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나 어떤 물건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흔히 ‘증발’ 했다는 표현을 씁니다. 엄격하게 말해 이런 표현은 물리화학적 현상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증발한 물이 공기 중에 수증기 형태로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는 그 사람이나 물건이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담아 쓰는 것 같습니다.
“삼척동자가 증발했다!” 라는 말이 요원들의 무전을 타고 들렸을 때에도 그런 의미였을 겁니다.
삼척동자는 말 그대로 키가 작아서 붙여진, 어느 국제 폭력단원의 별명입니다. 키는 작지만 머리가 여간 비상한 게 아니어서 테러, ㅁㅇ 밀매 등 가릴 것 없이 여러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건전한 사업가 행세를 하는 타입의 인간이죠. 필리핀에 오래 숨어 있다가 최근에야 한국으로 숨어 들어왔다고 합니다.
삼척동자는 현재 쫓기는 몸입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걸렸습니다. 그의 소재가 밝혀진 건, 한 장의 메모 덕분이었습니다. 메모에는 자신의 은신처 리스트를 적어두었는데 보는 바와 같이 확실하게 가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섯 곳의 은신처 중 세 곳에는 동그라미가, 나머지 두 곳에는 사선이 그어져있습니다. 즉, 동그라미가 쳐진 세 곳이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은신처로 낙점됐다는 것이죠. 가장 신뢰하는 부하가 가지고 있던 것이니 메모 자체의 신빙성은 확실했습니다.
다행히 동그라미가 쳐진 세 곳 중 두 곳은 건물 자체가 없어지거나 주인이 바뀌어서 은신처가 아님이 확인됐습니다. 나머지 한 곳은 역시 바닷가에 위치한 별장인데 이곳이야말로 숨어 있기 알맞은 곳이었지요.
그런데…… 그 별장에 삼척동자는 없었습니다.
그럼 위로 솟구친 것일까, 아니면 땅으로 꺼진 것일까. 헬기 탈옥이야 외국에서 간간히 있어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지만 당시 하늘에서 헬기는 물론 어떤 비행물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땅 속 숨을 곳도 없긴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며칠 후 삼척동자는 이 별장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원인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였습니다. 그가 발견된 곳을 확인했을 때, 모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삼척동자는 왜 메모에 동그라미를 친 은신처에 있지 않았던 것일까요?
출처- 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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