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루리웹 애니메이션 유저 칼럼 시리즈입니다. 일정기간 동안 루리웹 애니갤러리 상단 공지로 노출될 예정입니다.
필진으로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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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후못후, AIR, CLANNAD, 그리고 하루히. 아직도 내 친구는 하루히 3기를 믿고 있다. 불쌍한 것...)
200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교토 애니메이션, 약칭 쿄애니이라는 제작사가 끼친 영향은
80~90년대 선라이즈/가이낙스에 비견됩니다.
'풀 메탈 패닉 후못후'(2003)와 'AIR'(2003), 'CLANNAD'(2007, 2008) 등
유명 라이트노벨, 게임의 성공적 미디어믹스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쿄애니는
2006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로 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다시 한번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게 됩니다.
(8주간 반복되는 여름방학. 전설의 엔들리스 에이트. 뭔가 이상하면 절대로 기분 탓이 아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쿄애니의 전성기.
그러나 자사 오리지널 시리즈인 'MUNTO'의 연속된 흥행 실패와
AIR, CLANNAD와 더불어 게임 회사 Key의 대표작인 'Kanon(2006)'의 부족한 완성도로 인해
위상이 흔들리던 와중, 야심차게 내놓은 하루히 속편에서 일어난
'엔들리스 에이트' 사태로 인해 쿄애니는 미증유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하루히 빠진 쿄애니는 에반게리온 빠진 가이낙스 꼴이 나는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죠.
(내년 1분기 방영되는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CM 영상. 언제나 그렇듯, Kyoani finds a way.)
그리고 지금, 2017년의 쿄애니는 어떨까요?
선라이즈, 토에이 등 황금시간대 제작사들을 제외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가장 고수익을 올리며, 지금도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평판의 경우 오히려 춘추전국시대였던 2006년보다 더 독보적인 지위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 쿄애니의 부흥을 이끈 34살의 젊은 여류 감독
'야마다 나오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야마다 나오코 트릴로지 1 : 케이온(2009, 2010, 2011)
과거에도 낮지는 않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의 진입장벽은 높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모에'와 '미소녀 동물원'으로 대표되는 그림체와 정서의 문제가 크죠.
비록 특유의 '오타쿠'스러움은 '프로젝트 A코(1986)'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유구하지만,
현재 이러한 '미소녀 동물원'하면 많은 사람들이 '케이온'을 먼저 떠올립니다.
케이온이 쿄토 애니메이션에 가지고 온 영향은 간단하게 요약 가능합니다. '제2의 하루히'
후술할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와 시장 트렌드의 변화도 고려해야 하지만,
케이온의 BD/DVD 판매량은 8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히에 이은 2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극장판 수입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반역의 이야기(2014)'와 'GIRLS und PANZER der FILM(2015)'가
나오기 전에는 심야 애니메이션 원작 극장판 중에서 역대 1위였고요.
케이온은 이른바 '키라라 4컷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아즈망가대왕(2002)'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만들어진 잡지 '망가타임 키라라'에 연재된 케이온은
잡지의 특징인 '4컷 기승전결', '에피소드 보다는 옴니버스', '이야기 서사보다는 캐릭터 개성'을 추구했습니다.
지금도 매드하우스의 김현태 씨 등 일부 평론가들과 업계인, 그리고 모에 트렌드에 비판적인 마니아들에게
케이온이 미소녀 동물원 바람을 불러 일으켜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질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죠.
개인적으로 케이온의 작품성이 지나치게 저평가받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그 이야기는 정식으로 케이온 리뷰를 할 때 하도록 하고, 지금은 야마다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클라나드는 인생입니다. 지겹게 들었겠지만, 어쩌겠어요. 맞는 말인데.)
AIR에서 원화를 시작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불과 3년만에 한 작품의 한 화 연출을 맡습니다.
바로 지금도 최고의 애니 중 하나로 칭송받는 CLANNAD AFTER STORY(2008)의 16화입니다.
18화, 19화와 함께 전체적인 완성도는 다소 미흡하다고 여겨지는 CLANNAD를 갓애니로 만든 화죠.
그리고 그 계기는 반년도 안 돼서 그녀에게 케이온 감독이라는 지휘봉을 안겨주었습니다.
(객관적으로 큰 틀의 스토리 전개'만' 보면, 케이온은 여느 키라라 4컷만화와 큰 차이가 없다.)
TVA 케이온 본편에서 보여지는 야마다 나오코의 연출 스타일은 딱히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마다 감독보다 'ARIA'(2005, 2006, 2008) 등 여러 일상/청춘물에서 활약한 각본가
요시다 레이코의 걸즈 토크 전개력과 느긋한 일상의 표현력이 더 돋보이죠.
