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부장실에서 나온 제이크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던
그의 온몸에 긴장이 풀려나왔다.
“괜찮아?”
야닌이
그런 제이크에게 물었다.
“옷 벗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제이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나도.”
야닌이 제이크에게 말했다.
“그런 것치고 차분하시던데요.”
야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 걸어 나갔다.
“알고 계셨습니까?”
제이크가 야닌을 뒤따르며 물었다.
“뭐를?”
“길이 정보상이 아니라는 이야기.”
제이크가
조금 전 정보부장이 꺼낸 이야기를 물었다.
“아니. 나도 몰랐어.”
“그럼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조만간 알게 되겠지.
할머니가 되면 말이지.”
야닌은 그렇게 말하며
계속 걸어갔다.
MSS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中华Zhōnghuá人民Rénmín共和国Gònghéguó国家Guójiā安全部Ānquánbù
Ministry of State Securit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휘장
명칭
国家安全部 (국가안전부)
표어
인민을 위해 복무함
为人民服务
대당충성, 복무인민, 집법공정, 기율엄명
견정순결, 양당방심, 감우봉헌, 능병선영
对党忠诚, 服务人民, 执法公正, 纪律严明,
坚定纯洁, 让党放心, 甘于奉献, 能拼善赢
설립일
1955년 6월 20일 중국공산당 중앙조사부
소재지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둥청구
둥창안제14호
北京市东城区东长安街14号
부장
총경감 견장 눕힌버전
총경감 천이신(陈一新)[1]
부부장
부총경감 견장 눕힌버전
부총경감 탕차오(唐朝)
부총경감 견장 눕힌버전
부총경감 둥징웨이(董经纬)
부총경감 견장 눕힌버전
부총경감 스하오융(石好勇)
감찰조장
부총경감 견장 눕힌버전
부총경감 런아이룽(任爱荣)
정치부 주임
부총경감 견장 눕힌버전
부총경감 녜푸루(聂福如)
상급기관
중국 국기 중국 국장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우편번호
100091
홈페이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휘장
1. 개요
2. 주요 업무
3. 역사
4. 관련 사건
5. 산하 기관
5.1. 정보기관
5.2. 기타 내부 기관
5.3. 직속 사업
5.4. 지방국청
6. 역대 국가안전부장
7. 대중매체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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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부 및 공안부 본부인 공안빌딩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산하 경찰부서 중 하나로, 중국의 정보기관이다.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Ministry of State Security)이며, 줄여서 국안부라고 부르거나 영어 명칭의 첫 글자인 MSS로 부른다.
미디어나 대중문화매체에서 크게 다루지 않고 있지만, 해외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가안전부는 당연 중국이라는 강대국 산하의 정보기관인만큼 세계에서 나름 이름 좀 날린다싶은 정보기관들 중에서도 뛰어난 곳으로 꼽히고 있다. 중국 공안부와는 다르게 별도의 홈페이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신고센터 전용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는 있다. 법적으로는 경찰기관이지만 실제 치안업무는 수행하지 않으며, 업무 특성 상 신분을 숨겨야 하기 때문에 경찰차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이 덕분에 국가안전부 경찰차는 초 레어차량으로 취급받아서 한번 떴다하면 주변사람들의 플래시 세례가 이어지곤 한다.
정확한 소속 인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독일의 주요 일간지 ‘디 벨트(Die Welt)’는 2009년 자국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관계자를 인용해 해외에서 공작 중인 MSS 스파이의 규모가 매우 광범위하다고 보도하였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면 미국 CIA 내부에까지 침투해있을 정도라고 한다. 1985년 미국으로 망명한 국안부 간부 위창성은 CIA 내부에서 정체를 숨긴 채 활동 중이던 MSS 공작원 '진우지(金无忌)'의 신분을 폭로했고 2005년에 호주로 망명한 중국 톈진시 소재 ‘610사무실’ 요원 출신 하오펑쥔은 국제정치에서 비교적 변두리에 위치한 호주 내부의 중국 스파이만 해도 1천 명에 달한다고 폭로했다. 2009년 국가안전부에서 엘리트 계급으로 근무하던 중국 경찰관 리펑즈(李风智)는 미국으로 망명해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 앞에서 공개 탈당을 선언했다.
최근에는 세계 각국의 중국인 유학생 단체의 간부들을 협박과 회유로 포섭해서 여론을 조성한다고 알려졌다. 북한의 국가보위성과 러시아 SVR, 벨라루스 KGB, 터키 국가정보부 MIT와 협업하기도 한다.
계급은 경찰의 계급을 따른다. "법적"으로는 이들도 경찰 조직이기 때문. 국가안전부 계급 정보는 해당 항목 참조.
2022년에 들어서 중국 정부가 국외 여러 국가에 무허가 경찰조직을 세운 것이 발각되었는데, 정황상 공안부가 아닌 이 국가안전부가 해당 조직을 지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본 문서에는 공안국 소속이라고 적혀있는데, 애초에 국가안전부와 공안부는 성부급 단위부터 부서가 합서되어 있기 때문에 둘 사이를 가르는 큰 장벽이 없으며 국가안전부는 자신들의 조직이 밝혀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합서되어 있는 공안부 조직을 통해 대외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기본적으로 국가안전부는 첩보를 위해 만들어진 정보경찰 조직이다. 당연히 첩보 업무를 하지 않는 공안부 경찰이 아닌 훨씬 경험이 많고 현지 정보라인을 많이 구축해 놓은 국가안전부 경찰을 선두에 세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해외경찰서비스센터 역시 국가안전부가 세운 비밀경찰서에 공안부 경찰이 파견되는 형태로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 주요 업무[편집]
1. 국가정보공작기구는 업무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방식과 수단, 경로를 법적으로 활용해 국내외에서 정보 작업을 벌인다.
