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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전선의 미래이자 과거,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 체험
조회수 7844 | 루리웹 |
입력 2024.03.27 (1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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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오타쿠라고 자부하는 게이머라면 '소녀전선'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는 봤을 것이다. 과거 서브컬처 게임 불모지였던 국내 시장에 도전하여 일명 '코레류'를 성공시키며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던 모바일 수집형 RPG 소녀전선. 그 이후 이야기를 다루는 게임이 출시됐다. 바로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이다.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은 소녀전선의 전작이자 소녀전선으로부터 약 30년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빵집소녀'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새로운 아트워크와 음성 팩, 전작과 다른 스토리라인과 플레이 메커니즘을 적용했으며, 소녀전선과 베이커리 작전 사이 연결을 보다 깊게 파고 든 것이 특징이다. 2013년 출시된 빵집소녀가 당시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았던 만큼 국내 유저들에겐 사실상 신작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과연 어떤 재미를 줄 지 직접 체험해 봤다.
소녀전선의 미래이자 과거,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
세계는 붕괴로 인한 오염으로 자원 고갈 위기에 닥치게 되고, 그로 인해 제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만다. 전쟁으로 망가진 세계는 서로 대립된 두 개의 세력으로 갈라지게 되고, 신흥 세력인 '남극 연방'과 베테랑 열강 국가들의 연합인 '루크사트주 합중국 연맹'은 서로 충돌하며 군사적 갈등을 빚어낸다.
남극 연방 내무부 특수 요원 '멘도'가 소속한 FOX 소대는 루크사트주 합중국 연맹이 통제하고 있는 북 카프카스 지방에 잠입해 극비리에 코드명 '베이커리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극비리에 진행된 작전은 이미 적에게 탄로난 상황이었고, 매복에 당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 순간, 의문의 은발 소녀가 나타나 적을 제압하고 멘도를 구출한다. 은발 소녀의 정체는 바로 작전의 핵심이 되는 '베이커리' 아가씨, '제퓨티'였다.
멘도와 제퓨티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혹한 지형에서 벌떼처럼 몰려오는 병사와 맞서 싸우며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된다. 그 과정을 CG와 애니메이션 효과를 곁들여 상당히 맛깔나게 묘사하는데, 마치 비주얼 노벨을 즐기는 듯 하다. 특히 처음에는 멘도를 그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던 제퓨티가 스토리가 진행되면 될수록 멘도를 신뢰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하나씩 밝혀나가는 부분이 보이 미츠 걸 특유의 달달한 맛을 전달한다.
다만 스토리 초반은 답답하기 그지 없는데, 꽤나 갑작스러운 느낌으로 이야기가 전개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갑작스러운 전개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지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녀전선 시리즈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 팬 입장에서 더욱 답답하다. 소녀전선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후속작치고는 뚜렷하게 연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제퓨티의 정체와 능력을 의도적으로 숨기기 위한 서술 트릭에 가까운데, 이를 알리 없는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초반부 전개가 다소 꽉 막히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전투 또한 초반부에는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정해진 행동과 정해진 기믹 수행을 강요하는 형태로 진행되기에 SRPG 특유의 전략 전투를 즐기는 재미가 덜하다. 특히 들키면 게임오버인 형태의 지루한 잠행 미션이 여러 번 반복되서 안 그래도 답답한 스토리를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초반부를 지루하게 만드는 잠행 미션
국내 한정으로 더욱 답답할 수 있는데, 이는 게임의 문제라기 보다는 원작인 빵집소녀와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이 가진 특수한 입장과 현지화 문제 때문이다.
소녀전선 시리즈 각 작품을 스토리 연대 순으로 따지면 소녀전선(2062년), 뉴럴 클라우드(2063년), 소녀전선 2: 망명(2074년), 빵집소녀(2092년)가 되는데, 게임 출시 순으로 따지면 빵집소녀, 소녀전선, 뉴럴 클라우드, 소녀전선 2: 망명이 된다. 즉, 빵집소녀는 특이하게도 시리즈에서 가장 먼저 출시된 게임이자 가장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임이 된다.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은 그 빵집소녀를 리메이크하는 것으로 시리즈 첫 게임을 현대 감성에 맞게 재탄생 시킴과 동시에 미래에서 과거를 창조하며 애매해진 시리즈 세계관을 올바르게 정리해야 하는 특수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소녀전선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아도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소녀전선 시리즈를 다 경험해 봤어야 의미가 큰 작품이 된 셈이다.
문제는 소녀전선 시리즈 중 국내에 현지화 서비스된 작품이 소녀전선과 뉴럴 클라우드 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작인 빵집소녀는 물론, 소녀전선과 빵집소녀 그 사이를 잇는 작품인 소녀전선 2: 망명이 국내에 서비스되지 않은 상황. 시리즈의 반쪽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답답한 전개를 마주하니 자연스럽게 "내가 빵집소녀와 소녀전선 2를 안 해봐서 이해가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어 더욱 답답하고, 여기에 번역 문제까지 겹치니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답답함은 튜토리얼인 1장이 끝나고, 2장이 시작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된다. 서술 트릭이 해제되고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가 시작되는데, 그간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게임에 대한 집중도가 확 올라간다. 소녀전선을 플레이해본 게이머라면 반가울 법한 얼굴들도 일부 등장하는데, 지금까지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와 더불어 전투 면에서도 다양한 캐릭터와 스킬, 기믹이 등장하게 되는데, 맵 마다 치밀하게 짜여 있는 전략 요소를 활용해 나만의 전략 전투를 펼치는 되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장면에서 막혀 있던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겉보기에 속지마라, 상당히 어려운 SRPG
게임 진행 방식은 전형적인 타일을 기반으로 하는 SRPG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각 캐릭터는 행동력(AP)을 소모해 이동, 공격, 아이템 사용 등 다양한 액션을 취할 수 있고, 행동력이 남아 있는 한 몇 번이고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과 공격을 여러 번 나눠서 하는 식으로 선택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취할 수 있으며, 행동력은 매 턴마다 최대치까지 회복하기 때문에 최대한 끝까지 소모하기 위해 계산하며 행동하게 되는 점도 나름의 매력 포인트다.
