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전 스튜디오에서 와이프와 만삭사진을 찍는 도중 신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연락이 왔다.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멀쩡해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집으로 돌아와 최대한 빨리 수술이 가능한 대형병원을 찾기시작했다
몇개로 추려진 병원목록을 보내드렸다.
그러나 어머니가 병간호 하시려면 집이 가까운 곳이 좋겠다 하여 그나마 수술 잘한다고 알려진 가까운곳의 3차 병원으로 예약해드렸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근, 퇴근, 취미생활.
11월 30일 수술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뒤 암이 온몸에 퍼져있지만 한쪽 신장을 제거하고 퍼져있는 암세포를 최대한 제거했고 수술은 성공적이고, 이 후에 종양내과로 넘어가 항암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 아프니 어머니가 편한 츄리닝 한벌 사달라 했다. 백화점가서 25만원을 주고 츄리닝을 사서 2주뒤 찾아갔다.
이전보다 조금 말랐고 기운이 없었다. 수술했으니 조금 야윌순 있겠다 생각하며 식사를 했다.
메뉴는 부모님끼리 있을때는 비싸서 안드시는 소갈비. 예전만큼 많이 드시진 못했지만 그래도 엄청 맛있게 드셨다. 정말로.
이때까지만해도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남아있는 암세포만 항암치료를 통해 제거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실줄 알았다.
안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출근, 퇴근, 취미생활.
그 후 1월 아기가 나왔다. 외동아들이 낳은 귀여운 첫 손녀딸. 좋아하셨다. 나는 처음하는 육아로 정신이 없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몇주 동안 항암치료를 받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치료는 어땠는지 간간히 통화만하며 시간이 흘렀다.
통화내용은 "치료받는데 별거없다. 하루동안 약맞고 다시 집에오면 끝. 일정주기마다 치료 진행." 목소리도 괜찮다. 잘치료받고 계시구나 안심이 된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유를 물으니 "다리가 너무 아파서". 대수롭지않게 넘기고 육아로 돌아왔다.
그러던 중에 1차 항암이 끝났다. 의사가 차도가 없다고 했다. 약을바꿔서 2차 항암시작. 내용은 같았다. 또 간간히 통화만 나누었다. "항암치료 괜찮다. 약만 바뀌었다. 요즘약은 머리도 안빠진다."
며칠뒤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많이 안좋으셔". 왜지? 괜찮은거 같았는데..라고 생각하며 아버지를 찾아갔다.
기운이 많이 없어보였다. "항암치료 받느라 그런거겠지. 잘치료되고있겠지 손녀보고 조금만참아" 알겠다며 헤어졌다.
기운내라고 아기 사진, 영상을 보내드리며 지내다 몇주뒤 다시 찾아간 부모님댁. 삭발한 아버지가 있었다. 머리가 빠져서 그냥 밀었다 했다.
처음보는 아버지의 삭발한모습. 두피에 올라와있는 수많은 검버섯. 많이 야윈 몸. 걷기도 힘들어했고 많이 먹지도 못하셨다.
걱정이 되지만 아무렇지 않은척하며 "항암치료 하느라 그런거야 그러니까 빨리 나아서 아프지말아야지" 라고 말했다.
그 뒤로 매일 아기사진을 보냈다. 그러다 온 어머니 연락. "아버지 정신이 이상해". 진통제땜에 그럴수 있다고 위로하며 걱정말라고 했다.
어머니 연락이 올때마다 아버지가 더 안좋아지셨다는 소식, 입원했다는소식, 응급실갔다는 소식 등. 어머니의 연락이 오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팔이 부러졌단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왜?". 암세포가 팔 뼈에 전이되서 가루가 됐다고한다. 수술이 필요한상황. 정형외과로 넘어가 수술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성공적인 수술. "뼈 재건술 하며 근처 뼈에있는 암세포도 조금 제거해드렸습니다"
매 주 주말 병문안을 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목소리가 쉬기 시작했다.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아버지와 나는 이런상황이 되고 나서야 그간 못나눈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에 소홀해서 미안하다."
