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게임사전, 여성이 주도한 이유는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의 윤송이 이사장은 영상을 통해 “게임은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문화 콘텐츠의 하나이고,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 같은 신기술 성장에도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사회적 인식은 나아지지 않았다.”며 “게임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높이고 그 가능성을 알리고자 사전을 편찬하게 됐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Q. 요즘 인기 있는 오버워치도 없고, 유저 시각에서 보면 빈약한 느낌이 있어서 향후 개정판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주기는 어떻게 될까?
이재성: 표제어에 대한 견해는 모두가 다를 것이다. 표제어를 더 늘리면 그렇게 만들 수 있겠지만,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해서 단순히 표제어만 늘리기보다 질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증보판의 경우는 일단 반응을 보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인화: 이 질문은 나올 줄 알았다. 게임은 엄청난 규모의 산업이고 매월 10여 편의 관련 저술이 해외에서 쏟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어제 밤에도 오버워치를 하다가 왔지만, 이 게임이 FPS라는 장르를 얼마나 바꿨는가 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전에 올라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왜 이화여대에서 만들게 됐나?
한혜원: 이화여대는 10년 이상 디지털학부에서 게임 스토리텔링에 관한 연구, 기획을 해왔다. 그래서 많은 여성 게임 기획자와 개발자를 배출해왔고, 60여명이 넘는 집필진 역시 이대 출신 석박사이다. 간혹 “이대에서 게임을 하다니, 충격이다”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만큼 게임은 미래 지향적이며 계속 진화해가는 산업이다. 우리 역시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Q. 기존의 출판사들이 사전 제작을 중단하는 시점에 이런 책이 나와서 반가웠지만 사전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런 방식의 편집을 하게 된 이유는? 그리고 혹시 사전 학회와 교류는 있었나?
이인화: 처음에는 게임학회와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게임학회는 멤버들이 여러 회사로 분산되어 있다 보니 진행에 어려움이 있어서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가 맡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앞으로 일하게 될 사람들이 전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다 보니 지금과 같은 편집이 됐다.
이재성: 사전 구성 방식이 기존 사전과 달라서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게임 세대는 요약된 정보에 익숙하다 보니, 이들을 배려해서 구성하게 됐다. 그리고 이 사전의 가격은 사회공헌적인 측면에서 책정했다. 비영리재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가격일 것이다.
Q. 오버워치는 없는데 비해 타이탄폴은 표제어에 있더라. 기준이 무엇인가?
이인화: 오버워치가 뜨기 전에 사전을 편찬하다 보니 그런 면도 있고(웃음)… 사실 그 외에도 아깝게 떨어진 게임들이 많다. 왜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없느냐는 이야기는 제작 과정에서도 많이 나왔지만, 종이로 만드는 사전이다 보니 담을 수 있는 양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앞에서 설명한 MDA라는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경우로 한정했다.
Q. 30년 간 최고였던 젤다의 전설은 3페이지에 불과한데 비해 리니지는 5페이지나 차지한다.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한혜원: 제일 큰 기준은 수치였다. 말뭉치 DB 안에서 몇 번 언급되었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제작하는 게임사전이다 보니 국산 게임에 좀 더 가중치가 주어지기도 했지만, 혼자 하는 게임보다는 여럿이 함께 참여하는 게임이 보다 미래지향적이라고 판단해 양을 늘린 부분도 있다.
이인화: 젤다의 전설은 분명 엄청난 명작이지만, 게임사전 제작 시 사용한 말뭉치 DB가 지난 5년 간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3만 번 정도 밖에 언급 되지 않았다.
Q. 게임사전의 표제어가 일상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이인화: 게임 용어는 나이와 세대를 초월한 미래의 인간 관계를 선취하고 있다고 본다. 나 자신만 봐도 게임을 하면서 잃은 것도 많지만, 대신 우정을 얻었다. 현실의 친구 이상으로 친해지면서 그들의 고민과 열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게이머끼리 맺어진 인간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확산되는 것이 시발점이 되리라 본다.
한혜원: 나 자신은 게임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눠지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초등학생인 아들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게임을 플레이 한다는 것은 곧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것과 동일시 되고 있고, 이들의 이야기에는 게임 속 단어가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미래 지향적으로 보면, 이 사전은 일상과 게임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Q. 이 사전을 온라인이나 앱 등으로 만들면 더 효용성이 높지 않을까?
