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화차*
국경 마을 낡은 여관집
유리창에 서리가 내렸다
유리에 바른 낡은 습자지 한 귀에 매달린 거미줄
아침 첫 햇살에 고요히 몸을 떠는데
먼 여행 떠났나 주인은 보이지 않고
데즈루나야라고 부르는 뚱뚱한 여급에게
물 한 잔을 받아와 마리화차를 우려낸다
해방되던 해 박인환이 종로통 어디엔가 냈다던 마리서사
새 조국의 아침을 맞아 젊은 시인이 처음 한 일이
서점을 내는 일이었다는 것은 유쾌한 일
서가에 꽂힌 어린 활자들의 꿈이 재스민꽃 향기처럼
새 역사 속으로 스며나가길 그는 바랐을 것이다
자작나무 잎사귀 바람에 펄럭이는
두만강까지는 여기서 이십리 길
국경 마을 여관집 창가에 서서
마리화차를 마시는 동안 잠시 역사의 슬픔을 잊어도 좋다
마소들이 마른풀 뜯는 산모퉁이 돌면
눈에 뜨뜻하게 차오르는 아침 두만강을
섬진강이나 보성강 바라보듯
그곳 모시조개 잡는 아낙들의 발그레한 볼 바라보듯
서럽게 보아 좋은 것이다
* 재스민꽃을 말려 만든 차.
와온 바다
곽재구, 창비시선 346