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느끼는 만남의 소중함, TMORPG '북 오브 트래블즈'
최근에는 세 번째 타이틀이 나온 셸터
동시에, 마이트 앤 딜라이트는 자신들의 장점을 온라인 상에서도 만들어 내기 위한 시도도 병행하고 있다. 셸터의 온라인 버전이라 할 수 있는 MEADOW가 그 예다. 2016년에 스팀으로 발매한 이 게임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만남을 통해서 협력하는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게 짜여져 있다.
MEADOW가 가진 채팅 없는 소통이란 특징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플레이를 해보면 “이런 시스템으로 제대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상 외로 플레이어 사이의 의사소통과 협력은 소리와 이모티콘 만으로도 자연스레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있어서 언어가 아니라 이를 전달하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마이트 앤 딜라이트는 아마도 이 지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채팅이 없을 때,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음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들의 신작, ‘북 오브 트래블즈’가 MEADOW에서 시도했던 방법론에 살을 더 붙인 형태에 가까운 것도 이러한 이유다.
북 오브 트래블즈는 MEADOW가 시도했던 요소를 가다듬고, RPG로의 플레이를 덧붙였다. 소수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세션을 플레이한다는 점. 그리고 간접적인 형태로 소통을 한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성을 띄고 있다. 게다가 RPG라면 들어가겠다 싶은 전투 / 길드와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소를 극단적으로 줄인다. 그리고 스스로를 TMORPG(Tiny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로 정의한다.
그 의미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 오브 트래블즈는 작은 인원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기반으로 게임을 설계했다. 개발사는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게임 세계로 인도한다. 세계를 구한다는 거창한 사명도. 멋들어진 보스와 같은 협력을 위한 몬스터도 없다. 오직 있는 것은 세계와 플레이어가 모험할 수 있는 여러 장소들. 그리고 우연히 만날 수 있는 미스터리 들 뿐이다.
수채화 풍의 비주얼은 덤.
따라서 플레이어가 여정을 시작해 끝내는 하나의 세션은 매번 같은 선택이 될 수 없다. 선형적인 퀘스트 라인 또한 존재하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플롯들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이야기를 따라갈 것인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플레이어가 마주하는 이야기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현실에서도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그렇듯, 길은 선택과 방향으로 인해서 달라지며, 때로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 다른 결과물로 이어진다. 적은 수의 인원이 참여하는 온라인 RPG이나,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관계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서 여행만을 하는 게임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개인적인 특성(Personality)를 선택한다. 성격에서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관점으로 북 오브 트래블즈의 세계를 여행할 것인지를 정하는 하나의 가치관이자 감정이다. 개발진은 인간의 감정을 모험 전체에 걸쳐서 작동하는 도구이자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캐릭터가 사용하는 ‘스킬’ 그리고 ‘마법’도 마련되어 있다. 단, 직접적인 스킬보다는 간접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킬은 세상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에 가깝다. 자연에서 더 많은 재료를 얻을 수 있거나, 캠프파이어를 만들 때 바람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거나 하는 방식이다.
특정 클래스의 개념은 없다. 어디까지나 성격이 있을 뿐.
이렇듯 캐릭터 시트 생성부터 지극히 정적인 북 오브 트래블즈는 플레이어를 홀로 떠나는 여행의 길로 인도한다. 여행길 위에서 플레이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서 타인과 교류하는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플레이어가 바라보는 곳이 곧 길이 될 수 있기에, 혼자서 세계를 탐구하는 것으로 조금씩 성장하며 발견하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세계는 혼자가 아니다. 여행길 위에서 플레이어는 때때로 같은 세션의 플레이어들과 마주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플레이어의 시각과 발견. 그리고 콘텐츠 플로우는 변화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게임에는 채팅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얼리 액세스 기준으로 게임의 무대가 되는 '브레이드 쇼어'
타인과의 만남은 새로운 발견과 모험으로의 가능성을 열기도 한다. 개발진은 무작위로 발생하는 이벤트의 조건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우연적 발견들로 마련되어 있어서다. 밤에만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 비가올 때 특정 위치에서 이벤트가 발생하는 등 게임 내부를 채우는 이벤트와 발견들이 모두 우연적인 것으로 플레이어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개발진은 이를 우연과 우연의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플레이어가 여행하는 장소에서 우연적인 이벤트가 일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특별한 기억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주 만나지 못하기에 만남이 소중해지는 것이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만남은 우연으로 시작해, 추억이 된다.
예를 들면 서로 타이밍에 맞춰 해동하는 것들이다.
물론, 이와 같은 시도가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발사인 마이트 앤 딜라이트가 비 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그간 꾸준히 해왔고 이를 보다 넓은 형태로 가져가고자 한다는 방향성이 너무도 확고하다는 점이다. 서정적인 게임의 비주얼 측면을 떠나서 자신들이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하려는 플레이 측면이 게임 전반을 관통한다.
2019년 첫 킥스타터를 성공적으로 마쳤던 북 오브 트래블즈는 오는 2021년 2분기, 처음으로 얼리 액세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간 후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베타를 넘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방향성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마이트 앤 딜라이트가 만들었던 그 어떤 게임보다 텍스트가 많다는 점에서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독특한 시도는 충분히 체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