이재성: 사전 주문을 받아보니 160권 정도가 나왔는데, 전자 사전화는 시기를 저울질해 보려한다. 실용성을 생각하면 동시 출간을 바라는 사람이 많겠지만, 비영리재단 입장에서 실용성만 강조되는 부분은 좀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또 출판 인쇄업에 대한 배려 차원도 있고.
Q. 이어령 전 장관이 감수했는데, 왜 그에게 감수를 맡겼나?
이인화: 개인적으로 이어령 교수는 가장 유능한 사전 편찬자라고 생각하기에 그 노하우를 적용하고 싶었다. 실제로 교수님이 직접 편찬된 사전의 내용을 전부 감수했다.
Q. 국내 최초의 게임사전이라고 했는데, 해외에는 어떤 사전이 있나?
이인화: 아마존에서 검색해보면 게임 개발자 사전은 있지만 게임사전은 없다. 일본 포털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그래서 게임사전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은 이번이 최초인 것 같다.
이재성: 국내 최초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부분이다.
Q.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넘어선 콘텐츠의 확장은? 예를 들어 게임 관련 인물집이라던가…
이인화: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닌데, 선정 기준이 문제가 되더라. 그래서 플레이어나 개발자 같은 관련 인물 정보는 전부 제외했다.
이재성: 일단 물꼬를 텄다고 말씀 드리고 싶고, 인물 쪽은 굉장히 관심 가는 영역이기는 한데, 사전 편찬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한 만큼 좋은 기준이 나타난다면 후속 작업에도 관심은 있다.
Q. 공신력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드는데, 공문서나 신문 등에서 쓰려면 공인을 받는 절차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인화: 국어대사전이 공인되었기 때문에 쓰는 것은 아니지 않나? 다만 국립국어원과의 교류는 가질 것이다.
한혜원: 국립국어원도 인터넷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서 역으로 우리가 레퍼런스로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미래 진행형을 기준으로 삼았지, 과거의 화석 같은 사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재성: 국립국어원과 접촉할 기회를 갖게 되면,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Q. 보다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포털과 연계할 생각은 없나?
이재성: 활용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으며, 우선은 인쇄물 사전의 가능성을 살펴보려 한다. 무료로 뿌리면 활용은 많이 되겠지만, 출판업계 입장에서 볼 때는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테고. 사전 출간 후 나오는 다양한 지적들은 어떻게든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
Q. 넥슨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인지 바람의나라와 리니지 분량 차이가 3배 정도 나더라. 사심이 1%도 안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나?
이인화: 전혀 그렇지 않다. 엔씨소프트에서 후원은 했지만 집필진은 넥슨에서 더 많이 일하고 있다(웃음). 바람의나라의 의의는 크지만 동시접속자가 100명 대 인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지 않나.
이재성: 그런 이야기가 나오다니 좀 서운하다. 우리는 집필진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했다.
Q. 집필진이 대부분 여성이지만 정작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남성이 훨씬 많다. 또 남자와 여자의 시각 차이도 있는데, 개정판 제작 시 이 점을 보완할 생각 없나?
이인화: 게이머는 90%가 남자이지만, 국내에서 게임을 연구하는 사람은 90%가 여자다. 게임학은 매달 다량의 연구서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를 꼼꼼하게 점검하는 작업이 여성들이 더 유리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재성: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이화여대에 집필을 의뢰한 것이 아니라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에 집필을 의뢰했다. 대부분이 여성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그런 부분도 반영이 필요할 것 같다.
Q. 표제어 선정 시 인벤의 DB를 사용하다 보니 온라인 게임 위주로 선정되어버렸다. 다른 웹진이나 커뮤니티의 DB도 추가해야 하지 않나?
이재성: 사실은 시도를 했는데, 과거 5년 간의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한혜원: 그래서 다른 플랫폼에 대한 고려를 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Q. 게임 이용자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는 사어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신조어와 사어의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재성: 야구 사전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는데, 빈도 수의 문제는 있지만 OX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증보판을 어떤 주기로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할 생각이 있다.
Q. 이용자가 참여하는 위키 같은 형태로 사전을 공개할 생각은 없나?
이재성: 아직은 시기 상조라고 본다. 출판물과 별개의 프로젝트로 간다면 몰라도. 그리고 공모전 당시 1천명 이상의 이용자가 참여해 8천 건 이상의 표제어를 제시해서, 이용자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된 상태다.
이장원 기자 inca@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