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든 게임이든 자극적인 걸 좋아한다. 근육질 남자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폭발과 화염이 스크린을 가득 채워야 속이 시원하다. 거기에 주인공이 대머리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린 너무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 있는 건 아닐까? 가슴이 뻥 뚫리고 식은땀이 흐르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도 좋지만, 때로는 삶의 행복에 대해 잔잔하게 노래하는 이야기도 곁에 둬야 하지 않을까? 약간 유치하긴 해도, 보고 있으면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퍼지는 그런 이야기.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 그런 세계.
그것이 필요하다면,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이미 충분한 행복과 온기가 담긴 아틀리에 시리즈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매번 평가는 달라져도 태도는 변함이 없으니, 우린 그저 손을 내밀어 그 세계를 열어 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번 리뷰에서 소개할 '소피의 아틀리에', 3부작으로 황혼의 연금술사를 마치고, 책의 연금술사 시리즈의 첫 장을 그려나갈 이 게임은 흥미로운 시스템으로 우리에게 한발 다가온 것 같다. 여전히 깊이 있는 연금술과 언제나 환영하는 우리말과 함께 말이다.
푸니 한 마리도 못 잡던 소녀가 말하는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
드래곤도 때려잡는 폭탄마로 거듭나게 되는 그런 이야기. 사실입니다. |
■ 두 가지 그림체와 두 가지 모델링
독특하게도 일러스트레이터가 두 사람이다. '칸코레'의 NOCO와 '아웃브레이크 컴퍼니'의 유겐이 각각 다른 캐릭터를 담당한 것. 한 작품 안에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캐릭터가 공존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NOCO는 마을 안에 살던 사람을 맡고 유겐은 주로 마을 밖에서 온 사람을 맡아서 이질적인 느낌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고개가 끄덕여지고 두 그림체 모두 나쁘지 않지만, 취향이 갈리고 분위기를 해칠 위험성을 안으면서까지 시도할 가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붙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봤을 땐 만족스러운 편이다. 비록 알란드 시리즈에 비해 덜 섬세하고 황혼 시리즈에 비해 덜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긴 해도, 이들보다 더 힘찬 느낌을 주고, 넘치는 의욕과 무한 긍정으로 무장한 소피의 성격과도 잘 어울린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NOCO는 본인의 그림체를 시리즈의 분위기에 어느 정도 맞춘 반면에, 유겐의 경우엔 자신의 예전 작품과 느낌이 비슷한 점이 꽤 많다는 것이다. 특히 레온의 경우는 아웃브레이크 컴퍼니의 페트랄카와 상당히 닮은 탓에, 자칫 일러스트레이터의 성의가 의심받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두 사람이 일러스트를 담당해서 분위기 차이가 나는 편. |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
또 하나 독특한 건 3D 모델링도 두 가지 그림체에 따라 서로 다른 팀이 맡았다는 점이다. NOCO의 일러스트는 원래대로 플라이트 유닛에서, 유겐의 일러스트는 코에이 테크모 게임즈에서 따로 작업했는데, 일단 결과는 나쁘지 않다. 머리칼부터 복잡한 의상까지 무척 섬세한 편이고, 소피의 표정과 작은 손짓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일부 캐릭터의 느리게 걷는 모습이나 달리기 동작은 어색하긴 해도 전투에서는 시원하고 멋진 동작을 볼 수 있어서, 두 팀의 결과물 모두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그래도 일러스트를 얼마나 충실히 재현했느냐를 기준으로 구분하자면 개인적으로는 플라이트 유닛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이 아깝지 않게 일러스트를 그대로 복사한 듯한 결과물을 보여준다. 반면, 코에이 테크모 게임즈에서 맡은 캐릭터들은 얼굴 표현에서 원화와 차이가 조금 나는 편이다. 줄리오의 조각 같은 얼굴은 넓고 평평하게 만들었고, 레온의 얼굴은 부기가 빠지는 날이 없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원래대로 그림도 한 명이 그리고 모델링도 플라이트 유닛에서 단독으로 맡길 희망하지만 어른들의 사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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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회사가 나눠서 담당했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한 캐릭터 모델링. |
■ 역시나 허전한 배경, 그래도 만족스러운 분위기
섬세한 모델링과 대조적으로 배경은 많이 허전한 편이다. 물론 짧은 기간 안에 기술적인 면에서 급격한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새 시리즈가 시작되는 만큼 어느 정도 눈에 띄는 변화는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히 허전하다.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하는 만큼 웅장한 건물을 기대하기도 힘들고, 그 작은 장소마저 띄엄띄엄 놓여있는 오브젝트와 얼마 없는 NPC로 텅 비어 있는 느낌을 준다. 광원 효과와 그림자 등 샤리의 아틀리에보다 나아지거나 추가된 부분이 일부 있긴 하지만, 출시 기종이 PS3에서 PS4로 바뀌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아쉬운 수준이다.
