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45585947
1619년 음력 8월,새롭게 요동에 부임한 경략(요동 방위 최고급 사령관) 웅정필이 막 요양에 도착하여 요동 방비태세를 정비하고 있을 무렵,
누르하치는 다시 한 번 군대를 준비했다.
이번에 누르하치가 공격할 대상은 명나라가 아니었다. 그는 바로 자신의 수십년간의 숙적이자 마지막 남은 여진 거대세력, 예허를 공격할 심산이었다.
예허는 지난 수십년간 누르하치의 건주-후금과 경쟁을 벌여왔고, 그 결과 계속된 패배 누적으로 지금(1619년)에 이르러서는 그 군세와 규모가 대단히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1~2만명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누르하치에게 있어 충분히 위협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숫자였다.
만약 요동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 대부분이 출병한 틈을 타서 예허군이 남하하여 무주공산이 된 후금 영토를 공격한다면, 누르하치로서도 난감한 것이다.
그렇기에 누르하치는 명나라로부터 개원, 철령을 빼앗고, 그로 인하여 요동에 새로운 경략이 들어온 틈을 타서 예허를 멸망시켜 후방안전을 도모하려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르하치의 이런 선택 덕분에 웅정필은 요동방어를 손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음력 8월 19일, 누르하치는 다이샨, 아민, 망굴타이, 홍타이지, 안퍙궈, 피옹돈등을 지휘관으로 하여 대군을 이끌고 예허로 출병했다.
21일, 예허의 군주인 긴타이시와 부양구는 누르하치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즉시 성밖의 백성들을 각각의 성안으로 대피시키고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예허의 중심지는 서성과 동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 때 긴타이시와 부양구가 각각 어느 성을 담당했는지 확실치 않다. 사료에 따라 긴타이시가 서성, 부양구가 동성을 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긴타이시가 동성, 부양구가 서성을 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보다 기록이 많은 것이 후자의 경우이므로, 여기서는 후자를 따른다.)
누르하치가 먼저 이른 곳은 서성이었다. 부양구는 그 곳을 지키면서 결사항전의 태세를 보였으나,
누르하치는 코웃음을 치면서 다이샨을 필두로 한 사패륵(다이샨, 아민, 망굴타이, 홍타이지)과 절반의 군대를 서성 근처에 주둔시켜 그들을 포위케 했다.
그리고 본인은 안퍙궈, 피옹돈과 함께 동성의 긴타이시를 공격하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