2. 국가 정보공작기구는 경외기구조직 개인의 지시나 지원, 또는 내외 기구조직 개인이 결탁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정보를 수집 및 처리, 예방과 처벌에 관한 정보 근거를 제공하거나 참고하여야 한다.
3. 국가 정보공작기구는 국가 관련 규정에 따라 관련 개인과 조직과 협력관계를 맺고 업무를 위임할 수 있다.
4. 국가 정보공작기구는 국가 관련 규정에 따라 대외 교류와 협력을 할 수 있다.
5. 국가 정보공작기구는 법에 따라 정보사업을 벌이며 해당 기관과 조직, 국민에게 필요한 지원과 협조,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6. 국가 정보공작기구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국가 관련 규정에 따라 엄격한 허가 절차를 거쳐 기술정찰 조치와 신분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다.
7. 정보기관 실무자는 법령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때 국가 관련 규정에 따라 허가된 증명서를 제출하면 출입이 제한된 해당 지역, 장소에 들어갈 수 있으며 당 기관과 조직, 개인에 대한 이해, 문의 및 관련 문서, 자료, 물품을 열람하거나 조달할 수 있다.
8. 국가 정보공작기관 실무자들은 긴급 임무 수행에 필요한 관련 증명서를 제시하면 통행을 간략하게 할 수 있다.국가 정보공작기관 실무자는 업무상 필요에 따라 해당 기관, 조직과 개인의 교통수단, 통신수단, 장소와 건물을 국가 관련 규정에 따라 우선 사용 또는 징용할 수 있으며, 필요 시 해당 작업장과 설비, 시설을 설치할 수 있고 임무 완료 시 원상 반환 또는 복구 및 그에 따른 비용을 지급하여야 하며 피해 발생시 보상해야 한다.
9. 국가 정보공작기관은 업무상 필요에 따라 세관 출입국변방검사 등 국가 관련 규정에 따라 검색 면제 등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10. 국가 정보공작기관과 그 실무자들은 직권을 초월해 직권을 남용해서는 안 되며, 시민조직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 혹은 직무 편의를 이용해 자신이나 타인의 이익을 챙기는 행위 및 국가 비밀과 영업비밀, 개인정보를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
3. 역사[편집]
해외에서 MSS 혹은 Ministry of State Security으로 알려진 중국 국가안전부의 창설은 중국 국공내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 국민당의 정보기관인 군사위원회 조사통계국(군통), 중앙집행위원회 조사통계국(중통)은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으로 큰 명성을 날렸다. 특히 장제스의 심복 다이리(戴笠)가 지휘한 군통은 일본 황실에까지 스파이를 심었을 정도였다. 군통과 중통의 비밀공작에 중국 공산당은 매우 큰 어려움과 위기를 겪었고, 정보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한 마오쩌둥은 1937년 산시성 옌안(延安)에서 '중앙사회부'를 창설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국가안전부의 시초이다.
1946~1949년 국공내전 발발 당시 중앙사회부의 주요임무는 중국 국민당에 대한 정보, 간첩, 통일전선 등이었고 업무내용이 중첩되고 상호보완적이었다. 정보조직도 당내군사조직인 중앙군사위원회에 설치되어 당군 지도부의 지휘통제를 받았다. 그 후 중국 국민당을 완전히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1949년 이후에 중앙사회부는 중앙연락부로 개편되었다. 1955년에 중앙조사부로 다시 개편되었다. 1950년대 중국의 해외공관은 예외 없이 중앙조사부 요원으로 구성된 조사연구단위를 갖추고 정보수집활동을 하였다.
1966-1976년도에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 중앙조사부는 해체되었고 간부들은 재교육을 위해 지방으로 ‘하방’되었다. 중앙조사부의 활동과 기구들은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제국으로 흡수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캉성(康生)은 중앙조사부의 요원으로 중앙실사 소조를 구성하여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의 숙청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공안부장이었던 류푸즈는 중앙조사부와 공안부 내 방첩 단위들, 그리고 군총참모부의 일부 조직을 통합하여 국가안전부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였고 당 정치국은 승인하였다. 그렇게 해서 같은 해 6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산하에 국가안전부를 설립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국가안전부 조직은 설립 초기에는 9개 공작국과 4개의 직할 지원기관으로 구성되었으나, 개혁개방의 추진으로 인한 대외접촉의 증가 및 컴퓨터정보통신위성무인항공기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첩보활동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업무 범위와 조직이 크게 확대되었다.
1983년 6월 공공안전부내의 기존 방첩단위(1~4국)와 건국 초기부터 당내의 내사 및 내부 안전을 담당한 중앙조사부(中央 調査部)의 일부 기능 및 군 총참모부의 일부 인력을 통합해 ‘국가 안전 및 반 간첩 공작을 영도관리하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및 조국통일의 대업을 보위촉진’ 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중국 사회주의체제를 파괴하거나 전복하려는 적대국의 요원, 간첩, 반혁명활동에 대응하여 효과적인 조처를 하여 중국의 안전을 수호하는 책임’을 맡도록 규정되었다.