그렇지만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름답다. 화사한 색감으로 마을을 동화같이 그리고 있고 어떤 필드와 던전은 신비로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스킬이나 아이템을 사용할 때의 화려한 연출은 전투의 재미를 뒷받침하며 템포가 빠르고 밝은 배경 음악은 이 게임의 테마와 잘 어울린다. 특히 보스전의 음악은 장엄한 맛이 일품이다. 아쉬운 기술력도 역시 거스트지만, 뛰어난 모델링과 아름다운 분위기도 역시 거스트. 장점을 극대화해서 약점을 잘 상쇄하고 있다.
일부 캐릭터는 얼굴 표현이 좀 어색하긴 하다. 줄리오는 (-_-) 이렇게 되었고… |
레온은 (o0_0o) 이렇게 된 느낌. |
■ VITA 버전의 완성도도 뛰어난 편
PS4와 VITA 버전을 동시에 개발했다고 들었을 때는 걱정을 좀 했다. 그럴만한 여력이 있을까 싶기도 했고, 직전에 나온 '밤이 없는 나라'를 봤을 때도 그렇고, 과연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올까 싶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실제로 해보니 PS4 버전에서 몇 가지 효과가 삭제되긴 했어도,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화면을 보여줬다. 물론 전체적으로 프레임이 낮은 편이고 전투에서는 끊기는 장면도 많지만 이 정도면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나으며 플러스로 기획되었던 전작들에 못지않은 정도로 보인다.
욕심일지 모르지만, VITA 버전엔 전용 UI를 적용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화면 구성이 PS4와 동일한 상태에서 화면이 작아졌기에 구석에 있는 작은 글자는 읽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부분이 많지 않고 글을 오래 읽을 게임도 아니며 네트워크 세이브 기능으로 PS4에서 하던 걸 그대로 이어서 할 수 있는 덕분에 VITA 버전에 대한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높았다. 딱 한 번 프레임이 심하게 떨어지고 월드 맵에서 이동할 때마다 로딩을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껐다가 켜니까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게 버그인지 아니면 테스트에 사용한 VITA가 오래되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참고하길 바란다.
VITA 버전은 프레임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화면을 보여준다. |
PS4 버전(좌)과 VITA 버전(우)을 비교해보자. 배경과 그림자 등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
■ 떠올리는 레시피와 생각하는 연금술
어떻게 생긴 지는 충분히 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의 시스템을 들여다보자. 이번 작품에서는 연금술에 필요한 레시피를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어떤 장소에 가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특정한 행동을 하면, 그것을 계기로 소피의 머리 위에 전구가 반짝이며 새로운 조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수많은 레시피 마다 독특한 발상 조건을 배치해서 게임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습득 조건은 조합법 메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적힌 조건을 그대로 따르면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레시피들도 있지만 어떤 레시피들은 습득 조건을 읽어도 이걸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바로 알 수 없는데, 여기서 생각하는 재미가 탄생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이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이런저런 행동을 다 해보다가 마침내 해답을 떠올리게 될 때의 쾌감이 상당하다. 생각하지도 않은 레시피를 우연히 습득할 때도 신난다. 난이도를 골고루 배치한 덕분에 가볍게 즐겨도 대부분 획득할 수 있고 깊게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찾기 어려운 레시피도 준비해두고 있다. 마치 도전과제를 깨는 듯한 흥미로운 시스템이다.
그래픽은 여전히 부족하고, 특히 배경이 허전하다. |
그래도 전투의 연출은 나쁘지 않은 편. 화려한 스킬이 많다. |
레시피를 떠올렸다면 이제 제작 방법을 생각할 차례다. 간단히 말하자면 준비한 재료를 가마에 배치하는 방식. 재료마다 블록의 모양이 다르고 속성이 달라서 최상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배치를 고민하게 된다. 블록의 방향과 놓는 순서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고 어떤 가마를 사용하는지, 재료의 품질은 어떤지,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 효과와 특성이 천차만별. 폭탄의 생김새는 같아도 그 성능과 용도는 만드는 이의 취향이나 상황에 따라 수십, 수백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이 다양하고 그에 따른 효과도 저마다 다르다 보니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까 하며 같은 아이템도 자꾸 반복해서 만들어 보게 되는데 이게 묘하게 중독되는 맛이 있다. 리뷰 마감 날짜가 벌써 지났는데도, '하… 이거 좀만 더 하면 엄청 좋은 거 나오겠는데' 하면서 폭탄 하나를 며칠 동안 붙잡고 있는 바람에 마감을 연장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끝없는 깊이와 빠져드는 재미를 모두 충족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특정 행동을 하면 제조법을 떠올리는 방식. |
제조법 종류도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
하지만 조합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많다 보니 전체적인 시스템을 단번에 이해하기는 힘든 편이다. 어떤 배치가 효율적인지,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는커녕 그보다 기초적인 부분도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든 걸 다 파악하고 아이템을 만들 필요는 없다. 초반까지는 마구잡이로 만들어도 전투를 치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으니까. 그리고 도감이 마치 위키 시스템처럼 관련 항목을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서 대강의 시스템만 파악하면 그 뒤엔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으며 제작에 집중할 수 있다.
