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까지 내가 살아는 있을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을지 알 수가 없기에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있었다고 남기고 싶어 글을 씁니다.
혹여 그럴 의향이 있으시다면 많이들 퍼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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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편
나의 첫 친구이자 첫 배신자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 자주 PC방을 가곤 했다.
어머니 몰래 아버지와 함께 가는 PC방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께서 목말을 태워주시고 온 가족이 어린이대공원에 갔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언제까지고 나를 지켜주고 친구가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립던지.
IMF가 터지고 반지하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그곳에서 함께 소닉을 하곤 했다.
태풍 때문에 물난리가 났을 때도 홀로 내 가슴께까지 차오른 물을 퍼내던 모습은 영웅과 같았다.
언젠가 나도 커서 아이가 생기면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을정도로.
가족의 생계를 어떻게든 책임져보겠다고 몸 쓰는 일을 시작할 땐 몰랐다.
육체의 상처가 늘수록 정신의 상처도 늘 거라고는.
내가 클수록 아버지의 상처도 커졌고, 그 상처가 이내 가족에게도 생겼다.
아직도 술에 취해 어머니를 자식새끼들 앞에서 어머니를 강제로 덮치려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술에 취해 어머니를 몇 달씩 병원에 입원시킨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술에 취해 자식새끼들은 돈쳐먹는 벌레라고 내 앞에서 울부짖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한때는 측은지심이었다.
한때는 배신감이었다.
한때는 증오였다.
나의 영웅이요, 나의 반면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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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편
내 삶의 멍에이자 저주
어릴 적 나는 골목대장 놀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 어머니가 만든 요리 냄새가 저 멀리서 풍겨오는 게 좋았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 입대를 하기 전에도 어머니가 만든 된장찌개와 계란후라이를 먹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늘 가족들에게 잔소리하곤 했는데 어찌나 심했는지 당시에는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어느 날은 넌 학생이 왜 학생 노릇을 안 하냐는 말에 그러면 왜 어머니는 어머니 노릇을 안 하냐고 따졌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말씀하신 거지만,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셨을 때 친가 쪽의 누군가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면전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겠냐며 홍등가라도 다녀오라고 했던 적이 있었으며,
그 후에도 아버지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무한한 사랑은 주셨지만 조건 없는 사랑은 주지 않으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확연할 만큼 나와 동생의 대우가 달랐고 나에게 주는 사랑조차 우수한 성적과 반항기 없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틀어질 즈음부터는 늘 내가 너 때문에 산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는데 그 너는 오직 나만을 뜻했다.
덕분에 나는 아주 반항적인 사춘기가 왔고 동생과의 관계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포기하기 어려웠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덮쳐질 뻔했다. 나를 품에 품고 자다 말고 봉변당한 어머니는 한밤중에 집 밖으로 뛰쳐나가 공포에 떠셨다.
또 한 날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죽을뻔했다. 어머니의 머리는 돌바닥과 아버지의 신발 밑창 사이에서 튕겨 나갔다.
시간이 흘러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결국 이혼하셨다.
내가 제발 이혼하라고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울면서 빌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난 어머니가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던 그 세 번의 도주에 단 한 번도 함께하지 못했었다.
눈에 띄게 동생과 차별대우를 해놓고 정작 도망칠 때는 내겐 한마디도 없이 동생만을 선택했다.
놀랍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저 그뿐이었다.
섭섭함도, 착잡함도 없었다.
이후 내가 지치고 힘들 때 어머니께서 먼저 부르셔서 의탁하게 됬을때,
어머니와 동생과 나의 식비와 병원비로 그간 저금한 내 돈을 모두 탕진했을 때,
그런 나를 두고 주변 사람들과 외가 친척들과 동생에게 내 험담하고 다니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기대하며 여기에 왔는가 하며 자조할 때,
내 속에서 어머니는 그저 낳아준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시고 오빠들에게 길러진 상처가 있는 분이셨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서글픈 여자였다.
설령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을 나와 동생에게 되갚을지언정,
내가 너무 아파서 책상 밑으로 숨고 의자를 방패 삼는 순간에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을지언정,
동생이 프라이팬에 얻어맞고 삭발당하고 뺨을 맞을지언정 어머니를 용서못한다는 생각은 못할 정도로 서글픈 여자였다.
