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느덧 30화입니다.
작문은 어렵네요. 주인공인 소사매의 이야기가 메인이 되어야하는데 그쪽으로 돌리기에는 멀리 와버린 느낌입니다. 아직 잊지않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소사매 만세!
여튼, 얼마전부터 연재 소설 게시판에 다른 개인작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판타지 장르인데 아예 새롭게 쓰는 소설이라 걱정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도전인 느낌이라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월영전을 관두거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언제까지나 메인은 월영전이니 참고바랍니다.
홍보차 연재소설 게시판 링크 남깁니다.
http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
https://ruliweb.com/family/212/board/300068?search_type=member_srl&search_key=574330
여기 링크가시면 있으니 봐주시면 매우 감사합니다!
월영전은 루리웹 활협전 게시판에서만 연재되고 있는 2차창작, 팬픽입니다. 본작의 스토리에서 따와 개인이 만든 것이니 본작과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있지 않습니다. 별개의 작품입니다. 월영전은 활협전이 아닙니다.
저는 활협전의 본 스토리를 존중합니다.
계속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쾌속과 괴력.
극과 극.
커다랗고, 무겁고, 신속한 움직임이 얽히고 설켜 그녀들만의 무대가 비로소 만들어진다.
탁탁! 촤악! 부웅!
용상은 두 손에 검을 따로잡고, 소월은 양손에 검을 한꺼번에 쥐고 절도를 갖춘 휘두름과 아찔하고도 절묘한 회피가 들어맞는, 실로 깔끔한 검무가 한가운데 펼쳐지고 있었다. 이전의 폭발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정돈된 대련양상을 보였다.
탁! 타탁! 휙! 파앗!
소월의 크게 휘두른 큰 검을 용상의 왼손의 검이 절묘하게 흘려보내고 빈틈을 타 그녀를 향해 몰아치는 오른손의 검. 그러나 소월은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완력을 이용해 이미 휘둘러진 큰 검을 재빨리 빼서 막거나, 몸을 쥐어짜듯 비틀어 피해버리는 곡예를 펼친다. 이어서 큰 검을 용상을 향해 휘두르면, 그녀 역시 뛰어올라 또다시 찔러들어가는 대담함과 간담 서늘하게 만드는 재주를 부린다.
수십 합의 변칙적인 두 여협의 검무는 서로의 눈빛이 빈틈을 파고들어 째려본다. 그 중 먼저 빈틈을 본 것은 소월이었다.
"도월용신심결(刀鉞蓉身沁結). 풍용격(風蓉擊)!!"
단순한 휘두르기가 아니다. 자신의 키보다 큰 검을 휘둘렀지만 결코 무겁고 느린 몽둥이를 휘두르는 듯한 것이 아닌, 깔끔하고 날카로운 한 획이었다. 매가 먹이를 이 잡듯 치밀하게 살펴보고 달려들었으나, 상대도 만만치가 않다.
소월의 궤적을 꿰뚫어본 듯, 여전히 교묘하게 궤적을 한쪽 검으로 받아내 흘려 피해를 최소화하고 남은 다른 한쪽 검으로 먹이를 낚아채려 휘두르지만 굳게 닫힌 거대한 성문처럼 아무리 두들겨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마치, 그 옛날 합비(合肥)의 명성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용상은 소월의 또 한번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공중으로 뛰어들어 공력을 모은 뒤, 쌍검을 교차하여 휘두르며 쌍검에 깃든 뜨거운 열기의 검기를 뿜어낸다.
"용아쌍검공(龍兒雙劍功). 쌍검기(雙劍氣)!!"
파아앙!!
소월은 공기를 찢어내고 다가오는 십자의 검기를 큰 검을 휘둘러 검압으로 튕겨내 와해시킨다. 반격에 늦을세라 곧바로 달려들어가지만 식은 땀과 함께 재빨리 두 손을 뻗어 검을 방패삼아 용상의 번개같이 찔러들어오는 쌍검을 견고히 방어한다.
"쌍룡열파(雙龍裂破)!!"
투타타탁!!