"퇴원하면 그간모은돈으로 아파트 하나 구매해서 전세탈출을 하겠다."
"이제 일그만두고 행복하게 살거다"
"못해봤던 가족여행 한번 해보자"
등의 행복한 미래를 그렸다.
얘기하던중에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말했다. "아들 맛있는거 사서 맥이고 보내. 든든한 갈비탕 사줘 집에있는 며느리도 포장해서 사다줘"
알았다고 하고 같이 나왔다. 어머니는 밥먹었다고 안드신다 하셨다. 먹었다고 할테니 집에가서 와이프랑 밥먹으라 하셨다.
나는 돈을 벌고난 뒤부터는 부모님이랑 식사할때 내가 결제하려 했다. 근데 이날만큼은 어머니께 꼭 얻어먹어야 겠다고
어머니를 끌고 근처 갈비탕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처음에 안드신다고 하시다가 억지로 끌고 들어가니 갈비탕을 시키셨다.
"뭐야 안먹는다더니...나는 삼계탕"
"삼계탕하나 더 포장해주세요" 어머니가 며느리 갖다주라고 포장도 시켰다.
아들앞에선 애써 괜찮은척 하던 어머니가 울먹거리신다. 부모님앞에서 괜찮은척 하던 나 또한 속상하다고 울먹이며 털어놨다.
먹기전 사진한장. 깨끗이 비운 그릇사진 한장. 아버지께 보내드렸다. 잘먹었다고. 어머니가 사줬다고. 고맙다고. 아버지가 좋아하셨다
다음날에도 포장해간 삼계탕 사진한장. 와이프가 다먹은 삼계탕 그릇한장. "와이프도 잘먹었데" 아버지가 또 좋아하셨다. 오랜만에 아비노릇한거같아 뿌듯하신거 같다. 나는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병문안에서 돌아오고 며칠뒤 안부를 물으려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가 받는다. 아버지가 목소리를 거의 못낸다고 한다.
바꿔달라고했다. "많이아파?"
"어..." 간신히 한마디 했다. 다시 어머니 바꿔달라해서 어머니와 통화를했다. "의사가 1,2달 갈거래. 항암치료 그만하고 의사가 먹지말라고해서 못먹었던 먹고 싶은음식 먹고 그냥 편하게 살다 보낼래"
"그래...알았어" 덤덤하게 대답했다.
이제 와보니 그간 괜찮았던 아버지의 모습들은 아들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괜찮은척 무리 하셨던거 같다. 그간 어머니와의 전화통화에서 알게된 심각한 상황들이 아버지와 직접 통화하거나, 방문할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아버지를 호스피스병동으로 보내고 싶다 하셨다. 더이상 희망이 없다 판단하고 편하게 쉬길 바라셨다.
알겠다 하고 대형병원 호스피스 병동들을 찾았다. 하지만 가능한곳이 없었다. 가장빠른곳이 3주 대기.
이 내용들을 어머니께 설명드리며 "정형외과 병동 많이 비어있으니 지금 거기서 순서올때까지 버티다가 같은병원 호스피스병동으로 가자."
하지만 정형외과 병동에서는 빨리 나가라고 성화였다.
결국 3주 대기를 걸고 금요일에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여기가 대형병원 정형외과병동 보다 좋아. 아버지도 좋아하셔."
"알았어. 다행이네. 내일은 약속있으니 일요일에 갈게"
다음날. 어머니께 다시 연락이 왔다. "아버지 힘들거같아. 지금와야할거같아"
바로 분유,기저귀 등의 아기용품을 챙겨서 출발했다.
도착한곳에는 말도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가 산소호흡기를 차고 누워있었다.
말을 걸어보았다. 희미하게 끄덕 하는게 최선이었다.
