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침대에서부터
소프트 맥스의 [창세기전] 시리즈와 함께 한국에서 제작한 RPG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게임인 손노리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카이난의 지팡이 수송식으로 시작되는 작은 이야기는 여느 RPG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게 되면서 점차 이야기의 스케일이 커지는, 전형적인 RPG의 기본을 따르고 있는 타이틀이기도 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링크, [이스] 시리즈의 아돌처럼 뼈대 있는 RPG의 주인공이라면 자고로 잠에서 깨어나거나 기절했다가 눈을 뜨면서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는 법칙까지 충실히 지키는 것을 비롯, 전체적으로 기존에 RPG를 해오던 게이머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캐릭터의 구성과 성격도 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무난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어스토]만의 영역을 구축해서 식상하지 않은 신선한 재미를 안겨준 게임입니다.
마냥 가벼울 것만 같은 게임이지만 꽤 진지한 내용이다. |
그 시절 1994년
최초의 [어스토]라 할 수 있는 도스 버전은 발매 당시 말 그대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단순히 예전 추억을 떠올리며 과거를 미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 PC 게임계가 떠들썩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이 바로 도스 버전 [어스토]입니다. 10만장이 팔렸다는 이야기가 마냥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게이머의 [어스토]에 대한 지지는 확고했으며, 아직까지도 손노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신뢰에는 [어스토]가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아기자기한 그래픽에 속도감 넘치는 전투 시스템, 단순명쾌하고 효율적인 인터페이스, 그리고 훗날 손노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센스 넘치는 대사. 그냥 저냥 겨우 할 만한 수준의 게임이지만 국산 RPG니까 어느 정도 문제가 있어도 대충 넘어가자는 반응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 정도의 게임이 나올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였습니다. 그만큼 그 시절 한국 PC 게임 시장에서 [어스토]의 완성도와 존재의의는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화면. |
펌웨어 1.50이상만 실행할 수 있다. |
명작의 리메이크
[어스토]는 한국 게임으로는 드물게 타기종으로 활발하게 이식되기도 했는데, 그 첫걸음은 국산 휴대용 게임기인 GP32로의 이식이었습니다. GP32라는 기종을 가장 강력하고 확실하게 게이머들에게 각인시켜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은 2002년 1월 21일, 원작이 발매된지 약 8년만에 발매되었습니다. 단순히 그래픽만 새로워진 게 아니라 원작과는 다르게 속성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지형 속성과 캐릭터 속성, 마법 속성에 따라 공격력이나 데미지의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좀 더 머리를 써서 전투를 해야 합니다.
게임 전체를 아우르는 큰 줄기는 같지만 잔가지는 많이 달라졌으며, 특히 대사 부분은 시대적인 상황에 맞게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습니다. 성의있는 리메이크 작업으로 GP32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는 했지만 속도감 넘치는 원작에 비해 전투가 너무 느려져서 지루한 플레이가 이어지고, 공격 미스가 너무 자주 나면서 불만을 토로하는 유저들도 꽤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어스토 R]의 일러스트. |
휴대용 게임이지만 알찬 구성이었다. |
아쉬운 윈도 버전
GP32 버전은 다시 윈도 버전으로 이식되기에 이르지만 GP32 버전과는 달리 호평을 받기 보다는 악평을 더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GP32 버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은 휴대용 게임기 수준에서는 상당히 멋진 그래픽을 자랑했지만, 휴대용 게임 시장과는 달리 PC 게임 시장은 원작이 발매되던 1994년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던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애초에 원작의 해상도가 워낙 낮은데다가 전체화면에 다 차지도 않는 투박한 도트 그래픽은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한 사람들에게조차 호응을 얻어내기엔 무리였습니다. 무조건 2D라고 해서 그래픽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3D가 아니더라도 고해상도의 2D 그래픽에 다양한 특수효과로 이쁘게 꾸며진 2D RPG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은 이미 첫인상에서부터 좋은 점수를 받기엔 어려웠던 타이틀이었습니다.