제작 시스템에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제작 수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아이템이 두세 번만 쓰면 사라지니 같은 걸 매번 다시 만드는 과정이 귀찮기도 하고 반드시 전과 같은 성능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얼마 안 가서 코르넬리아가 아이템을 복사해주고 보충해주지만 이것만 믿고 펑펑 쓰다가는 버는 돈 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커지는 상황을 겪게 된다. 결국, 어떻게 하건 아이템 사용에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공들여 만든 아이템보다 스킬이나 기본 공격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퍼즐처럼 블록을 배치하는 제작 방식. 가마의 종류나 아이템에 따라 복잡해진다. |
사소한 변수로 결과가 크게 달라지고, 같은 아이템이라도 다르게 활용할 수 있다. |
■ 낮과 밤의 탐험, 협력하는 전투
샤리의 아틀리에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벤트에 기간 제한이 없다. 기간에 쫓길 필요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 편리하다. 여기에 낮과 밤 시스템이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연금을 하거나 밖을 돌아다니면 시간이 지나고 대부분의 NPC는 낮에 볼 수 있지만 밤에만 볼 수 있는 이벤트도 있어서 어느 시간에 어떤 이벤트가 벌어질지 확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필드도 언제 방문하느냐에 따라 등장하는 몬스터와 채집할 수 있는 자원이 약간 달라지고 어떤 레시피는 번개가 치는 상황에서만 떠올릴 수 있어서 시간과 기후의 변화를 여러 방면에서 활용하고 있다.
필드 탐험은 전체적으로 쉬운 편이다. 초반엔 몬스터의 레벨도 높지 않으며 어느 정도 도망가면 쫓아오지 않아 전투를 피하기도 쉽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채집을 반복하다 보면 필드 자체의 레벨이 높아져서 어려운 적을 상대해야 하고 맵에 따라서는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섞어 놓기도 한다. 중반이 지나면 도망치기 힘든 적이 점점 늘어난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하면서도 곳곳에 어려운 부분을 섞어 두고 난이도 곡선을 점점 높여서 탐험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LP 포인트를 활용한 피로도 시스템이 다시 도입되었다. 월드 맵에서 이동하거나 필드에서 활동하면 이 포인트가 감소하고 소모된 정도에 따라서 전투 능력도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피로도 시스템으로 부담을 주긴 싫었는지 뒤로 갈수록 LP가 낮아서 마을로 되돌아가야 하는 경우보다 채집 바구니가 가득 차서 돌아가야 하는 일이 훨씬 잦다. 피로도 시스템이 사실상 쓸모없어진 것. 나중에 갈수록 바구니 용량의 압박이 느껴지고 이것을 해소할 아이템은 사용이 제한적이어서 몇 분 채집하다가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과 날씨의 변화. 다른 이벤트나 못 보던 적을 만나기도 한다. |
피의 생계 수단인 의뢰 시스템. 할 수 있는 것만 받는 것이 좋다. |
전투는 여전히 심볼 인카운트의 턴제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자세 시스템 등을 도입하여 동료들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4인의 멤버 마다 공격 자세와 방어 자세를 설정할 수 있고 설정한 자세에 따라 공격력과 방어력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협공을 하거나 동료 대신 공격을 막아줄 수도 있다. 위기에 처한 멤버를 보호하기 위해 누가 언제 어떤 자세를 택해야 할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전략적인 요소도 있고 쉬운 전투에서는 계속되는 협공으로 전투를 신속하게 끝낼 수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또한, 체인 링크가 300%에 도달하고 같은 자세를 취한 멤버가 세 명 있을 때 스페셜 서포트가 발동되는데, 매우 강력하고 연출도 화려하며 파티 구성에 따라 효과가 달라져서 전투에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하지만 발동 조건을 맞추기 힘들어서 쉽게 볼 수는 없다. 의도하지 않는 이상 체인 링크가 300%까지 올라가는 전투가 잘 없기도 하고, 의도했다 하더라도 300%가 되자마자 적이 죽어서 전투가 끝나버리면 무척 허탈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수량의 제한 때문에 전투 중에 아이템을 마음껏 쓰긴 힘들지만 동료의 방어구와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도 연금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연금술과 전투는 여전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편이다. 종류는 다르지만 다른 동료들도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어서 누가 어떤 아이템을 장비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료를 지키고, 함께 공격하며, 연금술로 모두 함께 강해지며, 필요한 아이템을 대신 사용하는 조화와 협력이 중요한 전투 시스템. 이는 게임의 주제와도 흐름을 같이 한다.
