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1 2010년이 되어 사람들이 깨달았을 때, 이미 한국의 온라인 게임 종주권은 미국과 일본에 넘어간 뒤였다. 한국은 더 이상 일본이 가진 풍부한 기획력과 다양한 콘텐츠, 미국의 자본력에 대적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 않던 온라인 게임의 기술력이라는 것이 이제는 미국과 일본의 원소스를 먹여 살리기 위한 솔루션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허생이 갑자기 세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남궁진 문광부 장관의 시절 여러 업체를 농락해가며 1천억이라는 거금을 손에 넣었으나 곧, 시장에 돌려 준 것으로 사람들에게 회자 되었던 異人. 그가 관악산 일대의 경치가 마음에 든다며 제자 5명을 데리고 사당역 근처에 거처를 정하자, 사람들은 이제 그를 ‘역전허생’이라 불렀다. 역전허생이라 사람들이 그를 칭하는 것은 비단, 그가 사당역 근처에 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세를 점하고 있던 온라인게임마저 미국과 일본에 종주권을 내주어 버린 자신들의 시장 상황을 허생이 예전의 그 황홀한 솜씨로 다시 역전시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재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생은 그런 사람들의 바램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 제자들을 이끌고 관악산 일대의 경치를 감상하러 다닐 뿐이었다. 하루는, 허생이 제자들을 이끌고 관악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엔씨에서 온 심부름꾼이 허생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돌아 갔다. 편지의 내용인 즉, 미국과 일본에 과도하게 주도권을 내어주고 만 한국 게임 시장의 대세를 도모하기 위해 대통령이 업계 관계자들을 초빙하여 만찬을 주최하는데 반드시 참석하여 업계에 관한 조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묵묵히 편지를 읽어 본 허생은 제자들을 불러 놓고 말하였다. “나는 예전, 문광부 남궁진 장관과의 인터뷰 이후 위정자들이라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다시는 업계에 발을 들이지 않기로 했었다. 허나, 엔씨의 김사장과는 옛적의 친분도 있고 하여 지금 그가 이렇게 간청하는 편지를 보니 인사치레는 해야 할 터인데, 제자 중에 누가 나를 위하여 정부에 들어가 대통령과 관계자들에게 인사하고 돌아오겠는가?” 허생의 말이 끝나자 한 제자가 표연히 일어 섰다.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허생이 눈을 들어 그를 보니, 십여 년간 엔씨에서 일하다가 온라인 게임의 주도권이 일본에 넘어간 것을 개탄하여 회사를 사직하고 자신의 밑에 들어온 이경민이라는 자였다. 허생은 그가 엔씨에서 오래 재직 했었다는 사실에 받아 들이지 않으려 했으나, 게임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고려하여 제자로 받아들인 터였다. “경민아, 그 자리는 대통령과 여러 업체 관계자들이 있는 자리다. 네, 허생의 제자로서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겠다고 다짐 할 수 있겠느냐?”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소신껏 행동하겠습니다” 경민이 말을 마치자, 허생은 그가 평소 집필해 놓았던 게임 시장의 전략기획서가 담긴 CD 한 장을 내주었다. 경민이 CD를 건네 받고 사당역으로 내려가 보니 이미 청와대에서 나온 관용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악산의 허선생님께서 제자를 대신 보내셨습니다” 경민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대통령은 희색이 만연했다. 경민이 대통령 가까이 와 고개 숙여 인사하니 대통령의 치사가 이어진다. "평소 허선생께서는 관악산 저편에 계시고 나는 북악산 밑자락에 있어 떨어진 거리가 멀지 않지만 자연히 일이 많아 한번도 뵙지를 못하여, 오늘 한국 게임 시장의 앞날을 논하는 자리에 한번 고견을 들어보고자 청하였던 것인데, 평소 선생께서 외부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아니하신다고 하여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소이다. 그런데, 이제 선생께서 자신의 제자를 보내와 인사케 하니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평소 집필해 놓으신 게임 시장에 관한 전략기획서입니다. 각하께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경민이 대통령에게 CD를 내밀자. 대통령이 더 한층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화답한다. “내가 무슨 공덕이 있기에 이렇듯 선생의 풍성한 선물을 받겠는가?” 하며, 만찬을 속개토록 하고 만찬장에는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만찬장의 분위기는 허생이 전달한 CD로 인해 한껏 고조 되고 대통령은 친히 경민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묻는다. “지금 시중에 유행하는 온라인 게임들은 모두 우리 한국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요, 개발자들의 성과외다. 허나, 그 소스만은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것들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 타개하면 좋을 것 같습니까?” “예전에 애니메이션 업계도 거쳤던 길입니다. 