손녀가 잠투정을 부린다. 표정을 찡그리며 울랑말랑 한다. 너무 귀엽다. 아버지를 보여줬다.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신다.
말도 못하고 몸도 못가누는데 손녀보고는 미소가 지어지신다.
아버지께 희망찬 얘기들을 하기시작했다.
"아버지 나 잘살게. 착하고 능력있는 며느리 만나서 행복해. 어머니, 며느리, 아기 모두 행복하게 해줄게."
와이프와 어머니도 마지막을 준비하며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걱정마세요 저희 잘살게요"
"여보 우리 아들 잘컸어. 며느리도 엄청 착해. 손녀도 엄청이쁘고 잘키울꺼야. 걱정하지마."
끄덕...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끄덕 거리셨다.
그리곤 온힘을다해 어머니를 5초간 끌어 안으셨다.
잘 가누지도 못하는 몸으로 힘없지만 힘겹게 어머니를 안으시곤 다시 팔이 떨어졌다.
"짐정리하는거, 아파트 사는거, 이사하는거 내가 다 도와주고 어머니가 한번도 못해본 해외여행도 보내줄거야. 행복하게 해줄테니까 걱정하지마"
아빠의 초점없는 눈. 눈을감지못해 수분이 부족해 생기조차 없어보이는 눈이 내쪽으로 향했다. 눈을 마주치진못했지만
그런데 왠지모르게 "아들, 고마워, 사랑해, 아빠가 잘해주지못해 미안해" 라고 말하는거 같았다.
나는 대답했다. "괜찮아 미안해하지마, 걱정하지마" 내 대답을 듣고는 초점없는 눈이 다시 먼하늘을 바라보았다. 만족한거 같았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아프고 힘들거면 괜히 수술하고 항암치료 한거같다고 하신다. 그냥 남은여생 천천히 보내게 둘걸.
5시간이 흘렀다. 아기가 보채기 시작한다. 챙겨갔던 분유가 떨어졌다.
"아버지 나 집에 와이프랑 아기 데려다주고 다시올게 빨리 올게 기다리고 있어"
반응은없지만 들으셨을거라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왕복 2시간거리.
집에 거의 도착할즈음.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불안하다.
"XX아 아버지가 숨을 안쉬어" 울면서 말하셨다.
"빨리갈게 기다리고 있어" 나는 대답했다.
"한시간을 어떻게 기다려 여기서. 이미 돌아가셨어 빨리 모셔야지"
머리가 하얘졌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이별의 순간이 올 줄 몰랐다.
평소 검소했던 어머니는 조그마한 장례식장을 보내주며 여기 연락해보라고하셨다.
너무 허름하고 작았다. 이건 아닌거 같았다. 서울의 큰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연락했다.
사설 구급차를 불러서 아버지를 이송하고, 나는 먼저와서 계약하면된다고 했다.
장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나는 걱정되는 이것저것을 물어보았지만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했다.
일단 출발했다. "몇호실, 몇호실 가능하세요. 보고 결정하세요" 상담해주시는분이 말씀하셨다.
"지하는 50만원 2층은 150만원 이요" 규모는 비슷한데 2층은 리모델링이 된거 같았다.
금액차이가 너무 나서 지하로 결정했다.
상담원분이 체크리스트를 뽑아오시더니 "이거이거 필요하시죠 이건얼마 이거 필요하시죠 이건 얼마" 말을 하시면서 체크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네...네..." 밖에 할수없었다. 생소한단어들 빠르게 지나가는 체크리스트. 내가 선택한건 지하호실 하나였다.
"내려가 계세요" 상담원분이 말씀하셨다.
내려왔더니 식당 상담원분이 오셨다.
"음식은 이거 이거 필요하시죠. 이거 이거도 할게요. 이건 얼마 이건 얼마에요 도우미도 필요하시죠 얼마에요".
이번에도 "네..네..." 머리가 새하얘진 나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다음은 장례용품 판매원분이 오셨다.