끝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내가 어머니를 더 이상 어머니라 부르지 않게 되고, 더 이상 연락조차 않게 되더라도.
정말 빌어먹게도 서글픈 인생의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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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편
나의 죄로 얼룩진 유일한 가족
그때는 몰랐다.
왜 그렇게 순박하고 귀여우면서 착한 동생이었는지.
왜 그렇게 반항적이고 멍청하면서 못된 동생이었는지.
왜 끝없이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끝없이 부모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동생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오빠 손잡고, 동생 손잡고, 둘이 손잡고, 나들이 간다네 라는 단순한 자작 노래가 말이다.
난 늘 동생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오빠였고, 넌 늘 오빠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동생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 난다.
늘 노래를 부르는 네가 너무도 화가 나고 너무도 멍청해 보여서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던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네가 구름사다리에서 발을 헛디뎌 숨 막혀 하며 매달려있던 때가.
그리고 사촌 누나가 어른들을 불러올 때까지 네가 숨 쉴 수 있도록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네 발밑에 밟혀있던 내가.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안 난다.
절대 아버지나 어머니처럼은 되기 싫어했던 내가 너에게 똑같이 정서적, 육체적 폭력을 가 했던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서로 성인이 되고 그간 차마 못다 했던 말들을 쏟아내고 화해했던 때가.
너는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의 탓이라며 웃었지만, 거기에 내 죄가 크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던 내가.
내가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너는 학교를 넘어 대로변에서도 양아치들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네가 아니게 됬을까?
너는 소년원에 구금되고,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연인에게 배신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너는 지금의 네가 아니게 됬을까?
결국 화해하고 입대하고서 눈물을 흘리며 너에게 쓴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새벽 중에 술에 취해 엉엉 울며 나를 찾던 네가 걱정되어 급하게 부른 택시가 기억에 남는다.
너의 손목의 줄들을 보고 기겁하며 강제로 정신병원에 끌고 간 끝에 듣게 된 경계선 지능이란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그간의 모든 행동을 단순한 애정결핍으로만 여겼던 내가 한심했기에 보상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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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편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여긴 친구들은 나를 배신했고, 내가 멀리했던 친구들은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골목대장 시절을 제외하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를 통틀어서 친구는 책이 유일했다.
특히나 삼국지를 좋아했는데, 몇번이고 다시 보다 보니 매년 다독상을 받는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삼국지 만화, 소년 만화, 상업 만화를 지나 애니메이션까지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 보니 나는 내가 친구를 안 사귀는 거라고 생각했고, 미소녀 애니메이션은 오타쿠 같은 저급한 놈들만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봐도 중2병과 동족 혐오로 완성된 사회성 없는 찐따일 것이다.
그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때도 무관심과 괴롭힘 속에서 친구가 없었고,
2학기 때 정말 우연히도 담임 선생님의 눈에 띄어 기능영재반에 들어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어보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선생님,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 모두 생명의 은인과 다름없다.
함께 숙식하며 경연대회를 준비했던 끝에 각종 상을 받았던 나날들은 정말 보석과도 같은 추억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도 혐오하던 오타쿠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된 친구들만이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고등학생 때 사귄 친구들과는 약간의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유인즉슨,
골목대장 시절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인지 우연히 오타쿠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즐겁게 지냈고,
금세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을 오타쿠 계의 인기인 정도로 인식하며 놀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군대에 가고, 대학교에 가는 사이, 점점 친구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부족한 오타쿠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다 보면 온갖 추한 꼴은 다 보게 된다.
권력 남용, 정치질 정도는 우습고, 성범죄 또는 성범죄로 사람 하나 나락 보내려다 들통나는 등 지금 와서 보면 정말 추했다.
그 꼴을 친구랍시고 아무 말 않고 계속 우리는 베스트 프렌드 하면서 놀았으니 내 지능도 대략 예상이 가능할 것이다.
어느샌가 나는 성소수자들을 혐오한다는 상상조차 못해본 명목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연락이 끊기고,
이마저도 수년 후 내가 가족처럼 여기던 동생이 미안하다며 스스로 폭로하면서 알게 되었다.
물론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 이후 그 동생의 행동이나 인간관계에 변화는 없었고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사과였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건 후의 일이다.
