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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이 분산된 이후 기동형 바이오로이드들은 각자가 소속된 소규모 비행 중대가 담당하는
공역 내에서의 자유 소탕 임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그날도, 그녀들은 폐허가 된 도시 상공을 교대로 비행하며 지상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어딘가 숨어있을지 모를 철충을 수색하고 공격하며, 산발적인 교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다들 한창 초계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
"여기는 밴시, 현 시각 17시48분, BA32 부근에서 중장형 철충 발견, 저거너트로 추정."
폐허가 된 건물 틈 사이에서 미상의 지상 병기가
늘 그렇듯 홀로 비행에 나섰던 밴시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움직임이 둔한 중장형 개체가 이전엔 포착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약간 꺼림칙하긴 했으나
밴시의 담당 공역은 철충화된 공장지대 부근의 상공이었던 터라,
어떠한 형태의 철충이 매복해 있는 것도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밴시는 주위를 천천히 선회하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주변은 조용했고, 목표물은 좁은 건물 사이에 끼어있어 기관포 사격은 어려워 보였다.
"인근에 다른 적기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음.
적 지상 병력 선제 차단을 위해, 목표물에 급강하 폭격을 수행하겠다. 이상!"
밴시는 고도 3000m까지 날아오른 뒤, 능숙하게 날개를 뒤집으며 급강하했다.
적막했던 도심지 상공에서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2500m… 2000m… 1500m… 1000m… 500m!, ‘삐~’
고도 경보음이 울려오는 즉시, 그녀는 폭탄을 투하했고,
저거너트의 장갑을 정확하게 꿰뚫고 폭발하며
그 덜떨어진 철충덩어리를 산산조각내었다.
자세를 회복한 밴시는 보고를 이어나갔다.
"목표물 파괴 확인. 해당 지역에 대한 초계를 계속…
크읏…!"
그 순간 건물과 잔해들 사이에 매복해 있던, 수십 여대의 나이트칙, 레기온,
그리고 공중폭발탄을 쏘도록 개수된 칙 스나이퍼들이 마치 노린 듯, 뛰쳐나왔고
100여 미터의 낮은 고도를 비행하던 밴시를 향해 즉시 엄청난 양의 화망을 형성했다.
수많은 파편과 총탄들이 날아들며 비행 장비는 물론 신체 여기저기에도 상처를 내었고,
힘겹게 비행자세를 유지하던 밴시는 곧, 중심을 잃고 지상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파괴된 도심 한가운데, 밴시는 상처를 부여잡으며,
시야가 차단되는 모퉁이로 힘겹게 기어가
비행 장비를 벗어던지고 건물의 외벽에 몸을 기대었다.
비행 장비는 완파되었고, 심한 출혈에 다리까지 부러져 걸을 수조차 없었다.
"A-87 밴시 1001, 피격으로 비행 불가 및… 윽…
심각한 신체부상으로, 자력 복귀… 불능…
하아… 하아…"
밴시는 재킷 주머니에서 평소, 전과나 작전상황을 기록할 때 사용하던 펜을 꺼내 들었다.
"…
이후 대응 절차에 따라…
본 기체의,
자체적인 파기 절차를… 수행… 하겠습니다…"
그녀가 펜의 뒷부분을 잡아 뽑자, 자결용 극약이 든 카트리지와 바늘이 드러났다.
”후… 결국… 이렇게…“
밴시는 한동안 검붉은 주사제가 충전된 펜을 덧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어디선가 들려오던 날카로운 제트엔진 소리가,
거센 바람과 함께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별안간, 비정상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전투기 한 대가, 회색빛 동체를 드러내며 그녀가 불시착한 지역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그것은 곧, 공중에서 천천히 정지하더니, 수직으로 내려앉기 시작했고
그 광경을 넋이 나간 채 지켜보던 밴시를 노즈기어의 랜딩 라이트로 비추며
바로 옆 도로 한가운데 안착했다.
강렬한 소음과 착륙등의 불빛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가운데,
조종석에서 무언가 손에 든 채 뛰어 내려오는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전날 밴시를 찾아왔던 연구원이 검은 코트 자락을 바람에 흩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헉… 대… 대체 왜…?
이… 이곳은 위험지역입니다. 당장 탈출하십시오!… 젠장…!“
하지만, 연구원은 그녀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생존키트로 상처를 대충 싸매고는 밴시를 들어 올렸다.
”이 녀석… 보기보다 가볍구나?“
하는 것도 잠시,
”으읏… 저 항공기는… 1인승입니다. 어서 빨리… 저를 버리고 탈출하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충분히 갈 수 있어!, 잔말 말고 꽉 잡기나 해!“
연구원은 밴시를 무릎 위에 앉히고 비행을 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전투기를 향해 몇 걸음을 채 움직이기도 전에
하늘에서 돌연, 수상한 엔진 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하더니,
자주빛을 내는 물체가 지상을 향해 빠르게 접근해오는 것이 연구원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헉!, 조심해!“
밴시를 안은 연구원이 건물의 외벽 뒤로 몸을 날리자마자
와습이 엔진을 켜둔 채 내려 앉아있던 전투기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와 충돌했고,
그대로 굉음을 내며 폭발해버렸다.
