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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우려와는 달리 본대로 호송되었던 밴시는 응급 수복을 받을 수 있었고
그녀의 복귀 소식을 접한 연구원은 곧바로 바이오로이드 숙소를 찾았다.
밴시가 사용하는 격실의 문을 살며시 열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가 들어오는 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가로로 높인 침대 위에 앉아,
무표정으로 정면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밴시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문 앞에 서 있는 연구원을 발견한 밴시가 경례를 하려던 모양인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듯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하자,
그가 황급히 제지 시키고 다시 침대에 앉혔다.
이윽고…
“죄송합니다…”
“먼저, 구해줘서 감사하다고 해야되는 거 아냐?”
“가… 감사… 합니다…”
밴시의 다분히 수동적인 반응에 어이없어하던 찰나,
“고작 저 같은 개체 하나 때문에 인간을 위험에 빠뜨리다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몸은 어떠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괜찮은가 보구나?”
“네… 저는… 괜찮습니다
....
죄송합니다…”
내내, 정면을 응시하고 있던 밴시는 늘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풀이 죽은 듯했다.
지난 일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계속 말을 거는 것이 밴시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연구원은 잠시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공습 이전엔, 비행시험을 할 때나 시험 대상 바이오로이드들을 잠깐 만났던 그였기에.
바이오로이드의 숙소를 직접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인 1실로 이뤄진 5평 남짓한 방에, 좌우로 책상과 캐비닛이 배치되어 있고,
가장 안쪽 벽엔, 현재 밴시가 아래쪽을 사용하고 있는 2층 침대가 놓여있었다.
조금 좁아 보이긴 했지만,
군인들의 신식 내무반이나, 학생들의 2인 1실 기숙사와도 우선은 흡사한 모양새였다.
그리고는 밴시가 사용하는 책상을 한번 둘러보았다.
평소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전투일지가 기록된 수첩과 펜 만이
앞에 홀로 올려져 있던 것 외엔 책상 위는 마치 새것처럼 깨끗한 모습이었고,
그 위의 책장에는 편대전술, 바이오로이드 최신항공기술, 무장과 같은 관한 군사 서적들과
각종 정비 교범들만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꽂혀 있을 뿐…
따로 구경할만한 물건이 하나 없었다.
전입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라고 하기엔 바로 맞은편
그리폰이 사용하는 책상과 너무나도 대조되었는데,
사실 그쪽도 딱히 특별한 건 없었지만, 약간의 화장도구와 잡지, 소설책, 그리고
사탕과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와 함께 그 쓰레기도 조금 놓여있어,
누군가 이곳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냄새가 나긴 하는데…
아무리 바이오로이드라고 하지만,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는 걸까 싶던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그 재미없어 보이는 수많은 책 사이에서
책이 아닌 무언가가 함께 꽂혀 있는 것이 연구원의 눈에 들어왔다.
난해한 활자들 사이에서 어두운 몸체에 금빛 경첩을 반짝이고 있던 그 물체는
무언가를 담은 케이스 같아 보였다.
분명… 바로 뒤의 그리폰이 쓰는 자리만 같았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소품이었겠지만,
무심하게 정돈된 물건들 사이에서 무언가 조금이라도 어긋나 있는 부분이었던 터라
그곳으로 시선이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쓸데없는 궁금증이 조금씩 커져만 가던 중…
“꺼내 보시겠습니까?”
어느샌가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밴시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어… 어, 이거…?”
“꺼내 보셔도 괜찮습니다…”
갑작스러운 밴시의 제안에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볼지를 한참 고민하고 있던 그였다.
그렇게, 책장에서 조심스럽게 케이스를 꺼내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둠 브링어 휘장의 날개 모양을 본뜬
꽤나 고급스럽게 포장되어 있지만, 다소 투박하게 생긴,
아주 독특하진 않지만, 여태껏 구경해본 적이 없었던 은빛 훈장이 드러났다.
『귀관은 양차 연합전쟁 및 기타 분쟁지역의 전투에 참여하여 크게 공헌하였음으로
다음 공로 훈장을 수여함』
1천 회가 넘는 출격횟수, 수십만 톤이 넘는 폭탄 투하량과 몇백 단위의 지상 전력 격파기록,
그리고 몇 건의 공중 격추 기록까지…
연구원은 밴시의 화려한 이력에 적잖이 놀랐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앉아있는 밴시의 계급은 소령이었다.
이전에도 바이오로이드를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던 그였지만,
서류상으로라도 접해보았던 수많은 밴시들의 계급은 대부분 위관이었는데,
이 녀석은 어떻게 소령이 될 때까지 진급해서 남아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멀쩡히, 그것도 이례적으로 빠르게 수복을 받고 재배치된 것 또한,
이러한 전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토록 많은 전쟁에 투입되고 전투를 치르며,
죽을 고비 역시 숱하게 넘겨 왔을 텐데도 불구하고
겨우 이 정도 대우밖에 해주질 않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 사람이라면 별을 몇 개는 달고도 남았을 텐데 겨우 소령…?