4. 관련 사건[편집]
대표적으로 탈북자이자 탈북 지원활동가인 유상준이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다가 흔히 공안 당국이 아닌 국가안전부로 끌려간 사례가 있었다.[2][3] 증언에 따르면 5월 5일에 중국 공안에 체포된 직후 이송되었던 지린성(吉林省) 룽징(龙井)시 룽먼(龙门)파출소에서 하루 동안 구금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구석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발견했는데, 2007년에 이미 한 차례 공안국에 체포된 적이 있었던 유상준은 갑작스러운 CCTV의 출현 앞에 자신이 단순한 공안부 차원의 조사를 받고 있음이 아님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공안들은 유상준에게 그의 중국 내 행적이 고스란히 담긴 CCTV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영상의 내용에는 사우나에 들어가는 모습에서부터 길거리를 걷는 모습까지 유상준의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히 일반 치안을 담당하는 공안부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며 또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공안부에서의 조사를 거쳐 정식재판에 회부된 뒤 복역하거나 강제출국되어야 했지만 자신이 끌려간 곳은 인적 드문 교외의 한 허름한 여관이었다.[4]그 후 유상준은 공안으로 보이는 4명의 인원[5] 에게 온갖 폭행과 심문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 와중에 그들은 유상준에게 한반도에서 정보나 분석, 현황을 수집해 줄 것을 요구했다. 심문 중에서도 틈틈이 유상준을 달래기도 하고 회유하기도 했으며, 배달되는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와중에 가끔 유상준을 데리고 고급 음식점으로 외출하기도 했고, 앞서 유상준에게 돈을 제시하기도 했었다며 구체적으로 정보 수집의 대가로 상부에서 지급되는 성과급을 7:3 비율로 나눠가질 것을 제의한 것인데 이는 공안부의 업무 권한을 넘어선 것이며 그들 스스로 중국 정보기관의 요원임을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인 것이다.
MSS 요원들은 유상준에게 국가정보원 관련 정보를 비롯해 중국 내 선교사 및 인권활동가, 탈북지원활동가의 인적 사항과 같은 정보를 연달아 요구했는데, 그 때 이미 그들은 국가정보원 등에 대한 상당히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유상준 말고도 이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공작원들을 포섭해왔다는데 이 말은 즉슨 중국 공산당에 포섭되어 한국 내에서 활동 중인 중국 스파이가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유상준은 "실제로 이 4명의 인원 중 한 명은 접선 등을 목적으로 연중 수차례 한국에 입국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유상준의 증언으로 국내 보안당국 관계자도 이를 확인해주었다. 관계자는 "조선족 밀집지역인 서울 구로구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 중국 정보당국 요원들이 상당수 암약 중"이라며 "주한(駐韓)대사관이 거점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이들 요원은 평범한 중국 관광객으로 위장하거나 제3국인으로 신분을 세탁해 입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 때 당시 유상준은 자신을 포섭하려든 MSS 요원들 중 한명의 실명과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는데,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출국 직전에 그 요원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며 귀국하면 연락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MSS 대(對)한반도 공작요원, '김형권'
“이름은 김형권. 조선족으로 안전부 내에서도 지위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내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주며 귀국 후 전화할 것을 요구했다. 333-1899. 그의 전화번호다”
-NK 지식인연대 북녘마을 11호 본문 중
2008년 10월 중국 체류기간이 10년 이상이라는 이유로 국적을 받지 못하자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하다시피 하며 시위를 벌였던 탈북여성 채OO는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보기관에 체포될 당시 그들의 일을 해주지 않으면 강제북송하겠다는 협박을 들었다"며 "살기 위해 거짓으로 응하는 척 하고 한국 입국 후 이틀 만에 자수했다"고 밝혔다. 채OO에 따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정보기관은 자신에게 별다른 임무를 하달하지는 않았지만 핸드폰 한 개를 주며 한국에 입국한 다음 연락할 것을 강요했고, 성과급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걸었다고 한다.
심지어 현지 한국인도 납치한 사례도 있었는데,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영환을 택시로 유도해 둘러싸서 체포한 후 다롄의 한 호텔로 끌고 가 조사를 받고 다음 날 아침에 국가안전부로 이송되어 하루 13시간씩 노역을 시키는 등 모진 폭행과 가혹 행위를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석방 당시 안전부에서 귀환해주는 대신에 중국 법률 위반을 사실적으로 인정하고 고문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요구해(사실상 협박에 가깝다.) 구체적인 답변은 다음에 밝히겠다며 언급을 피하였다.
5. 산하 기관[편집]
5.1. 정보기관[편집]
대만 법무부 조사국에 의하면 국가안전부는 현재 17개 핵심 국(局)과 10개의 행정지원국으로 대외활동량 증가 및 정보통신, 위성, 무인항공기(UAV) 등 첨단기술 운용에 따른 필요성에 의해 그 규모가 크게 확대된 상태이며, 96년에 비해 명칭과 기능이 다소 변경되었다고 전했다.
2018년 이전에는 각 대륙 및 지역별로 기관이 다 나뉘어 있었으나 현재는 국제/국내 및 기타 특수정보기관으로 나뉘어 있다.