여하튼, 이런 시시콜콜한 사건,사고 속에서 나는 진정한 친구들을 모두 잃었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일하고 있던 모 대기업에서 추가 타를 맞게 된다.
안 그래도 사내 정치와 업무 과다로 누적돼 있던 스트레스가 친한 형이 사적으로 만든 회식 자리에서 바로 그 친한 형에게 뺨을 맞으면서 터져버린 것이다.
첫 회식이었던지라 드디어 인정받았다고 하는 마음이 형마저 날 배신하는구나 라는 마음으로 바뀌어 그날 큰소리로 아이처럼 울면서 집에론 기억이 있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북적이는 지하철 속에서 옆에 사람들 신경도 안 쓰고 엉엉 우는 청년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추하기 짝이 없는가.
이후, 극심한 우울감과 무력감 속에 그 누구와의 연락도 없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쓰레기를 버리러 집 바로 앞으로 나오는 게 다인 인생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우연히 나에게 먼저 연락을 준 것은 내가 먼저 거리를 두었던 고등학교 친구들이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해서 나갈 생각조차 안 했지만 계속 연락해주고, 만나서 놀면서 어느덧 내가 먼저 친구들과 만날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친구들은 내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에 지속적인 도움을 주었는데, 분명 자기들도 출퇴근하면서 힘들 텐데 거의 매주 시간을 내주었고,
식사를 하게 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가 내줄게 라던가, 심지어 한 친구는 울적할 때는 금융치료라며 용돈을 주었다.
이런 대우에 처음에는 배배 꼬여서 날 동정하는 건가, 그런 나에게 도움을 주는 자신에게 만족감을 얻을 셈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년이고 계속되자 미안함과 감사함이 더 커지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안 죽고 살아있을 수 있는 건 이 친구들의 도움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한다.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난 진즉 외로움과 굶주림 속에서 삶을 포기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마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희들에게 이 은혜를 다 갚을 때까지는 죽을 수 없고, 죽을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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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 편
시간이 멈추기까지 한 달, 스스로 묘비를 새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 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솜이불 속의 큰할아버지를 관에 모셔 선산에 봉하는 것까지 모두 보게 되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를 체감하고 고등학생 때까지 쉽게 잠들지 못한 채 때때로 이불속에서 소리죽여 울곤 했다.
그 와중에 스스로가 정한 것이 죽을 때 내 묘비에 내 인생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적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내 인생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았고 그 산은 하나하나가 너무나 태산같이 느껴진다.
아직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고, 갚지 못한 은혜가 너무도 깊은데 내게 남은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이 세상에 내 족적은커녕 묘비조차 남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상 한평생 홀로 살아왔고, 고교 졸업 후에는 계속 자취하면서 자식은커녕 여자도 한번 못 만나봤는데, 너무 억울했다.
특별히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저 근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는 아무도 모른 채 잊힐 것이다.
수년간의 정신병원 진료와 치료는 근본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연명치료에 가까웠고,
취업을 위한 각종 국가 지원 서비스 또한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년간 빈둥빈둥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단기 알바라도 하면서 어떻게든 취업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그저 지금의 내게 있는 것이 빛이 바랜 수상내역과 여러 자격증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경력이 있을 뿐이고,
각종 대출과 억지로 떠맡은 빚과 친구들에게 빌린 빚 수백이 있을 뿐이고,
그리고 채 달래지 못한 지친 몸과 마음이 있을 뿐이다.
분명 큰 부끄럼 없이는 살았다고는 생각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당당하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적어도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고 길거리에 쓰레기를 주울 정도는 하였다.
성인일 때부터 물대포 피해 가며 여러 번 촛불집회에도 참여했고 투표도 꼬박꼬박하였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세상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어버렸어도.
다만 아직 친구들에게 빚을 다 갚지 못했는데 라는 생각 또한 든다.
여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이 많은데 라는 생각 또한 든다.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리기는커녕 서 있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군대에서 만들어준 훌륭한 몸으로 일용직을 뛰거나,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은혜도, 수치도 모른다는 듯이 친구들과 혈연들에 돈을 빌리거나,
제2금융권이나 다른 고리대금업체에 손을 대는 것도 방법이긴 하다.
단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으니 그저 시간 벌이일 뿐이고,
나는 그 외의 선택지를 모르는 덜떨어지고 한심한 놈이라는 것, 그저 그뿐이다.