전투나 필드 화면에서도 풀화면이 아니다. |
집안 구경이라도 할라치면 더욱 좁아진다. |
모바일을 거쳐 PSP로
그 후로도 [어스토]는 모바일용으로 에피소드 2까지 출시되기도 했으며, 결국 전혀 예상도 못했던 PSP로 이식되기에 이릅니다. 사실상 최초의 PSP용 국산 RPG라는 타이틀을 달고 발매된 PSP용 [어스토]는 기존에 발매된 [어스토 R]을 베이스로 제작되었지만 단순한 리메이크 작품이 아닌, PSP 버전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린 타이틀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타이틀은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이 아니라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로 출시되었습니다(윈도 버전 [어스토 R]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할까봐 일부러 R을 뺐다는 소문도 있지만). 서로간에 거의 차이가 없던 GP32 버전과 윈도 버전과는 달리 PSP로 이식하면서 그래픽이나 사운드, 기타 시스템을 상당 부분 수정·보완했으며, 이로 인해 이미 다른 기종으로 [어스토]를 즐겼던 유저들도 한 번쯤 해볼 만한 타이틀이 되었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와이드 비율로 더욱 넓어진 화면. 그에 따라 좀 더 많은 표현이 가능해졌다. |
화려한 오프닝 애니메이션
얼핏 초반만 조금 플레이하면 GP32 버전과 비교해서 별 다를 부분이 없어 보이지만, 좀 더 게임을 진행해보면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사운드를 꼽을 수 있는데, GP32 버전에서는 여러 문제로 인해 BGM의 음질이 낮았지만 PSP 버전에서는 음질이 상당히 좋아져서 거슬리지 않는 게임 진행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새로이 추가되었는데 이 오프닝 애니메이션의 수준이 구색만 갖추기 위해 대충 제작해서 집어 넣은 수준이 아니라, 다른 유명한 게임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를 하지 않았던 부분이었지만 의외로 너무 멋진 완성도에 감탄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악튜러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의 오프닝으로 많이 익숙해진 정여진씨가 오프닝 보컬을 불렀으며, 가사는 예상대로…이원술 사장님이 직접 붙이셨습니다.
오프닝을 제작한 곳은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창작지원실 입주업체인 \'연필로 명상하기\' 스튜디오(…길다). |
시원해진 화면
예전 버전과는 달리 PSP 버전은 와이드 방식이기 때문에 화면이 넓어졌습니다. 몇몇 배경은 와이드에 맞게 새롭게 작업한 부분도 있으며, 해상도 제한 때문에 좁은 느낌이 들었던 GP32 버전이나 윈도 버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원시원한 화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법이나 스킬 사용 시에도 화려한 연출을 도입해서 보다 멋진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맵 화면에서 구름을 표현하거나 배경에 캐릭터가 가릴 때에는 반투명 효과가 사용되는 등, 꽤 많은 부분의 그래픽을 PSP 버전으로 다시 작업했습니다. 다만 PSP의 고질적인 문제인 잔상 문제는 [어스토]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는데, 필드 화면에 검은 부분이 있거나 던전에서 전체적으로 검은 화면이 많을 때 잔상이 남게 됩니다. 잔상 문제는 PSP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서 [어스토] 자체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할 수는 없겠지만요.
윈도 버전 [어스토 R]의 화면. |
PSP 버전에서는 이렇게 변했다. 이 정도면 러브 하우스. |
PSP로 이식되면서 각종 연출이 화려해졌다. |
쾌적해진 전투
항상 심심한 공격만 하던 로이드에게도 드디어 새로운 스킬 어빌리티가 추가되어서 스토리 초반에 로이드가 혼자가 된 이후에도 수월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바일용 에피소드 2에서 추가된 부분). 특히 중후반에 가서 생기는 전체 공격 스킬인 블레이드 레인은 게임 내내 유용하게 쓰이는 기술로, 한 턴만에 적을 몰살하거나 러덕의 전체 공격과 조합해서 두 턴으로 전투를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한 게임 진행을 할 수 있습니다.
전투 속도도 무척이나 빨라졌는데, GP32 버전이나 윈도 버전에서는 이동도 느릿, 공격도 느릿, 게이지 줄어드는 속도도 느릿, 화면 전환도 느릿, 다음 턴 넘기는 것도 느릿해서 템포가 좋지 않았지만 PSP 버전에서는 도스 버전에서 호평을 받았던 스피디한 전투 템포로 다시 돌아와서 쾌적하게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GP32 버전에서 게이머의 스트레스 지수를 한껏 올렸던 공격 미스도 대폭 줄어서 엔딩을 볼 때까지 미스를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쾌적한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로이드의 스킬인 블레이드 레인. 정말 유용하다. |
다른 기술의 연출도 훨씬 화려해졌다. |
추억의 블루 스크린
손노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멋진 센스의 대사와 각종 아기자기한 이벤트는 [어스토]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GP32 버전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던 다이아몬드 바람 이벤트나 칠성이의 노인공격 이벤트, 원작인 도스 버전에서 등장하여 많은 어린 남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던 일레느의 목욕 장면 등, 다른 RPG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분위기가 게임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다.
