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먼저 반겨준 것은 안개가 낀 듯한 뿌예진 시야. 몇 번 눈을 깜빡이니, 막 닦여진 창문처럼 앞이 깨끗해졌다. 아직 남은 피로함을 덜기 위해 하품을 길게 한 뒤 몸을 일으켰다. 끄응-하는 기지개와 함께.
"어라?"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팔을 내려보니, 고양이 발바닥이 보여졌다. 파란색 파자마에 그려진 발바닥이.
'내가 왜 이런 애들이 입을만한 파자마를 입고 있지?'
수면위로 물건 떠오르듯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공짜로 줘도 입지도 않을 옷을 입고 있었는지도 말이다.
"망할 핑크."
그 해맑은 미소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를 무슨 여자애들 인형처럼 옷을 입힌 뒤, 그 녀석 표정이 가관이었지. 무언으로 이렇게 들려오는 듯했고.
'우후후 너무 어울리고 귀엽다. 아기 고양이 같아.'
"진지한 것을 모르나. 머리가 꽃밭으로 가득하거나."
아니 뭐, 솔직히 귀여운 잠옷이긴 하다. 발자국 그림이 참 귀여워서 손가락으로 누르고 싶어질 정도야. 고양이 발바닥은 말랑말랑하잖아.
"가져도 되냐고 물어봐도 되나."
그 핑크 분명히 해맑은 미소와 함께 오케이! 라고 외치겠지만.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확실히 어제보다 움직이기 편했다. 뱃속에 밥을 채워서 그런가. 국밥인가 뭔가 하는 스튜 덕분에. 그 남자애, 정확히 변태가 만들어 준 거. 담요가 벗어진 상태에서 나를 업은.
"내가 변태에게..."
이 치욕 어떻게 갚아. 마음 같으면 그 변태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 얼굴이 뭉개질 때까지.
그것을 떠나서 걔가 끓여준 스튜가 맛있긴 했다. 메말랐던 혀를 젖혔던 스튜의 국물 맛. 아직도 머리에 멤돌고 있었다. 허브와 버섯 그리고 맨드레이크로 펄펄 끓인, 국물 위에 떠오른 고기를 비롯한 건더기들은 더욱더 식욕을 자극 해주었다. 당장 떠먹고 싶을 정도로.
국물과 함께 먹은 허브와 고기는 먹으니 말 그대로 환상적인 조합을 보여주었다. 냄비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먹게 할 정도로.
'인정해야겠네.'
밥은 정말 잘 만들었다는 것을. 하나 더 끓여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하음- 하는 하품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작불은 꺼진지 오래라고 말하 듯 검은 숯으로 변해 있었고, 주변은 인기척 하나도 없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얘들아?"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툭 치기만 해도 그대로 쓰러질거 같은 느낌과 함께.
"어디 간거야? 말도 없-"
도끼에 베인 나무처럼 앞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부딪힌 턱과 무릎은, 까칠한 벽돌의 바닥에 긁힌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 아파..."
턱의 쓰라림을 느낀 체, 땅을 짚은 내 손을 들어보았다. 오랫동안 운동도 제대로 못 했다는 듯, 근육이 많이 위축된 내 손의 주먹을 폈다 피면서.
"....망할..."
퍽-퍽-퍽-
"내가! 왜! 그딴 함정에 걸려서! 망할! 망할!"
주먹으로 땅을 치기 시작했다. 입에 험한 말을 내 뱉으면서.
몇 번 이었는지 잃어버렸다. 망할 이라고 외치는 것을. 분한 감정도 들었다. 뻔한 함정에 걸려, 몬스터에게 먹혀버린 것에. 무언가를 발견하면, 안전한가 먼저 확인하는것이 기본인데. 조금 더 침착하게 행동해야 했거늘. 이런곳에 왜 분숫대가 있지? 라는 의심 먼저 해야 했거를.
툭-툭-
귀 가까운 곳에 들려오는 물 떨어지는, 땅을 치던 내 손을 멈추게 해주었다. 설마해서 천천히 들어보니, 떨어지고 있었다. 붉은 색 물방울이. 주먹에서. 한방울, 두 방울, 세방울...
"....하...하하하하하."
입에서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서서히 올라오는 쓰라림은, 마음속 어딘가에 남은 의문을 확신으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살아 있구나. 정확히는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해야 하려나. 그 망할 괴물의 뱃속으로 밀려들어 갈 때, 돌로 변하면서 부서졌던 몸이 그대로 다시 붙여져 있었다.
움직일수 있었다. 양 팔의 손가락과 양다리의 발가락 전부다.
저벅-
"누구?"
핑크하고 변태가 돌아왔나 하다가, 커가는 발소리는 한명이 아닌 여러 명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막대기라도 좋으니 제발-이라고 말하면서 바닥에 손을 더듬어 보았지만, 쥐여준 것은 오직 조약돌뿐이었다. 담요로 온몸을 감쌌다. 언제든지 던질 준비 하게, 조약 돌 하나를 쥐면서.
칠흑 속에 들려오는, 무엇인지 모르는 미지의 소리가 커질수록 내 몸을 감싼 감요를 더욱 더 꼭 쥐었다. 피부를 타고 올라오르는 공포를 느끼면서.
하지만 그 공포감은 서서히 드러내는 실루엣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다. 쇠약해진 내 몸을 일으켜 세울 정도로.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공통된 복장들을 입고 있었다. 내가 입었던 갑옷과, 등을 두른 후드 달린 푸른색의 망토.
"모..두들...."
내가 사랑하고,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것도 멀쩡하게.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
'무사했군요, 다들 무사했어. 나만 빼고 다 죽었나 걱정했는데.'
여러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대신 눈물이 왈칵 나오면서, 떨리는 다리로 절뚝거리면서 다가갔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었다.
다시 만났다고. 재회했다고. 내 동료들이 나한테 왔어!
"대장님! 언니들! 얘들아!"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가리던 이들에게 손을 뻗자, 뒤로 물러가듯 서서히 멀어졌다.
"뭐 하는 거야! 장난 치지 말고!"
다리 부러질 각오로 달려갔지만,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목청껏 높게 외쳐도 어떠한 미동도, 심지어 대답조차도 해주지 않은 체
"나를 두고 가지마아아아아아!"
투둑!
"!?"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땅으로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 부분에 감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설마 해서 고개를 내려보니....
...아....
사람 발 모양의 돌 조각이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망치로 휘두른 듯, 위의 부분이 부서진 체. 하나가 아닌 둘이나.
"시... 싫어..."
설마 해서 양손을 들어보았다. 분홍색이었던 피부색이 변하였다. 돌과 비슷한 회색으로. 손가락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무겁다는 감각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싫어어어어어어어-"
외침과 함께 돌이 된 양 팔이 부숴져 가루가 되었다. 양다리, 양팔을 이어서, 석화화는 내 얼굴까지 타고 올라와 소리지르는것 조차 허락하지 못하게 하였다.
파자마를 입은 체 팔과 다리가 없이 몸뚱아리만 남아 있던, 나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야 하지만 입을 열 수 없는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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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주소 및 나머지 이야기: https://novelpia.com/viewer/355085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닉네임}님.
1주일 휴식 끝내고 에피소드 4와 함께 다시 재연재 시작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p.s 오타 지적 및, 피드백 그리고 추천과 덧글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