기요국(机要局) (1국):중요 기밀정보 관리
국제정보국(国际情报局)(2국):국제 정보수집
정경정보국(政经情报局)(3국):정치 및 경제 주요정보 수집
타이강아오지구정보국(台港澳地区情报局)(4국):대만, 홍콩, 마카오 지역 정보수집
정보분석통보국(情报分析通报局)(5국):정보의 분석과 통보, 수집지도
과기정보국(科技情报局)(6국): 과학, 기술 정보의 수집, 연구 및 통신공작/활동지휘
반간첩정보국(反间谍情報局)(7국):반간첩정보의 수집
반간첩정찰국(反间谍侦察局)(8국): 외국간첩의 추적 정찰, 체포
기술정찰국(技术侦察局)(9국):우편물 검사 및 통신 정찰
대외보 방정찰국(对外保防侦察局)(10국):해외 중국공관 안전공작 담당 (유학생 및 반중국세력 감시활동병행)
정보자료중심국(情报资料中心局)(11국): 문서자료의 수집, 연구, 관리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사회조사국(社会调查局)(12국):사회단체 연락 및 민의 동태조사
기술과기국(技侦科技局)(13국):과학 기자재 관리, 연구
기술정찰국(技术侦察局)(14국):과학 기술 정찰
종합정보분석국(综合情报分析局)(15국): 수집 정보의 분석
영상정보국(影像情报局)(16국): 영상 자료 정보 수집
기업국(企业局)(17국): 기업 관련 정보 수집
반공국(反恐局)(18국): 대테러 정보 수집
5.2. 기타 내부 기관[편집]
판공청(办公厅)
정치부(政治部)
보법판공실(普法办公室)
교육배훈부(教育培训部)
종합기획국(综合计划局)
행정관리국(行政管理局)
노간부국(老干部局)
기록실(档案室)
5.3. 직속 사업[편집]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中国现代国际关系研究院)
국제관계학원(国际关系学院)
저장 제2인민경찰학교(浙江第二人民警察学校)[6]
장난 사회학원(江南社会学院)
5.4. 지방국청[편집]
베이징시 국가안전국(北京市国家安全局)
상하이시 국가안전국(上海市国家安全局)
톈진시 국가안전국(天津市国家安全局)
충칭시 국가안전국(重庆市国家安全局)
허베이성 국가안전청(河北省国家安全厅)
산시성 국가안전청(山西省国家安全厅)
지린성 국가안전청(吉林省国家安全厅)
랴오닝성 국가안전청(辽宁省国家安全厅)
헤이룽장성 국가안전청(黑龙江省国家安全厅)
산시성 국가안전청(陕西省国家安全厅)
간쑤성 국가안전청(甘肃省国家安全厅)
칭하이성 국가안전청(青海省国家安全厅)
산둥성 국가안전청(山东省国家安全厅)
푸젠성 국가안전청(福建省国家安全厅)
저장성 국가안전청(浙江省国家安全厅)
허난성 국가안전청(河南省国家安全厅)
후베이성 국가안전청(湖北省国家安全厅)
후난성 국가안전청(湖南省国家安全厅)
장시성 국가안전청(江西省国家安全厅)
장쑤성 국가안전청(江苏省国家安全厅)
안후이성 국가안전청(安徽省国家安全厅)
광둥성 국가안전청(广东省国家安全厅)
하이난성 국가안전청(海南省国家安全厅)
쓰촨성 국가안전청(四川省国家安全厅)
구이저우성 국가안전청(贵州省国家安全厅)
윈난성 국가안전청(云南省国家安全厅)
내몽골 자치구 국가안전청(内蒙古自治区国家安全厅)
신장 위구르 자치구 국가언전청(新疆维吾尔自治区国家安全厅)
닝샤 후이족 자치구 국가안전청(宁夏回族自治区国家安全厅)
광시 좡족 자치구 국가안전청(广西壮族自治区国家安全厅)
시짱 자치구 국가안전청(西藏自治区国家安全厅)
신장 생산건설병단 국가안전국(新疆生产建设兵团国家安全局)
6. 역대 국가안전부장[편집]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로고
중화인민공화국 인민경찰의 현직 총경감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휘장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국가안전부장
국가안전부가 국무원 산하 경찰조직이 된 이후 현재까지 총 6명의 장관이 존재하나, 해석에 따라 국가안전부 이전에 존재하였던 중국공산당 사회조사부 역시 국가안전부의 역사로 보고 국가안전부장을 총 11명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7. 대중매체[편집]
대체적으로 국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사이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걸로 보인다.
영화 - 강철비 리홍장 (김명곤 扮)
주인공인 곽철우에게 북한측 정보를 주고받는사이로 나오며 전용기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오는장면과 독일 B사 자동차중 높은급 뒷좌석에 타는걸 보면 국가안전부에서 좀 높은 직급인걸로 추정된다. [7]
영화 - 강철비2: 정상회담
숭스카이 (이남희 扮)
중국 국가안전부 서열 3위로 일본 야마토 재단 수장과 접선하여 센카쿠에서 진행될 중-일 전쟁 또는 독도에서 한국과 일본 전쟁에서 방관을 할지 선택하는 인물로 등장 [8]
드라마 - 검은태양 린웨이(옥자연 扮)
과거 위기 상황에서 국정원 블랙 요원인 한지혁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현재는 주한중국대사관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지혁에게 화향파의 동향및 백모사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주는 인물로 나온다.
