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박지원은 20대 때부터 정계 진출에 꿈이 있었다. 막내라 친형들이 많은데 그 중 큰형님[1]처럼 정치를 하신 적이 있었던 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났던 사람이 놀랍게도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이었다. 박지원은 전경환과 가깝게 지냈고, 전두환의 미국 방문 환영위원장을 맡았고 그 일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애쓰던 수많은 양심적인 인사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또 박지원은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전경환의 도움으로 민주정의당에 입당해 전국구(지금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으려고 했었으나 해외교포라는 결격 사유로 인해 좌절되었다. 미안했던 전경환은 엄청난 이권이 있는 사업을 제의했지만 바로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83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을 김경재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고, 박지원은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전해들은 뒤, 통렬하게 반성했다.[2] 김대중 앞에서 절을 올리고, "선생님, 제가 잘못 산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주화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라도 놓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 후 김대중의 후원자로 활동하였으며, DJ가 하던 인권문제연구소 일을 재정적으로 돕고 국내에서 동교동계 인사들에게 DJ의 메시지를 전하는 ‘밀사’역 등을 맡았다.[3] 이후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며 김대중이 사면되자, 박지원 역시 미국에서의 사업을 모두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립유공자 박종식(朴鍾殖 1910년 ~ 1948년) 선생으로 1993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42년생이 83년도에 32세야?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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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항..그럼 맞을수도 있지.영감쟁이가 주어를 애매하게 써서 치매온줄 알았네 ㅋㅋㅋㅋㅋ | 25.06.16 22:3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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