온라인 게임 업계는 조금 늦게 거쳤을 뿐이지요” 경민의 가시 돋힌 말에 대통령은 약간 언짢았으나, 이내 경민의 손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 가며 손수 업계의 사장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업계의 일반인 같으면 평소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경민은 눈을 곧게 뜨고 담담하게 쳐다보기만 하였고 인사에도 일체의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 이런 그의 태도에 장내의 사장들은 모두 불쾌의 빛이 만연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업계 최고의 헤드헌팅 업체로 군림하던 HR-캐리어즈의 김석환 사장이었다. 김석환 사장은 예전에 경민이 허생의 제자라는 점을 이용해서 일본의 메이저 업체에 비싸게 넘기려는 작업을 한적이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 여성 헤드헌터를 이용한 미인계를 사용하기 때문에 걸려 든 사람은 어느 정도 발을 담그기만 하면 빠져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민의 경우에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싶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그것’에 응하지 않고 뛰쳐 나가 버린 것이었다. ‘어디 네놈이 오늘도 뛰쳐 나갈 수 있는지 한번 보자’ 김석환 사장은 고개를 들어 옆의 여성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 여성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고 마시던 술잔을 들고 경민의 옆으로 향했다. ‘김아란’ 여성 헤드헌터 최고의 실력자. 평소 김석환 사장이 가장 아끼고 아끼는 헤드헌터다. 174cm, 52kg의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섹시미도 그렇지만 얼굴은 지적 이미지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김석환 사장은 김아란을 상당히 아끼는 편이었다. 그러던, 그가 오늘 그녀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경민씨라고 하셨죠?” 갑작스런 여성의 물음에 경민이 뒤를 돌아 보았다. 숨이 막힐듯한 아름다움이다. 관악산에서 오르내리며 속세도 잊고 나름대로 해탈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이 여자를 보니 숨이 막혀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 예……누구신지?” “HR-캐리어즈의 김아란이라고 해요” “HR-캐리어즈요?” “왜요? HR에 대해서 아시나요?” “한번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분명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말 호감이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헤드헌팅이 목적이라니, 짜증이 솟구쳐서 그 이후 한동안 사회 사람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기억. “HR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죠. 어떤 기억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예외로 해주세요” “네, 큰 기업인가보군요…… 그런데, 게임 쪽으로 뭐 물어 볼게 있으신가요?” “네? 아뇨…… 전혀. 그저 경민씨에 대해 궁금해서 술이나 마시러 온 건데……호호호” 다른 여자 같으면 경박하게 들렸을 이 대사가, 어째서 이 여자에게 들으니 이렇게 진지하게 들리는지, 경민은 잠시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란 요물이라더니 역시 선생님 말씀이 틀린게 없군-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꽤 많은 술을 마신 것 같다. 경민은 약간 취기를 느꼈다. 어쩌면 아까부터 이 여자가 발산하는 향수 냄새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 먼저 좀 들어가봐야 할 것 같군요” “어머 벌써요? 너무 아쉬운데, 아직 하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잖아요?” “어쨌든 전 이만……” 속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게 느껴져 일단 화장실로 달렸다. “웩-웩” 화장실 벽을 붙잡고 한동안 게워내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원래 이렇게까지 약하진 않은데 어찌된 일일까 의아해하면서 청와대 입구로 걸어 나오니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생각이 든다. ‘택시를 잡아야 하나……’ 혼자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스포츠카 한대가 요란한 엔진음과 함께 달려 와서 경민의 앞에 섰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타요!” 누군가 바라보니 아까의 그 여자다. “지금 정신도 온전치 않습니다. 택시라도 타고 돌아가지요. 뭐” “이봐요, 사람이 호의로 이야기하는데 이러기에요?” 계속 이야기하다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혼자 바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란은 기어를 저단으로 맞추고 계속 따라온다. “경민씨,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사양하는 건 실례에요” “더 엄청난 실례를 할까 봐 그럽니다” “호호호, 엄청난 실례란 게 뭔데요? 갑자기 궁금해지는걸?” 