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자체는 연 중순쯤 할인버프 먹고 샀었습니다. 그러고 2시간 정도 재밌게 즐겼지만, 당시 한참 다크 소울 3에 빠져있던 때라 결국 묵혀두고 말았죠. 그랬다가 연말이 되어서야 다시 꺼내본 겁니다.
꽤 예전에 1편을 조금 했던지라 이 게임도 그럭저럭 빠르게 적응했죠. 그렇게 별다른 기대도 안하고 시작했는데.... 게임이 제법 물건이었습니다.
이걸 하기 전에 2019년을 불태웠던 다크 소울처럼 뽕이 찰 정도의 초절정 갓겜은 아니었지만, 엔딩까지 달린 지난 2주간 50시간을 찍는 동안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더군요. 흔히 도는 평가처럼 스토리야 구리지만 게임성 자체만 놓고 보면 꽤나 웰메이드 게임이었습니다. 호불호 타는 장르지만 여러가지 면에서 취향에 잘 맞았던 것이죠.
여하튼 50시간을 채울 동안 열심히 달린 소감은.....
1. 캐릭터와 스토리
캐릭터성을 내세운 게임답게 캐릭터들 자체는 잘 뽑힌 편입니다. 주연들은 모범적인 주인공/츤데레 히로인/열혈바보/쿨한 냉미녀 조합으로 정말 흔하디 흔한 소년만화 주인공 파티지만.... 이런 왕도적인 조합은 식상하다고 까일지언정 무난하게 잘 먹히는 컨셉들이죠.
사실 이 게임 자체가 시리즈 특유의 게임 방식이나 밀리터리스러운 분위기를 빼놓고 보면, 정말 작정하고 왕도적인 JRPG를 만들려고 했다는게 느껴지더군요.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아쉬운 대로 즐길만은 했습니다. 어차피 요즘 이런 아니메풍 JRPG 스토리는 뻔하고 유치하거나 개판인게 트렌드가 됐다보니.... 본래 JRPG 자체가 스토리빨이 큰 장르라는걸 생각해보면 좀 아이러니한 부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게임의 캐릭터나 스토리들은 쓸데없이 튀는걸 자제했다는게 느껴지더군요. 덕분에 좀 밋밋해졌지만서도;
비주얼만 화려하고 캐릭터성은 좀 흔하고 밋밋한 레귤러들과 달리, 게임상에서 조작하는 휘하 대원들은 캐릭터성이 뛰어난 편이라는게 참으로 묘합니다. 이 게임이 본편보다 대원단편이 더 재밌었다는 평가를 받는데는 레귤러들이 맥빠지는 놈들이라는 이유가 컸습니다. 당연히 캐릭터성이 더 튀는 애들 얘기가 더 재밌을 수밖에요......
1편을 했던 유저라면 반가웠을 요소인 갈리아 의용군 7소대의 등장입니다. 사실 1편 캐릭터들이 재등장하는건 시리즈 전통이죠. 옆동네 디스가이아 시리즈랑 비슷한 부분입니다. 저 또한 1편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것 때문에 구매했을 정도니....
1편에서도 그랬지만 빵순이는 여전히 사기스럽습니다. 위 사진 같은 이런 포텐셜 시스템이 대원들 성능 차이를 벌리다보니 호불호가 좀 있는데, 대원단편 같은 스토리들을 해보면 나름 캐릭터성에 맞게 배치했다는걸 알게 되더군요. 캐릭터마다 인간미를 느끼게 해주는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인간미에서 성능이 갈려서 문제지....
전작들처럼 본작에서도 라이벌 부대가 나오는데, 얘네들도 참 왕도적이지만 디자인들 하나는 잘 뽑힌 애들입니다. 무슨 강화병사랍시고 나오는게 꼭 PSP 시절 메탈기어 솔리드를 보는 느낌이었네요. 얘네나 이런저런 중간보스들이 등장해서 나름 게임에 긴장감을 부여해줍니다. 워낙 쉬운 게임이다보니 적들도 깡스펙과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낡은 레벨 디자인을 자랑하죠. 그래봤자 10명밖에 안 되는 주인공 소대에게 개털리지만....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번작의 발큐리아. 첫 등장 때는 뭔가 신경질적이고 차가운 얼굴에, 말없이 블리자드를 날려대면서 초토화시키는 초강력함을 선보여 이게 발큐리아다! 하고 포스를 어필했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딸리는 정신연령에 수시로 울어대는 울보라 포스를 다 깨먹은 캐릭터죠. 인게임에서의 포스와 고압적인 목소리에 속으면 안됩니다. 사실 1편의 셀베리아가 워낙에 인상 깊은 강력함을 선보인 덕에 얘가 좀 후달려보이는 감은 있습니다. 4편으로 입문한 유저에겐 충분히 무시무시한 캐릭터죠.