"윽...! 내가 밀려...??"
나선을 그리며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검을 막으니 그 마찰로 검은 연기가 날 정도였다. 진검이 아닌 탓에 둔탁한 괴음이 사방을 진동시키고 타는 냄새가 나며 마치 화염이 그녀들을 감싸는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소월은 큰 검으로 막아낸 쌍검을 밀어내고 두 손 꽉 쥐어 벌어진 간격 사이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공력을 실은 거합을 폭풍우같이 매몰차게 휘둘렀다.
"용아풍(蓉芽風)!!"
파아아앙!!
"윽...! 고작 풍압만으로...!?"
큰 검이 휘둘리면서 사방을 쥐어짜고 있던 바람이 순식간에 용상에게 몰아쳐 풍압만으로 그녀를 더더욱 공중으로 밀어냈다. 마침내 아차 싶은 순간이 다가왔다. 용상은 공중에서 자세가 풀린 채로 무방비 상태에 들어가버렸다.
"이, 이런...!!"
소월은 그대로 경공으로 지면을 박차올라 속수무책인 상태의 용상에게 뛰어들었다. 지면으로부터 큰 검을 휘둘러 검기 일합을 날렸다.
"용아삭(蓉芽削)!"
파아앗!
얇고 날카로운 바람을 실은 검기가 살얼음처럼 용상에게로 퍼져나갔다. 용상은 방금 전의 풍압 때문에 자세를 고치려 발버둥쳤지만 예리하게 들어오는 검기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때 기지를 발휘하여 빠르게 발 끝에 진기를 모아 허공을 박차 겨우 피했지만 그 위치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큰 검이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괴력에 속도마저?! 불공평하... 윽!"
찔러들어온 검은 그대로 공중의 용상을 찔러들어갔으나.
"시, 실수를...!"
"노, 놓칠세냐!!"
운이 좋은 건지, 바람이 그녀를 밀어낸 것인지도 모를 것이, 큰 검은 용상의 옷깃을 찌를 뿐이었다. 이것은 소월의 치명적인 실책이 되어버렸다. 옷을 찔려 밀려난 덕분에 용상은 그 힘을 이용해 그대로 챗바퀴 돌듯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심법의 공력을 담은 쌍검을 굳게 쥐고 불타는 원을 그리며 유성화(流星花)처럼 떨어졌다.
"쌍아염공륜(雙牙炎攻輪)!!"
"윽...!"
타타탓타타!
용상의 불타는 것 같은 속도의 베어내림과 동시에 소월은 결국 유효타를 맞고 지면으로 같이 떨어졌다.
쾅!!
떨어진 여파로 주변이 모래먼지로 자욱하게 안개가 꼈다. 안의 여협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조용한 상태를 보아하니 마치 대련이 끝난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짙고 억눌린 새까만 먹구름 같은 존재. 곧바로 둘은 모여 서로의 맹렬한 기운을 남김없이 부딪혔으니 곧 뇌신의 기운이 사방을 잠식하게 될 것이었다.
콰창!! 휙! 파아앙! 퍽! 파앗!
그녀들의 군더더기없는 검무가 또다시 시작되었고, 서로가 거리를 벌려 검을 휘두르며 검기전 또한 시작되었다. 용상의 쌍검이 휘몰아치면 숨죽이며 기회를 틈타 소월은 원을 그리며 피했고, 잠시 지친 모습을 보이면 이때다 싶어 큰 검을 꽉 쥐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크게 내려베었다.
콰창!!
용상이 가까스로 피하면 큰 검의 움직임은 잠시 멎고, 사라진 용상의 쌍검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게 되지만, 이내 깨달음을 얻고 공중을 쳐다보았다.
"그쪽이 아닙니다!!"
"윽...!"
소월이 뒤늦게 뒤를 돌아봤을 때는 어수선했던 쌍검을 빠득 쥔 용상이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그리며 난무를 펼쳐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적오용아칠격(赤烏龍牙七擊)!!"