과거 윈도 98에서 자주 알현할 수 있었던 블루 스크린 현상을 정신계 마법으로 승화시킨 것이나 일종의 자학 개그라고도 할 수 있는 미디아라 마을의 아웃 오브 메모리 이벤트 등, 다른 게임에서는 느껴보기 힘든 손노리만의 재미난 이벤트가 수도 없이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 내내 유쾌한 기분으로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대현자의 손녀가 목욕을 한다면 절대 훔쳐보지 말라는 교훈. |
윈도 XP로 오면서 보기 힘들어진 화면. 추억의 개그가 되려나. |
아쉬운 대사창
PSP에 대한 부분이나 기타 유행어 등 몇몇 대사가 조금 수정되었지만 전체적인 대사는 예전 버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아쉬운 것은, 대사창 정도는 이전 방식을 탈피해서 새롭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사창은 GP32 버전을 할 때부터 그다지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인데, 대사가 넘어갈 때마다 대사창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고 대사 분할이 어색해서 연속되는 문장을 도중에 이상하게 잘라서 쉽게 이해가 안 가는 문장도 더러 나오게 됩니다.
와이드 액정이라 화면도 넓어졌는데 대사창이 조금만 넓었으면 좀 더 매끈한 스토리 진행이 가능했을텐데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진 것은 불만입니다. 대화를 할 때 나오는 일러스트도 예전에 쓰던 일러스트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기존의 일러스트가 별로라는 것은 아니지만 도중에 특정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표정이 전혀 안 바뀌는 일러스트이기에 기껏 PSP로 이식하면서도 캐릭터 일러스트와 대사창은 바꾸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손노리 게임이라면 역시 유쾌한 대사. |
일러스트는 기존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
GP32 버전 [어스토 R]의 개발 사진. 일러스트를 비롯, 대사창의 디자인과 위치가 최종 버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
잦은 로딩
사실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로딩이 심하다는 많이 많지만 엄밀히 따져서 로딩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물론 GP32 버전이나 윈도 버전에 비해서 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발매된 다른 PSP용 게임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오히려 짧은 편에 속합니다. 정작 문제는 로딩이 긴 게 아니라 잦다는 것입니다. 조금 로딩이 길더라도 한 번 로딩을 끝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쾌적한 게임 진행을 하는 게 아니라, 로딩을 끝낸 상황에서도 이것저것 잔로딩을 계속 하는 것이 큰 문제점입니다.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 로딩을 한 다음에 집에 들어가려면 잠시 멈칫한 다음에 게임이 진행되며, 그 집 안에서도 캐릭터에게 이야기를 걸거나 지나가는 쥐를 밟게 되면 또다시 게임이 잠시 멈추게 됩니다. 이러한 잔로딩은 전투를 할 때에도 몇 번씩 끊기는 현상을 유발하기 때문에 GP32나 윈도 버전을 통해서 게임을 즐겨본 사람들에게 꽤 거슬리는 문제로 다가올 듯 합니다.
대화를 하거나 집안에 들어갈 때, 길지는 않지만 끊기는 상황이 발생한다. |
불편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
시스템 쪽으로도 불편한 부분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자체적으로 장비를 벗는 기능을 지원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장비를 벗으려면 여분의 장비로 바꾸는 식으로 해제를 해야 합니다. 방어구나 무기류는 그 성격상 더 좋은 장비를 구입하거나 얻고 나서 교체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그런 불편이 적지만 장신구 장착일 경우는 게임 진행에 따라서 수시로 교환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만약 장신구가 부족한 스토리 초중반에는 장비 해제 기능이 없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경험치를 1.5배로 얻을 수 있는 장신구의 경우, 일단 장착을 하고 나니까 한 캐릭터만 자꾸 레벨이 올라가서 다른 캐릭터에게 주려고 했지만 장비 해제 기능이 없어서 레벨 격차가 생겨 버리는 일도 발생하곤 합니다.