"장례하는데는 이거 이거 필요하고 기타 등등 열몇가지가 필요해요.
수의, 관 고르시고 알려주세요."전시된상품중 제일 저렴해보이는걸로 골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전시해놓지않은 더 저렴한 수의도 있었지만 그냥넘어갔다.
괜히 대학병원으로와서 눈탱이 맞는거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80만원짜리 국화가 세팅되고 상담할때 제출했던 폰에 있는 3년전 내 결혼식때 찍었던 사진으로 만든 영정사진이 디지털 액자에 떴다.
기분이 이상하다. 사진속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연락받은 친가 친척들이 일부 모였다. 울음바다가 되었다. 어머니가 우는모습을 어제 처음보았다. 나도 울었다.
새벽에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옆호실 접객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밥먹는곳에서 담배를 피며 만원짜리를 쌓아놓고 포커를 하고있었다.
관리실에 연락해 말씀드렸다. "제가 해줄수 있는게 없어요..." 기대와는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불쾌한 기분이 드니 슬픔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그렇게 밤을 지샜다.
다음날 어떤분이 아침 입관하기전에 확인시켜준다고 어머니와 나를 불렀다.
처음 겪는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냉장고에서 흰천으로 덮혀있는 아버지를 꺼낸다.
고인 맞으신지 확인해주세요 라며 천을 걷는다.
처음보는 시신. 평생을 봤던 살아있는 아버지모습과는 다른 미동도 없는 아버지 얼굴.
왠지모르게 머리에는 피멍들이 들어있었고 눈에서는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어머니도 그랬나보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확인됐으면 돌아가라고 하신다.
"왜 저런모습을보여주는거야..." 라며 어머니가 우신다. 나도 말없이 따라울었다.
조금뒤 아까 그분이 다시 오셔서 입관하게 다시 오시라고 하신다.
이번엔 와이프까지 셋이서 갔다. 그곳에는 깨끗하게 염된, 어제 고른 저렴한 수의를 입고 계신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확인을위해 관에 상주 이름을 쓰라고 유성매직을 주셨다. 악필인 나는 최대한 정성을 담아서 떨리는손으로 아버지 이름을 꾹꾹 눌러썼다.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리를 피해드릴테니 입관하기전에 고인께 전하고싶은 얘기를 울지말고 충분히 나누라고 하셨다.
울기만하면 나중에 이 기억이 후회된다고. 그리곤 나가셨다.
울음을 참고 말을하려는데 도저히 참을수가없었다. 우리 셋은 통곡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좋은곳으로 가"
"이제 아프지않지"
"사랑해"
"그동안 사랑한다고 못해줘서 미안해"
"우리행복할게 지켜봐줘"
"먼저가서 기다리고있어"
"아버님 아기 잘키울께요. 행복할게요. 걱정마세요"
한바탕 울고 난뒤 빈소로 돌아왔다.
조문객들이 오기시작했다.
정신없이 몰려드는 조문객들을 응대하다보면 이 슬픔이 진정되지 않을까 하며 맞이했다.
근데 왠걸 한명 받을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왠지 모르겠다. 그렇게 이틀밤이 지나고 마지막 3일째 새벽
장례를 저렴하고 간단하게 지내자는 어머니는 갑자기 아버지 밥은 드시고 가셔야 되지않겠냐며 제사상을 차려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했다.
제사상이 차려지니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하신다. "맛있냐. 대접받으니까 좋냐. 나쁜놈."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하신다.
그렇게 두번째 밤도 울며 지샜다.
마지막 3일째 발인시간이 7시다. 5시에 출발해야 하고 그럴려면 4시부터는 정리를 시작해야된다 했다.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를 도와주기로한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를 버스로 옮기러 출발했다.
관을 꺼낸 관리인분이 확인해주세요 라며 관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삐뚤하게 쓰여진 아버지 이름이 쓰여있었다. 눈물이 났다.