1편의 7소대와 더불어 이 게임의 존재의의가 아니었나 싶은 발큐리아 DLC. 본편 이전 1편의 발큐리아였던 셀베리아와 본작의 발큐리아인 크라이마리아의 만남을 다룬 DLC죠. 스토리야 그저 그랬는데, 클리어 보상으로 저 둘을 영입할 수 있는 파격적인 보상이 있죠. 본편에서 성가시게 굴던 쌍둥이까지 덤으로 주더군요.
재밌는 점은 1편의 알리시아와 셀베리아가 정찰병으로 등장했던 것처럼, 본작의 레일리와 크라이마리아도 척탄병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히로인-발큐리아가 동일 병과인 것도 1편에서 계승한 전통인 듯....
1편의 셀베리아 때문에 발큐리아에 입문했다는 사람들도 은근 있었기 때문에, 엔딩 이후 아예 셀베리아를 고정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많은 유저들을 홀렸죠. 워낙에 성능이 개사기인지라 엔딩 이후 하드 유격이 힘겨운 똥손들의 확실한 구제책입니다.
2. 게임성
여하튼 게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시리즈 특유의 참신한 시스템과 준수한 게임성을 가졌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게임입니다. 그러니까 게임 자체는 짜임새 있고 괜찮은데 그 짜임새와 괴리가 일어나는 시스템이 문제였죠.
턴제이면서 TPS 방식으로 실시간 같은 느낌을 구현했는데, 덕분에 게임의 템포가 빠르고 지루함이 덜하다는게 장점입니다. SRPG의 진입장벽 중 하나가 난이도 이외에도 턴제라는 방식에서 오는 지루함이라는걸 고려하면 엄청난 장점이죠. 특유의 시스템에서 나오는 게임성은 취향에만 맞는다면 꽤 훌륭합니다.
문제는 이 게임이 SRPG라는데서 발생합니다. 템포가 빨라서 지루할 틈이 없다는건 장점인데, SRPG는 속도감으로 하는 장르가 아니라는게 문제죠. 이 게임은 빠른 템포처럼 시스템도 게임을 빠르게 클리어할 것을 강요합니다.
그놈의 랭크 시스템 때문인데, 이 게임의 랭크 시스템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그냥 스테이지 클리어에 소모된 턴 수만을 따집니다. 그 과정에서 유닛이 얼마나 죽었든, 적들을 얼마나 사살했든, 거점을 얼마나 먹었든 간에 무조건 클리어 턴만 따집니다. 막말로 아군이 모조리 죽어나가도 2턴 안에 적 본진만 먹으면 S랭크가 뜨는 어이없는 시스템이죠.
덕분에 제작진의 의도대로 다양한 병과를 활용해 전선을 유지하며 차근차근 안정적으로 진행하면, 그런 플레이어를 조롱하듯 C랭크와 푼돈을 던져줍니다. 결국엔 대부분의 전략은 큰 의미가 없어지고, 사기유닛에게 오더 떡칠해서 뚜들겨 맞으며 깃발만 꽂고 다니는 플레이가 강요됩니다. 덕분에 길어야 4턴 안에 끝나는 플레이타임 덕에 지루함은 덜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전략적인 SRPG를 원하는 유저에겐 엄청난 마이너스 요소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런 얼빠진 게임성이 빨리빨리 깨고 진도 나가면서 스토리나 보고픈 제게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소싯적에 SRPG를 할 적에도 게임 자체보다 스토리 보는 맛에 했었으니... 뭔가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재밌더군요.
안 그래도 쉬운 이 게임의 난이도를 대폭 낮춘 주범인 장갑차. 활용법에 숙달되지 않으면 그냥 깡통 애물단지에 불과하지만, 전술적으로 굉장히 유용한 유닛입니다. 본작에서 추가된 척탄병 때문에 1편처럼 오더떡칠 정찰병으로 쓸고 다니기는 약간 어려워졌는데, 그런 정찰병을 장갑차에 넣고 적 본진으로 돌진해 드랍하는 전술이 심각한 사기입니다.
