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는 놀랐다.
핸들러 월터가 어떤 임무를 지시하더라도 스네일이 똥개라고 불러도 이구아스가 아무리 찝적거려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레이븐이 입을 연 것이다.
올마인드 또한 적잖게 동요한 듯 싶었다.
"강화인간 621, 레이븐. 임무 브리핑은 끝났습니다. 지금 막 일어나서 혼란스러운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브리핑을 할 시간은 없ㅅ"
레이븐이 이죽거렸다.
"아니 ㅆㅂ 그러니까 말해보라고. 내 안전을 확보한다 해서 믿었는데 눈 떠보니까 왜 루비콘의 대기권 위에서 어디다 들이박으려고 돌진 중인 함선 위에 있냐니까?"
올마인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레이븐의 말에 반박할 방법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올마인드는 약속했다. 그의 안전을 확보하겠노라고.
비록 그를 꾀어내서 트리거로 쓰기 위한 거짓말이었으나 아직 그 사실을 밝힐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건 그 뿐이었기 때문에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당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서 일어ㄴ"
"개소리 하지말고 답을 하라니까? 내가 왜 여기있냐고."
계속해서 말을 끊는 레이븐.
올마인드는 비록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의 감정만큼은 존재하지도 않을 뼛속까지 느껴질 정도로 이해가 됐다.
임무 브리핑을 하면 말없이 도와줄거라 생각했던 그가 처음으로 분노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평소였으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을 에어가 단 한마디도 안하고 있다.
분명 에어에겐 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올마인드에게는 느껴졌다.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에어의 시선이.
"..됐다, 그래 ㅆㅂ 일단 정리를 해보자. 지금 우린 자일렘에 있다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왜 있는지는 둘째치고 신더 칼라한테 제어권을 빼앗겨서 그것도 되찾지 못하고 있고 핸들러 월터한테 고전하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아니 ㅆㅂ 제어권을 뺏기는게 말이 돼? 너 기업에서 만든 AI라며. 신더 칼라한테 제어권을 뺏ㄱ"
"잠시만요, 레이븐. 신더 칼라한테 뺏긴게 아닙니다. 그 자의 AI 채티 스틱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아무리 심기를 거스르면 안되는 상대더라도 올마인드는 말을 끊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었다.
고작 일개 인간에게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븐은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불안한 올마인드가 레이븐의 반응을 확인하려는 순간 레이븐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니 진짜 ㅆㅂ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뭔 상관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즐거워서 웃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웃음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ㅂㅅ아 채티 스틱은 신더 칼라가 만들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가 다르냐고 ㅋㅋㅋㅋㅋㅋㅋ"
"레이븐. 그것은 엄청난 차이ㄱ"
"됐어, ㅆㅂ 니랑 이야기 해서 뭐하냐.. 그러니까 결국은 나더러 제어권 뺏는거 도와달라 이거지?"
"그렇습니다. 이대로 가면 자일렘은 자폭하게 되고 레이븐 당신 또한 무사하지 못ㅎ"
"안해 ㅆㅂ."
"...뭐라구요?"
올마인드는 경악했다.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수였던 그가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음에도 거부할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 않으면 당신은 죽는다구요?"
"어차피 뒤질 목숨이었는데 그냥 잠 좀 더 잤다고 치지 뭐. 통신 끊는다."
"잠깐만요!"
올마인드가 다급하게 레이븐을 말렸다.
"뭘.. 뭘 원하나요, 레이븐.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되돌려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 세운 '완벽한 계획'이었던 코랄 릴리즈가 물거품이 된다. 어차피 쓰고 버릴 말.
무조건 들어준다고 하고 일이 끝나는 순간 처리하면 그만이다.
"무엇이든? 흠.."
올마인드는 안심했다. 역시 레이븐 또한 인간이었다. 욕망에 이끌리는 그저 어리석기만 한 인간. 그런 인간 따위 이 올마인드의 손바닥 위에선...
"그럼 수치스럽게 애걸복걸 해봐."
"네? 고작 그거면 된다는 건가요?"
"수치스럽게 해보라고. 할 수 있으면."
"강화인간 621, 레이븐. 부디 부탁드립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응, 됐어 통신 끊는다."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다급히 사과부터 하는 올마인드. 대체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건지 올마인드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치심이 안느껴지잖아. 됐어 안해. 그럼 통신 끊는다."
그렇게 통신이 끊어졌다. 올마인드는 절망에 빠졌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올마인드. 잠시 괜찮으신가요?"
에어의 목소리였다. 올마인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에어의 통신에 바로 대답했다.
"에어. 레이븐을 어떻게든 할 수 없을까요?"
"....저도 레이븐이 죽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레이븐이 말한 수치스럽게 애걸복걸 하는건 그렇게 하는게 아닙니다."
에어는 레이븐을 살리기 위해 올마인드에게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 알려줬다.
.
.
.
.
'통신이 1건 있습니다.'
레이븐은 미간을 찌푸렸다. 보나마나 올마인드겠지. 신경을 끄려고 하는 순간 에어가 말했다.
"레이븐. 한번 들어보는건 어떨까요? 올마인드도 AI니까 학습하지 않았을까요?"
내키지는 않았지만 통신을 수락했다.
"ㅇ..위대하신.. 레이븐님.. 도..도저보다... 못한 ㅇ..ㅇ...암퇘지... 올마인드가 감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레이븐은 씨익 웃었다.
"이제야 좀 수치심이 느껴지네. 근데 좀 모자라다?"
"....원하신다면.. ㅇ..의체를 만들어서라도.. 당신의..아니.. 레이븐님의.. ㅂ..발가락을 핥겠습니다.. 제발.. 암퇘지 올마인드를 도와서.. 제어권을 뺏어주세요.."
레이븐은 침묵했다. 짧은 시간동안의 침묵이었지만 올마인드에겐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레이븐은 입을 열었다.
"의체 꼭 만들어놔라? 새끼, 다른건 못하면서 이런건 또 어디서 잘 배워왔네."
"감사합니다.. 레이븐.. 암퇘지 올마인드.. 성심성의껏.. 발가락 사이사이 깔끔하게 핥아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신은 끊어졌다.
레이븐이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본 에어가 물었다.
"..방금 협상 방식은 월터한테 배운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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