쌍검은 마치 두 마리의 용이 거대한 발톱으로 자신을 찢어버리려고 들어오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만큼 진검도 아니고, 평범한 두 자루의 검일 뿐이었는데 오로지 화염풍과도 같은 날카로운 기세만으로 기백을 눌러버릴 것이 충분해 보였다.
투타탁!! 파아앙!!
일곱번의 강렬한 난무가 끝이났다. 용상은 소월의 강고하고 단단한 방어를 어떻게든 뚫어보려 했지만, 괴력과 지칠 줄 모르는 소월의 체력을 대적하기에는 슬슬 무리가 있어보였다. 용상은 몰려오는 피로감에 떨려오는 두 팔을 정신력 하나만으로 풀어내고, 이에 늦을세라 곧바로 한줄기의 검을 불에 달군 듯한 쇠꼬챙이처럼 소월에게 찔러 넣었다.
"용뢰아(龍雷牙)!!"
찔러들어오는 날카로운 일격. 피하는 것을 잠시 멈출 수 밖에 없는 빠르기에 재빨리 큰 검을 방패삼아 막아낸다.
따악!! 훅!!
소월의 얼굴을 비집고 깊게 들어와 버린 용상은 스스로가 실수를 크게 한 모양이었는지 썩은 미소를 짓고 눈빛에 불을 켜고 들어오는 소월의 박치기에 그만 얼굴을 밀려 자세가 크게 휘청였다.
퍽!!
"윽...!"
다리가 풀려버린 용상의 몸을 커다란 검으로 밀어내 간격을 만들고 그대로 몸통박치기하여 더욱 거리를 벌린다.
쿵!!
용상의 정신이 슬슬 한계에 다다렀다.
' 윽...! 충격이... 크다. 이, 이대로 가다간...! 아... 정신이... '
대들보마냥 커다란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버려 잠시 정신을 놓아버린 용상은 곧바로 자신에게 들어오는 소월의 커다란 일격을 눈 뜨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풍용격(風蓉擊)!!"
.
.
.
"용 소저!!"
콰창!!
커다란 벼락이 서로 부딪히기라도 한 듯한 소리가 대회장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빠드드드득...!
용상은 부서질 것만 같은 두 자루의 쌍검으로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소월의 큰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 이걸 그 잠시 사이에 막아내시다니...?!"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녀의 정신력에 감탄이 절로나왔지만, 용상은 결국 한계가 와버린 듯 했다.
"하아... 하아... 윽... 내, 내가 그냥 져버리는 추태를 부릴 수는 없지요. 팽 소저. 아니, 후배님. 그래도 무림에 용녀협이라는 이름을 날렸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그의 목소리를 들어버렸는데 정신이 나가더라도 할 것은 다 해...야..."
두 팔을 부들부들거리며 겨우 서있던 용상이 결국 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고 힘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소월은 너무 놀라 그만 검을 떨어뜨리고 용상을 향해 다가갔다.
"요, 용녀협...!?"
탁!
그때 관객석으로부터 누군가가 뛰쳐나와 힘없이 쓰러지는 그녀를 안아들었고, 그제서야 소월은 다급한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자자. 이만하면 됐소. 고생했습니다, 팽 부인. 용 소저는 본협이 데려갈테니 이만 물러나시구려. 대련. 잘 보았소. 혹시나 용 소저에게 할 말 없소? 마침 대련대회이다보니 필요한 이야기라면 내가 전달해 드리겠소만."
쓰러지는 용상을 안아든 것은 당포의였고, 정신줄이 풀려 어지러웠던 그녀에게 마지막 기운을 넣어 준 것 역시 그였다. 소월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예의를 갖추고 이야기했다.
"용녀협의 기량은 본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완벽했습니다. 본녀의 그간 응어리진 한을 다 풀어버리는 듯한, 가슴 충만한 대련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괴력 때문에 그 누구도 본녀에게 대적하려 하지 않았던 지난 세월을 말끔히 채웠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대련이었습니다. 용녀협의 움직임 역시, 군더더기 없었지요. 단지 제 괴력이 그녀에게 크게 다가온 것이 패착이라 생각됩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본녀는 더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 괴력만 없었어도 땅에 무릎꿇고 있을 것은 본녀가 백번 옳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용녀협은 강하십니다."