이동과 아이템 사용은 딱히 변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지만, 공격의 경우 빗나갈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게 지시를 내릴 필요가 있다. 공격은 무기의 종류에 따라 소모 행동력이 다르며, 명중률은 회피 스탯, 무기 사거리, 그리고 지형 보너스에 의해 결정된다.
공격 모드에 진입하면 해당 캐릭터의 발밑을 기준으로 사거리를 확인할 수 있는데, 빨간색 타일은 우세 사거리고, 노란색 타일은 열세 사거리다. 열세 사거리에 위치한 적을 공격할 경우 명중률이 감소하는 패널티를 받기 때문에 최대한 우세 사거리에 위치한 적을 공격할 필요가 있다. 행동력이 조금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열세 사거리의 적을 공격하게 되는 경우 스킬로 명중률을 보강하거나, 100% 명중하는 세열 수류탄 같은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명중률에 따른 빗나감에 울고 웃는다는 점에서 엑스컴 시리즈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역으로 공격 당하는 상황이라면 적의 사거리와 회피 스탯에 신경쓸 필요가 있다. 턴제 RPG 특성상 공격을 아예 당하지 않으며 게임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항상 위험 범위와 적 시야를 살피며 적이 공격하기 전에 적을 먼저 처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애초에 적의 공격 사거리 내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적의 사거리 내로 들어가야 한다면 건물이나 나무 사이 등 회피 보정을 받을 수 있는 지형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또 대부분 캐릭터는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수비 스킬을 하나씩 가지고 있어 지형과 더불어 스킬을 적절히 활용해 적의 공격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당할 상황이라면 특수지형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회피 확률을 올리거나 특수지형 자체를 만들어 내는 스킬도 존재한다
스텔스를 통해 적을 기만하는 작전도 유효하다. 스텔스 상태가 된 아군 유닛은 기어서 움직이게 되는데, 이동 거리가 감소하는 패널티를 얻는 대신 적의 지근거리가 아니면 발각되지 않게 된다. 이를 활용해 전투를 유리한 지형에서 시작할 수 있고, 적 처치가 주요 목표가 아닌 미션은 무혈 입성이 가능하기도 하다.
스텔스와 수면침을 활용하는 스테이지는 '코만도스'를 떠올리게 했다
아이템은 항상 꽉 채운 채 전투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이 게임은 아이템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전투를 끝내고 나면 평가에 따른 보상을 지급하는데, 최고 등급인 S를 따내려면 반드시 아이템을 사용해야할 정도다. 잘 알아둬라. 세열 수류탄은 신이고 바리케이드는 무적이다.
전투는 항상 수적 열세의 극한 상황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아이템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귀여운 SD 캐릭터들을 보고 가볍게 즐기는 캐주얼 게임일거라 오해할 수도 있는데,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은 꽤 하드한 SRPG에 속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전반에 가볍게 선택한 행동 하나가 치명적인 패널티로 돌아오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맵 기믹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턴 재시작이라는 옵션을 제공하긴 하나, 말 그대로 이번 턴을 재시작하는 정도이지 과거를 하나 하나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만능인 기능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스테이지 자체를 재시작해야할 수도 있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것은 SD 캐릭터인데 액션을 생략하기는 커녕 더욱 디테일하게 꾹꾹 눌러 담아 만들었다는 점이다. 보통 SD 캐릭터는 무언가를 생략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의 SD 캐릭터는 오히려 "SD 캐릭터로 이런 액션까지 챙겼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액션을 선보인다. 공격 방향에 따라 다른 사격 모션을 취하는 것은 물론, 붕대를 감으며 치료하는 모습, 폭발에 휘말리는 모습, 지형을 오르고 내리는 모습 등 SD 캐릭터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다양한 액션이 튀어나오니 신기할 수 밖에 없다.
소녀전선 떼어 놓고 봐도... 충분히 잘 만든 SRPG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은 개인적으로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소녀전선 시리즈를 재미있게 즐겼던 입장에서 그 원점이 되는 빵집소녀를 해보지 않았다는 점이 내심 마음에 걸렸는데, 이렇게 리메이크를 통해 한국어화가 진행돼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스토리 파트와 전투 파트를 명확하게 나누지 않고 전투 도중에도 스토리가 전개되는 식으로 몰입이 끊기지 않게 콘텐츠를 구성한 점이 특히 인상 깊게 다가온다.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기 하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지난 이야기' 형태로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개발진이 얼마나 이 게임의 스토리를 사랑하고, 또한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만약 소녀전선에 좋은 추억이 있다면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을 한 번 플레이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SRPG를 좋아하는 게이머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소녀전선에 대한 추억을 떼어 놓고 봐도 충분히 잘 만든 SRPG다.
| 안민균 기자 ahnmg@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