확인이 끝난뒤 운구를 시작했다. 관을 버스까지 옮기고 묵념을 진행한 후 장지로 출발했다. 버스안은 울음소리로 울렸다.
1시간만에 장지에 도착했다. 7시가 화장시간인데 너무 일찍 도착했다. 근데 6시 20분부터 순차로 시작한다고 먼저 접수하자고 하신다.
접수서류를 작성하며 납골함을 선택하라며 납골함 업체분이 오셨다. 어머니는 나중에 아버지와 함께하겠다고 합골함을 원하셨다.
업체분은 이건 50만원 이건 110만원 이라며 상품들을 보여주셨다.
110만원 짜리를 고민하고있으니 현금결제 60만원에 드릴게요. 라며 다소 충격적인 딜을 제안하셨다.
어안이 벙벙하여 네 하고 신청한 뒤 화장 신청과 납골당 30년 이용금액 백몇만원을 결제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 6시 20분. 앞에있는 7팀이 빠르게 들어간다.
드디어 우리차례. 너무 빠른 이별에 당황해 하면서도 설명해주시는분에 맞춰 관을 들고 들어갔다.
"8번 화구로 가세요" 우리는 8번화구로 갔다.
그곳에 있는 창 너머로 아버지 관이 맞는지 확인을 진행한 후 관이 화구로 들어간다.
창문이 블라인드로 닫힌다.
어머니가 오열하신다. 이렇게 크게 우시는걸 처음본다. 숨넘어갈거 같이 헐떡이며 우신다. 티격태격하면서 정으로 사는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사실 너무 많이 사랑하셨나보다.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당황하면서도 화구에 들어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나도 울음이 터졌다. 친척들도 눈물바다가 됐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8시 20분. 화장종료 알림음이 들리고 합골함을 들고 수골장소로 찾아갔다.
납골함을 하나 드리면 드륵드륵 갈리는소리가나고 가루들을 납골함에 넣어서 보자기에 싸서 넘겨주신다.
혹시나 떨어뜨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안아 들었다.
무겁고 뜨겁다. 이제 막 화장이 끝난 뼛가루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납골함을 매우 뜨겁게 달궜다.
뜨거운것을 잘못만지는 피부인데도 참았다. 놓치면 돌이킬수 없는 일이 생길거 같아서 참고 또 참았다.
화장장 한켠에서 납골함 진공처리를 위해 보자기를 풀고 가루로 변해버린 아버지를 보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되냐며 큰고모가 오열하셨다.
나는 마지막으로 잘가라며 의전용 장갑을 낀채로 납골함에 있는 뼛가루를 고르게 꾹꾹 눌러 펴줬다. 장갑에 아버지의 흔적이 묻었다.
그렇게 진공처리되고 달궈진 납골함을 들고 납골당으로 갔다. 순차 배정이라는 납골당 위에서 일곱번째 줄에 배정됐다. 생각보다 높지만 아주높지는 않은 적당히 좋은자리 였다.
발판을 딛고 올라가 뜨겁고 무거운 납골함을 넣었다. 그리고 옆에 비어있는 나머지 하나의 납골함도 넣었다. 그리고 유리로 봉한다.
나중에 그 안에 납골함의 이름을 가리지 않는선에서 작은 위패나 사진을 넣어준다고 한다. 근데 한번만 가능하고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신중하게 골라서 넣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합골함을 넣은뒤 돌아가며 간단히 인사를 한후 다음을 기약하며 납골당을 나왔다.
끝났다. 후련하다. 짧지만 길었던 슬픔의 3일이 드디어 끝났다. 마음을 추스리고 친척들과 인사를 한 후 집으로 향했다.
집안 어르신께 아버지의 흔적이 묻은 장갑을 집에 가져가서 보관해도 되겠냐고 물으니 절대 안된다고 하신다. 어쩔수없이 장갑은 포기하고
와이프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양손을보니 경도 화상을 입은듯이 붉고 따끔따끔 했다. 가슴이 먹먹하다. 아버지가 보고싶다. 벌써 아버지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 앞에서는 강한척 해야 했고, 아기 앞에서는 기쁜척 해야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슬프다. 와이프는 옆에서 힘내라고 기운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의 그 어떤말로도 이 슬픔이 가시진 않는다.