당포의는 소월의 이야기를 듣고 안심의 한숨을 내쉬었고, 잠들어있는 그녀의 고운 뺨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쓰다듬을 뿐이었다.
"호오...?"
하후란이 탄식했다.
"아..."
묵령도 탄식했다.
"와아..."
번소천도 넋을 잃고 쳐다볼 뿐이었다.
"......에에잇!! 구경났어?? 다음 준비해, 준비!!"
그리 소리치고는 당포의는 잠들어있는 용상을 안아들고 부랴부랴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들 그런 느낌인지라 어디선가 동백꽃 향내가 나는 듯 기분좋은 냄새를 풍기는 착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저 그 둘을 묵묵히 축하할 뿐이었다. 상황을 정리하고자 조운이 나서서 살피기 시작했다.
"흠흠. 그러면 일단 다음 대련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금 남아 계신 분들이..."
안에 있는 매, 국 자매를 빼면 엽운주, 번소천, 비연, 하후란, 묵령 정도였다. 재미있는 배치가 여럿 보인다. 서둘러 조운이 제비통을 가져와서는 다섯 사람에게 우선순서를 정하는 시간을 가졌고 다음 대련시합의 우선권은...
"음."
구 점창파 창송검객 엽운주 였다. 이들과는 크게 인연이 없어 그가 누구를 상대로 고르냐는 것이 관건이었다. 비연을 살짝 떠보는 눈치였지만 가면 뒤에서는 슬쩍 당황하는 듯한 떨림이 보이자 피식 웃고는 시선을 돌려 이중, 가장 노련한 자를 바라보았다.
"호오?"
과거 여마두라는 악명을 가졌던 은화지란(銀化之蘭) 하후란을 지목하는 듯 했다. 그저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고, 하후란 역시 그의 쾌검에 관심이 어느정도 있었다. 일반적인 점창파의 애송이가 아닌, 한 사람의 고수로서의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는 하후란에게 있어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마침 하후란은 내력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을 시험해 볼 좋은 자리라 생각하기도 했으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제법 괜찮은 제안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좋소. 재밌는 대련이 될 것 같군. 그대의 지목에 따르리다. 소언. 대련은 다음으로 미루자꾸나."
그리 이야기 하고 하후란은 대회장으로 엽운주보다 먼저 자리잡았다. 움직이는 내내 그녀의 은발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주변을 홀렸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이목을 산 것 같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들지않았으나 오늘만큼은 기분이 좋은 나머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무시할 뿐이었다. 엽운주도 하후란의 움직임에 맞추어 회장으로 따라 들어갔고, 한치의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 참, 너무 말끔한 움직임 아니오?"
엽운주가 답했다.
"하하... 하후 소저만 하겠습니까?"
"후후... 점잖군요."
엽운주는 그녀의 상태를 부인에게서 전달 받은 것이 있었고, 그녀의 자존심을 긁어보려 그 답지 않은 도발을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하후 소저만 괜찮다면 본협이 소저의 두 수 정도는 흘려드리겠습니다만. 듣기로는 내력을 확실하게 되찾으셨는지 모를 일이라 양보드리려 합니다."
최대한 예의차리며 이야기를 건네자 하후란은 그의 도발에 넘어간 듯, 아닌 듯 하게 답했다.
"호오? 본녀를 농락하는 것이오? 대담하시군. 그 말, 후회할 거요?"
엽운주 나름의 배려섞인 도발이었지만 그녀의 성질을 돋우기 위한 도발에 좀 더 가까웠다. 입가에 머금고 있던 음흉한 미소가 간접적인 증거였으니 이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약은 속셈이 있었다.
묵령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 원래 저리 경솔하신 분이셨던가? 아니면 그녀를 배려한 것? 하아... 역시 아직 사회공부가 부족한 것인가... 저들의 직선적이고 여유로운 대화를 아직은 못 따라가겠어. '
그때 비연의 가려진 시선이 느껴졌고 묵령이 돌아봤을 때는 어느샌가 사라져 기분탓인가하며 가볍게 여겼다.