공격과 방어 중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협공이나 보호가 발동되고… |
체인 링크가 높을 땐 대규모 협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
■ 행복을 전하는 이야기, 하지만 프레임에 갇혀버리다
연금술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이 시리즈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소피의 아틀리에도 하나의 주제를 일관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어느 때라도 조건 없이 도와주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이야기.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동화 같은 얘기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고,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이 이상적인 소규모 공동체에 아무런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여기에 어설프게 현실성과 합리성을 부여하려 하기보다 하얀 도화지처럼 아무런 티도 흠도 없는 완전한 꿈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피라는 캐릭터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보통은 한 캐릭터에 숨어 있는 다양한 면모나 사건을 겪으며 변화해가는 성격, 그의 행동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 지 등을 기준으로 관찰하게 되는데 소피는 이 중 어떤 것도 충족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욕이 넘치고 이웃에게 대가 없는 친절을 베풀고 행동의 설득력도 없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말도 안 되는 점이 매력으로 느껴지는 것이 소피가 보여주는 역설이다. 팔짱을 끼고 '그래도 이쯤에선 이렇게 행동하겠지.' 생각하며 굳은 표정과 매의 눈으로 노려보다가 소피의 행동과 대사에 굳어 있던 표정과 얼어 있던 마음까지 녹아 내린다. 이야기와 캐릭터 모두 주제를 정확하게 따르고 있다.
로지가 대장장이를 담당하는데, 아무래도 예전의 그 로지는 아닌 것 같다. |
다시 돌아온 파멜라. 기부를 빙자해서 부적을 파는 중. |
플라흐타에 대한 비밀을 조금씩 풀어가는 메인 스토리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40시간 이상을 끌어갈 정도로 깊이나 무게가 있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며, 그래서 메인 스토리의 포인트를 띄엄띄엄 배치한 뒤 그사이에는 다른 캐릭터에 얽힌 이야기를 진행하게 된다. 물론 이 작은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스토리의 패턴이 너무 똑같다는 것은 분명 문제다. 속내를 털어놓고 고민을 해결하고 다 같이 행복해지는 것이 주제에 딱 들어맞긴 하지만 이 주제에 해당하는 이야기 종류가 정말 이거 하나밖에 없을까? 코믹할 수도 있고 황당할 수도 있고 위트가 넘칠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이벤트는 그런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벤트가 '아틀리에 시리즈는 이래야만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소피는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그녀 혼자 이 긴 시간을 떠받치긴 역부족이다. 다른 캐릭터의 매력과 역할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레온과 코넬리아 등 동료들의 설정 자체는 좋지만 주된 이야기 내에서의 역할은 매우 한정적이고 내적인 매력을 보여줄 시간이 너무 짧다. 더구나 어느 순간이 되면 이야기는 소피와 플라흐타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인물들은 단순한 조력자에 머물게 되는데 플라흐타는 초반과 달리 뒤로 갈수록 근심 어린 대사만 날리고 본인만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니 결국 소피는 이 방대한 게임 전체를 혼자서 힘겹게 끌고 가는 소녀 가장으로 보인다.
언제나 의욕이 넘치는 소피를 보는 건 즐겁지만… |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흐르는 이야기와 뻔한 대사는 지겹다. |
■ 마치며
몇 주 동안 게임을 즐기면서 크게 느껴진 단점은 늘어지고 반복적인 스토리 하나밖에 없었다. 일러스트와 모델링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도감 시스템은 편리했으며 발상으로 얻는 레시피와 깊이 있는 제작 시스템도 충분히 빠져들 만 했다. 간편해진 점을 계승하며 파고들 요소도 유지하고 있으니 아틀리에 시리즈가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온 느낌이다. 누가 해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기존 팬들은 공략할 부분이 줄어든 점과 엔딩이 하나인 점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어쩌면 새롭게 시작하는 이야기의 첫 작품을 망치지 않은 점에 대해 박수를 보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여전히 행복하고 여전히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온 아틀리에를 환영하며, 다음 작품도 우리말로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 한 가지 사족도 덧붙인다. 리뷰어도 사람이다 보니 잘못 알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지적과 반박이 필요하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글도 사람도 점차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 하나만큼은 결코 반박을 받지 않으려 한다. 그것은 바로.
테스… 테스가 최고다. 반박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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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는 진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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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하기에 반박글 쓰러 왔다가 막짤에 혓바닥 좀 대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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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게이로 취급받겠죠.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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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코르짱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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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겜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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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는 진리야. | 16.04.26 23: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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