게 비틀어서 드립으로 변용할 정도로 유명한 격언이지만
이 글을 쓰는 나도 '들어본 정도'에 불과하고, 고전을 독파하고 체득한 건 아님
여하튼 저기서 '실존'이 뭐고 '본질'이 뭐냐?
그건 대충 나무위키에서 들어준 예시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어떠한 사물의 본질이 무엇이건, 개개인이 스스로 그것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 정도로만 이해해도 될 것
이 관점에 따르면 니케의 본질은 (적어도 현시점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지상탈환을 위해 제작된 병기고
니어의 안드로이드의 본질은 지구탈환을 위해 제작된 병기임
이 둘은 태생부터 어떠한 '용도'를 위해 제작되었으므로 '도구'임
실제로 이번 이벤트에선 드물게도 니케들 스스로가 용도에 대한 언급을 함
니케의 존재 목적은 랩쳐의 절멸과 지상 탈환임
랩쳐를 절멸시켜서 그 목적을 달성하면?
목적을 상실한 도구는 폐기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임
"역할이 사라져"는 이러한 맥락을 함의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임
니케, 안드로이드와 대비되는 존재는 인간임
두 작품 모두에서 인간은 각기의 존재를 창조한 창조주인 동시에
탄생 그 자체에 목적이 없는 맹목적인 존재임
'수단'과 '목적'이라는 키워드는 고등학교 때 생활과 윤리나 윤리와 사상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칸트의 윤리학이 떠오르는 대목일 것임
칸트 윤리학에 따르면 '맹목적으로 탄생한 존재'는 곧 존엄한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임
이번 콜라보 이벤트의 주역은 콜라보 캐릭터인 A2, 2B가 아니라 프로덕트12 타입 양산형 니케들임은 누구나 동의할 거임
양산형 니케의 경우에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서 좀 더 잔혹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데
이들의 본질은 '공산품'임
일정한 품질과 일정한 성능, 동일한 목표를 위해 규격화하여 제작한 몰개성한 공산품
외모도 똑같고, 서로를 구분할 이름도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임
모델명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그조차 인간들이 저들을 구분하기 위해 정의한 것에 지나지 않음
즉, 데이터베이스의 key값과 다름 없음
우리가 주민등록번호나 군번을 이름이라 칭하지는 않잖음
거기다 이번 콜라보 스토리에선 한 가지 더 승부수를 던짐
여기서 등장하는 양산형 니케들은 '게이트 키퍼에 의해 복제되어 머릿속이 비어있다.'라는 설정이 덧붙여짐
알다시피 원래 니케는 인간의 뇌를 기계의 몸에 이식해서 만든 병기임
즉, 엄밀히 따지면 니케는 안드로이드 보단 사이보그에 가까운 존재인 동시에
한 때 맹목적으로 태어나 그 자체로 존엄했고, 유일했던 존재였음
그런데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증거가 사라진 거
원본을 모방한 복제, 그것도 인간을 모방한 복제?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바로 생각나는 작품이 있을 것임
블레이드러너와 그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가 바로 그것임
사실 이런 '실존주의'적인 테마(정확히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다루는 모든 SF 작품의 원전이라 할 수 있을 것임
공각기동대, 소마 같은 작품은 물론이고 당연히 니어 오토마타, 니케도 예외는 아님
애초에 전작인 니어 레플리칸트도 블레이드러너에 나오는 레플리칸트에서 따왔을 확률이 매우 높음
이번 콜라보 스토리에서는 해당 주제를 전면에 내세움
네 기의 양산형 니케를 조망하는 방식으로
블레이드러너에서 리플리칸트(안드로이드)가 인간과 구별되는 지점은 '감정이입 능력'임
리플리칸트들은 인간보다 감정이입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임
이는 원작인 전기양에서 더욱 부각되는 설정이었음
감정이입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그들의 수명이 짧기 때문임
감정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충분한 경험이 필요한데, 경험이 축적되기 전에 죽어버리기 때문에 리플리칸트는 감정이입능력이 부족한 것
즉, 감정의 존재는 곧 나라는 존재의 증명일 수 있음
내가 무언가의 복제품이라고 해도, 다른 경험을 쌓음으로써 같은 현상에도 다른 감정이 발현될 수 있으니까
감정은 같은 존재 내에서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구분자임
근데 그 기억이 내 것이 아니라면?
그 기억조차 복제된 것이 나의 '본질'이라면?