' ......'
시선은 다시 대회장으로 옮겨졌고, 하후란과 엽운주는 아직도 대치중 이었다.
"본녀가 상대해본 점창파 분들은 하나같이 애송이의 실력을 가졌던 기억이 있소만, 그대는 좀 다를까요?"
엽운주의 소속은 이미 탈 점창이었기에 딱히 타격은 없었다. 그러나 점창쌍존(點蒼雙尊)의 두 선배에게는 배울점이 많았다고 여겼지, 다들 자신의 여동생만을 노렸던 파렴치한 이란 것을 알고서는 아예 연을 끊어버릴 정도였다.
"뭐, 과거의 일입니다. 지금의 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만."
"후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줄 알았건만, 보기와 같이 딱히 다를 게 없어 보이는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러나 본협은 점창의 검술을 사용하지 않을 것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후란은 오른손을 들어올려 다섯손가락을 까드득 거리며 굳어있던 마디마디를 풀기 시작했다.
"두 수면 충분하오."
"...그럼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엽운주가 먼저 고개숙여 시작의 예의를 표하자 하후란도 맞춰서 똑같이 예의를 보였다. 이어 엽운주가 쾌검의 자세가 아닌 다른 자세를 취하자 하후란이 그 모습을 보고는 보통내기가 아니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 즐거움? 두근거림? 흥분? 오랜만이긴 한데 저 자세는 대체 무엇이지? 점창파가 아닌 것이라, 탐색전이 필요하겠군. 아니면... '
하후란도 이내 자세를 잡고 손을 놀리기 시작했으나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무언가 했지만 곧바로 어색함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차... 강골산(强骨傘). 소언이에게 줬었지. 이제는 호연국의 그늘에서 벗어난, 나 자신이란 말인가. 후후... 그대, 해방되었구려. 이젠 당신을 그늘에 둘 필요도 없어졌으니 본녀는 이제 자유롭게 거닐 것이오. 그러니 이젠 그대에게 미련을 버리겠소. 나의 벗... 부디 평안하기를..."
번소천은 그녀의 뒷 이야기를 알고있기에 잠자코 바라만 보았다. 오래묵은 짐을 덜어낸 듯한 얼굴표정을 보고 있자니 다행이라 여겨졌다. 엽운주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확실히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당문에 의탁했을 당시 조활이 데려온 것을 계기로 마주한 것이 전부였으나 지금의 그녀는 그때의 그녀를 이미 초월했다고 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때보다도 한층 더 여유로워 보였으니 그의 목검을 쥐던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긴장을 해버리게 되었다.
하후란이 한층 더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엽운주가 그녀의 수를 받을 준비를 했다. 그녀의 호흡은 한치도 흐트러짐없이 냉기를 사방에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주변의 공기가 응결되어 하얗게 안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하후란의 은빛 머릿결 덕분에 더욱 설녀(雪女)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그녀의 내력은 거의 다 되돌아온 듯 보였다.
"후우... 첫 수요."
엽운주는 방어를 더욱 굳혔고,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그녀의 첫 수를 지켜보기 위해 두 눈을 번쩍이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후란의 차가운 손바닥이 올라왔다.
"설파장(雪破掌)!"
그녀의 가녀리고 차가운 손바닥에서 설산의 진수가 뿜어져나와 엽운주를 덮쳤다. 발을 지면에서부터 박차 그것을 피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도(移途)!"
직선을 향해 뿜어져나가던 새하얀 냉기의 장이 그녀의 명령을 따르듯 궤적을 바꿔 엽운주에게로 다시 길을 되찾았다.
"윽!"
자신에게 날아오는 설파장을 그대로 발로 밟고 뛰어올랐다. 설파장은 사르르 하얀 안개가 되어 사라졌고 하후란은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 설파장을 그대로 밟고 뛰어오를 생각을 하다니. 좋아. 보아하니 내력은 미묘하지만 돌아왔다. 이번엔 공력을 모아보자. 아직 숨기는 것이 있는 소협이야. 끌어내보는 것이다. '
부우우웅.