또한 아이템을 구입할 때 소지하고 있는 해당 아이템의 갯수가 표시되지 않는 것이나, 장비를 장착할 때 한 캐릭터의 장비 장착이 끝난 후에 다른 캐릭터의 장비를 장착하려면 취소 버튼을 몇 번 눌러서 캐릭터 선택 부분으로 다시 돌아간 뒤 다른 캐릭터를 선택해서 장비를 장착해야 하는 부분도 귀찮습니다. 대다수의 RPG에서는 R/L 버튼으로 간단하게 캐릭터를 바꿀 수 있는데 2005년에 만들어진 [어스토]에서 그런 부분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은 무성의한 이식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이미 GP32, 윈도 버전에서 불편하다고 많이 지적되던 사항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많았음에도 전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낸 것은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큰 불편은 아니지만 간편하게 바꾸어 주었으면 좋았을 터. |
아이템이나 마법을 사용할 때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 |
버그가…
PSP로 이식하면서 생긴 버그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게임 도중 동료로 들어오는 핫타이크의 사운드 버그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핫타이크가 통상 공격을 할 때 나오는 효과음이 심하게 찢어지는 현상이 생기는데, 가끔 가다 그런 것도 아니라 매번 공격을 할 때마다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에 사운드 버그에 대해 전혀 몰랐던 상태라 아무 생각 없이 플레이를 하다가 이 버그를 겪은 적이 있는데, 특히 그때는 이어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감동은 본체 스피커로 들었을 때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 그 외에도 게임 도중 타이틀 화면으로 가서 새로 게임을 시작하면 소지금이나 장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버그(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아 결국 게임 진행 불가능)라던가 아이템 장착과 로드를 사용해서 능력치를 올리는 버그 등, 의외의 상황에서 버그가 더러 발생하는 것은 좋게 봐주려고 해도 쉽게 넘어가기는 힘든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핫타이크가 공격을 할 때는 상당히 괴로워진다. |
우연히도 공격 미스. 소리가 안 나니까 오히려 기쁠라나. |
열악한 제작 환경
물론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게임을 만들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는 당연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인력면이나 자금면 등 한국보다 개발 환경이 훨씬 좋고 개발 노하우가 풍부한 일본에서도 문제 없는 게임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니까요. PSP라는 기계에 대한 이해부족과 촉박한 개발 시간, 광미디어의 한계로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꼬투리를 잡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물론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굳이 제작사의 사정을 봐주면서까지 게임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불만점을 시시콜콜 따져서 하나하나 열거한다면 굳이 [어스토]가 아니라 북미나 일본의 유명 제작사의 대작 타이틀에서도 얼마든지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문제의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만 않다면 대부분의 게이머들도 그렇게 심하게 제작사를 욕하거나 게임 구입을 망설이지는 않을 겁니다.
꽤 멋진 분위기의 메인 타이틀 화면. |
인상적이었던 연출도 원작 그대로. |
하지만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었더라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을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발매한 것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타이틀을 대할지는 의문입니다. [어스토]가 완전히 무에서 새로이 제작된 타이틀도 아니고, 이미 원작이 있는 상태에서 GP32로 리메이크를 했었고, 그 후로도 윈도 버전이나 모바일 버전을 내면서 유저들로부터 이런 저런 의견이 나온 상태에서 만들어진 타이틀이었습니다.
그래픽을 초고해상도로 뜯어고치고 로딩을 완전히 없애거나 스토리의 볼륨을 대폭 높이는 등의 문제가 아닌, 아이템 장착과 해제를 편하게 하고, 아이템 개수 표시를 해주거나 와이드 액정에 맞게 대사창을 새로이 디자인하고 대사를 끊는 부분을 좀 더 매끄럽게 하는 것은 굳이 시간을 들여 최적화 작업을 하거나 거대한 자금이 동원되는 것은 아닌 부분인데 그런 부분을 전혀 개선하지 않고 그대로 출시한 것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허이짜… |
플레이 시간 15시간에 최고 레벨 23으로 간단히 클리어. |
식상하다…?
PSP로 [어스토]가 발매된다는 정보가 나왔을 때부터 스크린샷이 공개되고 제품이 발매가 될 때까지 식상하다던가 우려먹기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사실 식상하다 것도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닙니다. 처음 GP32로 나온다고 했을 때는 한국에서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RPG 명작의 리메이크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이었기에 많은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그 후로 윈도 버전, 모바일 버전이 연이어 출시되면서 그 기대치와 호응도는 예전만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후속작이 아닌 리메이크 버전만 연이어 출시되는 상황 속에서 PSP 버전 [어스토]는 이미 식상해진 유저들의 눈높이에 부응을 해줘야만 했지만 막상 결과물은 유저들에게 그다지 만족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예견된 결과일지도 모르고, 손노리 측에서도 그것을 감수하고 출시를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모바일 게임으로 제작된 [어스토]. 현재 에피소드 2까지 나온 상태. |
차기작…?
[어스토]로 PSP에 새롭게 진출한 손노리의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GP32로 제작한다고 했다가 묻힌 [다크 사이드 스토리]일지도 모르고 [포가튼 사가]나 [화이트 데이]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차기작이 나오지 안 나올지도 불분명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기 넘치는 손노리의 타이틀을 또 다시 콘솔에서 만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리고 만약 또다시 손노리의 타이틀이 나온다면 이번 PSP 버전 [어스토]에서 느껴졌던 아쉬움을 해소한 멋진 작품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PSP 버전에만 나오는 따끈따끈한 대사. |
김학규+이원술 듀엣의 처절한 영상물. 몇 년만에 다시 봐도 감동. |
로이드에게 사라만다의 혀 쥐어주고 지리한 소모전 끝에 보스의 MP를 다 소모시킨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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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까지는 4개월이나 남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