그나마 눈에 띄는 점이라면 원작의 성적 표현들을 완전히 거세했다는 정도지만,
이미 풀 메탈 패닉 후못후의 전례가 있으니 야마다 감독만의 특징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1기와 2기 2쿨 ed 영상. 야마다 감독은 이후 '중2코이'나 '유포니엄' 등 다른 쿄애니 ed 연출도 빈번히 담당하게 된다.)
물론 틈틈이 TVA 본편에도 이런저런 야마다 감독만의 장치를 넣기는 했지만,
엔딩 영상들의 실사 MV 연출만큼의 개성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옅었죠.
아직은 자신만의 필살기는 부족하다는 평이 있던 야마다 감독입니다.
극장판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극장판 케이온을 굳이 비유하자면, '로드무비'나 '다큐멘터리'입니다.
(대충 제목을 '천사를 만나기까지'로 잡으면 나름 그럴듯하죠.)
졸업여행부터 '천사를 만났어'까지. 본편 기준 2기 23화 이후부터 24화 끝까지.
(PSYCHO-PASS 1화의 장면. 위 장면 A에서 B로 초점이 옮겨지는 것이 가장 간단한 피사계 심도 구현)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잠시.
최근 쿄애니의 연출 특징을 거론할 때 피사계 심도 구현이 거론됩니다.
카메라 초점을 바꾸는 실사 영화 연출이지만, 의외로 꽤나 전통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연출입니다.
사이버펑크 장르같이 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쓰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쿄애니만의 특징인양 거론되는 이유.
이 두 장면을 예로 들어서 알아봅시다.
첫 장면은 마지막 교내 라이브 직후 경음부 3학년의 모습입니다.
단 한 가지 제외하고 모든 것을 이룬 4인방.
방과후가 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그들을 배경으로 한 교실은
실내 조명 없이 햇빛만 비스듬히 비춰집니다.
마치 흑백영화에 가까운 색감이죠.
두 번째 장면은 아즈사에게 곡을 선물하기 직전에 옥상에 모인 3학년입니다.
축구선수들처럼 원을 둘러서 성공을 다짐하는 와중에,
갑자기 분 강풍과 함께 날아오른 새하얀 새 한 마리를 유이가 돌아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두번 카메라가 강풍에 초점이 흔들리고,
새는 렌즈 바로 위에서 날아오릅니다.
(최애캐가 아즈냥일 때는 한참 지났지만, 그래도 귀여운 건 부정할 수 없다.)
보시다시피 비단 피사계 심도 뿐만이 아니라 여러 실사 연출을 야마다 감독이
극장판에서 구사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이것이 TVA부터 감독이 구축한 비교적 현실적이고 친근한, 옆집 여고생같은 캐릭터들과 연계되서
케이온 극장판을 평범한 4컷만화 미디어믹스가 아니라,
마치 캐릭터들이 현실에 뛰쳐나와서 직접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작품으로 만듭니다.
단순한 모나리자에 그치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야마다 나오코 감독만의 '초필살기'입니다.
바로 '표정 외의 감정표현'. 특히 '다리를 통한 감정표현'입니다.
유명한 50여초간의 다리 원테이크입니다.
(이 부분 연출은 정말 '어우야' 소리가 나온다.)
아즈사를 위한 라이브를 하고 하교하는 3학년 4인방.
왼쪽부터 츠무기, 미오, 리츠, 그리고 유이입니다.
다소 울적한 분위기지만 리츠가 놀리자 태연한 척 잠시나마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미오.
리츠와 유이가 띄우는 분위기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모두를 기쁘게 만드는 츠무기.
여자아이스러움은 일절 없고 무신경해보이지만, 그래도 배려심 깊은 리츠.
그런 친구들을 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이 때다 싶으면 모두를 이끌고 앞장서는 유이.
TVA 3시즌 동안 느긋하게 만들어진 4인방의 캐릭터성을
오직 대사와 다리 움직임만으로 표현한 명장면입니다.
이후 작품에서도 쓰이는 야마다 나오코의 '라스트 워드'죠.
2. 야마다 나오코 트릴로지 2 : 타마코 시리즈(2013, 2014)
2010년 케이온 2기 당시 핫타 히데아키 쿄애니 사장(설립자인 핫타 요코 여사의 남편)이
강연에서 야마다 감독을 두고 '다 같이 서로 돕자'는 의지가 강하고,
그에 따라 여러 아이디어가 그녀 앞으로 모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실제로 이후 목소리의 형태 개봉 직전 공개된 30분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야마다 감독은 '자신이 만든다'라는 것보다는 '모두가 만든다'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타마코 시리즈는 야마다 감독 앞으로 온 무수한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타마코 마켓(TVA)은 일상(2011)만큼은 아니지만 흥행이 다소 아쉬운 애니입니다.
