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
Audio
2024
작곡: 윤종신, 이근호
편곡: 이근호, 박한서
작사: 윤종신
"왜곡과 착각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가끔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 예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씩 놀라게
돼요. 서로의 기억이 너무나도 달라서. 예를 들어서 저에게는 영화 속
어떤 씬처럼 또렷하게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있었던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그게 완전히 다른 장면인 거죠. 사실 관계뿐만
아니라 감정도 다르고 핵심도 달라요. 같은 상황임에도 서로 다른 대본을
써놓은 것처럼. 마치 각자 다른 카메라로, 다른 각도와 다른 샷 크기로
장면을 찍어놓은 것처럼. 같은 사건을 여러 시점으로 보여주면서
전개되는 영화 같은 거죠. 나이 때문인지 요즘 이런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심지어 여러 날의 기억을 하나로 합치거나 섞어
놓기도 하는데, 어쩌면 저는 제가 편한 대로, 저 좋을 대로 기억을
왜곡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해 보면 왜곡이나 착각, 오해 같은 단어는 보통은 부정적인 맥락
속에서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닌 것 같거든요. 좋은 왜곡, 좋은 착각, 좋은 오해가
우리 삶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그래요. 먼 훗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어쩌려고 이랬나
싶을 정도로, 도대체 무슨 정신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안에서 말도
안 되는 긍정적인 왜곡이 일어나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죠. 그리고 결국
그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든지 간에, 그 순간의 기억은 내 삶을 무척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줘요. 싸운 기억, 다툰 기억은 희미해져도
사랑에 빠졌던 기억은 제법 오래가죠. 어쩌면 우리는 오래도록 내 안에
남기고 싶은 기억을 자꾸 더 좋은 방향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이 우리를 계속 살게 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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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월간 윤종신 11월호 입니다.
Audio
2024
작곡: 윤종신, 이근호
편곡: 이근호, 박한서
작사: 윤종신
"왜곡과 착각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가끔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 예전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씩 놀라게
돼요. 서로의 기억이 너무나도 달라서. 예를 들어서 저에게는 영화 속
어떤 씬처럼 또렷하게 움켜쥐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있었던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완전히 그게 완전히 다른 장면인 거죠. 사실 관계뿐만
아니라 감정도 다르고 핵심도 달라요. 같은 상황임에도 서로 다른 대본을
써놓은 것처럼. 마치 각자 다른 카메라로, 다른 각도와 다른 샷 크기로
장면을 찍어놓은 것처럼. 같은 사건을 여러 시점으로 보여주면서
전개되는 영화 같은 거죠. 나이 때문인지 요즘 이런 일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심지어 여러 날의 기억을 하나로 합치거나 섞어
놓기도 하는데, 어쩌면 저는 제가 편한 대로, 저 좋을 대로 기억을
왜곡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해 보면 왜곡이나 착각, 오해 같은 단어는 보통은 부정적인 맥락
속에서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결과만 낳는 것은 아닌 것 같거든요. 좋은 왜곡, 좋은 착각, 좋은 오해가
우리 삶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그래요. 먼 훗날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어쩌려고 이랬나
싶을 정도로, 도대체 무슨 정신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내 안에서 말도
안 되는 긍정적인 왜곡이 일어나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죠. 그리고 결국
그 관계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든지 간에, 그 순간의 기억은 내 삶을 무척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어줘요. 싸운 기억, 다툰 기억은 희미해져도
사랑에 빠졌던 기억은 제법 오래가죠. 어쩌면 우리는 오래도록 내 안에
남기고 싶은 기억을 자꾸 더 좋은 방향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이 우리를 계속 살게 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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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월간 윤종신 11월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