영화 - 백두산(영화) - 리준평이 연락하던 중국 정보원과 그 부하들이 보천에서 접선하여 약속대로 기폭 장치와 지휘관을 내놓으라 했으나, 이를 가져오지 않은 준평을 보고 중국 정보원이 리준평의 복부에 권총을 한 발 쏘고 심문하다 그냥 사살하려고 했으나. 미 육군 레인저부대 병력과 중국 요원들이 교전하며 부딪히지만[9] 기폭장치가 작동된 것과 이를 통해 조 대위가 협박하는 것, 그리고 땅과 건물들이 흔들리며 4차 폭발의 징조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상부에 보고한 뒤 미 레인저부대와 중국측 요원들이 철수한뒤로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국내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일본, 북한이 연계되어있어 간혹 협조를 하는 장면이 나오나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스파이가 잡히면 스파이와 관련있는 기관으로 무조건 언급된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 처음에 발렌타인의 뒤를 캐는 정보기관(킹스맨)이 어딘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다가, CIA도 아니면 중국의 정보기관이 아니겠냐는 말이 나오자 발렌타인이 중국 정보기관은 이름조차 알려져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게 진짜 비밀기관이지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1] 당위서기 겸임
[2] 언론에선 공개되지 않았다.그럼 어떻게 안거야?
[3] 말이 이렇지 사실 본부로 끌려가진 않았다.
[4] 여관 주인은 중국 당국과 관련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유상준의 처지를 알아채고 몰래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5] 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전원 국가안전부 요원이었다.
[6] 공식적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교육부 산하의 일반학교지만, 실제로는 국가안전부가 첩보요원 양성에 사용한다는 의혹이 있다.
[7] 리홍장이란 이름은 청 말기 권력자이자 조선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이홍장으로부터 따온 듯하다.
[8] 위안스카이의 성을 宋(송)으로 바꿨다.
[9] 레인저 부대의 매복및 기습공격에 성공하여 몇몇 중국측 요원은 부상을 입는다.
태국 국왕 (태국 왕실)
King of Thailand
682px-King Rama ...
현직
마하 와치랄롱꼰
즉위일
2016년 12월 1일
지위
타이 왕국의 국가원수
관저
방콕 왕궁
1. 개요
2. 최고존엄
3. 여담
4. 역대 태국 국왕 목록
4.1. 수코타이 왕국
4.2. 아유타야 왕국
4.3. 톤부리 왕조
4.4. 짜끄리 왕조
1. 개요[편집]
태국의 국왕. 태국의 국가원수로, 현재 짜끄리 왕조는 1782년부터 이어져왔다. 1932년 시암 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짜끄리 왕조의 라마 10세가 현 국왕이다.
태국의 왕은 불교 신자여야하며, 불교 신자가 아니면 절대로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 절에 가서 수행하는 것은 필수적인 통과의례이며, 아주 오랜 시간의 수행을 마치면 왕에 즉위한다. 21세기의 태국의 국왕은 살아있는 부처 정도 위치에 있다고 보면 된다. 선왕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이 2016년 10월에 서거한 뒤 공위상태가 되어 추밀원장이 임시섭정을 하였으나 # 동년 12월에 선왕의 장남 라마 10세 마하 와치랄롱꼰이 즉위하였다.
70년 동안 큰 존경을 받았던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과 달리 현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은 엄청난 논란을 몰고 다니면서 현지의 젊은이들은 왕실과 군부에 대한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물론 대놓고 비방을 하면 불경죄로 잡혀가기 때문에 주로 트위터 같은 익명 사이트를 이용한다.
2. 최고존엄[편집]
2014년 제정 태국 헌법
제8조 국왕은 존경받는 신성한 지위에 있으며, 누구도 이것을 침범할 수 없다.
2017년 제정 태국 헌법
제6조 국왕은 존엄한 지위에 있으며 어떠한 사람도 모독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사람도 어떠한 방법 으로도 국왕을 비난하거나 고발할 수 없다.
태국 형법
제112조 국왕, 왕비, 왕세자를 비방하거나 위협한 자는 3년에서 최고 15년까지 형이 선고될 수 있다.
태국 국민들은 왕실을 존경하는 것을 넘어 굉장히 신성시 한다. 전국에 국왕의 초상화가 붙어져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푸미폰 국왕이 오랜 기간 통치하면서 수많은 정치세력들과 쿠데타 주모자들이 명멸하는 동안 오직 국왕만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태국 내에서는 그 권위가 대단하다. 형법 제112조 국왕 모독죄가 적용받는 법정 최고형량은 징역 15년이며, 이는 속지주의, 속인주의에 근거하여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실제로 술마시고 푸미폰 국왕이 미소짓는 큼직한 거리 간판에 낙서를 큼직하게 했던 외국인 관광객을 체포하여 징역형을 선고하는 바람에 외교적 마찰도 벌어졌다. 물론 대부분은 국왕의 자비로운 결정으로 국외추방 당하는 정도로 그쳤다. 왜 여행 가이드북에는 국왕 칭찬 일색인지 알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구석이 있다면 바로 최저 3년의 징역행이니까.
해외에 거주하는 태국 외교관들도 공무원 신분으로 태국법의 지배를 받는 만큼 국왕을 비판, 비난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주의를 게을리했다가 고발당하면 신분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유명한 탈북자 출신 기자 주성하가 태국 여행 도중 거리 곳곳에서 국왕 초상화와 초상화에 국민들이 절하는 모습을 보고 김일성 우상화와 비교하는 글을 올렸는데 태국 대사관에서 우리 폐하는 그렇지 않아!라며 공문을 보내왔다.