하후란은 두 손을 모아 이번엔 더욱 거대한 기운을 불러낼 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엽운주는 머릿속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고, 공중에서 어떻게 두 번째 수를 대응할지를 고민했다.
' 탐색전이 방금 그 한 수로 끝이었는가? 공력의 양을 보아하니 이번에는 제대로 큰게 오겠군. 괜히 두 수를 양보했나. 방금 전의 장(掌)도 정통으로 맞았다면 위험했겠는데... 점창검보를 버리고 만든 이 무공이 제대로 먹힐지 시험해볼 시간인 것 같군. '
그리 생각하고선 손에 든 목검을 빼어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하후란도 본격적으로 답을 원하는 것 같으니 공력을 모아 손 안의 새하얀 한기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운답(騰雲踏). 망월(望月)."
지면으로부터 경공을 사용하여 공중의 엽운주를 향해 다가갔고, 그 역시 하후란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조금씩 떨어져 상황을 살폈다.
"호오...? 마지막 한 수는 양보 안하시는 것이오, 엽 소협?"
"죽기는 죽기보다 싫소만..."
"후후. 재밌는 소리를...!!"
하후란은 새하얗게 질린 손바닥을 그를 향해 펼쳐 순수한 냉기를 담은 정수를 내보였다. 맑고 투명한 옥(玉)같이 응축된 정수는 단순한 설산의 냉기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하후란은 자신의 공력을 마음대로 조종한다. 엽운주에게 내려진 과제는 이걸 피할 수 있을지 였고, 딱히 자신은 없었지만 믿는 구석을 다시금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하후란은 결국 자신감엔 자신감으로 부딪히기를 선택한 엽운주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피해보십시오. 두 수를 양보해주신 답례로, 다음 소협의 한 수를 본녀가 친히 양보해 드리리다."
엽운주는 그녀의 소스라치게 차가운 언행과 자신감 넘치는 여유로움에 식은 땀과 함께 치를 떠는 당혹스러움을 그만, 얼굴표정을 통해 표출해버렸다.
"이거... 도박의 가치가 너무 커지는데... 상성이 너무 안좋아."
하후란은 손 안의 공력을 서서히 회오리치게 만들어 냉기의 정수를 점점 빠르게 돌리기 시작했고 점차 주변이 새하얗게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보이지 않는 모습과 싸워야하는 상황 속에서 결국은 사건이 시작되었다.
"설파빙옥장(雪破氷玉掌)!!"
투우우웅!!!
묵직하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녀의 설파빙옥장이 엽운주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꽤나 고민했지만 역시 잔꾀를 부리느니 정공법을 선택했다. 그대로 엽운주는 허공을 박차고 그대로 그녀에게 날아갔다. 하후란도 정면을 선택한 그에게 감탄했다.
"하하하!! 좋소, 좋아. 그래야 사내지."
하후란은 오른손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손바닥을 펴고 외쳤다.
"파(破)!!"
순간 날아가던 설파빙옥장이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져 엽운주를 향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뻐어엉! 최라라락!!
엽운주는 목검을 앞세워 검막을 만들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파편들을 막아 보았지만, 검막이란 그저 바람을 검의 빠른 움직임으로 응축시켜 만든 일종의 층일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하후란의 두번째 수를 보았으니 자신도 숨기고 있던 마음가짐을 겉으로 드러낼 방법 뿐이었다.
눈을 감고 바람과 파편들을 느낀다.
그 속에서 길을 찾으리.
휙! 휙! 촤악!
빈틈을 찾는 것인지 잠시 집중하다가 검막이 점차 사라져 갈때쯤 눈을 번쩍 뜨고는 다시 검을 뽑아들었다. 차갑게 불어닥치는 한기를 느끼며 그와중에 따스한 바람길을 한줄기를 찾아내 그 궤적을 따라 내려가 어느덧 하후란의 앞까지 당도했다.