2년 8개월전의 내 결혼식에서 밝게 웃고 있던 영정사진속 아버지. 손녀 100일도 못보고 돌아가셨는데 좋다고 웃고계신다.
야속하다. 이제좀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아기도 생기고 행복할줄만 알았던 내 생활이 무너졌다.
단한번도 아버지와 친하다고 생각한적도 없고, 깊은대화를 나눠본적도 없고, 아버지한테 받은것도, 받을것도, 해준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나라서 아무렇지 않을줄 알았다.
심지어 근 20년은 거의 떨어져 살았다.
근데 왜이렇게 먹먹하고 가슴이 무너지는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무뎌지겠지만. 무뎌지는것도 두렵다. 더이상 기억하지 못할까봐.
기억하자고 지난 사진들을 꺼내보면 이제 더이상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슬퍼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이 마음을 어디라도 털어놔야 속이 조금은 후련해 질거같아, 또 기록하지않으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 잊혀질까봐
유일하게 보던 커뮤니티에 두서없이 하소연을 해본다.
고작 6개월만에 헤어질 준비도 못하고 2024년 4월 27일에 떠나버린 야속하고 나쁜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IP보기클릭)221.145.***.***
지금 현재 우리 아버지도 대장암4기 항암도 소용이 없을정도로 퍼졌다고 하네요.. 결국 현재 가족들과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글이 이제 저에게 다가올 시간과 너무 똑같을거같네요 힘내세요 가족을 위해서 애기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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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으셨습니다 삼가 고민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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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가정환경에서 사랑 받아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주는 법은 커녕 받을 줄도 모르고, 타인의 사랑에 대해 고깝게나 보는 어른으로 큰 너가 참 불쌍하다 너가 무슨 잘못이겠니, 덮어놓고 떡치고 질펀하게 싸질러서 너 낳고 버린 부모 잘못이지
(IP보기클릭)59.5.***.***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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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 아버지가 간암 수술하시고 전이가 되어 어느정도는 비슷한 상황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님 글을 보며 하염없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차오르네요.. 힘..내시라고 말씀 드릴수가 감히 있을까요.. 평생을 각인되어 살아온 가족을 보낸다는것은 절대 익숙하거나 담담할수 없을것 같네요.. 언젠가는 겪을 일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두렵고 무섭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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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우리 아버지도 대장암4기 항암도 소용이 없을정도로 퍼졌다고 하네요.. 결국 현재 가족들과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글이 이제 저에게 다가올 시간과 너무 똑같을거같네요 힘내세요 가족을 위해서 애기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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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많으셨습니다 삼가 고민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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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4.04.30 0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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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 아버지가 간암 수술하시고 전이가 되어 어느정도는 비슷한 상황의 시작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님 글을 보며 하염없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차오르네요.. 힘..내시라고 말씀 드릴수가 감히 있을까요.. 평생을 각인되어 살아온 가족을 보낸다는것은 절대 익숙하거나 담담할수 없을것 같네요.. 언젠가는 겪을 일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두렵고 무섭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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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7556084536
고인을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죠. 이건 설마 비꼬는 글은 아니겠죠??? 혹시라도 그렇다면... | 24.04.30 09: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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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의 댓글입니다.]
루리웹-7556084536
제대로 된 가정환경에서 사랑 받아본 적이 없으니.. 사랑을 주는 법은 커녕 받을 줄도 모르고, 타인의 사랑에 대해 고깝게나 보는 어른으로 큰 너가 참 불쌍하다 너가 무슨 잘못이겠니, 덮어놓고 떡치고 질펀하게 싸질러서 너 낳고 버린 부모 잘못이지 | 24.04.30 11: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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