TVA를 보고 아쉬워하거나 실망한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이도저도 아닌 듯한 방향성'이거나 '캐릭터들의 개성이 흐릿하다'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고평가하는 입장에서, 타마코 마켓을
'우사기야마 상점가를 그린 애니'라고 요약합니다.
상점가의 일상이 어떠한 결말을 향해가지는 않고,
사람 살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타마코 마켓은 본래 추구한 바를 훌륭히 이뤄낸 애니라고 봅니다.
다소 올드한 음악이 흐르는 찻집의 분위기처럼
복고적인 분위기와 요소를 적지 않게 담고 있으면서도,
부활동에 전념하는 타마코와 그 친구들이 만드는 학원물 분위기는
영락없는 21세기 아니메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애니.
(개인적으로 유포니엄의 쿠미코와 함께 쿄애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토기와 미도리)
작품성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고, 이제 다시 야마다 감독님 얘기를 해보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작품성 이야기는 다음에 미루겠습니다.
왜냐면 이 애니는 '토키와 미도리'라는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감상하는 경우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에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지거든요.
만약 미도리를 강하게 의식하면 TV판과 극장판은 도저히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지만,
미도리 없이 우사기야마 상점가를 바라보면 TV판과 극장판은 완전히 상이한 작품이 되니까요.
그러므로 가능하면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스토리는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사기야마 상점가에서 타마코는 네오 베네치아의 아카리와 지극히 유사한 포지션을 차지한다.)
케이온에 이어서 이번 TV판도 야마다 감독보다는 요시다 각본가의 색깔이 강합니다.
오히려 4컷만화가 원작이었던 케이온보다 타마코 마켓이 더 ARIA에 가깝죠.
템포는 더 느긋하고, 분위기도 더 잔잔하고.
그야말로 '언제까지고 계속될 오늘'이라는 느낌이 강한 타마코 마켓입니다.
(요즘도 저런 '다방'이 있을까. 아니, 애초에 레코드 틀어주는 데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 일상을 극장판, 타마코 러브 스토리는 시작한 지 채 20분도 안 돼서 전면부정합니다.
언제나 그 에피소드의 핵심을 던지고 조용히 레코드판을 가는 우리의 찻집 마스터가
"오늘은 언제나 어제와 다르지. 그게 좋아. 그와 동시에, 좀 쓸쓸하지만."라고 말하면서요.
목소리의 형태처럼 일일히 풀어서 분석하기는 여백이 부족하니,
이번에는 3장면을 포인트로 하여금 이 극장판 속 야마다 감독을 알아보도록 합시다.
첫 장면. 진로 이야기로 미도리, 칸나, 시오리랑 이야기하며 하교 하다가
모두와 헤어지고 상점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의 장면입니다.
다소 침울하고 어두운 광원효과가 드리운 밖과 대조되는 상점가 내부.
경쾌한 ost와 함께 환한 조명이 여기저기를 밝히는 곳에서
타마코는 '언제나처럼' 일상을 만끽합니다.
직전까지 진로를 확실하게 한 친구들과 아직 모호한 자신을 대비하며 시무룩했던 자신을 잊은 척 하며.
두 번째 장면. 모치조의 고백을 듣고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자기 집으로 도망치는 장면입니다.
평소라면 상점가에 들어설 때 느긋하게, 모두에게 인사하는 타마코지만,
지금 타마코의 마음은 그러한 주위의 모습이 안중에 들어올 만큼 여유롭지 않습니다.
모두의 모습이 형태를 잃고 그저 물감 얼룩으로만 보일 정도로요.
돌아갈 곳이 있던 마음이 갈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겁니다.
더 이상, '언제나처럼'에만 안주할 수는 없다는 걸 실감하기 시작한 겁니다.
마지막 장면. 실 전화기를 들고 모치조 앞에 서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도쿄의 대학에 견학 가보려는 모치조를 멈춰세우는 타마코.
분명 친구들의 응원과 도움을 받고 마음을 정리해서 왔을 타마코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그래도 실 전화기를 통해 어렵사리 좋아한다는 마음을 고백한 타마코
타마코는 더 이상 당황하지도, 허둥대지 않고 의연히 모치조의 대답을 기다리고,
그런 타마코의 모습에 모치조는 TVA에서 생일 케이크를 선물 받았을 때처럼
수줍음과 기쁨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푹 숙입니다.