시간이 멈추기까지 한 달, 스스로 묘비를 새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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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스스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구나.
나는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구나.
나는 이상적인 가족을 가지고 싶었구나.
평소에 생각할 일이 없었던 게 구체적으로 정리되는 기분이다.
하여 기왕 글을 남기는 김에 내가 좋아했던 것과 싫어했던 것도 남기고자 한다.
나는 된장찌개와 계란후라이를 좋아한다. 아주 찐~한 시골 된장찌개와 반숙 계란후라이는 끝내준다.
나는 심심하게 간 한 요리를 좋아한다. 어릴 때 애늙은이가 별명이었다.
나는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소풍 가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이날에 어린이대공원은 꼭 가야 한다.
나는 놀이공원을 좋아한다. 그리고 퍼레이드는 꼭 보고 가야 한다.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역사 관련 영화나 게임도 자주 즐기는 편이고 특히 사극 영화는 꼭 챙겨본다.
나는 판타지, 액션,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는 각종 에디션으로 여러 번 봤다.
나는 스토리가 있는 싱글 플레이 게임을 좋아한다. 어쌔신크리드 에지오 트릴로지가 정말 좋다.
나는 스페이스 오페라를 특히나 좋아한다. 다들 한 번쯤 매스이펙트 트릴로지를 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열혈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지칠 때 그렌라간을 정주행 하면 한 달 정도는 힘이 샘솟는다.
나는 침착맨, 김성회, 궤도를 좋아한다. 유튜브를 잘 안 보는 편인데도 반드시 챙겨본다.
나는 박명수, 노홍철, 이광수를 좋아한다. 정말 정신없이 깔깔웃게 된다.
나는 스탠딩 코미디를 좋아한다. 정말 잘하는 스탠딩 코미디는 웃음을 넘어 감탄하게 된다.
나는 친구들과 서로 농담하는 걸 좋아한다. 보통 모태솔로 나 만년백수 같은 블랙코미디로 내가 접수하는 쪽이다.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개가 너무너무 너~무 좋아서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꼭 키우고 싶다.
나는 아이를 좋아한다. 아이가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나는 사격을 좋아한다. 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군대에서 유일하게 즐거웠던 게 사격이었다.
나는 느긋한 걸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만약 여자친구가 생기면 둘이서 같이 종일 집에 누워만 있어 보고 싶다.
나는 모임을 좋아한다.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같이 보드게임이나 영화나 게임 같은걸 함께 해보고 싶다.
나는 축하 파티를 좋아한다. 쿵쾅쿵쾅 시끄러운 파티는 싫어하지만,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은 나도 행복해진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이 너무 싫지만, 동시에 너무 좋다.
나는 외로움을 싫어한다. 내 외로움도 싫지만 타인의 외로움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나는 불합리를 싫어한다. 내가 납득할 수 없으면 도저히 타협할 수가 없다.
나는 강요를 싫어한다. 이게 위와 합쳐져서 군대에서 장교, 부사관, 선임병들과는 엄청 싸우고 후임병들과는 잘 지냈다.
나는 왕따를 싫어한다. 장장 8년 가까이 왕따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치를 떠는데, 맨 처음 왕따당한 이유가 그냥 이었던 게 충격이었다.
나는 땀나는 걸 싫어한다. 운동하고 땀나면 개운하기라도 하지, 샤워하고 나왔는데 덥고 습해서 땀나면 짜증 난다.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 그래도 인생에 한 번쯤은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긴 하다.
나는 시끄러운 걸 싫어한다. 귀가 울리고, 몸이 울리고, 뇌가 울리는 그 기분이 너무 싫다.
나는 자극적인 맛을 싫어한다. 너무 짠맛이나 단맛도 싫지만 매운 건 입에도 못 댄다.
나는 반지하와 옥탑방을 싫어한다. 둘 다 살아봤는데 둘 다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나는 사람을 싫어한다. 사람이 너무 좋지만, 동시에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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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글을 마칩니다.