이런 법을 국왕 모독죄 혹은 불경죄(lese-majesty)라고 부르는데, 소위 민주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북유럽, 서유럽 입헌군주국에서도 아직 남아 있는 데다가 최근 판결 사례까지 있다. 그러나 태국은 그 형량이 유럽 군주국에 비해 지나치리만치 혹독하고, 또한 이들 국가에 비해 국왕에 대한 비판에 관대하지 않아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수준이다. 국가가 해외거주 자국민의 SNS를 감시하고, 국왕을 비판했다간 살인범이나 받을 법한 징역 20년이 선고되거나, 단순히 사진만 태워도 징역 3년에서 15년까지 선고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현재진행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국 헌법재판소는 국왕모독죄 형법 112조가 국민의 자유권을 규정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냐는 국왕모독죄로 수감 중인 솜욧 변호인단의 헌법소원에 대해 형법 112조는 국왕의 안위를 규정한 헌법 8조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조항으로 태국 국민은 이 헌법 조항이 규정하는 범위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사실 법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것을 떠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왕은 욕하지 않는게 좋다. 대부분의 태국인들은 왕실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이 깊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들의 정치인 욕하는 수준과 차원이 다르다. 선왕인 푸미폰(라마 9세)국왕은 능력도 뛰어나고 인품도 훌륭하다는 평판이 있어 태국인들 누구나 존경하는 큰 어르신 같은 인물이었다. 법에서 욕하지 말라서 못하는게 아니라 태국인 대부분이 진심으로 존경했던 인물.[1] 현왕인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은 선왕에 비해 명망이 굉장히 낮은 편이지만, 태국인들이 왕실에 대한 애정이 깊기 때문에 자기들이 욕할 수는 있어도 외국인이 욕하는 것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국왕의 사진은 지폐, 달력, 도로 광고판, 택시, 버스 등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으며 심지어 유흥업소 간판에도 붙어 있다. 멋모르고 "저 듣보잡은 누구심?"하고 묻는 실수를 했다가는 골치 아파진다. 길거리에 떨어진 지폐를 줍겠다고 발로 밟았다가는 국왕 모독죄로 잡혀갈 수 있다. 입헌군주제 국가임에도 실질적으로 국왕에게 주어진 정치적 권위는 막강하며, 국민의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군부의 쿠데타가 성공하더라도 국왕은 쿠데타의 대상이 아니며[2] 오히려 국왕의 승인을 얻지 못한 쿠데타는 실패한다. 덕분에 군부에서 쿠데타 일으켰다가 국왕이 하지 말라고 해서 무산된 적도 있다. 왕궁에 함부로 총질했다가는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왕 앞에서는 거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인사를 하며, 이것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총리까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현지에 진출한 한국 회사들도 왕이나 왕족이 방문했을 때 무릎을 꿇어 성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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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현 영상[3]
위 사진은 1992년 5월 20일 밤에 촬영된 것으로, 당시 태국은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수찐다 크라쁘라윤 정권과 청백리로 유명한 잠롱 스리무앙 전 방콕 시장이 이끄는 민주화 시위대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등 사태가 점점 악화되었는데 푸미폰 국왕이 이를 중재하기 위해 둘 다 입궁시켜 꿇어앉혀놓은 모습. 왕이 손짓으로 다가오라고 하자 두 사람 다 무릎으로 기어갔다. 물론 허락이 있기 전까지 고개조차도 감히 들지도 못했고… 맨 왼쪽의 인물이 잠롱 전 시장이고 우측의 인물이 수찐다 총리인데, 잠롱 전 시장은 5월 18일에 시 현장에서 군부정권의 무장군인에게 연행되었으나 국왕의 호출로 이틀 만에 풀려났는데 군인들이 정중하게 대해줬다고 한다. 또 이 날 푸미폰 국왕은 "국민을 위한 민주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로 사실상 수찐다 총리를 꾸짖었고, 그날로 수찐다 정권은 실각됐다. 태국 정치에서 국왕이 미치는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속하며, 하나 또는 두 명의 특정 사람들에게는 속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고한 시민이 피를 흘렸습니다. 사람들은 폭력에 의지하면 마음을 잃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왜 그들이 서로 싸우며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이 서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은 유일한 승자가 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길은 승리로 이어지지만 위험합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을 것입니다. 서로 폭력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패자가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 패자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 유적과 파편에 서있을 때 그대가 승자라는 것을 당신은 스스로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불기 2535(1992)년 9월 20일
사실 태국은 1932년 전까지 '전제군주국'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왕은 말 그대로 신이나 다름없었으나, 당시 짜끄리 왕조가 무능과 혹정을 거듭하던 중 1932년 6월 24일에 무혈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태국은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혁명을 주도한 사람은 중급 관리였던 쁘리디 파놈용과 쁠랙 피분송크람 장군. 이들의 무혈 혁명으로 인해 150년간 굳건하던 짜끄리 왕조는 일시적으로 힘을 잃고 라마 7세 왕은 영국으로 망명해 거기서 죽었다. 젊어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라마 8세[4]의 뒤를 이어 즉위한 그 동생인 푸미폰 국왕 역시 초기에는 군부 세력 및 그 후계자들의 조종을 받았으나 차츰 권력을 장악해 현재는 승리자가 되어 있다.