아란은 핸들을 돌려서 아예 경민의 앞을 막아서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 버렸다. “이래도 안타요?” 열린 조수석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경민의 눈에 아란의 흰 허벅지가 들어 왔다. ‘잘 빠진 스포츠 카와 잘 빠진 미녀는 뭔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란 게 있는 건가’ 경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조수석에 앉아 버렸다. 조수석에 앉자마자 아란은 엑셀을 밟았고 가속력 때문에 조수석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청와대를 빠져 나오는가 싶더니 차는 어느새 북악스카이웨이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야경이나 보려는 거에요. 엄청난 실례를 하면 안되잖아요?” 살짝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는 아란의 미소에 이번엔 경민이 민망해진다. 어느덧 차는 북악스카이웨이의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이것 봐요. 대단하지요!” 아란이 먼저 차에서 내려 난간을 붙잡고 서울의 야경을 가리킨다. 경민은 차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 와 아란의 옆에 섰다. 오늘따라 정말 서울의 야경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다. 이 여자 때문일까? 하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경민씨, 나는 HR에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에 대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예를 들면 당신이 엔씨에서 거액의 스톡옵션을 제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뛰쳐 나왔다는 점, 또한 엔지니어도, 아티스트도 아니면서 당신을 따르는 개발자들이 무척 많았다고 하지요?” “명백한 뒷조사로군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뒷조사하는 게 뭐 나빠요?” “HR이라는데 다니고 있다니까 아무래도 뒤를 캐는 것처럼 들린다니까요” 아란이 갑자기 웃으며 경민을 정면으로 쳐다 보더니 목에 팔을 감아 왔다. 경민이 놀라서 아란의 팔을 풀려고 했지만 그녀의 감은 힘이 강해서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감은 팔에 자신의 손이 얹어져 얼굴이 더 가까워져 버린 꼴이었다. “경민씨, 당신은 허생의 제자고 젊어요. 경력도 좋고 개발 업계에 따르는 사람도 많이 남아있는데 관악산 같은 데서 한평생 지내는 건 너무 아깝지 않아요? 설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외면하는 건 아니겠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뭘까요? 한국 게임 업계가 어디로 갈지 알리는 일? 그런 것 들을 자랑스럽게 알리면서 막아라- 막아라- 소리치다가 결국 한 사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생을 마감하는 일?” 경민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엔씨를 그만두게 된 것도 돈 때문이 아니었다. 나이가 삼십 대 후반이 되도록 엔씨에서 좋은 게임을 프로듀스하고 좋은 유저들이 가득 찬 시장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일해왔건만 시장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엔씨에서 탈력에 빠져 있을 어느 날 허생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마냥 신기했다. 한국게임업계에 이런 인물이 있다니, 신기하기도하고 경외감이란 게 들어서 한번 만나 보고 싶어 찾아 갔지만 엔씨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전혀 만나주질 않았다. 어떻게든 같이 있고 싶은 생각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사 그만두고 허생의 집 앞에서 사흘 밤낮을 매달린 결과, 결국 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잊고 허생 밑에서 몇 년을 보냈는데, 지금 아란이라는 여자가 자신의 심금을 울린 것이었다. 이 눈물의 의미는 도대체 뭘까. “경민씨, 당신은 지금 당신의 나이에 맞지 않게 흘리는 그 눈물만큼의 열정으로 다시 업계에 헌신해야 해요.” 아란은 말을 마치자, 경민의 뺨에 흘러 내리는 눈물을 혀로 핥았다. “헌신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많이 달라질 거에요” 아란은 말을 마치자 경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경민은 그녀의 혀를 느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렸을 때 시연대에서 새로운 게임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런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었다. 경민은 점차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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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ETC] 역전허생 - Prologue1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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