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은 이제 잡히지 않았느냐고요? 그렇긴 하죠. 2022년 한때 9%를 웃돌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엔 3%대로 안정됐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물가상승률’이 아니라 ‘물가 수준’ 자체에 반응합니다. 물가 상승 속도(빨리 오르느냐 천천히 오르느냐)보다는 절대 가격(가격이 높냐 낮냐)이 소비자 입장에선 훨씬 더 중요한 거죠.
아무리 인플레이션이 둔화해도, 마이너스로 돌아서지 않는 한 가격은 계속 오릅니다. 물가상승률이 3%이든 1%이든, 소비자에 와닿는 건 ‘2020년보다 지금 물가가 훨씬 높다’는 사실이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2021년 1월 이후 3년 동안 제품과 서비스 가격은 이 정도 올랐습니다. 임대료 19.5%, 중고차·트럭·육류는 20%, 레스토랑과 식료품 21%, 항공료 23.5%, 전기료 28%, 가스 34.6%, 계란은 37.4%, 자동차 보험료 44%.
특히 가격이 오른 제품이 식료품이라면 그 영향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식료품·휘발유처럼 자주 사는 물건 가격은 아주 잘 기억합니다. 대신 작년에 산 세탁기나 침대 가격은 잊어버리죠. 미국에서 가구·가전제품 같은 고가품 가격이 하락세이지만 소비자들은 ‘가격이 다 뛰었다’고 여기는 이유입니다. 햄버거나 과자, 과일을 사는 데 전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게다가 그 가격이 당분간 떨어질 것 같지도 않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훗날은 생각하지 않고 화끈한 정책을 내놓는 거야 흔한 일이죠.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내놓은 정책이 되레 경제를 쑥대밭으로 내놓은 대표적인 사례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있는데요.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인플레이션에 대응한다며 경제의 모든 물가와 임금을 90일 동안 동결하는 무지막지한 행정명령을 발표했습니다.
언론과 경제학계는 기절했지만, 여론조사에서 75%가 이를 찬성했고 단기간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죠. 이듬해 대선에서 닉슨 대통령은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는데요. 이후 미국 경제는 전대미문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고물가)에 처하며 가라앉습니다. 미국 정치가 역사에서 배워서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진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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