케이온에서 보여줬던 실사 촬영 기법은 여전하지만,
이번 타마코 러브 스토리를 통해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야마다 감독만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앞서 거론됐던 '캐릭터들의 개성이 흐릿하다'라는 타마코 마켓의 단점.
결론부터 말하자면, 캐릭터의 개성이 흐릿한 것이 아니라, 직관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직관적이지 않다는 건, 더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소리입니다.
(타마코와 유이가 비슷한 성격이라는 의견이 적진 않지만, 유이 쪽이 훨씬 더 단순한 캐릭터다.)
케이온에서 경음부는 어느정도 캐릭터가 확실했죠.
[빈둥빈둥 니트 기질 있는 천재파=히라사와 유이] 이런 식으로요.
물론 케이온도 여타 키라라 일상물보다는 실제 여고생에 가깝게 묘사했지만,
그래도 만화 캐릭터라는 인상이 주는 거리감이 아예 없지는 않았죠.
키타시라카와 타마코의 성우 스자키 아야는 야마다 감독에게
'17살 실제 여자아이'를 연기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츤데레? 메가데레? 어느쪽으로도 타마코를 기호화할 수는 없다.)
타마코가 결코 평범한 성격은 아니죠. 떡 만들기 밖에 모르는 연애감정에 둔감한 소녀니까요.
하지만 17살 여자아이가 고백을 받아도 둔감한 채 흘려넘긴다?
그건 순정만화 주인공이거나 '에? 난닷테?' 식 고도의 어장관리녀지,
결코 '17살 실제 여자아이'는 아닙니다.
(젊었을 적 아버님과 지금의 아버님 둘 다 후지와라 케이지 씨 1인2역입니다...라고?!)
그 외에도 모치조와 미도리, 그리고 타마코의 아버지 마메다이처럼,
타마코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만화라 하기엔 다소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합니다.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우리는 타 애니보다 타마코 시리즈에서 등장인물에 쉽게 공감할 수 있죠.
이런 '현실적인 캐릭터 설계'가 야마다 감독의 또 다른 스타일입니다.
3. 야마다 나오코 트릴로지 3 : 목소리의 형태(2016)
여전히 호불호가 갈리지만, 목소리의 형태는 굉장히 치밀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걸즈 앤 판처 극장판(2015)'와 함께 이 '목소리의 형태'를 최고의 극장판으로 여길 정도죠.
'걸장판'이 방대한 캐릭터와 액션과 엔터테인먼트를 섬세하게 설계해서 쌓아올린 성이라면,
'목소리의 형태'는 대사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묘사와 표현들을 어우른 고급 요리라 할 수 있습니다.
개봉 당시 야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느 부분을 버려야 하는가?'를 가장 중시했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이론보다는 감성을 그리고 그 감성을 합리적으로 설계하려 했다고도 합니다.
어찌됐든 원작 만화는 7권 분량으로, 일반적으로는 2시즌 24~26화로 분량을 뽑는데,
2시간 조금 넘는 정도의 극장판 분량에 담아내야 했으니까요.
오이마 요시토키의 원작 만화의 명성에 대한 설명은 말하면 입이 아픈 수준입니다.
그냥 '대단하다'라고만 알고 있으면 충분할 정도죠.
그렇지만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는 원작과는 다른 접근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번 리뷰에서는 원작과 팬북의 설정 참고를 많이 했지만, 이번엔 최대한 배제하고 보죠.)
(지나치게 현실적인 그림은 도리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법입니다.)
우선 전술한 '인간적인 캐릭터 설계'는 하기 싫어도 원작이 판을 어느 정도 만들어 줬습니다.
여주인공 쇼코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녀'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솔직히 쇼야의 어머니와 쇼코의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주/조연들은
상당히 기분나쁜 인상을 줄 수 있는, 결함이 많은 인물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껏 야마다 감독의 캐릭터들은 우리가 공감해야됐고, 실제로 쉽게 공감한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인공인 쇼야는 왕따 가해자입니다. 그에게 공감한다는 건 곧 용서한다는 것이고,
용서한다는 건 아마 인간이 가장 하기 힘든 일 중 하나입니다.
이시다 쇼야라는 주인공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친구입니다.
그리고 야마다 감독 역시 그러기까지 바라고 연출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말로 직접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소통이 되면 목소리의 형태라는 작품이 세상에 나올 이유가 없으니까.)
서양 쪽 목소리의 형태 리뷰들 중 비판적인 의견을 취합해보면,
상당수가 '2시간 안에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 했다(overstuffed)'라고 지적합니다.
호의적인 저도 공감을 못하는 바가 아닐 정도로, 목소리의 형태는 매우 어렵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야마다 감독의 인터뷰의 한 구절을 읽으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갑니다.
