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로 보는 게임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2018년 9월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 시리즈 출시와 함께 게임업계에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이 대두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엔비디아는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이 제대로 업계 전반으로 스며들기까지는 2년 정도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2년이 지난 2020년, 실제로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을 지원하는 게임이 속속들이 출시되고 있다.
지난 10일 출시된 ‘사이버펑크 2077’도 그런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이 적용된 게임 중 하나다. 각종 조명이 빛나는 밤의 거리, 형광색으로 네온사인이 어울리는 사이버펑크 세계관은 빛과 반사, 그림자를 돋보이게 하는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이 잘 어울린다.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은 실시간으로 광원을 계산하고 적용하는 기술이다. 광원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구워 놓는(baked) 라이트 매핑의 정적인 효과와 다르게 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가 달라지거나, 비에 젖은 표면, 금속 재질 물체, 유리창 등에 주변 사물이 반사되어 보이는 등 동적인 환경을 연출할 수 있어 게임 몰입도를 한층 높여준다.
‘사이버펑크 2077’로 보는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효과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웠다. 옵션을 적용할 시 전반적으로 그림자가 좀더 뚜렷해지고, 없던 그림자가 생겨나기도 한다. 총기, 차량, 유리창 등 재질에는 반사가 추가돼 좀더 매끄러운 느낌을 준다. 기존 그림자와 반사에 한층 더 힘을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으로 없던 그림자가 생겼다
광원 효과가 씌워진 모습
그림자가 뚜렷해져 식생이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차량 표면에 반사 효과가 적용됐다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으로 인한 변화를 체감하기 좋은 곳은 바로 나이트시티 도심 한 가운데다. 효과를 적용하는 순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던 단색 음영은 그라데이션이 입혀지면서 좀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틴팅이라도 한듯 검게 칠해져 있던 건물 유리창은 반사가 적용돼 주변을 비춘다. 특히 건물 유리창은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반사돼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이 적용되지 않은 모습. 건물 유리창이 새까맣다.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적용. 건물 유리창에 주변 사물이 반사되며, 그림자도 자연스러워졌다.
효과가 적용된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방식으로 최적화를 고민한 모습이 엿보인다. 예를 들면 유리창 반사 최적화가 있다. 건물 유리창에 반사되는 것들 중 움직이는 오브젝트는 반사 허용 거리가 짧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NPC의 경우 유리창 바로 앞이 아니면 반사되지 않는다. 때문에 멀리서 다가온 NPC는 유리창에 반사된 모습으로 보면 허공에서 뿅 하고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서 보면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자세히 보면 반사된 오브젝트의 텍스처 품질이 굉장히 낮다. 최상급 레이 트레이싱 그래픽 옵션인 ‘사이코’로 설정했는데도, 유리창에 반사된 텍스처는 겨우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뭉개져 있다.
멀리서 보면 알아채기 힘들지만, 반사 텍스처는 품질이 낮고 움직이는 오브젝트에 대한 반사 거리도 짧다
다만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효과는 최적화를 해도 감당이 힘들 정도로 '무겁다'. 옵션을 적용할 시 게임 프레임을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반토막낸다. CPU i9-9900K, 그래픽카드 RTX 2080Ti, QHD(2560x1440) 해상도, 그래픽 최상옵 기준, 시야 거리가 짧은 건물 내, 혹은 오브젝트가 얼마 없는 야외에서 실험했을 때 평균 92, 최대 109, 최소 79 프레임이라는 쾌적한 게임 플레이가 가능한 정도의 프레임을 뽑아 냈으나,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옵션을 적용하는 순간 평균 58, 최대 67, 최소 48 프레임으로 약 37% 프레임 감소가 일어났다.
오브젝트가 많은 도심 지역은 더욱 심하다. 옵션 미적용 시 평균 71, 최대 86, 최소 60 프레임 정도로 60프레임을 방어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옵션을 적용하는 순간 평균 31, 최대 38, 최소 26 프레임으로 약 44% 프레임 감소가 일어났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차를 타고 도심 내를 이리저리 빠르게 질주하거나, 빙빙 돌면서 시야 전환을 빠르게 하면 그때마다 실시간으로 적용되는 광원 효과로 프레임이 10대로 내려가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최고급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사이버펑크 2077’ 공식 권장 그래픽카드는 RTX 3070이다. 이하 그래픽카드는 가능은 하지만 그래픽 품질과 프레임을 보장할 수 없다.
오브젝트도 얼마 없고 탁 트인 야외에서는 괜찮았으나
오브젝트가 많은 도시 내에서는 프레임이 20대까지 추락했다
콘솔 버전의 경우 아직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옵션을 사용할 수 없다. 애초에 차세대 버전이 아닌 하위호환 버전으로 출시됐기 때문에 전체적인 그래픽 품질 자체가 낮다. 차세대 업그레이드와 함께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상대적으로 게이밍 PC보다는 한단계 낮은 성능을 가진 차세대 콘솔에 어떻게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을 적용할 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콘솔 버전은 아직 차세대 업그레이드가 이뤄지지 않아 기본 그래픽부터 차이가 난다
종합하자면 ‘사이버펑크 2077’을 통해 본 게임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은 여전히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최소 RTX 2060 그래픽카드가 있으면 적용 가능하다고는 하나, 최적화가 어려워 사실상 종결급 그래픽카드가 아니라면 희생해야 할 부분이 많다. 광원 효과만 좋다면 화면이 뚝뚝 끊기는 불안정한 프레임 환경에서 게임을 즐겨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게이머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을 적용한 게임은 굉장히 멋지고, 몰입감 넘치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을 적용한 게임과 적용하지 않은 게임은 완성도가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직은 종결급 기기를 가진 게이머만 즐길 수 있는, 그림의 떡인 그래픽 옵션이지만, 언젠가는 이 멋진 경험을 큰 비용 투자 없이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민균 기자 ahnm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