주변은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이 둘의 앞에는
한때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였을 지도 모를 고철과 플라스틱 복합재 덩어리가
자욱한 연기를 내며 새까맣게 전소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
”....“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겠어!“
그때 밴시가 다시 힘겹게 예기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크읏… 저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하며…
더 이상의 전투 기능을… 윽…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빨리 저를 버리고… 속히 탈출하셔야합니… 흐읏…“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아군 지역하고 멀리 떨어진 데는 아니었으니까
금방 복귀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밴시를 고쳐 업고 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둘은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주변을 살피고
좁은 골목과 잔해 사이를 선택해 순조롭게 이동해 갔지만,
이미 늦은 시각, 불빛이 없는 도시는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철충은 어둠 속에서도 살덩이들을 잘 식별해낼 수 있었기에
하는 수없이 날이 밝을 때까지 안전한 곳을 찾아 밤을 지새워야 했다.
연구원은 어느 폐건물 안으로 숨어 들어갔고, 적당한 곳에 밴시를 눕혀 놓았다.
”해가 뜰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야겠어.“
”조금만 기다려, 담요로 쓸만한 걸 찾아올게.“
설상가상으로 기온은 영하에 가깝게 떨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불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사무용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쓸만한 물건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가 겨우 커튼과 카펫 같은 대용품이라도 잔뜩 뜯어서 돌아와 보니,
밴시가 어느새 스스로 이동해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왜 그쪽으로 간 거야? 누워서 편하게 쉬어“
”지금은… 이 자세가 좋을 것 같습니다…“
연구원은 그녀의 상처를 다시 한번 천천히 살펴보았다.
복부에서는 파편과 총상들로 인한 출혈이 아직도 완전히 멎지 않았고,
한쪽 다리는 크게 부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 손을 쓸 방도가 없었기에 연구원은 생존키트를 가져와서
상처들을 압박이라도 제대로 해주었고 가져온 천 쪼가리 중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골라 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다행히 철충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지만, 추위가 이 둘을 강타했다.
그도 쪼그려 앉은 채 카펫과 커튼 쪼가리들을 몸에 휘감고는 추위에 떨며
이따금 주위를 둘러보거나 밴시의 상태를 확인했다.
밴시는 어쩐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밴시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저기…“
”....?“
”저와… 체온을 나누시겠습니까…“
”뭐…? 뭐라고…?“
”제겐… 생존용 체온유지기능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저를 한번… 안아보시겠습니까…?“
연구원은 꺼림칙했지만, 거적때기를 덮은 체로 밴시 옆으로 천천히 이동해 가서
살짝 몸을 기대었다.
꽤나 따뜻한 열기가 그에게 전달되어 왔다.
”몸은… 좀 어때?“
”저는… 괜찮습니다.“
”여긴 워낙 깊숙한 곳이라 조금 자도 괜찮을 것 같아“
”네… 알겠습니다…“
체온의 따스함과, 몰려오는 노곤함이 겹친 연구원은 밴시의 곁에서 곧, 잠이 들어 버렸다.
밴시 역시 눈을 감는가 싶더니, 그가 깊게 잠이 들자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밴시는 연구원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끌어당겨 완전히 자신의 앞에 놓이도록 끌어안았고,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생존용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언제든지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팔을 빼내고는 홀로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수상한 기척이 들리자 총을 힘겹게 들었다가 내리기도 하며…
몇 시간이 흘렀을까?
거친 호흡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연구원은
밴시의 가슴팍에 놓여있던 자신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헉… 지금 몇 시지? 윽… 이게 뭐야?!"
간밤에 상처에서 멎지 못한 선혈이 연구원의 검은 코트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고,
늘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밴시의 얼굴은 더 이상 고통을 숨지지 못했다.
”하아… 하아…
이제…
하아… 하아… 어서…“
그녀는 더는 말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 이젠 정말 시간이 없다!
연구원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권총을 밴시에게서 빼앗은 뒤,
그녀를 다시 등에 업고 서둘러 도심지를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철충의 세력권에서는 벗어 난 듯했지만,
이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등 뒤가 점점 차가워져 가는 것이 직접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밴시는,
"저를… 재발… 저를… 흐으…"
"그만해! 버리고 갈 거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어!"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연구원은 평소 하늘에서만 봐 오던 도심지의 공원 한가운데 멈춰섰고,
"여기쯤이면 되겠지?!"
허공으로 붉은색 신호탄을 발사했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디선가 경박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정지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연구원은 밴시가 떨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손을 앞으로 들었다.
그러자,
"멍청아!, 누가 수하 그렇게 하라고 했어! 철충이 손이 있냐?! 엉?!"
"저건 인간이잖아?! 빨리 안 가고 뭐 해 이 새끼들아!"
브라우니들이 황급히 달려와 그들을 에워쌌다.
"괘,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덴 없습니까?! 어디 이상있는덴 없습니까?! 아픈덴 없습니까?!"
사방에 묻어있는 밴시의 핏자국 때문인지 브라우니들이 소란스럽게 연구원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고
힘이 풀려 있었던 밴시는 땅으로 내팽개쳐지고 말았다.
"아니! 난 괜찮아! 괜찮다고! 재발 그만!"
그들에게 싸늘하게 식어가는 바이오로이드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그는 하는 수없이,
"명령이다! 당장 저 녀석부터 살리라고 어서!"
"어… 엇, 네… 넵!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무대가 도착했고, 밴시는 들것에 실려 호송되었다.
"휴… 괜찮을까?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연구원은 우선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걱정이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
군용 바이오로이드의 처우에 대한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채
연구원은 브라우니들의 호위를 받으며 기지로 향했다.
ps,
혹시나 해서..
노즈기어의 랜딩라이트(착륙등)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여담의 여담이지만, 이걸 밴시도 들고있는데...
(실제 슈투카의 경우) 이런식으로 쓰는 물건이라서..
굳이 필요도 없는데다 각도도 안나와서 쓰지도 못할텐데
대체 이걸 왜 달고있냐고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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