언젠가 더 즐겁고 밝은 글로 뵐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IP보기클릭)125.208.***.***
시발 살아 !! 방구석 백수세끼인 나도 웃으며 로또일등되야지 하며 사는데 넌 너무 열씸히 달려왔잖아 살아 너같은 아픔은 없으면서 이렇게 백수에 근성없는 나도 사는데 니가 잘못된점도 니우치고 열심히 살아볼려구 한게 느껴지는 니가 왜 죽을라 그래 살아 힘네 시발 너보다 더 못한 나도 살아 힘네
(IP보기클릭)172.56.***.***
셀수 없는 행성중 지구에서 약 3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수정되어 21세기에 태어난 너는 태호다. 너가 이곳에 태어난 확률에 비하면 그저 어이없는 수준의 확률 차이로 좀더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세상에 태어나서 겪는 좌절, 고통, 역경, 슬픔 고뇌 전부 값지지 않은것 하나 없다고 생각한다. 너는 싫어하는것보다 좋아하는것을 더 많이 나열했고 좀더 너 자신에게 가치부여를 하기를 바란다. 한달뒤 두달뒤 일년뒤가 어떨진 모르겠지만 넌 가치있는 존재다. 힘내라.
(IP보기클릭)221.165.***.***
족적 남기면서 리프레쉬 하는 것도 마음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블로그에 비밀일기와 공개일기 둘다 쓰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충분히 도움되실거에요
(IP보기클릭)211.35.***.***
다 내려놓고 보라카이 한번 갔다와 보세요. 한달 정도 살아보길 ㅊㅊ 합니다.
(IP보기클릭)221.159.***.***
왜 세상은 착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할까.. ㅠㅠ 힘내길
(IP보기클릭)125.208.***.***
시발 살아 !! 방구석 백수세끼인 나도 웃으며 로또일등되야지 하며 사는데 넌 너무 열씸히 달려왔잖아 살아 너같은 아픔은 없으면서 이렇게 백수에 근성없는 나도 사는데 니가 잘못된점도 니우치고 열심히 살아볼려구 한게 느껴지는 니가 왜 죽을라 그래 살아 힘네 시발 너보다 더 못한 나도 살아 힘네
(IP보기클릭)124.5.***.***
앗, 죽을 생각으로 쓴 글은 아닙니다. 그래도 가슴따뜻한 덧글 남겨주셔서 감사하네요. 님도 저도 서로 힘내보죠! | 23.09.06 18:37 | |
(IP보기클릭)172.56.***.***
셀수 없는 행성중 지구에서 약 3억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수정되어 21세기에 태어난 너는 태호다. 너가 이곳에 태어난 확률에 비하면 그저 어이없는 수준의 확률 차이로 좀더 화목하고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세상에 태어나서 겪는 좌절, 고통, 역경, 슬픔 고뇌 전부 값지지 않은것 하나 없다고 생각한다. 너는 싫어하는것보다 좋아하는것을 더 많이 나열했고 좀더 너 자신에게 가치부여를 하기를 바란다. 한달뒤 두달뒤 일년뒤가 어떨진 모르겠지만 넌 가치있는 존재다. 힘내라.
(IP보기클릭)124.5.***.***
정말로 제 글을 정독해주시는 분이 계실거라곤 예상못해서 살짝 놀랐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23.09.06 18:38 | |
(IP보기클릭)211.35.***.***
다 내려놓고 보라카이 한번 갔다와 보세요. 한달 정도 살아보길 ㅊㅊ 합니다.
(IP보기클릭)124.5.***.***
와 진짜 그래보고싶네요 ㅜㅜ 언젠가는 그런날도 오겠죠! | 23.09.06 18:39 | |
(IP보기클릭)221.159.***.***
왜 세상은 착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할까.. ㅠㅠ 힘내길
(IP보기클릭)124.5.***.***
따뜻한 덧글 감사합니다 ㅜㅜ | 23.09.06 18:39 | |
(IP보기클릭)121.138.***.***
(IP보기클릭)124.5.***.***
제 인생 흔적을 남기려던 글이다 보니 서너시간은 걸렸네요 ㅎㅎ 그리고 본문에 써놨듯이 나가서 운동은 못합니다. | 23.09.06 18:46 | |
(IP보기클릭)221.165.***.***
족적 남기면서 리프레쉬 하는 것도 마음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블로그에 비밀일기와 공개일기 둘다 쓰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충분히 도움되실거에요
(IP보기클릭)124.5.***.***
감사합니다.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23.09.07 23:3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