아까의 나무위키 예시를 다시 복기해보면 됨
그것도 상관 없음, 같은 것일지라도 내가 나를 정의하면 됨
이러한 딜레마에 대해서 양산형 니케들은 각기 다른 답을 내놓음
A2와 동행하던 P-12는 스스로의 용도를 부정함
그리고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스스로를 A2의 귀향을 도와주는 조력자, 길잡이로 정의하고
자신의 창조주인 게이트 키퍼를 참살함
또한, 그 일에 성공함으로써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충실감, 환희에 젖어 최후를 받아들임
따라서 P-12는 스스로의 존재목적을 자신이 정의했고
그 목적에 따라 행동하면서 쌓은 경험에 기반하여 감정을 지녔고
자신의 최후까지도 스스로 정하고 받아들임
블레이드러너에서 이와 가장 비슷한 인물은 로이일 것임
P-12는 로이처럼 네 기의 양산형 니케 중에 본질을 초월한 실존을 실현시킨 존재임
B-0006은 안드로이드를 만나 인간의 뇌가 없더라도 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음
그러므로 자신의 머릿속이 비어있든 말든 자신은 인간에 근사(近似)한 존재일 수 있다고 추측함
또한, 반복해서 랩쳐와 전투를 벌이는 제 복제품들에 대해 측은지심을 지님
니케의 복제품이라는 본질을 거스르고 감정과 감정이입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B-0006도 부분적으로는 본질을 초월함
반면, 6000-D는 양산형 니케 중에서는 복제품이 아닌 원본임에도 스스로가 복제품과 다름 없다고 결론을 내림
또한, 뇌만 멀쩡하면 몇 번이고 부활해서 랩쳐와 싸우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니케라는 존재의 끝을 자결함으로써 선택함
결국 6000-D는 도구로 정의된 스스로의 본질을 초월하지 못함
C-1002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답을 지휘관, 즉 창조주인 인간에게 갈구함
자신의 본질을 정의했던 존재에게 떠맡긴 셈임
여러 번 언급하지만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격언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임
C-1002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다른 최후를 맞게 되지만
제 존재에 대한 정의를 타인에게 갈구한 순간, 본질을 초월하지 못한 것임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게이트키퍼의 설정이 사람에 따라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데
이번 콜라보는 원본과 복제, 본질과 실존이 메인 테마였고
여기의 A2, 2B, 9S의 본질도 사실은 원본의 복제였다, 라는 설정은 꽤 아귀가 들어맞아서 영리하게 써먹은 것 같음
니어 오토마타와 니케를 모두 해본 유저라면 어렴풋이 느끼겠지만
니케는 니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임으로 추정됨
나도 니어 오토마타의 모든 엔딩을 다 봤지만, 솔직히 말하면 니어의 스토리는 좀 실망스러웠음
다름을 위한 다름처럼 느껴졌던 요소도 많고
스토리는 실존주의라는 주제의식을 위한 비극이 아니라 비극을 위한 비극을 작위적으로 조형한 느낌이라 감정이입이 어려웠음
근데 이번 스토리는 니어의 테이스트를 잘 살리면서도 니케와 니어의 공통분모이자 뿌리라 할 수 있는 SF적인 실존주의를 잘 살린 스토리라 썩 만족스러웠음
다만, 이런 주제는 너무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은유로 남기는 편이 훨씬 세련된 스토리텔링이 아니었을까 싶었고
'나의 감정이 내 존재를 증명한다'라는 명제가 어째서 성립하는지를 콜라보 스토리 내에선 보여주지 않은 게 아쉬웠음
그럼에도 이제는 해묵은 고전 SF적인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만족했으리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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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겜은 안해서 몰루겠는데 짤이랑 님 설명만 보면 6000-D는 가볍게 소모되는 도구의 반복적 죽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한 번 죽으면 끝인 존엄적? 완벽한 죽음을 갈구한거 같은데 그건 도구로서의 본질을 초월 못한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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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달소 개쩔지 나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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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핏 섹시 앤더슨! | 23.09.25 07:0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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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겜은 안해서 몰루겠는데 짤이랑 님 설명만 보면 6000-D는 가볍게 소모되는 도구의 반복적 죽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한 번 죽으면 끝인 존엄적? 완벽한 죽음을 갈구한거 같은데 그건 도구로서의 본질을 초월 못한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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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다고 생각됨 '스스로 선택한 최후'라는 건 나름의 의미가 있고, 부분적으로는 용도를 초월했다고 할 수 있음 근데 내 관점에서는 '부정'에서 그쳤다는 게 그 한계로 보임 더 나아가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까지도 스스로 정의해야 진정한 초월이라 생각했음 P-12를 그래서 넣은 거 아닐까 싶음 | 23.09.25 14:5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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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결이 아니라 자포자기로 복제품들 공격하다가 주인공 일행에게 죽습니다. | 23.09.25 07:3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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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댓에서 말했듯이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음 | 23.09.25 14:5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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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1679361015
양산형 부수다 주인공일행에게 당하고 자결하죠. 라고 기억하는데... 스토리 다시 한번봐야겠네요. | 23.09.25 08:5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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