어찌보면 이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건 발큐리아가 아니라 기계화보병이라 할 수 있죠. 이 기계화보병 전술만으로 1턴클이 가능한 스테이지가 많아서 날먹이 심합니다. 본작에 오면서 전차가 1CP만 소모하도록 버프됐음에도 여전히 토템인 이유엔 장갑차가 한몫하고 있죠. 기계화보병 1턴클로 노가다해서 전병과 만렙을 찍으면 이지 난이도 정도는 코파면서 깨게 됩니다. 노멀 난이도로 하면 보병으로 대놓고 줘터지면서 돌격하는 짓은 어려워지지만 그래봐야 쬐끔 제동이 걸리는 정도죠.
그나마 어느정도 쫄깃함과 전략성을 느낄 방법은 있습니다. 엔딩 이후 해금되는 유격 하드-챌린지-EX로 이어지는 엔드컨텐츠들은 엔딩 본 말년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해주는 구성을 가졌습니다. 여기서도 여전히 기계화보병과 오더떡칠 전술은 먹히지만, 본편이나 노멀유격처럼 대놓고 돌진하다가는 포화에 순삭당하기 때문에 머리를 살짝 굴려야 하죠.
포화까지 안가도 아군 보병들이 적 돌격병이나 대전차병에게 1턴 순삭을 당하는 경우도 흔해져서 위치 선정에도 신경을 써야 하더군요. 발큐리아만 얻으면 대충 해도 날먹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없는 것보다야 난이도가 대폭 내려가는건 맞지만..... 결전병기답게 2CP씩 퍼먹는지라 대충 쓰다가는 망하기 십상이죠.
3. 총평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잘 만든 웰메이드 게임입니다. 무난하다가 산으로 가면서 개판이 되는 캐붕남발 스토리나, 게임의 짜임새와 조화되지 못하고 스피드런을 강요하는 랭크 시스템이라던지 아쉬운 단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단점들이 게임을 못해먹을 정도까지 끌어내리진 않기 때문에 감수하면서 할만한 수준이죠. 스토리가 항마력 없으면 못해먹을 정도로 오글거리는데 어찌함? 같은 의견도 많은데, 애초에 그런 유저들은 이런 아니메풍 게임엔 눈길조차 주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 됩니다. 어차피 이런 게임은 할 사람만 하는지라.....
이거 직전에 했던 게임이 그 악명 높은 코드 베인인지라 이게 상대적으로 선녀로 보였을 수는 있지만.... 최소한 게임하면서 크게 거슬리는건 없었으니 웰메이드는 맞습니다.
SRPG란 장르 자체가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지라 어지간한 시간으로는 손대기 쉽지 않은데, 이 게임은 상대적으로 판당 플레이타임이 짧은 편이라 부담도 덜합니다. 그럼에도 SRPG답게 스토리 분량이나 전체적인 플레이타임 자체는 꽤 길어서 볼륨 면에서는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죠.
여하튼 한동안 꽤 괜찮은 중독성과 즐거움을 안겨준 수작이었습니다.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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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다르 약해요
다크 소울이나 블러드본을 먼저 해보셨다면 정말로 비추합니다... 같은 장르라 의식 안하려 해도 비교가 되거든요; 아니라면 그럭저럭 할만합니다. 스토리는 발큐리아나 코드베인이나 그게 그겁니다. 둘다 개판인데 서로 다른 개판이라 보시면 됩니다. 소울본 시리즈와 비교하지만 않으면 못해먹을 수준은 아닙니다. 애초에 저도 다크소울하다 넘어간거라서... 발큐리아는 비교대상이 없었으니 딱히 불편한게 없었던 거죠. | 19.12.24 18: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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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다르 약해요
전 솔찍히 올해 했던 게임중 최악입니다. | 19.12.25 2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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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C 두명의 발큐리아를 구입하고 본편 엔딩을 봐야합니다. 근데 지금은 컴플리트 에디션으로 통합돼서 그냥 본편 구입하시고 엔딩만 보시면 됩니다. | 19.12.25 20:4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