검을 그대로 반대로 세워 붙잡고 그대로 하후란을 덮쳤다.
"사영겁파공원무(沙影劫波功寃武). 종무무오(踪無霧烏)!"
엽운주는 하후란을 베었는지 말았는지 모를 정도의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그대로 그녀를 지나쳤고, 하후란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초식을 보인건지 잘 모르겠... 윽...?? 뭐, 뭐야... 시야가...!"
갑자기 눈꺼풀이 부어오르고 시야가 천천히 차단됨을 느낀 하후란은 왼쪽 눈을 부여잡고 그대로 지면으로 떨어졌다. 엽운주도 먼저 내려와 그녀를 맞이했지만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라서 눈만 부여잡을 뿐이었다.
"사영겁파공원무(沙影劫波功寃武)... 이것이 엽 소협의 점창을 버린 새로운 힘이오?"
"쾌검을 중시하는 점창의 길을 포기하고 만든 무공입니다. 물론 점창검보를 기본배경으로 깔아둔 것이긴 하나, 성격이 완전 다르지요. 오로지 급소만을 노립니다. 암살검이기도 하지만 정공법에서도 통하게끔 만든 저만의 무공이지요. 이는 제가 당문에 의탁하고 있을 적을 기억해내 고안한 것입니다. 방금의 초식은 본래 눈을 노려 시각을 차단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결과로 하후 소저께서 왼쪽 눈이 부어오르신 것이 그것입니다."
하후란은 눈에 슬쩍 냉기를 스며들게해 붓기를 빼내어 시야를 되찾았다.
"흔적이 없는 안개 속 까마귀(踪無霧烏)... 그래서 눈인 것인가."
"까마귀는 눈을 굉장히 좋아하죠. 이번 초식은 대련이라 이정도로 조절한 것입니다. 이제 모든 수를 양보하고 사용했으니, 본 대련으로 가보시지요."
그 말을 들은 하후란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양손에 차디찬 성질의 공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이오. 이제는 거리낌없이 즐길 수 있겠군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하후란과 엽운주는 새하얀 증기를 뿜어대며 격돌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장법이 쏘아지면 목검이 날카로운 기세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반으로 갈라 와해시기도 하며, 하후란은 그 차가운 기운을 이용해 손에 깃들게 만들어 근접전도 벌이다 다시 떨어져 탐색하듯 장을 쏘아댔다. 엽운주도 만만치 않았다. 거리를 벌리려하는 그녀를 어떻게든 따라붙어 말끔한 베기로 휘두르면 등운답으로 뛰어올라 뒤통수를 노리면 그 자리에는 이미 없어진 다음이 되었다.
"겁파난라(劫波亂羅)!!"
엽운주의 형상이 주변의 그림자들을 모조리 베어내는 신기를 선보이자 하후란은 아무렇지 않게 피하고, 팔랑거리며 그를 농락하는 옷깃마저 그녀의 재미난 놀이마냥 동참하고 있었다. 둘의 미소는 끊이지 않았다.
신선의 재미는 그저 멀리서 지켜보는 것이지만 마치 그들이 개입이라도 한 듯, 휘황찬란한 검무와 장법으로 대회장을 장식하니 환호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설화난장(雪花亂掌)!!"
새하얀 냉기를 머금은 장법이 연속적으로 뿌연 안개가 궤적을 그리듯 쏘아져 엽운주를 집요하게 노렸다. 지면에서부터 경공으로 자신의 위치를 노리고 들어오는 장들을 하나하나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다시 날랜 일격이 하후란을 덮쳤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가 여전한 것을 눈치채고는 일격을 거두고 재빨리 공중제비를 돌며 자신이 달려들어온 자취의 한 부분으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실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치도 못 한게 문제였다. 그가 발을 딛고 뛰려는 순간.
콰직!
"윽...!? 바, 발이!"
