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터 월드: 에리다노스 살인사건, RPG명가 리턴매치
※ ‘아우터 월드’ 본편에 대한 소개는 앞서 발행한 리뷰로 갈음합니다. 아래 내용 또한 리뷰에 업데이트하였습니다.
※ 본고는 Private Division으로부터 사전 체험 코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엠바고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이미 공개된 배경 설정 외에 어떠한 스포일러도 담지 않았습니다.
오는 17일,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아우터 월드’ 두 번째 DLC ‘에리다노스 살인사건(Murder on Eridanos)’이 출시된다. 본편이 2019년 10월작이니 장장 1년 5개월 만이고, 첫 번째 DLC ‘고르곤의 위협’으로부터도 거의 반 년 만에 신규 콘텐츠다. 이쯤 되면 대다수 게이머가 벌써 본편을 깨고 치웠거나 구매할 흥미를 잃었을 시점이라, 어떻게 그 주의를 환기시킬지가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과제일 터. 과연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은 떠나간 모험가들을 다시금 할사이온 항성계로 불러들일 만한 재미를 갖췄을까?
본격적인 감상을 전하기에 앞서,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식음료계 대기업 리조의 신제품 출시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그 전속 모델이자 범우주적 슈퍼스타 할사이온 헬렌(그녀가 주연한 영화 ‘모나크의 공포’ 포스터는 본편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있다)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는다. 그것도 신제품 공개 행사를 목전에 둔 호화 호텔 한복판에서. 이에 리조는 재빨리 호텔과 주변 지역을 봉쇄하고, 실력파 용병인 주인공을 데려와 할사이온 헬렌을 헤친 진범이 누군지 수사해줄 것을 요청한다.
흔히 할사이온 헬렌이란 예명으로 알려진 배우 루스 벨라미는 그녀가 지닌 큰 부와 명예만큼이나 적도 많았다. 마침 행사에 참석하러 와있던 라이벌 배우, 공개적인 비방 탓에 사이가 험악해진 인플루언서, 얼마 전 차버린 운동선수 구남친 등등. 혹은 리조의 신제품 출시를 훼방 놓으려는 경쟁사의 소행일 수도 있고, 호텔 이권을 두고 리조와 사사건건 대립 중인 서브라이트 언더그라운드의 음모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이 모든 용의자를 하나씩 찾아가 조사하며 점차 할사이온 헬렌의 죽음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접근한다.
필자는 앞서 ‘아우터 월드’ 본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왕년 수작 ‘폴아웃: 뉴 베가스’를 연상케 하나, 전체적인 만듦새와 분량이 부족하고 기대했던 서사조차 별로였기 때문이다. 망가진 전투 밸런스와 팩션 시스템, 스킬과 페널티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RPG 명가가 스토리조차 못 살린 건 좀 그렇다. 아무래도 MS에 피인수되기 전 휘청거릴 때 만든 작품인지라, 후반으로 갈수록 뭔가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밸런스 같은 것도 결국 폴리싱(Polishing, 후반 작업)의 문제니까.
그러다 1년 만에 나온 DLC ‘고르곤의 위협’은 여러 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줬다. 호러와 미스터리를 테마로 쓰여진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각종 비전투 스탯 및 퍽을 통한 추가 대화문도 훨씬 다양해졌다. 여전히 들러리라는 인상을 주긴 하지만 전투 역시 난이도가 조정되어 보다 도전적으로 임할 수 있다. 분량도 10시간 전후로 DLC임을 참작하면 나쁘지 않다. 다만 새로운 동료, 총기와 방어구, 특별한 옵션이나 몬스터 같이 흔히 게임에서 ‘추가 콘텐츠’라 기대할 만한 요소는 거의 없었다. 다분히 스토리에 집중한 DLC였다.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을 끝마치고 지난 리뷰를 다시 보니 ‘고르곤의 위협’부터 일관된 방향성이 느껴졌다. 바로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고르곤의 위협’과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은 어디까지나 DLC고, 그것도 엔딩 이후가 아닌 본편 중간에 삽입되는 내용이다. 어느정도 밸런스 패치야 곁들일 수 있겠으나 게임 시스템의 근간을 뜯어고칠 순 없다. 그러니 차라리 별로인 부분은 이쯤에서 깔끔히 포기하고 잘하는(혹은 왕년에 잘했던) 쪽, 즉 서사를 보강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은 스포일러가 쥐약이라 자세히 적을 순 없지만,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은 인기 여배우의 죽음이라는 진부할지언정 실패하기 힘든 소재를 가지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이 전개되고 기억에 남을 만한 NPC와 재미있는 대사들이 나온다. ‘고르곤의 위협’도 의문의 사건 조사 의뢰 → 진상 규명이란 구조로 흥미를 유발했는데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은 그걸 한층 더 발전시켰다. 수사극이란 형식 자체가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소개하고 긴장감을 유지하기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점 아닌 단점 역시 ‘고르곤의 위협’과 비슷하다. 이번에도 새로운 동료, 총기와 방어구, 특별한 옵션이나 몬스터가 없다시피하다. 단점 아닌 단점이라 한 이유는, 어차피 육성이나 파밍의 재미 같은 건 본편부터 쭉 실종이니 슬슬 ‘아우터 월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어서다. 솔직히 이 부분은 필자가 옵디시언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포기한 감이 있다. 저마다 잘하는 바가 다른 것 아니겠나. 대신 그만큼 서사의 완성도와 대화문에 신경을 써 ‘RPG스러움’은 나아졌다. 역시 이런 게임은 회화 스탯 위주로 육성해야 제맛이다.
보통 DLC 체험기는 추가 요소 위주로 본문을 채우기 마련인데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은 (스포일러를 감수하고)스토리를 풀게 아니고서야 더 적을 글이 없다. 이건 말하자면 하나의 거대한 서브 퀘스트 라인일 뿐이지 게임 자체에 변화를 주는 건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 ‘폴아웃: 뉴 베가스’ 시절 DLC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필자는 ‘에리다노스 살인사건’을 매우 몰입하며 즐겼고 모든 퀘스트가 종결되었을 때 훌륭한 이야기를 한 편을 감상했다고 느꼈다. RPG를 좋아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추천할 만한 흥미로운 내용이다.
‘에리다노스 살인사건’ 플레이 타임은 ‘고르곤의 위협’과 마찬가지로 10시간 전후다. 두 DLC는 본편과 독립된 사건이라 좀 미묘하긴 하지만, 이 모든 걸 합치면 드디어 ‘아우터 월드’도 정통 RPG다운 분량을 갖춘 셈이다. 비교 대상이 하필 ‘폴아웃: 뉴 베가스’라 못난 동생 취급이지 ‘아우터 월드’도 나름 괜찮은 게임이다. 출시되고 시간이 꽤 흘렀으나 이제 DLC도 다 나왔으니 (가능하면 세일할 때)사서 즐기면 어떨까. 본고를 쓰며 확인하니 마침 확장패스 번들이 스팀에서 -43% 세일 중이다. 자, 할사이온 항성계가 여러분을 부른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