- 훈장이라도 좀 성의있게 만들어주지 이게 뭐야? 무슨 싸구려 기념품도 아니고…
연구원이 밴시의 훈장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오만 생각에 빠져있던 그때였다.
“가지시겠습니까?”
“뭐…?!”
“그 훈장… 가져가시겠습니까”
“이… 이걸…?”
또다시 얼어붙은 연구원을 향해
“네… 그 훈장… 제가, 드리겠습니다.”
밴시는 평소의 그 감정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마냥 그를 응시하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부디… 받아주시겠습니까?”
“이걸… 갑자기 왜…”
“절 구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아니, 이건… 네가 그렇게 고생해서 받아낸 거잖아?! 이걸 내가 어떻게 가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초계 임무에 실패하고도 모자라…
받지 말아야 할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살아 돌아온 이상…
제겐… 더는 의미가 없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군사용 바이오로이드로써, 드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부디… 받아주시겠습니까?”
“이런 보답은 안 해줘도 돼… 아니, 애초에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잖아?!
그나저나 너 이거, 규정상 패용하게 돼 있지 않아?
뭐… 행사라도 한다 하면 달고 나가야 할 텐데…?
그거 걸리면… 나 때문에 징계 먹는 거 아냐?”
“회수해 간 경우는 참작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실은, 상시 패용이 원칙이긴 하지만,
제겐 그저… 비행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장신구일 뿐이라서…”
“뭐야… 그런 거였어?”
훈장의 행방으로 한창 때아닌 공방을 벌이고 있던 그때였다.
“야!”
별안간 2층 침대의 윗 칸에서 짜증과 비아냥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용이라고 다 너 같은 놈만 있는 건 아니거든?!”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그리폰이 어느새
침대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 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 안녕? 하하… 거기 있는 줄 몰랐었네”
“인간… 여기가 아무리 우리 숙소라곤 해도 최소한 인사라도 하고 들어와야 되는 거 아냐?
응? 불쑥 찾아와서는 남의 물건이나 훔쳐보구 말야… 응…?”
“하… 그… 그래? 미안, 깜빡했네…”
“뭐… 오늘 한번은 특별히 봐, 줄, 게
내 룸메이트의 은인이라는데 이 정도쯤이야 뭐…”
”근데… 너도 우리가 얘기했던 거 다 듣고 있었잖아?!“
”아 아니… 그… 그게… 숨어있었던 건 아니거든?!“
”숨어있었다고 얘기한 적은 없는데?“
”아… 아무튼!“
뜻밖의 반격에 당황한 그리폰은 빠르게 화제를 되돌렸다.
”그… 그나저나 참 별일이야?, 저렇게 숫기 없는 애가 선물도 다 주고?“
연구원은 잠시 잊고 있었던 훈장의 존재를 다시 자각했다.
”칫, 나한테는 말도 한번 재대로 안 걸어 주더니…
인간, 너 얘가 얼마나 재미없는 앤지 알기나 해?
비행 스케줄도 많은 주제, 맨날 정비한다면서 방에는 들어오지도 않구…
얼굴이라도 보면 뭐해, 지 혼자 저 이상한 책이나 보고 앉아있는데?!…
저번에는 크림이라도 내꺼 좀 쓰라고 그랬더니,
자기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저기 저 보급 나오는 싸구려 로션 하나로 충분하데?!
저러고 관리는 어떻게 그렇게 잘 하는지 몰라?!…“
계속되는 그리폰의 비난 섞인 폭로를 듣던 연구원은 도리어 무안해지기 시작했지만,
밴시는 그게 어떻냐는 듯,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물끄러미 지켜만 보고 있었다.
”좋겠어 인간, 이런 분한테 선물도 다 받구…“
”그치만, 이건…“
”흥!… 참…, 내 룸메이트는 왜 이렇게 이상한 애들만 걸리는지 모르겠다니까…?
뭐… 하긴, 자기 사진을 오만 데다 다 붙여놓고는 구역질 나는 짓만 골라서 하고 다니던
애보단 지금이 훨씬 낫긴 하지만 뭐… 으으… 그러고 보니 걔도 초록 머리였어… 으으…“
”아… 알았어 알았어 하하… 이제그만, 들어가 봐야겠다.
아무튼…, 밴시,
고마워!“
”아닙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는 떨떠름하게 훈장이 들어있는 케이스를 챙겨 들고는 그녀들의 방을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그는 숙소로 걸어가며 훈장을 다시 꺼내 보았다.
“의미가 사라져서 준다는 건 둘째 치고… 비행하는데 거추장스럽단 건 대체 뭐야…?“
좀전의 상황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뒤로하고, 훈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훈장치고는 단순한 모양새에, 표면마저 거칠게 처리되 있었지만,
어쩐지 그냥저냥 달고 다니기엔 차라리 무난한 모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나중에 문제 생기면 돌려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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