이는 하후란이 미리 뿌려놓은 덫으로, 설화난장의 미세하게 뿜어내는 차가운 기운이 아직 지면에 남아있었고 그것을 밟은 엽운주의 발이 그대로 얼어붙었고 순간 발이 묶여버린 것이었다. 이를 노린 하후란은 재빨리 당황하고 있는 엽운주의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노리고 손바닥을 펴서 장법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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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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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란의 짧은 목소리와 함께 장내가 모두 입을 닫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엽운주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 엽운주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하후란을 쳐다보았고, 그런 그녀는 아쉬운 듯 그대로 뒤돌아 대회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엽운주는 그때 깨달았다.
"하후 소저. 혹시..."
하후란은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말했다.
"내력이 바닥났소. 다 이겼건만, 마지막에 내력 부족으로 아무 것도 못하고 소협께 단칼에 베였으니 본녀가 진 것이오. 그러니 대련은 여기까지오. 게다가 본녀는 아직 한 가지 대련이 남았으니 운기를 위해 잠시 빠지겠소. 내력 계산이 아직 서툴어서 문제군."
얼떨결에 엽운주가 이겨버렸다. 이김 당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후란의 내력은 바닥난 것이 맞았고 그 상황에서 절기를 맞았다면 지는 것은 엽운주, 본인이었다. 그러나 안될 것을 알고는 순순히 자리로 돌아가 운기하는 하후란의 당당한 모습에 당황할 뿐이었지만, 실전이었다면 그 아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었다. 하후란은 겸허히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고, 아직 남은 시간을 위해 내력을 다시 쌓기 위한 운기에 들어간 것이다.
"아, 엽 공자께는 하나 일러둘 것이 있소."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며 갑자기 더는 할 일이 없어지자 무언가라도 해야했던 엽운주는 목검의 손상상태를 유심히 보고 있었고, 그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던 하후란이 나지막히 충고하며 말했다.
"적을 상대할 때는 여자라고 봐주지 마시오. 당신이 마주하는 적은 남녀를 구분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오. 본녀는 과거 여마두였는데 그때의 성격이 유지되었다면 진작에 끝이 났을터, 그대의 칼끝에는 결단 속에 망설임이 보이는 구려. 내 성정이 많이 유해지긴 한 모양이군. 여하튼 그대에게 해줄 충고는 이정도요. 눈 앞의 적을 두고 나약해지지 마시오. 적이란 그대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족속들이니."
엽운주는 냉담히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확실히. 충고 고맙습니다, 하후 소저."
당포의가 용상을 뉘인채 대회장 구석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확실히, 그녀의 성정이 많이 유해졌군. 아직 내력이 남아있었을텐데, 다음을 위해서라... 설산의 사건이 그녀를 바꾼 것인가. '
갑자기 끝이 나버린 대회장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하후란의 말을 곱씹고 있던 엽운주의 곁으로 양유시가 천천히 다가갔다.
"부인."
"엽랑, 고생했습니다. 어서 나가시지요. 다음 분들에게 양보를 하셔야..."
양유시는 그리 혼잣말을 내뱉고는 곧바로 뒤돌아서 걸었다. 무언가 더 말을 건넬 법도 했는데, 엽운주는 그녀에게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서둘러 손을 잡았다.
"부인... 응...?"
양유시의 손은 떨고 있었다. 한 겨울 사시나무가 칼바람을 맞고 그 추위에 떨 듯.
"......부인."
무림인들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이라는 양상이 익숙한 것이, 그것을 처음 마주한 일반인인 양유시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듯 했다. 엽운주와 하후란이 보여준 모습은 그녀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나 엽운주가 몇 번이고 위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였으니, 비록 대련이었지만 실전을 방불케하는 모습에 현실감각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온 것이 문제였다.
엽운주는 걱정이 앞서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다가갔지만 도저히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묵묵하고 냉정했던 그녀의 모습이 무너진 것을 부군에게는 보이기 싫은 것이었다. 엽운주는 그대로 그녀의 등 뒤를 안을 뿐이었으니 그제서야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며 가득 쌓인 불안함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너무 가혹했소?"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그렇게 엽운주는 말없이 양유시를 등에 업어들고 대회장을 나갔다.
두 남녀의 여운을 진하게 남긴 채.
월영전(月鍈傳) (30).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