그러나 국왕의 위세가 몹시 강하기 때문에 사실 왕가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그 비판도 대놓고 말할 수가 없다는 점에서 명백한 사실. 또한 탁신 축출에 푸미폰 국왕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것을[5] 보면 지금도 왕실의 권력은 막강한 셈.
태국 국왕과 왕가인 짜끄리 왕조에 대한 태국인들의 존경심은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는데 과거 서방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주변 나라들이 죄다 식민지화가 진행될 때 태국은 왕을 중심으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대나무 외교를 하여 결국 유일하게 식민지가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냉전 시기에는 서방으로부터 독립한 주변 나라들에서 서방에 대한 반감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 열풍이 불어닥쳤으나 태국은 주변국들이 공산화되는 와중에도 왕을 중심으로 꿋꿋이 왕국 체제를 유지했다. 이렇듯 주변 정세가 어지럽고 혼란한 상황에서도 짜끄리 왕가는 나라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왕실에 대한 태국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은 엄청날 수밖에... 그래서 이와 같은 시기에 왕위를 역임했던 라마 5세와 라마 9세는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아 특히 존경을 받는다.
선왕이 존경을 받았지만 뒤를 이은 마하 와치랄롱꼰[6]의 경우 한량스러운 인물[7]인데다가, 폭력적이고 감정기복이 심한 충동적인 성격이라 평판이 안 좋아[8] 미 외교 대사에 따르면 태국 정세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예언은 들어맞았다
3. 여담[편집]
태국 국왕은 삼종신기가 아니라 오종신기, 즉 5개의 레갈리아를 물려받는다고 한다. 일본의 삼종신기와 다르게 실물 모습이 모두 공개돼 있는데, 왕관, 검, 왕홀, 부채와 파리채[9], 신발이다. BBC의 설명 기사
이외에도 태국 왕실은 굉장히 대단한 보물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인 골든 주빌리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비교적 최근인 1985년 남아공에서 발견되었는데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즉위 50주년(골든 주빌리)[10] 기념으로 국왕에게 바치기 위해 태국의 보석상 헨리 호의 주도로 태국의 재벌들과 기업가들이 돈을 모아서 드비어스로부터 이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여 국왕에게 헌상했다고 한다. 이 다이아몬드는 현재 태국 왕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현재 국왕을 상징하는 색깔은 노란색이며 왕비는 파란색, 왕족들 중 가장 지지기반이 확고한 둘째 공주는 보라색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는다.
태국 왕실의 재산은 공개되지 않지만 추산하기를 330억~700억 달러로 추산된다.
4. 역대 태국 국왕 목록[편집]
4.1. 수코타이 왕국[편집]
대수
왕호
재위 기간
1
시인터라티
1249년 ~ 1279년
2
반무안
1279년 ~ 1280년
3
람캄행 대왕
1280년 ~ 1298년
4
루타이
1298년 ~ 1323년
5
구아남툼
1323년 ~ 1347년
6
마하탓마라차 1세
리타이
1347년 ~ 1368년
7
마하탓마라차 2세
루타이
1368년 ~ 1399년
8
마하탓마라차 3세
사이루타이
1399년 ~ 1419년
9
마하탓마라차 4세
보로마빵
1419년 ~ 1438년
4.2. 아유타야 왕국[편집]
대수
왕호
재위 기간
1
라마티보디 1세
우통
1314년 ~ 1369년
2
라메스완
1369년 ~ 1370년
3
보로마라차티랏 1세
빠구와
1370년 ~ 1388년
4
톤란
1388년
(2)
라메스완
1388년 ~ 1395년(복위)
5
라마라차
1395년 ~ 1409년
6
인터라차
1409년 ~ 1424년
7
보로마라차티랏 2세
샘프라야
1424년 ~ 1448년
8
보로마트라이로우카나토
1448년 ~ 1488년
9
보로마라차티랏 3세
보로마라차
1488년 ~ 1491년
10
라마티보디 2세
체타
1491년 ~ 1529년
11
보로마라차티랏 4세
노풋탄쿤
1529년 ~ 1533년
12
랏사다
1533년 ~ 1534년
13
차이라차
1534년 ~ 1546년
14
요토파
1546년 ~ 1548년
—
워라원사
1548년(찬탈)
15
차크라팟
1548년 ~ 1568년
16
마힝타라티랏
1568년 ~ 1569년
17
산펫 1세
마하탓마라차
1569년 ~ 1590년
18
산펫 2세
나레쑤언 대왕
1590년 ~ 1605년
19
산펫 3세
에이커토사롯
1605년 ~ 1610년
20
산펫 4세
시사오와팍
1610년 ~ 1611년
21
보로마라차 1세
손탐
1611년 ~ 1628년
22
보로마라차 2세
체타
1628년 ~ 1629년
23
아티타야원
1629년 ~ 1629년
24
산펫 5세
프라섯톤
1629년 ~ 1656년
25
산펫 6세
차이
1656년 ~ 1656년
26
산펫 7세
시스탐마라차
1656년 ~ 1656년
27
라마티보디 3세
나라이 대왕
1656년 ~ 1688년
28
펫라차
1688년 ~ 1705년
29
산펫 8세
스리엔타라티보디
1705년 ~ 1708년
30
산펫 9세
타이사
1708년 ~ 1732년
31
보로마라차티랏 5세
보로마콧
1732년 ~ 1758년
32
보로마라차티랏 6세
우툼뽄
1758년 ~ 1758년
33
보로마라차 3세
에카탓
1758년 ~ 1767년
4.3. 톤부리 왕조[편집]
대수
왕호
재위 기간
1
(1743~1782)보로마라차 4세
딱신 대왕
1767년 ~ 1782년
4.4. 짜끄리 왕조[편집]
짜끄리 왕조의 국왕들에게 붙은 '라마'는 힌두교의 비슈누의 화신 라마를 의미하며, 왕의 이름이 아니다.