"인간을 그리고 싶습니다. 인간을 제대로 그려낸 작품을 이후에도 그리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애니메이션". 이것이 야마다 나오코의 애니메이션이 추구하는 바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캐릭터의 매력을 최대로 해서 그려낸다'면 차라리 1억배 더 쉬울 정도로,
'인간'을 완벽히 그려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도전입니다.
츤데레, 여동생, 소꿉친구로 기호화된 '캐릭터'가 아닌, 변덕있고 귀찮고 어려운 '인간'이니까요.
목소리의 형태는 그러한 도전의 첫 걸음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 실사 영화의 연출 기법, 표정 외 감정표현, 인간적인 캐릭터 설계를
전부 종합해서 지금까지 만화 속 캐릭터가 움직이는 수준에 불과했던 애니메이션을
인간을 그려내는 또 하나의 도구의 위치에 올려놓는 도전의 일환이 목소리의 형태인 것이죠.
다리 위에서 쇼야가 직접 자신이 만든 인간관계를 부순 직후,
기계적으로 쇼코를 울리지 않으려 여름방학에 놀러가자고 제안하는 쇼야를 바라보는 쇼코의 표정은,
항상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한 거짓 미소에 덧칠되는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서려있습니다.
쉽게 공감하긴 어렵지만, 그녀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는 모습입니다.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아직 젊은 30대입니다. TVA는 겨우 2개에 극장판 3개 정도가 그녀의 경력이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올해로 만 50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있는 상황.
두 감독 모두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이명을 주위에서 듣고 있고,
이제는 야마다 감독도 목소리의 형태로 이름을 알리면서 그 이명이 거론 될 기미가 보입니다.
저는 야마다 감독이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이명을 듣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아카데미를 차지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위에 이른다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위의 다른 두 감독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녀가 그 이명에 묶이는 건 싫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뒤를 쫓을 존재가 아니니까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동화, 호소다 마모루가 비일상 속 일상, 신카이 마코토가 시(詩)라면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테마는 '드라마'입니다.
장르가 SF가 되든 판타지가 되든 로맨스가 되든 '인간'을 그려내고 싶다던 야마다 감독.
그녀의 행보가 일본을 넘어 베를린과 로스앤젤레스에 닫는 그날까지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2009년 케이온 시절부터 쿄애니 덕질을 하고 있는, 입덕술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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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데 무지 오래 걸렸네요;; 두 번이나 다 써놓은 글이 증발해서 다시 쓰고, 목소리의 형태가 담겨있던 하드는 맛이 가고...으으. 쓰다보니 겨우 8년 덕질한걸로는 아직 제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원래 쿄애니에 대한 이야기와 아니메의 미래에 대해까지 쓰려고 했는데, 도저히 지식량이 부족하더군요. 그나마 지금까지 좋아한 감독에 대한 이야기라도 실컷 써봤는데 이것도 미흡한 느낌이 들고... 그래도 마지막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고, 다음 글은 최대한 빨리 올려보려 노력하겠습니다!
(IP보기클릭)12.202.***.***
케이온 극장판, 타마코 러브스토리, 목소리의 형태. 모두 두번, 세번 볼수록 작품의 숨겨진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뛰어난 명작이죠. 아마 10년 20년 뒤에는 '10년 전에는 이런 명작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라고 떠올릴 거에요
(IP보기클릭)14.46.***.***
리뷰적는분 한해서 관리자권한으로 일주일정도 상단공지로 노출합니다. 보다많은 유저분즐이 보시고 참여를 하는 취지에서 하는 이벤트입니다 참여방법은 애갤 상단 공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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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잘 정리해서 적으신거 같은데요? 각 작품마다 설명을 잘해주셔서 머리에 쏙쏙 들어옵니다^^ | 17.07.07 15: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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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하다니요. 저는 몰랐던 관점을 알 수 있고, 덕분에 좋은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캐릭터들 이쁜 거 보는 것도 있고 ㅋ; | 17.07.08 0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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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온 극장판, 타마코 러브스토리, 목소리의 형태. 모두 두번, 세번 볼수록 작품의 숨겨진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뛰어난 명작이죠. 아마 10년 20년 뒤에는 '10년 전에는 이런 명작 애니메이션이 있었다'라고 떠올릴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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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요
리뷰적는분 한해서 관리자권한으로 일주일정도 상단공지로 노출합니다. 보다많은 유저분즐이 보시고 참여를 하는 취지에서 하는 이벤트입니다 참여방법은 애갤 상단 공지에 있습니다 | 17.07.07 15: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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