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가 유럽 원정 도중 우구데이 칸의 사망으로 회군할때 불가리아를 휩쓸었는데(당시 테살로니카 제국은 이미 몰락한 상태)
이때 카단 오구르(우구데이 칸의 아들)이 이끄는 병력이 라틴 제국이 다스리던 동 트라키아 일대까지 휩쓸었다고 합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웃음)이었던 보두앵 2세가 성 밖으로 나와 대응했지만 패배하고 생포 당했다고 하더군요
이때 보두앵 2세(혹은 몰락한 라틴 제국?)을 추모하던 시도 있었다고 합니다(De triumphise ecclesiae-Suum luget Thracia victa ducem)
시 내용을 보면 몽골 제국에게 쓸려나간 국가의 지도자들 모두를 애도하는듯 하는데, 시 마지막에 "패배한 트라키아의 지도자를 애도한다" 구절에서 나오는 트라키아의 지도자가 보두앵 2세인듯 합니다
뭐 알다시피 보두앵 2세는 이때 안죽고 어찌어찌 돌아왔다가 결국 미하일 8세의 공격에 패배하고 도주했지만...
이때 라틴 제국이 마지막으로 영끌하다시피 모은 전력을 전부 말아먹은것도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라틴 제국의 숨통을 끊은것도 몽골이라 볼 수 있겠네요
이후 룸 술탄국을 정복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리스 세계에 몽골이 개입한듯 합니다
테오도로스 두카스의 테살로니카 제국은 이미 몰락했고 테살로니카를 패퇴시킨 불가리아와 온 유럽을 쏘다니며 원조를 구한 끝에 마지막 반격을 준비하던 라틴 제국, 동쪽의 위협 룸 술탄국 전부 한번에 몽골이 정리해준게 어찌보면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몽골이 아나톨리아를 침공할때 운 좋게 니케아는 빗겨간 덕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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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로마 게시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ㅎㅎ 동로마사와 몽골 간 연계에 대해 다룬 시도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세계사를 보면 각 문화권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교류하는 양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문제는 세계사를 다룰 때 그런 교류사는 제대로 언급되는 편이 아니죠. 07년 즈음에 교과서 차원에서 교류사를 넣으려고 시도했던 걸 보면 학계에선 아예 교류사 자체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데, 이게 중등교육 차원에서는 번번이 가로막힌다는 점이 참 그렇더라고요. 교류사 측면에서 몽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죠. '진정한' 유라시아 간 교류는 몽골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니까요. 2. 몽골이 이피로스(테살로니카 제국) 및 라틴 제국, 룸 술탄국 등등과 전투를 벌이는 사이에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이후 행보는 그저... 미하일 8세가 서유럽 성직자들을 쫓아내며 동로마 고유의 전례 방식을 회복하고 대관식을 치르긴 했습니다만, 요안니스 4세의 안구를 적출한다는 희대의 패착을 저지르는 사태가 터졌죠. 그리고 로마 내에서 그에 대한 반발로 내분이 발생했고요. 기껏 수도를 회복했는데 그런 장대한 삽질을 저지르니 로마가 지중해 패권국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듯합니다. 안드로니코스 3세가 선대의 잘못을 수습하다가 요절하지만 않았더라도 역사가 달라졌을 것 같네요. 3.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중화권과 로마 사이의 인식과 교류 등에 대해서 다루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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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로마 게시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ㅎㅎ 동로마사와 몽골 간 연계에 대해 다룬 시도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세계사를 보면 각 문화권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교류하는 양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문제는 세계사를 다룰 때 그런 교류사는 제대로 언급되는 편이 아니죠. 07년 즈음에 교과서 차원에서 교류사를 넣으려고 시도했던 걸 보면 학계에선 아예 교류사 자체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데, 이게 중등교육 차원에서는 번번이 가로막힌다는 점이 참 그렇더라고요. 교류사 측면에서 몽골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죠. '진정한' 유라시아 간 교류는 몽골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평가받을 정도니까요. 2. 몽골이 이피로스(테살로니카 제국) 및 라틴 제국, 룸 술탄국 등등과 전투를 벌이는 사이에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이후 행보는 그저... 미하일 8세가 서유럽 성직자들을 쫓아내며 동로마 고유의 전례 방식을 회복하고 대관식을 치르긴 했습니다만, 요안니스 4세의 안구를 적출한다는 희대의 패착을 저지르는 사태가 터졌죠. 그리고 로마 내에서 그에 대한 반발로 내분이 발생했고요. 기껏 수도를 회복했는데 그런 장대한 삽질을 저지르니 로마가 지중해 패권국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듯합니다. 안드로니코스 3세가 선대의 잘못을 수습하다가 요절하지만 않았더라도 역사가 달라졌을 것 같네요. 3.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중화권과 로마 사이의 인식과 교류 등에 대해서 다루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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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과서에선 주로 정복, 문화 이런 위주로 다루다보니 교류의 비중이 줄긴 하더라고요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말씀하신것 처럼 진정한 유라시아의 교류는 몽골 제국으로부터 비롯되었죠. 몽골 제국에 버금가는 교통, 무역망은 대항해시대는 와야 나타났다고 하니... 2.아르세니오스 분열 일으킨 주제에 뻔뻔하게 뻗댄거 보면 미하일 8세를 좋게 볼 수가 없죠. 소산드라 쿠데타 이전 영광의 치세를 펼치다 그때부터 갑자기 몰락의 구렁텅이로 급드리프트 밟으니... 저도 개인적으론 팔레올로고스가 저평가 받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가 소산드라 쿠데타->아르세니오스 분열->아나톨리아 상실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라 보네요. 3. 의외로 중화권과 로마의 교류 관련해선 기록이 제법 있더라고요 ㅎㅎ 한나라 역사를 다루는 전한서, 위진남북조 역사인 북서, 당나라 역사인 구당서, 송나라 역사인 송사, 명나라 역사인 명사까지... 이렇게 보면 동방의 지배자 중국도 무시못할 제국이라 여겼다 봅니다 ㅎㅎ | 22.05.22 20: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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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지배자였던 로마는 결국 멸망하며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중화권은 한나라 대부터 명, 청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족의 문화가 존속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그런 점에서 로마와 중화권의 차이점을 연구한 학자도 있다고 압니다. 왜 로마는 최종적으로 멸망한 반면 (문화대혁명이라는 엄청난 대사건이 일어났다고는 하지만) 중화는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가? 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로 다가올 만합니다. | 22.05.22 20:5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