과거 태국의 국왕들은 신성화 차원에서 간혹 자신을 라마와 동일시하도록 했는데, 서구화를 이루게 되면서 서양의 왕국들이 'XX n세'로 왕호를 칭하던 것을 본받고자 했으나 이는 군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던 태국의 관습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국왕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1대 국왕 하는 식으로 대수를 붙여 말했는데, 여기에 태국 국왕을 상징하는 라마를 덧붙인 것이 '라마 X세' 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이러한 관습을 시작한 것은 라마 6세이다.
대수
왕호
재위기간
시작
종료
1대
라마 1세
풋타엿파쭐라록 대왕
(1736 ~ 1809)
1782년 4월 6일
1809년 9월 7일
2대
라마 2세
붓다 르뜰라 납할라이
(1766 ~ 1824)
1809년 9월 7일
1824년 7월 21일
3대
라마 3세
제싸다보드인드라
(1787 ~ 1851)
1824년 7월 21일
1851년 4월 2일
4대
라마 4세
몽꿋
(1804 ~ 1868)
1851년 4월 3일
1868년 10월 1일
5대
라마 5세
쭐랄롱꼰 대왕
(1853 ~ 1910)
1868년 10월 2일
1910년 10월 23일
6대
라마 6세
와치라웃
(1881 ~ 1925)
1910년 10월 23일
1925년 11월 26일
7대
라마 7세
쁘라자디뽁
(1893 ~ 1941)
1925년 11월 26일
1935년 3월 2일
8대
라마 8세
아난다 마히돌
(1925~ 1946)
1935년 3월 2일
1946년 6월 9일
9대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대왕
(1927~ 2016)
1946년 6월 9일
2016년 10월 13일
10대
라마 10세
마하 와치랄롱꼰
(1952~ 현재)
2016년 10월 13일
현재
[1] 물론 그도 완벽한 인물이 아니며 항목에 나와있다피시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분명히 있지만, 최소한 태국 일반인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이미지나 애정은 한국의 세종대왕급이다.
[2]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예로는 탁신 총리에 대한 쿠데타가 있다.
[3] 영상 처음에 나오는 인물은 현재 태국 국왕인 라마 10세이다. 잘 보면 왼쪽에 태극기가 보인다. 당시 왕세자 신분으로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 중이었기 때문.
[4] 이 암살사건에 '작전의 신' 츠지 마사노부가 관련되어 있다거나 라마 9세가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을 정도였다.
[5] 일단 태국 군부는 왕실을 지지하니 왕의 허가가 없었다면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6] 태국군의 장교로 복무한 경력이 있고, 슬하에 5남 2녀를 뒀다.
[7] 부인이 3명이나 되는데 여기에 정부도 뒀다.
[8] 게다가 에이즈나 C형 간염, 혈액암 등 혈액 관련 질환을 앓는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또한 본국이 아닌 유럽에서 지내며 민심을 잃은 데다가 2009년에는 셋째 부인인 스리라스미 왕자비가 알몸에 팬티만 걸치고 왕자의 애완견의 생일을 축하하는 외설스러운 비디오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9] 파리채가 레갈리아의 일부라니 생뚱맞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습하고 벌레가 많은 동남아, 폴리네시아 지역에서 날벌레를 쫒을 때 쓰던 막대에서 기원한, 진지한 의장 용품이다.
[10] 1996년
본문
[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56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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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태국에서 쿠데타가 났을 때 쿠데타 당사자와 쫓겨난 총리가 태국 국왕 (라마 9세) 의 부름을 받고 왕궁으로 왔을 때 무릎으로 기어서 왕 앞에 자리하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부분은 진짜 뉴스 영상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쿠데타 당사자에게 국왕이 넌저시 야단을 쳤다는 것 하나 때문에 쿠데타가 무산되기도 했고 말입니다. | 23.05.31 2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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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가 지금 2034 미중전쟁 이라는 책을 읽는 중인데 그 소설은 진짜 미국 만세가 아닌 중국과 미국이 완전히 아작 직전으로 가는 내용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제 소설에서의 최종빌런은 그런 전쟁조차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단순한 데몬스트레이션으로 써먹는 존재라고나 할까요? 핵전쟁까지 자신의 목적으로 써먹는 존재....... 지금부터 시작되는 부분에서는 그 최종빌런이 핵전쟁까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써먹는 이유가 제대로 보여진다고나 할까요? | 23.05.31 22: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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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저도 압니다. 무섭습니다. | 23.06.02 01:07 | |
(IP보기클릭)220.123.***.***
핵전쟁이라...폴아웃 이나 메트로가 보입니다. 그리고 곧 현실에도 다가올 판입니다. | 23.06.02 01: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